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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서희는 어떻게 '세 치 혀'로 거란군을 물리친 걸까

스카타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11.29 16:14:08
조회 483 추천 12 댓글 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5&aid=0002759815



한국사의 권위자인 미국 하버드대 제임스 팔레 교수는 한국 역사에서 발견되는 ‘이상하고 특이한 사실’로 “(중국의 각종 세력들이) 충분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왕조를 무너뜨리지 않은 것”을 꼽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7세기 신라와 교전을 벌인 후 한반도에서 물러난 당(唐), 940년대 북중국 일대를 통일했던 거란, 13세기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한 몽골, 17세기 대륙을 통일한 청(淸) 등을 제시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팔레 교수는 “(한반도 왕조들이) 중국대륙의 세력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실용적인 외교(pragmatic diplomacy)를 통해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팔레 교수가 거론한 ‘실용적인 외교’로써 가장 유명한 사례는 서희의 담판일 것입니다. 말(言)로써 40만 군사를 물리치고 강동 6주라는 새로운 영토까지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힘이 곧 진리인 냉정한 국제관계에서 정말 세 치 혀로 40만 군사를 물리쳤을까요. 고려와 중국 측 사서에 기록된 10세기 고려의 움직임을 따라가보면 더 복잡한 내막이 숨겨져 있습니다. 




①서희는 '세 치 혀'로 거란군을 물리쳤을까

993년(성종 12년) 거란의 소손녕 장군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담판이 벌어집니다. 
소손녕은 “너희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우리의 소유인데 너희들이 강점했다. 또 국경을 마주한 우리 대신 바다를 건너 송을 섬기니 군사를 일으킨 것”이라며 “땅을 떼어 바치고 국교를 회복하면 무사할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이에 서희는 ”우리야말로 고구려의 후예이고, 그런 이유로 국호도 고려라고 칭했다“며 ”거란이 차지한 만주 역시 우리 땅“이라고 당당히 맞섰습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담판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다음입니다. 
서희는 ”송과 교류하면서 거란과 국교를 맺지 않는 것은 여진족 때문이다. 그들이 압록강 인근을 점거하고 있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육로로 교통하기가 어렵다”며 “여진을 내쫓고 압록강 일대를 되찾으면 우리가 왜 너희와 굳이 국교를 맺지 않겠느냐”고 역제안을 합니다. 
즉, ‘고려-거란’ 간 국교를 위해서는 양국 사이에 있는 압록강 일대를 안정시켜야하니 이에 협조해달라는 것입니다. 모든 책임을 여진족에게 떠넘긴 셈이죠. 이를 들은 거란 측은 군사를 철수시킬 뿐 아니라, 압록강과 접하는 강동 6주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합니다. 덕분에 청천강에 머물렀던 고려의 경계는 순식간에 압록강까지 확대됩니다. 



0002759815_002_20171003134715918.jpg?type=w540강동 6주. 이를 얻은 고려는 압록강 유역까지 영토를 넓히게 된다.

하지만 이 담판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이전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란군이 고려에 쳐들어와 처음 공략한 곳은 봉산성(황해도 봉산군)입니다. 이곳엔 고려의 최정예인 선봉군(先鋒軍)이 배치되어 성문을 잠그고 버티는 농성작전을 벌입니다. 거란의 주력군은 기병입니다. 평야와 구릉이 펼쳐진 만주와 황하 일대와 달리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한반도에서는 상당히 애를 먹습니다. 거란은 봉산성에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병력 손실을 꽤 입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고려 조정은 거란이 봉산전투 직후 보낸 항복 서신에 일절 답하지 않았습니다. 

조바심을 느끼게 된 거란은 군사를 둘로 나누어 안융진과 연주성을 공격했습니다. 당시 안융진에는 발해 왕족 대도수(大道秀)가 1000여 명의 군사와 지키고 있었는데, 결사적인 저항으로 거란군을 막아냅니다. 연주성도 마찬가지입니다. 2400여명의 군사들이 역시 거란군을 패퇴시킵니다. 만주와 북중국 일대에서 승승장구하던 거란으로서는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희가 담판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입니다. 적으로 하여금 추가 군사행동에 대한 의지를 꺾어놓은 뒤 비로소 화의(和議) 협상에 들어간 셈입니다. 서희의 역제안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전과(戰果)가 담보됐기 때문입니다.



0002759815_003_20171003134715927.jpg?type=w540경기도 여주군 산북면에 있는 서희(942~998) 장군 부부의 묘. 그가 숨진 998년(목종 1년) 조성됐다. 1977년 10월 13일 경기도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됐다. [중앙포토]

참고로 거란의 전력에 대해서도 되짚어 볼까요. 


