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9년, 우리 은하.

프레소린이며 위대한 칸이며 하던 이야기들은 옛날 옛적의 전설이 된 미래 세상에는, 이제 더 이상 제대로 된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르비스 무역상이라는 작은 기업으로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의 경제와 군사력을 거머쥐고 마침내 제국이 된 "르비스 기업제국"은 압도적인 외교력과 자본 지원으로 은하의 대부분을 속국으로 만들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나마 종속국에서 제외된 몇 몇 국가들만이 방벽국들의 타겟이 되어 간간히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뿐이었다.

제국 경영자 "이재용"은 나이 143세에 들어서 전 은하를 쭉 둘러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루하다."

이 세상에는 압도적인 르비스 기업의 돈과 전함 앞에 무릎꿇은 어리석은 자들만이 자회사로 남아있다. 이제 우리 기업에 대항하는 그 어떤 경쟁자도, 반항자도, 하다못해 중립을 지키는 세력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무릇 기업과 국가란 역경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면서 발전하는 법. 100년이 넘어가는 평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지금 이대로의 삶에 안주하게 만들고 있었다.

"새로운....시련이 필요하겠군."

2519년 3월 26일, 이재용 회장은 본사의 성간의회실에 13개의 모든 자회사의 CEO들을 불러모았다. 여느 때와는 다른 회장의 분위기에 CEO들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회의실에서 그가 뱉은 첫 마디는 지난 100여년간 기업에게 충성을 바친 자회사들에 대한 짧은 감사의 한 마디였다. 이에 모두의 표정이 조금 풀어지려는 찰나, 회장의 진심이 시작되었다.

"여러분의 그 충심에도 불구하고, 이제 르비스 기업제국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인 현 지배구조를 개편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자회사들에게 필요 이상의 자원과 군사적인 지원, 그리고 보호를 아끼지 않고 지원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셀 수 없는 부패와 비리, 그리고 안일함에 젖은 정체된 자회사들 뿐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르비스 기업 제국은 13개 자회사들 모두에 대한 지원과 외교적 협약을 중지하겠습니다.

모든 외교적 보호는 사라질 것이며, 현재까지 임대된 함대들은 지금을 기점으로 전부 본사로 회수될 것입니다."

CEO들은 대답할 생각도 하지 못한채 눈만 크게 뜬 채로 회장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자회사들 간의 인수합병 속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회사들을, 르비스 기업의 자회사로 다시 받아들이겠습니다."

"회장님, 하지만....경제는요?"

군사기업(방벽국), 말라바이트 자회사의 CEO가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얼떨결에 입을 열었다. 회장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곧 후회하는 눈초리였으나, 노련한 기업가 답게 정신을 차리고 공손하게, 그러나 위축되지 않은 말투로 다시 말했다.

"회장님, 무슨 뜻으로 말씀을 하시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저 또한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반성이 되는 점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 100년의 충성을 이렇게......"

회장이 한번 고개를 까닥이자,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말라바이트 CEO는 르비스 기업의 싸이커 경호원들의 염력으로 문자 그대로 입을 봉인당한 채, 둥둥 뜬 채로 허우적 대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 회장은 이제 존댓말 조차도 쓰지 않는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본사에게 직접 도전하던지. 우리가 진다면 기꺼이 고개를 숙이도록 밑으로 들어가주마. 대화는 이걸로 끝이다."

그리고 회장이 손을 한번 튕기자, 13인의 CEO들 전부 순식간에 성간의회 밖에 주차된 자신들의 함대에 어느 새 돌아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일찍 장막과의 접촉을 통해 사이오닉 능력을 개발한 르비스 기업은, 전함 단위로만 사용하던 사이오닉 점프 드라이브를 어느 새 개인 단위로까지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CEO들은 다시 의회장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은 포기하고, 각자 자신들의 자회사들로 다시 돌아간다.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누군가는 불안함에 손을 떨면서.

이 날 13개의 자회사들은 본사와의 모든 종속국 협약과 지원 협약이 해지되고, 독립된 국가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훗날 역사서에 이 사건은 "죽고 멸망할 때까지 싸우는 모임" 이라는 뜻의 사멸회유라는 이름으로 기록된다.

"사멸회유를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