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제임스 성경.
Authorized King James Version
흠정역(欽定譯) 성경
영국교회가 성공회로 갈라지고 난 뒤, 영국 왕실은 왕실의 권위를 세울 새로운 성경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제임스 1세의 명령으로 당대 영국의 신학자들이 모두 모여 새로운 영어 성경 번역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풍부하고 고풍스러운 어휘를 가득 사용한 고급진 번역의 KJV는 영어권에서 널리 쓰이는 성경입니다만, 이 성경의 번역에 사용된 원문들에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1. 최초로 시중에 "출판되어" 판매된 헬라어 성경은 15세기 네덜란드 신학자 에라스무스에 의해 출판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라스무스가 편집할때 사용한 헬라어 성경의 사본은 고작 대여섯권 정도입니다.
현대 성경 번역에 사용되는 헬라어 사본이 5000권이 넘어가는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죠. 출판사의 독촉이 심해 급하게 자료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 대여섯권 마저도 대부분이 신약이 쓰여진 시대보다 한참 뒤(어떤 것은 거의 1200년 뒤)에 작성된 사본이고, 요한계시록이 있는 사본은 딱 한권이었는데 그마저도 마지막 6구절이 손상된, 좀 당황스러운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군데군데 비어있는 문장들을 채워넣기 위해, 에라스무스는 라틴어 불가타 성경 등 다른 언어의 성경 구절들을 거꾸로 헬라어로 번역해서 끼워넣었습니다.
이걸 정확하고 완벽한 번역이라 보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요?
2. 필사로 전해지는 문서들이 으레 그렇듯이, 여기저기 오탈자나 달라지는 문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현상은 최초 문서가 작성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집니다.
게다가 신약성경을 필사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관에 맞추어 특정 문구를 추가하거나 바꾸거나 빼거나 하는 식의 편집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요한 1서 5장 7-8절. 소위 요한의 콤마라고 불리는 구절이 있겠습니다.
7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개역개정 요한1서 5:7-8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가톨릭 새번역 성경 요한의 첫째 편지 5,7-8
7 For there are three that testify:
8 the Spirit,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 three are in agreement.
NIV John 1 5:7-8
7 ὅτι τρεῖς εἰσιν οἱ μαρτυροῦντες,
8 τὸ Πνεῦμα καὶ τὸ ὕδωρ καὶ τὸ αἷμα, καὶ οἱ τρεῖς εἰς τὸ ἕν εἰσιν.
berean greek bible 요한1서 5,7-8
7 Quia tres sunt,
8 qui testificantur: Spiritus et aqua et sanguis; et hi tres in unum sunt.
불가타 성경
헌데 그리스어 판본 중 이런 판본이 있습니다.
7 ὅτι τρεῖς εἰσιν οἱ μαρτυροῦντες ἐν τῷ οὐρανῷ, ὁ Πατὴρ, ὁ Λόγος καὶ τὸ ἅγιον Πνεῦμα, καὶ οὗτοι οἱ τρεῖς ἕν εἰσι.
8 καὶ τρεῖς εἰσιν οἱ μαρτυροῦντες ἐν τῇ γῇ, τὸ Πνεῦμα καὶ τὸ ὕδωρ καὶ τὸ αἷμα, καὶ οἱ τρεῖς εἰς τὸ ἕν εἰσιν.
이것을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7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8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KJV John 5,7-8
7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8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이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한글 킹 제임스 성경 (이송오 역) 요한1서 5,7-8
보다싶이, 삼위일체를 대놓고 설명해 버리는 구절이 떡 하니 들어갔습니다.
아마 저 부분을 필사한 사람은, 성경에서 삼위일체에 관해 명백하게 증언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런 구절을 임의로 넣은 것 같습니다.
(물론 삼위일체는 이미 성경 안에서 논리적으로 유추가 가능한 부분이지만)
하지만 저 구절이 들어간 그리스어 판본은 후대에 가서 나타나지, 초기의 신약 헬라어 판본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구절입니다.
불가타 라틴어 성경을 편집한 예로니모도 요한의 콤마를 빼고 편집했지만, 다른 필사자들이 임의로 다시 끼워넣어 필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에라스무스가 편집에 사용한 판본 역시 저 구절이 있는 후대의 불가타 판본이고, 킹 제임스 성경은 에라스무스의 판본을 기본으로 영역한 것입니다.
현대 성서비평학적으로 봤을때, 요한 1서의 삼위일체 구절은 처음부터 적혀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킹제임스 성경이 쓰여질 때 보다 훨씬 많고 정확한 발굴 자료들이 넘쳐나니까요.
3. 헌데 몇몇 사람들은 요한의 콤마가 들어가 있는 킹 제임스 성경이야 말로 완전한 성경이라고 주장합니다.
성서에는 한 글자의 오류도 없으며, 요한의 콤마를 빼먹은 다른 역본들은 삼위일체를 가리기 위해 사탄이 손을 써서 변개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미국에는 피터 럭크만 목사, 한국에는 성경침례교 말씀보존학회의 이송오 목사 등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가톨릭은 왜 때려.
더 웃긴 게, 이송오 목사가 번역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에라스무스가 참조한 헬라어 판본을 가지고 번역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어딜 봐서 "킹 제임스 성경"의 한글 번역이라고 해야 할까요....?
결론은, 현대의 수많은 기독교 성서 연구가들은 킹 제임스 성경의 영문학적 가치는 높이 사지만, 판본 상의 오류는 분명히 있다고 말합니다.
현대에 출판되는 수많은 성경들은 킹 제임스 성경이 쓰여지던 16세기보다 훨씬 우수하고 정확한 자료들을 이용해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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