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갤에 갑자기 무거운 글 써서 미안하다. 근데 갑자기 떠오른 발상이 있어 속마음을 나누려고 짤막하게 글을 써 본다.

지난 4강전이 끝나고 여전히 마음 속에 자리잡은 감정은 아쉬움이다. 이번 대회만 우승했다면 소환사 컵이 네 개인데…. 하는 그런 아쉬움. 아마 앞으로도 희미하게나마 남겠지.

그런데 마음을 추스르면서, 내가 왜 페이커에 이끌리는가 하는 문제를 돌이켜 봤다. 단순히 들어올린 우승컵 숫자가 많아서? 오랫동안 기량을 유지하는 것이 감탄스러워서? 그렇다기에는 다른 종목에도 GOAT는 하나씩 있고, e스포츠보다 선수 수명이 긴 스포츠도 얼마든지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페이커에게 이끌린 건 성품 때문이었던 것 같다. 페이커는 이미 어마어마한 기록을 가지고 있어서, 신인 선수가 그 기록을 따라잡으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오 년이 걸린다.

그런데 페이커는 여전히 위를 바라보고 있다. 단순히 우승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린 선수들과 부딪히면서 자기 역량을 초월하려고 하고 있다는 얘기지. 그게 참 아름답더라.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고들 하는데, 누구는 앞물결을 밀어내려는 뒷물결을 보고 좋아하지만 나는 뒷물결에 맞서서 자리를 지키는 앞물결에 더 정이 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페이커가 장강에서 뒷물결과 계속해서 대결하든, 바다로 나아가서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든 계속해서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수 생명이 끝나지 않은 한에서는 계속해서 철썩거리며 역동적으로 도전할 것을 믿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