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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번역] 번역) 소설 수성의 마녀 #14 그녀들의 바람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01 0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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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번역) 소설 수성의 마녀 번역본 모음
· 번역) 소설 수성의 마녀 번역본 모음



#14 「그녀들의 바람」
(Ver. 건담에이스 수록)






1

베네리트 그룹 본사 프론트 내 전망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인공조명을 받으며, 미오리네는 프로스페라와 마주하고 있었다. 전망대 층에는 많은 식물이 놓여 있었지만,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오리네 렘블랑, 당신이 콰이어트 제로를 이어받아 주셨으면 해요."

프로스페라의 미소에서는 진심을 읽을 수 없었다.

"웃기지도 않네요. 망할 아버지를 대신하라니."

미오리네는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콰이어트 제로 구상(構想)이라고 표시된 단말기를 프로스페라에게 건넸다. 자신의 아버지 델링과 슬레타의 어머니 프로스페라가 입안(立案)한 것이다. 분명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프로스페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창안자가 노틀렛 렘블랑이어도요?"
"! 엄마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어머니의 이름이 나오자, 미오리네는 반사적으로 단말기를 든 손을 움츠렸다.

프로스페라는 창가로 천천히 걸어갔다.

"<데이터 스톰>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죠?"
"건담의 저주의 근원이잖아요."

애드 스텔라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기계에 정보를 전달하는 입자 <퍼멧>이 사용되고 있다. 모빌슈트의 조종사는 <퍼멧 링크>를 통해 기체와 상시 고속(高速)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기체를 조종할 수 있다.

한편, GUND-ARM에 구현된 GUND 포맷은 과도한 퍼멧 유입으로 인한 <데이터 스톰정보 폭풍>이라는 현상을 파일럿의 전신에 불러일으킨다. 퍼멧 스코어가 높아질수록 그 '폭풍'의 충격은 파일럿에게 치명적인 과부하를 초래한다.

"인간에게는 그렇죠. 하지만, 그 현상에는 기존 네트워크와는 다른——초밀도 정보 체계(超密度情報体系)를 발현할 수 있는 측면이 있어요."

프로스페라는 말을 하면서 근처 화단 가장자리에 앉았다.

미오리네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아연실색했다.

"초밀도······?"
"당신도 봤을거에요. ——에어리얼이 결투에서 상대를 종종 <오버 라이드> 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죠."

미오리네는 다시 한 번 계획서에 눈을 돌렸다.

"······그럼 콰이어트 제로라는 건?"
"데이터 스톰을 이용한 퍼멧 링크에 접속되어 있는 모든 시스템을 제어하는 신기축 네트워크 구상이에요. 에어리얼은 그것의 기동하기 위한 트리거계기고요."
"뭐에요 그게. 망할 아버지는 신이라도 될 생각인가 보죠?"

미오리네는 감정을 내뱉듯이 말했다.

"그래요, 아주 아주 오만한 신이죠. 하지만 저는 총재님의 이상에 공감했어요. 싸움도, 상실의 슬픔도 없는 세계."

미오리네도 상실의 슬픔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신처럼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미오리네는 담담하게,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프로스페라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총재님께 협력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슬레타를 편입시켜 결투에 참가하게 한 거예요."
"당신, 역시 슬레타를!"

프로스페라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딸인 슬레타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미오리네는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프로스페라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 후회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것이 꿈이었어요. 전 엄마로서 그 소원을 들어준 거고요."
"······!"

미오리네는 대꾸할 수 없었다. 프로스페라가 슬레타의 꿈을 이용한 것은 분명하지만, 슬레타는 슬레타대로 진심으로 학교에 가고 싶어했음이 분명했다. 미오리네는 슬레타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떠올리고 말았다.

"게다가 결투라면 죽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아스티카시아 학원은 에어리얼을 최적화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어요.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어요. 플랜트가 습격당하기 전까지는."

프로스페라의 손에 힘이 실렸다.

"총재님이 깨어나지 못하시면 콰이어트 제로도 발동시킬 수 없어요. 그룹에 알려지면 최악의 경우 계획 자체가 동결될 지도 모르죠."

그렇기 때문에 프로스페라는 델링이 깨어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미오리네가 가능한 한 빨리 콰이어트 제로를 이어받기를 바랬다. 미오리네는 추궁하듯 물었다.

"제가 폭로리크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여기서 도망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증거가 아닐까요? ——아버지의 염원을 저버려선 안 돼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프로스페라는 미오리네에게 결단을 강요하고 있었다.


