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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여행자의 필요 리뷰 (스포)앱에서 작성

요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2 13:31:43
조회 560 추천 15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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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어제 이대 영화관에서 여행자의 필요 보고왔습니다. "아트하우스 모모"라는 곳인데, 상영관 컨디션이 역대급으로 좋았습니다. 근처에 중년여성 두분이 앉아 영화하는 내내 소근거리며 리액션을 주고받았는데, 다른 작품이었으면 관크라고 느꼈겠지만 영화가 영화다보니 그 상황마저도 영화적이어서 나쁘지 않게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베를린에서 2등상격인 심사위원대상(은곰상) 받은 작품이고 벌써 홍상수와 세번째 합을 맞추는 프랑스의 대배우 이자벨 위뻬르가 주연을 맡은 영화라서 기대를 많이 하고 보았는데도 어마어마한 걸 봤다는 생각에 오늘 이시간까지 계속 전율하게 되네요.

홍은 언제부턴가 촬영기사 편집기사들과 같이 일 안하고 자기가 직접 카메라 들고 편집하고 하던데, '당신 얼굴 앞에서'같은 작품을 찍던 시절엔 그게 좀 어색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썼던 메모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동료가 사라지는 건지, 예전 동료를 더이상 믿지 않으려는 건지, 동료를 줄인 채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함성원, 김형구, 박홍열 감독 등의 이름이 홍필름의 크레딧에 올라갔을 때가 나는 좋았다."

어제 본 영화에서는 저 감상을 철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점 숙달되어서 그런가 이제는 카메라 워크도 편집에서의 손맛에서도 어색함이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다른 감독들의 이름이 크레딧에 있던 시절보다 더 홍상수 그 자체에 가까워졌달까요. 미니멀한 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픈 그의 실험은 대성공을 거두고 만 것입니다.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의 영화답게 영화는 '차이와 반복'을 직접 다룹니다. 어디서 온 지 모르지만 프랑스 출신이라 하는 '이리스'는 각각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만난 두 여자에게 독특한 방식으로 프랑스어를 가르칩니다. 둘은 실내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이리스는 냉담히 듣다가 자리를 떠 밖으로 나옵니다. 젊은 여자(김승윤)가 연주하는 것은 피아노, 나이든 여자(이혜영)가 연주하는 것은 기타입니다. 나중에 이리스를 따라 밖으로 나온 여자들에게 그녀는 악기를 연주할 때 느낀 감정을 묻습니다. 두 여자 모두 처음에는 행복과 아름다움 등의 피상적인 것들을 이야기하더니, 계속되는 이리스의 추궁에 결국 본인에 대한 불만족을 토로합니다. 악기 연주를 통해 자기 완성적인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사람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자 욕망하는 내 속의 다른 나를 깨닫게 하며 그것을 깊게 응시하는 문장을 만들어 암송하게 만듭니다. 교과서 없는 이리스만의 독특한 불어 교수법입니다. 홍상수는 동일한 구도의 두 장면을 병치하며 관객에게 그 차이를 찾아보게끔 유도하며 지적 자극을 주는 겁니다. 이건 사실 홍상수의 작품 내에서도 그렇지만, 그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따졌을 때도 찾아볼 수 있는 형식적 아름다움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홍상수가 자기복제밖에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홍상수가 계속 의도적으로 같은 작업을 반복하더라도 그 사이에는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겁니다.

이 영화에는 윤동주의 시 두 편이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처음에는 그 유명한 '서시'가 나오고요, 두번째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이리스가 만나는 아름다운 시는 바로 '새로운 길'입니다.


새로운 길
윤동주,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발표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 5. 10.)

민들레나 까치같은 특별할 것 없는 사물들,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를 넘어 마을로. 화자는 늘 같은 경로를 가는 것 같지만 언제나 그 길은 새로운 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홍상수의 길도 늘 새로운 길이고 이번에 그가 간 길도 놀랍도록 새롭습니다. 누군가가 싫어할만한 자기변명적인 넋두리들도 이 영화에서 어김없이 반복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전의 것들과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나이 든 남자(홍)를 제도 밖에서 만나는 앞길 창창한 여배우(김민희)에 대한 통속의 시각을 비틀어서 나이 든 여자(이리스)를 만나는 아들(인국, 하성국 분)을 보며 감정을 토해놓는 엄마(조윤희)의 통속적 시각을 보여줍니다. 그 뒤틀린 자기반영적 시퀀스가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여러 감정이 교차하게 되는 지점입니다. 제 기억에 홍이 작품에 자기반영을 통해 이야기를 한 것은 여러번이지만, 이런 구도로 바라보게 만든 것은 또 처음입니다.

언제부턴가 홍의 영화에 자주 보이게 된 김승윤의 존재감도 인상적입니다. 캐릭터가 엄청나게 강한 이혜영과 데칼코마니로 등장하는데도 전혀 꿀리지 않습니다. 비쥬얼 되는 신인급 배우가 이렇게나 꼿꼿할 수 있다니, 다른 작품에서의 모습들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홍 영화에 많이 나오는 권해효와 하성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권해효가 과거의 홍상수 페르소나들이 나이를 먹어 몸을 사리게 된 캐릭터인 반면, 하성국은 아주 새로운 캐릭터입니다. 홍상수의 이전 젊은 남자 주인공들처럼 여자에게 추근덕거리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하성국이 홍상수의 영화 말고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김승윤도 마찬가지고요. 두 젊은 배우에게 앞으로 그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영화에 등장한 실내공간들은 실제 출연한 배우의 집이라고 합니다. 첫 시퀀스에서의 이송(김승윤)의 집은 실제 권해효가 사는 집이고, 두번째 시퀀스에서 원주(이혜영)와 해순(권해효)이 사는 집은 실제 이혜영 배우의 집입니다. 세번째 시퀀스인 인국(하성국)의 집 역시 실제 하성국 배우가 사는 집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인국의 엄마로 등장하는 조윤희 배우는 권해효와 실제 부부사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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