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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번역] 피폐주의) 멜리나 점자성서 - 불요, 불굴

THELEM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28 16:12:31
조회 2284 추천 25 댓글 31
														
[시리즈] 피폐물 점자성서
· 피폐주의) 점자성서 - 로데리카
#잔인, 고어한 묘사 없음



"무릇 살의라 함은 무엇인가?

일견 우스우리만큼 간단해보이는 이 자문자답에 필자가 굳이 품을 들여 귀중한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당어의 사전적 정의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거니와 언어의 사회적 합의에 촌철의 의문을 제기함으로서 언어사회학적 혁명의 발로*를 개현*하고자 함 또한 아니다

상기하였듯 해당 논평은 '살의'의 사전적 정의보다는 그 기저와 발전, 그리고 표출에 관해 다룰 것이나 독자들의 편의와 인문학적 합의를 위해 먼저 사회학적 관점에서의 살의에 대해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살의란 '타자와의 수많은 감정적 교류들 중 가장 극렬한 형태의 표출욕구를 내재한 감정'이라는데에 다들 동의할 것이다

이 험상궂은 욕구는 작게는 말다툼으로부터 크게는 폭력, 더 나아가서는 그 궁극적 욕망의 극치인 '살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중략)

"하여, 필자는 독자들에게 '때이른 살의'라는 개념에 대해 고찰해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상호간 이해와 소통의 부재, 혹은 운명의 장난 등 많은 요소가 우리가 새로이 정의한 이 감정이 발아하는데 밑거름이 되곤 하며 이는 그 표출에 그치지 않고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종종 숙련된 극작가의 작품보다 더욱 암울한 비극으로 이끌고는 한다
(하략)"

- 어느 이름없는 현자의 기고문에서 발췌
-------------------------------------------------------------------

...이 곳 틈새의 땅에서 강렬한 감정과 사념은 그 자체로 공간에 남아 메아리치곤 한다


참으로 가증스럽게도 이 눈에는 네 감정이 남긴 잔영이 보인다

네가 머물렀던 축복마다 이슬처럼 방울져있는 네 감정의 얼룩이 보인다



나는 이 두 손으로 너를 찔러 죽이고 말았다







조금만 더 너를 믿어볼걸, 한 걸음만 더 너와 걸어볼걸, 한 번만 더 너와 마주보고 웃어줄걸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이야기를 나눠볼걸







긴 여정 끝에 도읍에 입성하여 모습없는 왕을 쓰러뜨린 후, 거절의 가시를 태울 방도를 찾던 네게 나는 멸망의 불이 타오르는 거인의 화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불씨로서의 사명이 성취된다는 것은 곧 너와의 작별을 뜻하겠지만 네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머나먼 산령을 앞두고서 들려준 나의 사명이 네 얼굴에 띄웠던 황망함과 절망도...
솔직히 살짝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가학적인 의미로서의 무언가가 아닌, 연인끼리 사랑을 재확인했을 때의 안도감 비슷한 것

그 날 모닥불 앞에 떨어진 네 눈물은 끓는 구리보다 뜨겁게 눈밭을 적셨고

내 품에 안겨 밤을 지새운 너는 날이 밝기 전에 왕의 길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지금의 나는 영체에 불과할 뿐 이미 살아있는 몸이 아니니 괜찮다고 다독여도 보고 우리의 거래를 잊지 말라며 내심 마음에도 없는 화를 내어본들 너는 완고했다

그리고 처음보는 그런 너의 모습에 나도 잠깐이나마 희망을 품기도 했다

늘 불가능해보이는 일조차 어떻게든 해내는 너였으니까

내가 이대로 남아 네가 열어갈 새로운 세계에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네가 미친 불의 광담을 듣기 전까지는

노란 불은 세계를 죽이는 혼돈, 그리고 곧 그 추깃물*조차 지워버리는 허무의 불길

비록 내가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네가 저 미치광이의 참언에 귀기울이게 둘 수는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조급하게 너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당장 멸망의 불을 피워 황금나무를 태워야 한다며, 거래를 지키지 않으면 다른 이를 찾겠다며 을러댈 적이면 너는 늘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이때부터가 원망스러운 파탄의 시발점이었던 것 같다