거란은 ‘병민(兵民)일치’ 시스템입니다. 일반 백성과 군인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는 건데, 유목민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바로 생업을 놓고 군사로 전환됩니다. 때문에 신속하게 수만에서 수십만의 군대가 조직됩니다. 하지만 고도로 훈련된 정예병은 아닙니다. 또 다른 특징은 보급을 스스로 하도록 둔다는 점입니다. 이 점 또한 유목민의 특성인데, 전쟁에 참여한 군사도 자기 몫의 양식은 스스로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고려는 이런 점을 노려 거란이 쳐들어왔을 때, 성 밖의 곡식을 다 없애고 농성을 벌이는 청야 전술을 씁니다. 이것이 톡톡히 위력을 발휘합니다. 소손녕으로서는 군량 보급이 충분히 않은 상황에서, 전문 군인도 아닌 40만명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②고려와 발해는 형제의 나라였나? 



고려의 기민한 외교술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대목은 발해와의 관계입니다. 
고려는 발해를 ‘형제의 나라’로 인정했고, 이 때문에 발해를 무너뜨린 거란에 대해 원한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왕건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무렵 거란이 선물로 보내온 낙타 50마리를 굶겨 죽인 이른바 ‘만부교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로 유명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고려는 정작 발해가 거란의 침공을 받았을 때는 왜 돕지 않았을까요? 

이에 대해『고려사』등 우리 사서에는 수록되지 않은 기록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거란의 역사를 기록한『요사(遼史)』입니다. 요(遼)는 거란의 국호입니다. 『고려사』와 『요사』를 교차해서 보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정황이 펼쳐집니다. 
예를 들어 왕건이 개성 만부교에서 낙타를 굶겨 죽인 것은 942년입니다. 그런데 앞서 922년에도 거란은 낙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3년 뒤인 925년엔 고려가 거란에 사신과 답례품을 보냈습니다. 942년의 상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고려사』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죠. 
특히 925년은 발해가 멸망한 해(926년)로부터 불과 1년 전입니다. 이보다 1년 전인 924년에는 발해가 거란의 요서 지역을 공격해 양국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즉, 발해가 국운을 걸고 전면전을 벌이는 동안 고려와 거란 사이에는 아무런 충돌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고려와 발해는 다소 껄끄러운 관계였습니다.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기 이전부터 평양을 점거해 성을 쌓았는데, 이곳은 엄밀히 말하면 발해의 영토였습니다. 물론 이 시기엔 발해도 거란과 전쟁을 벌이느라 남쪽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 사실상 버려진 땅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고려가 그 틈을 노려 냉큼 차지한 셈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고구려의 후계자를 자처한 부분도 그렇습니다. 발해의 국왕들은 중국에 사신을 보낼 때 스스로를 ‘고려 국왕’으로 칭하곤 했습니다. 고구려 적통 문제를 따지자면 영토 범위나 건국 시점을 봤을 때 고려보다는 발해가 우위에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거란에 대한 고려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건 발해가 멸망한 이후입니다. 발해 왕자 대광현이 10만여 명의 발해 유민을 이끌고 귀순하자 적극 받아들이는 한편 거란이 선물로 보낸 낙타도 거부합니다. 향후 만주와 압록강 일대를 두고 벌일 경쟁에 대한 사전 조치였던 셈입니다. 발해 세력이 유입된 것은 고려에도 큰 이득이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안융진 전투처럼 거란과의 전쟁에서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0002759815_004_20171003134715942.jpg?type=w540발해의 최대 영역 [중앙포토]

거란의 손을 빌려 발해가 없어져 고구려의 ‘유일무이한’ 계승자가 된 고려는 실리와 명분을 모두 챙긴 셈입니다. 
어쩌면 고려는 그나마 구경만 했으니 ‘큰 소리’ 칠 수도 있겠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926년 전투에는 신라군도 거란 편에서 참전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우리 역사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무렵 사서에 등장했으나 멸망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고려뿐이라는 점입니다. 거란(요)과 송은 여진(금)에게 무너졌고, 여진은 몽골(원)에 무너집니다. 심지어 고려는 몽골이 명에 의해 패퇴할 때까지 존속됩니다. 여기엔 고려 특유의 외교 전략이 큰 몫을 담당합니다. 고려의 외교 전략엔 3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 철저하게 ‘선(先) 실리, 후(後) 명분’이었다는 점입니다. 송과의 외교를 단절하는 과정, 거란과의 갈등을 여진에게 ‘퉁’치는 면모 등에서 드러납니다. 하지만 실리를 얻고 나면 이후엔 고구려 계승이라든지, 발해에 대한 복수라든지 각종 명분도 차곡차곡 챙깁니다. 
반대로 명분 때문에 실리를 포기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원·명 교체기 때도 고려는 원의 부마국(사위의 나라) 입장이었지만 국익을 위해 명을 선택합니다. 


훗날 조선이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다며 청과 갈등을 겪다가 병자호란을 겪은 것과 다른 모습입니다. 압록강 일대의 잠재적 경쟁자였던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세력을 흡수해 힘을 키운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군사적 위력을 보인 후 협상을 벌인다는 점입니다. 


