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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제로 EX - 아이리스와 가시나무 왕 (후편) -6

케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24 22:00:15
조회 257 추천 22 댓글 6
														

장난하냐고!”

 

힘껏 휘두른 팔이 회의용 책상을 나무토막으로 박살내버렸다.

 

천막 안에서 날아다니는 목재의 가루와 나무조각들을 적잖이 뒤집어쓴 휘태커는 하얀 수건으로 입가를 가리며 가느다란 눈의 눈썹을 찡그렸다.

 

아무도 장난치고 있지 않습니다. 진정하시죠.”

 

이 새끼가, 진정?! 영주 놈이 겨우 황제가 되었는데, 이게이게 말이 되냐고!”

 

금빛 눈동자의 동공이 가늘어진 채 거친 목소리로 볼카스는 화를 냈다.

 

볼카스가 분노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휘태커는 얼굴 앞에서 두 손을 비볐다.

 

의외군.”

 

아앙? 뭐가? 뭐가 의외라는…”

 

그렇잖아요? 볼카스 공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걸로 각하는 더 이상 아이리스 공에게 다가가지 않게 되었잖습니까. 아이리스 님을 우선시하는 당신의 입장에서는——

 

닥쳐.”

 

뼈속까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한 볼카스의 발톱은 순식간에 휘태커의 목에 닿고 있었다.

 

말 그대로, 전광석화라고 할 정도로 재빨랐다. 호신술조차 배우지 않은 휘태커의 눈으로는 그가 화내게 만든 제국의 최고봉 실력자의 움직임을 쫓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휘태커의 목을 즉시 도려내지 않을 정도로 이성이 충분히 있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렇게 칩시다.”

 

이 새끼가…”

 

——그만하세요!”

 

칼처럼 날카로운 발톱에 목숨이 위태로운 휘태커가 볼카스에게 도발적인 말을 던지자, 두 사람 사이에서 지금까지의 난동을 보고 있던 테리올라가 말렸다.

 

볼카스 님, 진정하세요. 화를 내지 말아주세요. 오라버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질을 돋우려 하지 마세요.”

 

.”

 

테리올라의 말에 볼카스는 혀를 차면서 그를 내던졌다. 말 없이 뒤로 물러선 휘태커도 동생의 따가운 시선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테리올라는 크게 한숨을 쉬고,

 

지금, 가장 힘든 분은 유가르드 각하입니다. 선제의 의식에서 이기셨으니, 이제 대관식만 마치시면 황제가 되실 텐데…”

 

샤트란지에서 말하는 결정타샤츠보트(샤트란지판 체크메이트)를 걸기 직전에, 이런 함정에 빠지게 될 줄이야.”

 

남의 일처럼 말하지 마라. 따지고 보면, 네 녀석이 갖다준 풀 때문에 아이리스도, 영주 녀석도 이런 일에…”

 

그렇다면 아이리스 님의 병에 대해 넘어갔어야 하나요? 확실히, 당신 말대로 아이리스 님이 병으로 숨지시기 전까지 각하와 두 분이서 평온하게 지내는 것도 가능하기야 했겠군요.”

 

오라버니——!”

 

오빠의 지나친 발언에 테리올라가 매섭게 노려봤다. 만약 테리올라가 조금이라도 더 늦었다면 볼카스의 발톱이 휘태커의 목을 찢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선을 넘는 막말이었다.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볼카스 님도 아이리스 님의 병환에 대해 오라버니를 비난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납니다.”

 

그럼그럼 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볼카스가 분노로 이를 갈면서 머리를 쥐어싸맸다.

 

볼카스의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절규에 테리올라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제국의 그 누구도 답을 할 수가 없을 지도 모른다.

 

오라버니…”

 

한심한 표정과 말을 하지 마라, 테리올라. 우리 가문의 일원이라면 등을 꼿꼿히 펴라. ——어쨌든 선제의 의식은 끝났다. 우선은 빨리 대관식을 준비해야지.”

 

대관식 준비말입니다만, 유가르드 각하께서는.”

 

받아들이지 않으면 곤란하다. 장난이 아니라는 건, 각하도 아실 테니까.”

 

유가르드와 아이리스의 문제를 제쳐두고, 휘태커는 진행해야 할 행사로 화두를 돌렸다.

 

휘태커의 말대로 선제의 의식이 실질적으로 끝난 이상, 계속 제위를 비워둘 수도 없다. 황제가 없다는 것은 인접한 국가인 친룡왕국이나 도시국가에 대해 무방비함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선재의 의식은 빨리 끝나야 한다.

