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소위 시민이라는 군체는 두 가지 빵과 서커스를 제공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라면 동물로서 갖는 최저공통분모, 즉 오감의 만족, 육체적이고 말초신경적인 쾌락 충족의 목적을 가진 우민정책은 이 시대만이 가지는 특징은 아닐 것이다. 빵과 서커스라는 말은 전근대의 무지하고 배고픈 평민, 천민 등 피지배층을 통제하기 위한 교묘한 방식의 폭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정의할 때, 현대의 깨어있는 시민, 보통교육 이상의 공교육을 받은 헌법 아래에 평등한 지위를 갖는 개인들은 과연 그런 우민정책에서 자유로운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는 사실상 체제의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비판적 지성인, 자유주의 시민의 원형임을 자처하는 부류야말로 현 체제의 치와와, 프렌치 불독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평준화가 대략 18세기 말 부터 200년 넘게 이루어지는 중이며 근미래에 역사의 종언이 도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시적 관점에서 봤을 때 호황-불황의 경제의 파동이나 구조적 모순에서 발아하는 군중 아니, 시민의 불만, 분노는 여전히 통제되야할 불안요소이다. 그 위선부터 시작해서 기타 많은 점에서 자유주의 체제는 다른 통치방식과 분명히 구분되지만 그 역시 통치체제의 일종이라는 사실은 본질적으로 그들이 그렇게 폄하하는 여타 정치체제와 다르다고 할 수 없다. 대화와 타협을 전제한다는 간판을 단 틀안에서 평균의 시민은 여전히 이전 시대의 농노나 노예와 다를 바 없이 누군가의 통제 하에 놓여있는 것이다. 

 자유주의 체제가 낳은 산물 중 가장 새롭고 혁신적인 것은 현학자 중산층, 즉 앞서 언급한 자칭 비판적 사고능력을 갖춘 자유로운 시민이요 주체적인 개인이 자기 정체성의 완성이라고 믿는 부류라고 말하고 싶다. 대의민주주의 절차를 따르는 와중에 적극적 참여로 풀뿌리, 자발적 시민 정치를 완성해나간다고 진정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집단의 탄생이야 말로 이 시대, 이 체제의 정수인 것이다. 그러나 이 체제의 주권자들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 안나는 평균의 시민에게 애착을 눈꼽만큼도 갖지 않는 바, 이 집단 역시 높은 분들의 통제 대상일 뿐이라면 너무 심한 말일까.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 마라, 이 자들에게 내려진 것은 저질스러운 모습의 빵과 서커스가 아니니, 그렇다면 어떤 족쇄가 내려졌느냐, 바로 이념, 그냥 이념이 아닌 민주주의 질서 하에서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공인인증이념인 것이다. 이들이 행하는 토론, 이들이 논한다는 담론을 가만히 지켜보자면 테드 카진스키(77세)의 "Surrogate activity"라는 개념이 떠오르는 부류라고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빗대자면 동남아 지역에서 성행하는 투계, 지금도 인터넷에서 버젓이 돌아다니는 벌레 싸움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고도 하겠다.  

천재-자폐아들과 저능아-또라이들 사이에 도도한 척 우리 속의 마름으로서 존재하는 이 역겨운 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존재(Sein)에 감응하는 사상가와 건전한 본능을 잃지 않은 순수한 행위자가 함께 역사적 결정을 해야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