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랑 둘이 텐트 안에서 수다떠는 중에
이상하게도 쿵쿵 땅이 울려대는 것임...

뭐지? 싶어 가림막을 뜯어 살짝 밖을 내다봤는데

시꺼먼 곰 한 마리가... 그르렁 콧노래를 부르며
이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오는 것 아니겠슴까

(실제로는 육식계 맹수들의 발바닥이 부드러워서 소리가 나지 않아요)

맹수 대비용으로 챙겨온 더블배럴-샷건은... 숙소에 있는데...
어 씨바 이커 어카지? 뇌정지 온 것도 잠시

짧은 시간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상황을 정리해보기로 했답니다

아버지는 지금 저 멀리서 얼음낚시중...
살짝 떨어진 위치에서는 다른 가족들이 식사준비중...
카레와 잡다한 캠핑요리에 시선이 팔려 곰의 존재도 모르고있을 것이니
제가 나서 시간이라도 벌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지요

곰...
100m 달리기를 6.4초 안팎으로 컷하는 생물...

전력질주하는 속도는 시속 50km... 자동차만큼이나 빠르고
나무도 절벽도 잘만 올라타대는...

심지어 자극적인 음식 냄새에 이끌려 내려온 산짐승을 상대로
도망이나 죽은 척은 답이 아니다...
굶주린 맹수에게는 나 잡아 잡수소 광고해대는 꼴이겠지...

가족 모두가 침착함을 유지할 수는 없을테니
가만히 서서 주시하는 것도 안돼...
필연적으로 패닉이 올 것이고 그러면 희생자가 발생한다...

높은 곳으로 대피하는 방법도
허허벌판 얼음 한가운데 캠핑중인 지금 상황에선 절대로 답이 아니야...

다행히도 저 녀석은 아메리카흑곰...
큰 덩치와 손쉽게 사람을 찢는 피지컬에 비해 겁이 많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무조건 치명타 선빵을 갈겨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어야...

호락호락 먹혀줄 먹이가 아니란 것을 보여줄 수 밖에 없겠지...
이게 바로 정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슴다...

무서워 얼어붙은 동생에게 두꺼운 이불을 둘러주고서
여기 누워서 숨소리도 내지 말고 꼼짝 말고 있어라 그러고서

죽음을 각오하고 홀로 조용히 텐트를 나서려는 그 때

아니나 다를까 지퍼소리에 어그로가 끌린 곰이 달려드는 절체절명의 위기!

?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비좁은 텐트 입구에 대가리만 빼꼼 걸려
요놈이 순간적으로 얼타는... 초-럭키한 상황이 연출됨...

물론 짤의 문은 목재 재질의 문이고
우리가 있는 텐트는 고어텍스 비닐이라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덕분에 찰나의 시간동안 빈틈을 노려볼 만한 호재로 작용을 했습죠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선 안 된다!
급하게 양 눈에다 펀치부터 갈겨 시야차단!

당황한 놈의 뒤로 재빠르게 접근해 부랄에다 싸커-킥 한 방!

그 과정에서
앞이 안 보이게 된 데다 급소를 맞아 미쳐 날뛰는 곰에게 저도
다리를 긁혀 골반뼈가 드러나는 중상을 입긴 했으나

만약 제가 지금 여기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면
돌아버린 곰에게 온 가족 몰살이라는 끔찍한 결과가 예상되었으므로
고통은 둘째치고 다시 죽기살기로 달려들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헤드락에 걸려 기절해 있는 곰과
그 옆에 누워 피를 흘려가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나...

대퇴부 동맥에 치명상을 입어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

달려와 곰 대가빡에 샷건으로 확인사살 하는 아버지의 모습...
응급처치로 패딩이고 나발이고 찢어 지혈하며 오열하는 어머니...
놀라 자빠져 테이블 째로 음식까지 엎어버리는 친척들...아이고 카레 아까워라...

곰은 이 오빠가 해치워버렸으니 이젠 나와도 된다 말해줘야 하는데... 아...

그래도 인생 마지막 순간에 정말 진귀한 풍경을 보고 가는구나...
뭐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네 하며 눈을 감는데

무슨 에어컨 틀어놓고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면서 자냐?
일어나서 밥먹어~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습니다...

밥먹으면서도 꿈이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 생각밖에 안 들더라구요

아마 현실이었다면 펀치를 날리기 전에 이미
곰의 1톤-잽으로 인해 내 뚝배기가 먼저 개박살났을 것...

물론 찾아보면 맨주먹으로 곰과 싸워 이긴 사례도 없진 않지만
어지간하면 끔살 당할 확률이 훨씬 더 높기 땜시...
자극을 하면 안 되는 것이야

주말 점심 카레향과 에어컨 바람의 조합이
무시무시한 꿈을 만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