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갤에서 오늘날 일본인이 저렇게 꽃밭머리 투성이 된 건 2차대전 끝나고 미국의 책임이 크다, 특히 혼영이 이 소리를 예전부터 자주했지.

미국 점령 당국이 일본의 손발을 아주 묶어놓기 위해 거세하고 세뇌시킨 후유증 때문이라며 터부시하는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실상 미국이야말로 점령이 끝나기 전부터 역코스로 방침 전환하고, 샌조약 체결 과정에서 일본의 재무장과 정상국가화를 집요하게 독촉했으며,

자기네가 만들어 강제했던 그 '평화헌법'조차 누더기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군비를 증강해서 자유 세계의 방어를 위해 일익을 담당하라 요구했어.

근데 이 모든 요구와 간청을 무시한 채 국내의 반전 여론을 빙자해 개헌도 재무장도 일절 못하겠다고 뻐팅긴 원흉이 다름아닌 요시다 시게루로

그의 문하생 관료나 정치인들이 자민당 정치를 주도한 보수 본류 주자로 활약하면서 경무장 경제 중시 노선이 일본의 국시처럼 자리매김한거임.

요시다가 이처럼 전후 일본의 기형적인 국가 노선을 설정시킨 배경엔 국방과 안보를 상대적으로 경시했던 그의 사고관이 작용한 점도 있었지만,

경제 부흥 추진에 국방비 부담은 백해무익일 뿐 차라리 반전 여론을 선동해 미국에 대한 협상 카드로 써먹는 편이 낫다는 꼼수가 작용했던거다.

여기에 방향틀이 정해지면 집단적으로 그 매뉴얼을 추종하고, 좀스러울만치 관성화된 수동적 양태에 집착하는 일본 특유의 국민성까지 겹치면서

'요시다 스쿨 세대'가 전후 정계를 리드해나간 가운데 좌익의 속칭 평화운동 공세를 방조하거나 심지어 부추기는 이중적 행태까지 보였던거고.

국방을 방기한 상태에서 국가 역량을 오로지 무역과 상업에만 투사한 결과, 외교 정책에 있어서도 과감한 발언력을 행사할래야 할 수가 없었던거야.

이런 정치-사회적 질서가 안보 소동 이래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만큼 국방과 안보라는 단어 자체에 알레르기적 반응을 일으키는 풍토가 조성된 점,

이걸 가지고 미국 탓만 한다는 것도 솔직히 우스운 일이지. 비단 안보 논쟁 뿐만 아니라 일본의 과거 역사를 보면 중차대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

정치 지도자나 일반 국민들이나, 모종의 충격적 외압을 받기 전까지 짜여진 관습과 매뉴얼에 연연하다가 큰 댓가를 치룬 선례가 종종 발견되는데,

저같은 일본의 특수성은 60년대 케네디-존슨 행정부의 국무차관으로 빌더버그 그룹의 원년 멤버이기도 했던 조지 볼이 지적한 사안이기도 한 바,

유연한 사고와 장기 전략 및 융통성이 결여되고, 어지간한 격변이 아닌 이상 기존의 관습과 매뉴얼에 안주하며 임기응변식으로 적당히 퉁치려하는

일본인의 고질적인 단점이 극대화된 결과가 바로 개헌에 저리도 쩔쩔 매고, 남센의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약하게 기른 후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