2

아스티카시아 고등 전문 학원은 오픈 캠퍼스 이틀째를 맞아 더욱 활기를 띠고 있었다.

매점이 즐비한 이벤트 공간에 드디어 지구 기숙사 부스가 완성되었다.

모두가 함께 완성한 <GUND 의족>이 해설 패널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GUND 의료——"

아직 어려보이는 입학 희망자와 그 학부모들이 와서 흥미롭게 견학하고 있었다. 모빌슈트나 모빌 크래프트 관련 전시가 많은 가운데, 의료 분야는 다소 생소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풍겨와, 근처에 있던 관람객들이 코를 막았다.

"!"

냄새와 함께 나타난 것은 릴리크와 염소 티코였다.

"영양 만점, 염소 우유는 어떠세요?"
"으······!"

릴리크는 우유를 손에 들고 웃으며 어필했지만, 관람객들은 허둥지둥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염소는 싫어할 거라고 했잖아."

누노가 카운터에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그 안쪽에서는 아리야가 양반다리로 앉아 약초를 갈고 있었다.

"맛있는데 말야······. ——다 됐다."
"상처약인가요?"

릴리크가 물었다.

아리야는 손을 움직이며,
"치료약 정도의 참견은 괜찮지 않겠어?"
"파렉트를 정비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말해 주면 좋을 텐데."

오제로가 다가왔다. 니카는 소피와 노레아의 과격한 행동으로 인해 부상을 입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두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

이 중 니카의 불온한 움직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마틴뿐이었다. 니카가 테러리스트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떠안고 있었다. 우유캔에서 컵으로 우유를 따르는 와중에도, 마틴의 어조에는 무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니카는 예전부터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어.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지구 기숙사 격납고에는 싸움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MS 케이지의 트랩이 잔해 더미로 변해 있었다. 노레아가 파렉트를 사용해 파괴한 것이다.

그 광경을 목격한 츄츄와 틸은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츄츄는 이를 악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길이 없었고, 그런 상황 자체에 화가 났다.

틸은 그런 츄츄를 눈치채고, 츄츄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만히 기대어 주었다.


***


같은 시각, 슬레타는 니카와 함께 온실 앞 계단에 앉아 있었다.

니카는 울적해하며 슬레타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슬레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물어봐도 될까요? 소피 씨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면, 너한테 폐만 될 거야."
"저도 니카 씨에게 폐 끼치잖아요, 번번이요. ——그러니까······"

슬레타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니카는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나도 고아야."

슬레타는 니카를 바라봤다.

니카는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고개를 들었다.

"부모님의 얼굴도, 태어난 곳도 몰라. 좁은 방에 갇혀서, 매일 온갖 부품들을 조립하곤 했지.······동경했어, 학교에 다니는 걸. 그래서 아스티카시아에 갈 수 있게 돼서, 정말 기뻤어. 꿈이 이뤄지는구나 싶어서."

니카는 먼 곳을 바라본다. 어렸을 때는 가난했고,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채 머리카락이 무성하게 자랐다. 몹시 추운 날씨에 하얀 입김을 몰아쉬며 낡은 태블릿으로 아스티카시아의 학원 안내를 보며 희망을 찾았다. 니카는 그 시절을 떠올리는지,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네가 처음 학교에 와본다고 말했을 때, 아, 얘도, 나와 똑같다고 생각했어. 나는 너를 나 자신과 겹쳐서 생각했을 뿐이야. 그게 다야."

니카는 말을 마치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니카 씨······"

슬레타는 무릎을 꿇은 채 힘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괜찮아.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꼭 학교 생활, 즐겁게 해."

니카는 슬레타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


슬레타는 니카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며 터벅터벅 식재림 에어리어를 걷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슬레타."

가로등에 걸터앉고 있던 엘란이 태연하게 다가왔다.

"엘란 씨?"
"드디어 우리 둘뿐이네."
"아······. 저, 부스 일 좀 도와줘야 해서요."

슬레타는 경계하며 몸을 움츠렸다. 어쩐지 요즘의 엘란은 거북했다.

하지만 엘란은 멈추지 않고 슬레타에게 다가가며,
"괜찮아. 그것보다······"

엘란은 슬레타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힉!!"

슬레타는 몸을 움츠렸다.

엘란은 달콤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가까운 거리에서 슬레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알고 싶어. 네가 나를 피하는 이유를. ——고독했던 나를 바꾼 건 너야. 나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한 것도 너고.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네 호의의 증거를 보여 줘."

