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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ㄴㅁㄱㄹ) 유년기의 끝

ㅇㅇ(211.226) 2022.07.23 03:27:47
조회 1905 추천 62 댓글 8
														



어느 날과도 다르지 않은, 무심하게 푸르른 날이었다.


"저, 저기... 하늘에...!"


드넓은 창공을 가로지르듯 떠오른 황금빛의 존재를 제외한다면.


"어, 어어........."


"시, 시.... 신이다! 개천제 폐하시다!"


천지를 울리고 벼락을 던져대는 신화의 여명은 아스라히 멀어지고, 과학과 문명의 요람이 된 고려의 한복판에서 나타난 현세의 이적.


그 불가해한 광경에 신민들은 그저 눈만 껌뻑거린 채 오체투지조차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그것을 불러일으킨 존재가 자신의 선조이며, 동시에 지금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말을 걸고 있었으니까.


"아이들아, 듣거라. 이것은 너희의 아비로서 전하는 나의 마지막 이야기가 되겠구나."


털썩―


고작 한마디임에도 자신이 알던 세계가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충격에 혼절하는 자가 속출했다.


"내 배려가 충분치 못했구나. 심약한 아이들에게는 너희가 친절하게 알려주도록 하거라."


범속한 이도, 고귀한 독자도, 빈곤하건, 부유하건, 심지어 지금 현현하신 분의 직계라 할지라도 그 지엄한 명령에 누가 거역할 수 있으랴.


"본래는 이번 화성탐사선에 몰래 얻어타는 겸 서한이나 남기려고 했지만, 여염의 민가에서도 사자의 유고가 불확실하면 다툼이 일어나지 않느냐. 하하."


그럼에도 고려의, 아니 지구 전체의 우러름을 받는 존재답지 않은 소탈하고 가벼운 말투였다.


"분명 하고픈 말이 산더미처럼 많았는데, 정작 때가 다가오니 무척 쑥스럽고 어색하기 그지없구나."


하지만 이 목소리를 듣는 그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밥은 세 끼 항상 챙겨먹고, 이는 성실히 닦도록 하여라. 언제나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정돈하고... 어 또..."


살아있으며, 우리의 곁을 거니는 신이 전하는 말이라는 것을.


"아무튼, 너희가 장성하는 것을 보았으니 이제 내 역할도 다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자식이 컸으면 응당 분가를 해야지, 눈치없이 너무 오래 있었어."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외쳤으리라.


"아닙니다!"


"제발 떠나지 말아주십시오!"


"개천제 폐하!"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는 손길처럼,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햇살이 모두의 머리위로 덮히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안다. 당연히 섭섭하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내 보살핌을 바라려는 것이냐? 응당 보답할 궁리부터 할 것이지, 요놈들이.... 껄껄."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도들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었다.


"허나 아니될 일이다. 내가 하늘을 연 이래, 수백 년을 고민하고 내린 결단이다. 무를 수도, 봐줄 수도 없겠구나."


엎드려 절하던 노인장의 주름진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내가 너희의 곁에 있다는 것을 알면 무척이나 기뻐했겠지. 하지만 세상은 거기에서부터 멈춰버릴 것이다. 누구든 나를 우러르기만 바쁠 테니까."


카롬테가 무릎꿇었다.


"발전하던 것은 사라지고, 도전하는 자는 물러나고, 알고자 하는 자는 없어지겠지. 내가 너희에게 그런 세상을 바라리라 여겼느냐?"


연희궁의 학사들이 쓰러졌다.


"내가 너희를 아끼고 기른 것은,오로지 사랑에 의한 것이지, 나의 종복으로 삼고자 함이 아니었다는걸 어찌 모르느냐?"


해룡사 방장이 두 손을 모아 정갈히 합장했다.


"물론 그것을 바라지 않는 아이도 있겠지. 너희 사도들은 정말로 황금 옥좌가 들키지 않으리라 생각하더구나. 끌끌."


이미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사도는 삼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용서하마. 천둥벌거숭이를 들여 앉히려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손길이 떠날까 두려워하는 발버둥이잖느냐. 죄주려는 말이 아니니 심려 말거라."


제국교 교황이 반지를 벗었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너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싸우고, 다투고, 경쟁하며 때로는 질시할 것이다. 그것이 너희의 본질이니까."


해문의 기술자들이 손에 쥔 공구를 떨어트렸다.


"그럼에도 내가 남기고 싶은 말은... 하나다. 너와 다른 이를 사랑하여라. 싸우기 전에 한 번만 더 참고, 반박하기 전에 스스로의 말을 되짚어보거라."


제국사관학교의 교장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하여 언젠가, 모든 벽이 허물어지고, 모든 담장이 흙 아래로 사라지고, 모든 울타리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는... 내게로 오거라."


황제가 물었다.


"정녕 그리 한다면! 다시 아버지를 뵐 수 있겠나이까!"


그리고, 세계가 멎었다.


"어여쁜 자식이 찾아오는 걸 기꺼이 여기지 않을 아비가 어디 있겠느냐?"


황도 창양의 주민들은 거대한 황금빛 용이 웃고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떠난다. 저 끝없는 별들의 파도를 헤치고 건너가, 또다른 대지에 발을 딛고 설 것이다. 이 땅에서 내가 그리하였던 것처럼."


슬픔을 이기지 못한 황제가 무너져내렸다.


"너희가 나의 발자취를 쫓아 그곳에 다다른다면, 동생들을 어여삐 여겨주거라. 그것만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마른 번개가 천상을 울렸다.


"마지막으로, 늙은 아비가 남기는 말이니, 귀를 열고 듣거라."


수십 억의 인류가 하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으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너희의 아버지여서 행복했단다."


그들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하늘이 열린 지 어언 육백 년, 제국을 보살피던 용이 하늘로 돌아갔다.


시중의 치세 아래 영원히 없으리라 생각했던 황실의 지엄한 명령으로, 전 고려가 한 달 동안 생업을 중단하고 침묵에 잠겼다.


눈물 흘리는 자는 있었으나, 소리내어 곡하는 자는 없었다.


다만 황제의 직속 명령이 대법원에 전달되고, 만장일치로 가결되어 새로운 헌법으로 제정되었을 뿐.


'용의 자손들은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지구의 모든 분쟁을 종식하고, 인류 연방의 초석이 되는 작은 한 구절이었다.


시간은 쏘아진 화살처럼 흘러갔다.


별빛이 명멸하고, 태어난 섬들마다 모든 꽃이 피어나고 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나날.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터져나간 꽈리 속의 홀씨들처럼, 꼬리를 남기며 멀어져가는 우주선의 불빛이 퍼져나갔다.


우주의 무한한 별들 사이로 영원의 궤적을 그려나가는 은빛 혜성들이 은하를 타고 넘었다.


그리고 마침내, 927대 시중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남자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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