조급함이 조급함을 부채질했고 그럴수록 서로의 조급함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어이 너는 도읍의 지하로 향하는 길을 발견했고 나의 완강한 만류로도 네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그 두렵고 혐오스러운, 싯누런 봉인의 인장 앞에 이르러 나는 네게 최후의 통첩을 전했고


너는 예의 그 슬픈 눈으로 광란의 불을 받아들였다


그 후로 이제껏 나는 너를 막을 방도를 찾아 온 땅을 떠돌았다

접목의 죄악이 서린 성의 지하로부터 황금나무의 깊은 뿌리를 거쳐 지금은 몰락한 어느 왕가의 성관에 이르기까지

오직 미친 불의 왕을 온전하게 죽일 "죽음"의 힘이 남긴 흔적만을 따라 떠돈 끝에 나는 간신히 과거 죽음의 룬이 깃들었다던 단검 한 자루를 구할 수 있었다

그 길고 고된 여정은 네가 내게 남긴 연정을 증오로 바꾸어 갔으며

이윽고 너에 대한 살의만을 내게 남겼다


그토록 미친 불에 대한, 아니 이제 너를 향하게 된 나의 증오는 불요불굴이었다


잿더미가 되어버린 황금의 도읍을 지나며 각오를 다졌고

감히 신화에서나 상상할 법한 전투의 흔적을 지나치며 네 시신이 있는지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돌무대의 중앙에서 네 뒷모습을 마주했을 때

나는 소리없이 다가가 준비해둔 죽음을 네 등 깊숙이 찔러넣었다


이걸로 미친 불의 왕은 죽었다

세계를 좀먹는 혼돈은 너를 마지막 장작으로 삼아 이곳에서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피와 거품에 질식해가는 너를 뒤집어 마주했을 때

이미 미친 불의 흔적은 그곳에 없었다


너는 마지막 숨을 짜내어 내게 안부를 물었고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가 칭찬을 바라듯 그간 네 행적들을 자랑했다

나를 대신 해 스스로 거인의 화로를 지핀 뒤로 머나먼 성수에서 미켈라의 칼날을 부러뜨렸고 시간의 틈새에서 붉은 번개의 왕마저 쓰러뜨린 뒤 마침내 무구한 금으로써 미친 불을 몰아냈노라고

내가 너를 죽이기 위한 여정에 있는 동안, 너는 나를 살리기 위해 이 땅의 끝에 다녀왔노라고


비로소 이 두 손으로 벌인 비극의 실체를 깨닫고 우두커니 서있는 내게 너는 미소를 띈 채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끝으로 서늘하게 식어갔다





...결국 그저 불굴할 뿐 불요*했던 맹목적인 증오

그 어리석은 불길이 나로 하여금 너를 이 차디찬 돌무대 바닥에 눕히도록 만들고 말았다

네가 나를 위해 그려온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태워죽이고 말았다

네가 고심끝에 간신히 찾아낸 우리의 미래를 이 두 손으로 산산이 깨부수고야 말았다



이윽고 그 시리도록 차가운 돌바닥에는 나와 끓는 구리보다도 뜨거운 눈물 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제 이 모든 후회를 걸머진 채 나는 네 행적을 좇는 머나먼 순례를 떠난다
그리고 먼 훗날 비로소 네가 이 땅에 남긴 그 모든 기억과 감정들을 추모한 뒤에, 

그때 부디 다시 한번 만나도록 하자








"떨어진 잎사귀가, 말한다

안개 너머 우리의 고향, 틈새의 땅의 위대한 왕위는 그 명맥이 끊겼으며

이후 그 땅에는 먼 훗날까지 어느 슬픈 소녀의 순례가 이어졌노라고

한때 불씨의 사명을 짊어졌던 소녀는

오래도록 눈물과 참회의 행렬을 이어갔다고 전해진다"







------------------------------------------------
발로* - 숨은 것이 드러나 나타남
개현하다* - 열어 드러나게 하다
추깃물* - 송장이 썩어 흐르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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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전에 초간단으로 쌌던 거 기반으로 함 써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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