엘란의 말투는 외설적일 만큼 관능적이었다.

"으으으······"

슬레타는 엘란의 입술이 다가오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움직일 수 없었다. 이전에도 같은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다. 그때도 당황스러웠지만, 지금은 다리가 떨려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때 엘란의 머리에 무언가가 툭 하고 부딪혔다.

엘란이 뒤돌아보자, 해방된 슬레타는 안도했다.

소피가 달려왔다. 엘란에게 하로를 던진 것은 소피였다.

"언니! 이번엔 저쪽으로 가자!"
"아! 잠ㄲ! 소피 씨, 멈춰······"
"싫—어—. 아하하핫."

소피는 튕겨져 나온 하로를 붙잡고 어제처럼 슬레타의 손을 잡고 끌고 갔다.

엘란은 흐뭇한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곳으로 노레아가 천천히 걸어왔다.

"또 실패했네요. 작업도 안통하고."
"뭐, 다음 기회가 있겠지."

노레아는 학생 수첩을 엘란에게 내밀었다.

도대체 어떤 용도로 썼을까?——그러나 엘란은 입을 다문 채 웃는 얼굴로 수첩을 받았다.

하지만 노레아는 신랄(辛辣)했다.

"건담 파일럿에게 다음이란게 있나요? 페일 사에 사육당하면서, 갇힌 채 목숨을 낭비하고······우습네요."

그렇게 말하고, 노레아는 소피가 갔던 방향으로 걸어간다.

엘란은 빙긋이 웃으며 노레아의 등 뒤에서 말을 건넸다.

"너의 그 눈빛, 내가 아는 녀석이랑 똑같네. 스스로 살지도, 죽을지도 결정하지 못하는 불쌍한 녀석이었지. 결국 마지막엔 쓸쓸하게 죽었어."

노레아는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려 어두운 눈으로 엘란을 노려보았다.

"짜증나네요, 당신."
"너도 만만찮게 성가셔."

엘란은 끝까지 상쾌한 태도로 대답했다.

한편, 슬레타와 소피는 학원 구획과 식재림 사이에 있는 둑에 이르러 달리기를 멈췄다.

"곤란했지? 완전 소름 돋잖아, 저 녀석."
"엘란 씨는 소름 돋지 않······"

그렇게 말하면서도 슬레타는 부정할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소피는 하로를 어깨 위에서 미끌어트리며,
"결정했어."
"네?"

혼란스러워하는 슬레타를 뒤로하고, 소피는 말을 이어갔다.

"결투에 뭘 걸지. 내가 이기면, 진짜 언니가 되어줘."
"진짜······?"
"그래. 우리들, 진짜 가족이 되는 거야. 그러면 그 녀석도 죽이지 않을게."

소피는 손재주 좋게 뒷손으로 하로를 붙잡았다.

슬레타는 소피의 이야기를 거의 따라가지 못한 채,
"미안해요. 저한테는, 신부가, 있어요."
"신부?"

소피는 눈을 여러 번 껌벅였다.

"미오리네 씨와 약속했어요. 곁에 있겠다고. 결투도 지지 않겠다고. 그러니 결투는, 제가 이겨요."

슬레타는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던 소피가 갑자기 무표정해졌다. 그리고 입안에서 미오리네의 이름을 되뇌였다. 그것은 아스티카시아에 잠입하기 전에 기억해 둔 정보였다.

"미오리네······. 미오리네 렘블랑. 델링의 딸. 주식회사 건담의 사장······."

소피는 그제야 깨달았는지, 크게 덧니를 드러내며 빙긋이 웃었다.

"그렇구나. 미오리네가 언니를 가둬 두는 거구나."
"네?"
"미오리네를 죽이면, 그때의 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무슨······"

슬레타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는 찰나, 타이밍 나쁘게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세실리아의 목소리였다.

——여기는 결투 위원회. 럼블링에 참가할 학생들은 제9전술시험구역으로 집합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프론트의 하늘에는 RUMBLE RING이라는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결투, 기대되네."

빙글빙글 돌자, 소피는 즐겁게 웃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아, 잠깐만요! 결투에는 선서(宣誓)가······"

슬레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소피는 가볍게 무시하고 더 빨리 달려서 그대로 가버렸다.

결투 위원회 라운지에서는 세실리아가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 높여 방송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학원 안뜰의 거대한 모니터에도 세실리아의 모습이 크게 비춰져 관람객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지금부터, 오픈 캠퍼스 특별 이벤트 <럼블링>을 개최합니다! 규칙은 배틀 로얄 방식. 제한 시간은 30분. 블레이드 안테나가 부러진 순간 전투 불능으로 간주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파일럿이 승리합니다. 참가는 자유입니다. 뭐, 비공식 결투니까, 져도 망신은 아니랍니다!


