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위험에 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류 입장에서 지구가 위험해진다'는 의미겠지

작중에서 지너스가 리미터에 대해서 한 설명을 좀 확대해석하자면, 리미터는 (작중에서 신이라고 표현되며 노숙자 황제에게 힘을 줬던) '모든 생물종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기 위한 지구의 섭리 구현' 비슷한 거라고 봄. 그래서 리미터를 깬 머머리가 인간 입장에서는 괴인들에게 맞서 자신들을 지키는 히어로지만 지구 내지는 자연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균형을 깨뜨리는 위험한 이질적 존재인 거고

첫 에피소드의 첫 괴인이었던 백신맨의 주장도 그렇고(다들 알겠지만 이런 종류의 만화에서 작가들은 첫 에피의 첫 악당 묘사에 엄청나게 공을 들임. 1화부터 주인공을 어필하려면 그에 대응하는 악당도 어떤 식으로건 임팩트가 있어야 하거든. 첫 에피 한정으로는 악당을 주인공보다 더 강조하라고 조언하는 편집자들도 있다) 사이코스가 했던 말도 그렇고 이 만화를 잘 보면 인류는 (만화를 보는 독자들 자신도 어차피 인간이니까 보통 간과하지만) 그저 '자신이 그 구성원이라고 해서 항상 옳거나 옹호받아야 하는 존재인건 아니다'라는 주제가 바탕에 깔려 있음. 울트라맨이나 가면 라이더 같은 일본 히어로물에서 자주 다뤄지는 주제지. 그를 통해서 인류를 적대하는 존재에게도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부여하고(물론 그 방법이 악랄하므로 결국 주인공에게 퇴치당하는 입장이지만), '인간도 기술적 성취나 욕망에 도취되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게 일본 히어로물의 큰 흐름 중 하나임. 이걸 자연스럽게 잘 살리면 띵작 대우 받는 거고, 너무 단편적이고 밋밋하게 묘사하면 중2병 취급 받는 거고ㅇㅇ 원펀맨도 결국 그 계보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보고.

뭐 어디까지나 소년만화니까 너무 깊게는 다루지 않고, 결과적으로 머머리가 신을 꺾음으로서 인류는 리미터라는 제약이 굳이 없어도 스스로를 잘 통제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머머리 같은 초인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인간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엔딩이 될 수도 있고(장르는 다르지만 그렌라간 같은 만화도 이런 방향이지) 반대로 머머리가 그러한 섭리가 온당하다는 걸 받아들이고는 스스로 리미터를 재설정해서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는 엔딩이 될 수도 있겠지. 뭐 요즘 추세로 보면 전자 쪽 엔딩이 더 인기 있을 거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