앞서 소개했듯 서희의 담판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연주성, 안융진에서의 군사적 승리가 담보됐기 때문입니다. 서희는 평화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당초 거란에서 항복을 요구했을 때 고려 조정은 “전쟁은 안 된다”며 『투항론』과 『할지론』이 대세였습니다. 거란에 항복을 하든가, 서경(평양) 이북 영토를 내어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극렬하게 반대한 것이 서희입니다. 서희는 “지금 요구를 들어주면 앞으로도 또 다른 요구를 해올 것”이라며 “적과 싸워 본 뒤에 다시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해 이를 관철시킵니다. 훗날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이때 그 기세만 보고 놀래어 화친만 하려고 일삼았다면 화친이 이루어지기는커녕 적의 끝없는 요구를 채우느라 갖은 고난을 겪었을 것이니 이 일은 후세에 거울로 삼을 만 하다”고 남겼습니다. 



0002759815_005_20171003134715948.jpg?type=w540
10세기 동북아 국제관계. 거란은 연운 16주(지금의 베이징 일대)를 확보하며 세력을 넓혀 나갔다. 송과의 전쟁을 벌이며 배후에 있는 고려를 묶어두고자 했다. 제1차 거란의 침입은 이같은 배경에서 일어났다.

셋째, 국제정세에 대한 냉정한 판단입니다. 


당시 거란은 고려와 장기간 전쟁을 벌이기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송과 전쟁을 치르는 거란 입장에서 후방인 고려를 중립국으로 묶어두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 속내였습니다. 또한 압록강 일대에서 준동하는 여진에 대해서도 골치를 앓았습니다. 서희의 담판은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송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란이 국교 약속을 맺고 돌아가자 고려는 재빠르게 송으로 사신을 보냅니다. '거란이 당신들과 관계를 끊으라며 40만 대군이나 이끌고 쳐들어왔으니, 군사 원조를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미 연운(燕雲) 16주(현재의 베이징 일대)를 거란에 빼앗긴 송의 처지에서 군사적 원조를 할 여력이 있을 리 없습니다. 물론 고려도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송으로부터 ‘어렵다. 미안하다’는 회신을 들은 고려는 국교를 단절해 버립니다. 하지만 국교를 끊게 된 이유와 책임은 고려가 아닌 송에게 있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민간 교역은 계속 유지됩니다. 송으로서는 자신들이 군사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한데다가, 향후 거란을 계속 견제하려면 고려와 관계를 완전히 끊기 어려운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한동안 고려는 거란, 송과 갈등을 겪지 않고 평화의 시기를 보냅니다. 



훗날 고려가 강화도에서 나와 몽골(원)과 국교를 맺을 때도 이같은 외교적 판단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합니다. 


고려 원종은 태자 시절, 강화도에서 벌인 40여년의 저항을 끝내고 다시 개경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전하러 몽골로 향합니다. 하지만 도착할 무렵 제4대 황제인 몽케 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때문에 몽골의 다음 황위를 놓고 쿠빌라이와 아릭베케와 사이에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당시엔 아릭베케가 다소 앞서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종 일행은 상황을 지켜보다가 쿠빌라이를 찾아갑니다. 쿠빌라이는 고려 왕실에서 자신을 찾아온 것을 길조로 여겨 대단히 기뻐하며 극진히 대접합니다. 또한 이는 훗날 고려 왕조에 큰 이득으로 돌아옵니다. 


전세를 역전시켜 황제에 오른 쿠빌라이 칸이 고려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왕조에 비해 관대하게 대우하기 때문입니다. 고려가 강화도에서 나오면서 제시한 6가지 요구를 모두 받아들입니다. 이중 '불개토풍(不改土風)', 즉 '의관은 본국의 풍속을 따르며 고치지 않는다'는 조항은 이후 고려가 전통과 독립성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근거로 작용했습니다. 



역사에서는 종종 비슷한 상황이 다시 펼쳐지곤 합니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현재 동아시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송-거란-여진-고려를 둘러싼 10세기 만큼이나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중국-러시아-북한-일본-미국을 상대로 하는 청와대의 외교안보라인이 고려의 지도층만큼 기민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팔레 교수의 지적처럼, 또 역사가 보여주듯 한국의 생존은 “세력 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실용적인 외교(pragmatic diplomacy)”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팔레가 하버드 교수라는거랑 봉산성이 황해도가 아니라 평안북도라는 걸 제대로 명기 안한거 제외하면 잘 쓴 기사(워싱턴 대학 교수였음)


그리고 역사에서 서희의 세치 혀 외교만 띄워주지 명분 축적으로 작용했던 안융진 전투와 연주성 전투는 제대로 언급 안한다는 것도 팩트


별개로 짱깨들이 송나라가 가장 치욕적인 역사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별거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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