3

각 기숙사에서는 메카닉과 오퍼레이터 학생들이 분주하게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고, 모빌슈트가 차례로 MS 컨테이너에 수납되고 있었다.

제타크 기숙사 학원함의 격납고행거에서는 라우더와 페르시의 딜란자 2기가 나란히 대기하고 있었다.

라우더는 페르시, 페트라와 함께 탑승용 트랩에 서서 눈앞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일럿과인 라우더와 페르시는 파일럿 슈트를, 메카닉과 페트라는 정비복을 입고 있었다.

그곳에는 제타크 기숙사생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라우더가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감으며 큰 소리로 선언했다.

"내일부터 나는 정식으로 제타크 사 CEO로 취임한다. 학교생활은 오늘로 끝이다. 하지만, 그 전에 형과 우리에게 치욕을 안겨 준 수성녀에게는 기필코 설욕할 거다!"

기숙사생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질렀다.

"오오오!!"
"해치워버려!"

페르시도 트랩에서 몸을 내밀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항상 페르시와 함께 있던 페트라는, 지금은 라우더의 곁에 있었다.

"선배의 딜란자, 제가 완벽하게 정비했어요. 마음껏 싸울 수 있으실 거예요!"

페트라는 뺨을 붉히며 시선이 흔들렸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라우더에게 헬멧을 건넸다.

"고마워, 페트라."

라우더도 단단히 그것을 받아들었다.

"응? 으응?"

페르시는 평소와 다른 두 사람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탐색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


그래슬리 기숙사의 출격 멤버는 사비나와 르네였다.

——파일럿 탑승, 출격 전 단계인 03단계로 이동.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거대한 모니터에 두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그 아래 통로에는 많은 팬들이 모여 두 사람을 응원하고 있었다.

"아하!"

르네는 양손을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르네, 혼자서 뛰쳐나오지 마."

사비나가 못을 박았다.

"누가 할 소리를!"

르네는 태도를 바꿔 사비나를 따라 그래슬리 사의 모빌슈트 <하인드리>로 향했다.


***



지구 기숙사함의 함교브릿지에서는 작전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누노가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니카와 편입생, 어떻게 할 거야?"
"시간이 없어.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

옆에 있던 아리야는 분주하게 작업을 계속했다.

뒷좌석에 앉은 릴리크가 보고했다.

"컨테이너 사출 준비, 완료했습니다."

——가자!

함교에 츄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츄츄는 데미 트레이너의 콕피트에서 쓰고 있는 헬멧을 탁탁 치며 기합을 넣었다. <데미 트레이너 츄츄 전용기>는 얼마 전 그래슬리 기숙사와의 결투에서 대파됐지만, 드디어 수리가 끝난 것이다.

파렉트의 콕피트에는 격납고의 오제로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부탁한다, 엘란! 주식회사 건담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야. 전력을 다하라고!

페일 사의 파렉트 개발 부문은 주식회사 건담이 인수하고 있다. 이번에 엘란은 주식회사 건담에 테스트 파일럿으로서 고용된 것이다.

엘란은 모니터에 비친 오제로와 틸에게 미소를 지은 뒤, 통신을 끊었다.

"전력을 다하면 죽는다고, 이쪽은."

지구 기숙사 학원함에서 출격하는 또 다른 파일럿은 물론 슬레타다.

이 전투에는 홀더로서, 그리고 주식회사 건담의 상징으로서의 위신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소피와의 사적인 '결투'이기도 하다. 그 누구에게도 질 수 없다.

하지만——슬레타는 한 곳을 응시하며, 바이저 안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소피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때의 나란게 무슨 뜻이지? 미오리네 씨를 죽이겠다니······"

그러자 콕피트에서 숨결과 같은 소리가 들리고, 슬레타 주변의 모니터가 반짝였다.

"——그렇네. 이기면 니카 씨를 구할 수 있어. 소피 씨와도 이야기, 더 할 수 있겠지?"

슬레타는 안심하며 웃었다. 소피와 노레아가 정말로 니카를 죽이려 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에어리얼을 실은 MS 컨테이너가 사출되어 갔다.

세실리아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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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회인은, 그래슬리 디펜스 시스템즈 CEO, 새리우스 제네리 대표님께서 맡아 주시겠습니다.


