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우한테 진아가 했던 말을 들으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어. 가족이랑 연을 끊고 싶다고 하기도 했고. 또 가난을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나보다라고 말하기도 했지. 지긋지긋한 가족, 가난에 저당 잡혀버린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서 완전히 다른 정진아로서의 삶을 살고자 서울로 도망쳐 왔지.

근데 남진이는 자신이 도망치고자 했던 곳, 그곳의 자신을 자꾸 생각나게 하는 존재인 거야. 더군다나 남진이는 진아가 좋아했던 친구이자 하나뿐인 소꿉친구야. 진아는 아마도 남진이를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끊어내고 싶어할지도 몰라. 독하게 마음먹고 새롭게 시작하고 성공하고 싶은데 남진이에게 기대게 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테니까. 어제 남진이와 근황 토크를 하던 중에 이제 이런 이야기는 그만 하자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거야. 남진이에게 모질게 대하는 이유는 남진이가 쉽게 자신을 아끼는 마음을 접지 못할 거란 걸 진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

승주한테 진아가 신경쓰지 말라고 날을 세우면서 말하는 건 글쎄.. 일단 진아에게 시우는 특별한 존재야.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나 지금 현강에서의 자신이 될 수 있게 용기를 준 사람이자 어쩌면 미래에 자신에게 더 큰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든든한 사람이지. 또 술집에서 자신을 승주라고 착각하며 시우가 털어놓은 속마음을 들으며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이 사람도 마음이 외로운 사람이구나를 느끼기도 했지. (진아에게는) 참 좋은 사람을 거부해서 술을 진탕으로 마시게 한 '도도하고 잘나신 한승주'가 진아는 미울 수도 있을 것 같아.

거기다가 상대팀 수석 디자이너로 합류한 데다가 자신이 좋아하지만 끊어내려 하는 남진이에게 너무도 쉽게 팔짱을 껴 버리는 이 한승주라는 여자가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더 미울지도 모르지. 자기는 끊어내야 하고 버릴 게 너무 많은데 이 여자는 참 선택지도 많네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