 

볼카스 공, 나와 여동생은 식의 준비를 진행하겠소. 당신은…”

 

나는 아이리스에게 간다. 싸움이 끝난 이상, 여기서는 쓸모가 없을 테니까. 게다가…”

 

게다가?”

 

선제의 의식이 끝나도 누가 나쁜 짓을 하려고 한다면 그걸 막아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볼카스는 천막에 머리가 부딪히지 않도록 허리를 구부리고 천천히 나갔다.

 

볼카스의 등에 대고 테리올라가 볼카스 님.”하고 부르면서,

 

제발, 아이리스님께.”

 

, 나도, 네 녀석도, 걔한테 말해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몸조심하세요.”

 

정곡이 찔리자 테리올라는 결국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볼카스는 테리올라의 기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천막을 나갔고, 천막 안에는 골다리오 남매만이 남아 있었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설마 아이리스 님의 [광전병]을 고친 게 이런 식으로 역효과가 날 줄이야.”

 

그건이런 일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오라버니가 자신을 나무랄 필요는…”

 

그렇지. ——아무도 예상 못했지.”

 

“…오라버니?”

 

얼굴 앞에서 두 손을 비비면서 답한 휘태커에게서 테리올라는 위화감을 느꼈다.

 

무언가 노림수가 있는 듯한 말이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테리올라는 휘태커가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았다.

 

역효과가 났다는 것은, 어떠한 결과를 내기 위해 행동했다는 것이다.

 

아이리스의 [광전병]이 치료되면서 그녀는 유가르드의 가시나무에서 면역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말고도 한 가지 일이 더 생겼다.

 

——유가르드 각하의 [가시나무의 저주]의 범위가 늘어나게 되다니.”

 

기대가 빗나갔다는 듯한 말이었다.

 

오라버니의 뜻은, 유가르드와 아이리스의 재회가 이뤄지지 못한 직후, 그에게 일어난 이변——가시나무의 저주가 커진 것이다.

 

원래, 유가르드의 가시나무의 저주는 100m 권내가 대략적인 영향권이었다. 날에 따라서 오차가 있던 수준이었지만, 상황이 뒤바뀌었다.

 

저주의 영향력은 단숨에 수백m까지 늘어났고, 심지어 대화경마저 뚫어서 물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심장을 묶어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각하를 위해 제공했던 대화경도 통째로 무의미해졌지. 만약 저주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마도구를 모아도 의미가 없어지겠지.”

 

무의미할 것까지는 아니었잖아요. 실제로 선제의 의식에 도움이 되었고요. 각하의 저주도 이대로 계속 될리가…”

 

우리 가문의 사람이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건가.”

 

————

 

저주가 세졌어. 점점 강해진다면 모를까, 약해지거나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 안해. ——각하는 점점 더 고독해질거야.”

 

휘태커의 확신에 찬 말에 테리올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라버니의 말이 옳다. 테리올라도 속으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해버리면, 유가르드에게 구원은 없다는 것이 아닌가.

 

대화경을 통한 원격 통신도 차단되고, 의지할 수 있던 아이리스도 접근하지 못하게 된 지금, 유가르드는 정말로 혼자다.

 

저주는 강해지고, 고독은 더 심해지는 건가. 그렇구나, 그렇지…”

 

테리올라가 자신의 손을 꽉 잡은 한편, 휘태커는 손을 그만 비비고 중얼거렸다. 여동생에게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 호박색 눈으로 세상을, 혹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는 것처럼, 실처럼 가는 눈을 살짝 열었다.

 

————

 

오라버니?”

 

, 이런, 미안. 어쨌든 우리는 대관식이나 준비하자. 각하와의 대화는 화살편지로구식 수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만, 진행하자. 다른 사람들을 불러와줘.”

 

, 알겠습니다.”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휘태커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테리올라는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나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다음 지침을 세울 수 있는 것이 휘태커의 미덕이다. 평상시에도 오라버니의 결단력에 도움을 받고 있다. ——평상시라면.

 

단지, 이때만은 테리올라의 가슴 속에 사소한 의심이 심어졌다.

 

역효과, 라고.”

 

어떤 이유로 인해 아이리스의 광전병을 치료했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았다. 그게 유가르드와 아이리스를 위한 일이라면 좋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건.

 

마지막으로 지시를 내리기 직전, 휘태커는 혼잣말을 하듯이 살짝 움직였다.

 

슬프게도, 아무 말 없이 움직였던 입술은 골다리오 가문의 여식인 테리올라에게는 읽혔다. 휘태커는 소리를 내지 않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금, 어떤 게 가장 [드라마틱]한 전개일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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