전술시험구역을 가로지르듯, 관전열차인 엘리베이터 시프트가 지나고 있어서 럼블링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내빈석에는 험상궂은 표정의 새리우스가 앉아 있었다.

"내가 델링의 대리를 맡다니."

MS 컨테이너에서 모습을 드러낸 모빌슈트들의 콕피트에서, 파일럿들이 차례로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KP014, 사비나 팔딘.
——LP013, 르네 코스터. 하인드리, 나간다.
——LP017, 페르시 롤로!
——KP013, 라우더 닐. 딜란자, 출격한다.
——MP039, 추아츄리 판런치. 데미 트레이너.
——KP002, 엘란 케레스. 파렉트.
——LP041, 슬레타 머큐리. 에어리얼, 나갑니다!


***


같은 시각, 신세 개발 공사 지사실(支社室)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프로스페라가 손님에게 말을 건넸다.

"뭐야? 벨. 할 말이라니."

벨메리아는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프로스페라를 마주보았다.


***


슬레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피 씨, 어디에······"

사용된 시험 구역은 광활해서, 참가한 모든 모빌슈트를 볼 수는 없었다.

——슬레타, 모의전 시작한다.

틸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아, 네!"

슬레타는 마음을 다잡았다.

——럼블링, 스타트!

새리우스의 호령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4

제9전술시험구역의 외관이 바뀌면서,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황야로 변했다.

럼블링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뛰어나온 3대의 기체가 있었는데, R&W류디 앤 위스턴사의 <지네테>, 다이고 사의 <클리버리 둔>, 그리고 글란츠 엔터프라이즈 사의 <라코위>였다.

파일럿들은 기체를 가속하면서 작전을 논의했다.

——홀더를 쓰러뜨릴 때까지는 공투(共闘)다.
——오오!
——배신하지 말라고!

클리버리 둔은 탱크형으로 변형하고, 라코위는 호버 주행으로 지상을, 지네테는 공중을 일직선으로 비행하며 각 기체가 일사불란하게 에어리얼을 향해 나아갔다.

럼블링은 마지막까지 블레이드 안테나를 지켜낸 1기가 승자가 되지만, 초반에는 적기끼리 연합 전선을 펼치는 것이 전형적인 전략이었다.

위쪽에서 쏟아지는 빔에, 클리버리 둔은 급히 회피 행동을 취했다.

파렉트가 에어리얼이 포위되기 전에 상공에서 엄호 사격을 해준 것이다.

엘란은 이제 주식회사 건담에도 소속되어 있다. 슬레타는 곧 알아차리고 말을 걸었다.

"엘란 씨?"

——귀찮은 날벌레는 내가 내쫓아 줄게. 그러니 보상을 줘. 둘만의 시간이라든가 말이야.

전투 중임에도 불구하고 엘란의 목소리는 여유로웠고, 그 사이 파렉트는 협력하는 3기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어리얼과 파렉트를 노리는 팀은 또 있었다.

하인드리 2기가 거리를 좁혀왔다. 그래슬리 기숙사의 기체다.

사비나가 르네에게 지시를 내렸다.

——에어리얼과 파렉트를 최우선적으로 공격해.
——알겠어!

르네는 대답하자마자 에어리얼을 향해 달려갔다.

한편, 사비나 기는 파렉트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 빔을 연사했다.

엘란이 조종하는 파렉트는 반격도 하지 않고, 여유롭게 피해나갔다.

——무서워라. 쟤 좀 맡아줘.

그렇게 가벼운 어조로 말한 엘란은, 근처에 있던 츄츄 기의 뒤쪽으로 재빠르게 피해갔다.

——뭐!? 으왓!

츄츄는 대신 빔 세례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사비나는 콕피트에서 고함쳤다.

——방해다. 비켜!

하인드리는 츄츄기를 날려버리기 위해, 랜스와 빔 핸드건이 결합된 랜턴 실드를 번뜩이며 크게 한 번 휘둘렀다.

츄츄 기는 아슬아슬하게 뒤로 뛰어 재빨리 라이플을 겨눴다. 사비나에게는 지구 기숙사와 그래슬리 기숙사의 단체전 때의 빚도 있었다.

——이 자식! 데미 트레이너를 부순 책임, 져 줘야겠어!

츄츄는 트리거에 손가락을 걸었지만——한 순간——굳어 버렸다. 사비나 기를 조준할 수 있었지만, 기회를 놓친 것이다.

조종간을 잡은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도 츄츄는 마음을 다잡고 사격했지만, 광탄은 사비나 기에서 크게 빗나갔다.

누노는 함교에서 의아해했다.

"츄츄 녀석, 상태가 안 좋나?"

이때 츄츄의 머릿속에는 플랜트 쿠에타에서의 테러가 되살아나고 있었디. 그때는 진짜 전투였다. 모빌슈트가 서로 총을 겨누고, 플랜트 시설도 모빌슈트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사비나는 의아해하며 다시 한 번 파렉트를 추적했다.

다른 한 대의 하인드리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빔을 뚫고 에어리얼에게 접근했다.

르네가 하인드리의 콕피트에서 외쳤다.

——리벤지 매치다, 건담!

얼마 전 6대6 결투에서, 르네는 사지를 에어리얼의 건비트에 의해 절단당해 버렸다.

에어리얼의 팔에 모인 건비트들이 실드가 되어 하인드리의 랜스 공격을 막아내듯 튕겨냈다. 불꽃이 거세게 튀었다.

이때 두 사람 사이에 딜란자가 뛰어들어, 거대한 도끼로 땅을 갈랐다.

직전, 에어리얼과 하인드리가 함께 재빠르게 뛰어 딜란자의 공격을 피했다.

승부를 방해받은 르네는 격분했다.

——라우더 닐! 왜 끼어드는 거야!

또 다른 딜란자가 르네의 방심을 노려 호버을 이용해 하인드리에게 급격히 접근했다. 페르시였다.

르네 기는 일단 후퇴하여 페르시 기와의 거리를 벌렸다.

——너는 내가 꺾는다!

페르시가 으르렁거렸다.

——할 수 있겠어? 내 상대!

르네는 조롱하듯 웃었다.

한편, 슬레타는 에어리얼을 산의 경사면을 따라 상승시켰다.

페트라 일행이 정비하고 라우더가 탑승한 <딜란자 라우더 전용기>는 히트 액스를 들고 에어리얼을 쫓아갔다. 지하에서 에어리얼을 향해 빔 발칸을 연사했다.

——네가 오고 나서부터 이상해졌어. 모든 게. 전부 다······. 알고는 있는 거냐, 수성녀!

라우더는 줄곧 쌓아왔던 증오를 드러냈다.

그 순간, 지표면에서 엄청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모빌슈트가 지하에서 억지로 지상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 충격으로 땅이 들썩이고, 컨테이너를 운반하기 위한 선로와 해치가 날아갔다.

"아······!"

슬레타도 깜짝 놀랐다.

연기 속에서 나타난 것은 소피가 탄 <건담 르브리스 울>이었다. 지하에서 튀어나와 빔 개틀링건의 끝을 라우더 기의 머리에 꽂아 넣었다.

——으아아아아아!?

갑작스럽고 무자비한 공격에 라우더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르브리스 울은 그대로 라우더 기를 땅에 세게 내리꽂았다.

제타크 기숙사의 브릿지에서는, 단말기를 들여다보던 일동이 소란을 피웠고, 페트라가 비통한 목소리를 냈다.

"라우더 선배!"
"저 모빌슈트······!"

슬레타는 플랜트 쿠에타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 새로운 적이 접근하는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빔 포를 피했다. 그리고 건비트를 조종해 계속되는 포격을 막아냈다.

이번에는 상공에서 새로운 모빌슈트가 나타났다. 노레아가 타고 있는 르브리스 손이다.

——르브리스 울. 르브리스 손. 작전을 개시합니다.

그 모습에 츄츄가 반응했다.

——저 녀석!

마찬가지로 엘란도 주목하고 있았다.

——플랜트 쿠에타에서······.

새리우스도 놀라움에 무심코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켰다.

"왜 저 놈들이 여기에!"

지구 기숙사 브릿지에서도, 릴리크 일행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마틴이 아무도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렸다.

"설마, 니카······!"

럼블링이 한창인 가운데, 니카는 학교 건물 뒤편에서 통신을 하고 있었다.

"프론트 관리사죠? ······신고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저·····."

그때, 니카의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슬며시 다가왔다. 학생 수첩을 집어 들고 통화를 끊어버렸다.

"!"

니카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있던 것은 차가운 표정의 에나오였다.

"안 돼. 샤디크 몰래 멋대로 행동하면."

르브리스 울과 르브리스 손이 난입한 전술 시험 구역에는 이질적인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슬레타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말을 걸어 보았다.

"소피, 씨?"

르브리스 울에게서 즐거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결투'를 시작하자.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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