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불공평하다.

이지훈이 이 진리를 깨우친 시기는 일곱 살 때였다.

한낱 코흘리개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맞았고, 맞았으니 때렸다.

그 결과로 그가 보게 된 건 자신의 어머니가 머리를 숙이는 장면이었다.

아들과 같은, 고작 일곱 살짜리 애한테.

그건 이상한 일이었지만, 또 당연하기도 했다.

그 아이는 금수저였으니까.

이지훈은 또래와 다르게 명석했고, 그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한 결과, 그는 어린 나이부터 세상을 조금 알게 됐다.

사람의 계급을 알게 됐다.

더 성장한 뒤에는 재력만이 아니라 지닌 바 재능으로도 계급이 나뉜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한때는 그게 저주스러운 일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여전하냐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부웅!

공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묵직했다.

이지훈이 찬 공이 유려한 선을 그리며 골대로 빨려들어갔다.

골대를 지키던 유승현의 다이빙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다.

유승현은 옷을 툭툭 털어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와, 진짜 장난 없네. 넌 왜 선수 안 하냐?"

"선수는 무슨. 군대에도 나보다 나은 사람 널렸더만."

이지훈은 피식거리며 거짓부렁을 내뱉었다.

그는 별의별 사람이 다 모이는 군대에서도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을 본 적이 없었다.

축구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이지훈은 소위 말하는 재능충이었다.

공부는 물론이요 음악과 운동, 심지어는 그림에도 소질이 넘쳤다.

그러나 그가 택한 건 한국대라는 간판뿐이었다.

'재미없어.'

그 어떤 것에서도 깊은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

다양한 분야 중에서 아직까지 취미로 즐기는 것은 게임뿐이었다.

그마저도 직업으로 삼을 정도로 열중하지는 못했다.

돈에 궁했다면 무언가를 선택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집이 가난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남들보단 유복한 편이었다.

금수저까지는 아니어도 은수저는 되는 수준.

그쯤은 되니 어린 시절에 금수저들과 어울렸던 것이었다.

이지훈은 하품을 내뱉으며 등을 돌렸다.

그곳에는 열댓 명의 남정네가 자리해 있었다.

분해하는 인원이 반, 실실거리는 인원이 반이었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리는 장면이었다.

"형. 너무 혼자 하시는 거 아녜요?"

24학번, 김진찬이 말했다.

말의 내용과는 달리 김진찬의 입가는 히죽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싫어?"

"어우, 맨날 꿀 빨고 싶은데요."

"그럼 평소에 잘해, 인마."

"지금도 잘 하고 있는데요 뭘."

이지훈은 김진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곤 고개만 뒤로 돌려 유승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걸로 5골 맞지? 고기 사."

"치사해서 쓰발…."

"치사하긴. 그러게 잘 막았어야지."

킬킬거린 이지훈은 벤치로 향해 걸어갔다.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문자가 와 있었다.

- 이지훈 고객님 안녕하세요.

고객님께서 주문하신 상품 디플러스 캡슐 A02 1개가 2025-10-28(5:30)에 배송될 예정입니다.

캡슐.

그건 보급형 가상현실 접속기를 뜻하는 단어였다.

3천만원대를 호가하는 기어형보단 싼 놈이었지만, 그마저도 신품으로는 800만원에 달했다.

이지훈에게 800만원이란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지불할 수 없는 금액도 아니었다.

그의 능력을 원하는 곳은 어디든 있었으니까.

알바비와 이런저런 대회의 상금 덕에 잔고는 두둑했다.

'이것만큼은 재밌었으면 좋겠는데.'

큰맘 먹고 지른 만큼 값어치는 해줬으면 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이지훈이 입가를 씰룩였다.

그는 가방을 메고 유승현에게 다가갔다.

"승현아, 난 빠진다."

"어, 왜?"

"택배 받아야 돼."

*

"설치 끝났습니다. 전원 넣으시고, 입장하셔서 계정 만드시면 됩니다. 미리 만들어두신 거 있으시면 로그인만 하시면 되고요. 게임은 PC랑 연동해서 설치하시면 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다 돈 받고 하는 건데 감사는요. 그럼 수고하십쇼."

설치 기사는 할 일만 마치고 쿨하게 돌아갔다.

홀로 남은 이지훈은 캡슐을 지그시 쳐다봤다.

침대만한 크기였지만, 그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제법 넓었다.

월세만 100만원을 넘게 내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이 캡슐이 8개월치 월세의 가치를 할 지는 두고 볼 일이었고.

'제발 돈 값만 해라.'

잠시간 바라보던 이지훈은 캡슐의 전원을 켰다.

PC와 연결하니 곧바로 캡슐이 인식되었다.

계정을 입력하라, 보안코드를 입력하라, 휴대폰 번호를 등록하라.

별의별 절차를 다 거친 후에야 게임의 설치를 시작할 수 있었다.

'뭔 예상 시간이 5시간이 넘냐.'

설치 현황은 0%에서 오를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이지훈은 공짜 고기를 날렸다는 생각에 한숨만 푹푹 쉬었다.

그는 샤워를 한 뒤에, 간편한 옷을 입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설치 예정 시각에 맞춰 알람을 설정하려다가 금세 그만뒀다.

어차피 내일은 토요일이니, 시간이야 차고 넘쳤다.

'잠이나 자자.'

자고 일어나서, 뚝딱 시작하면 된데스웅챠!

내 목표는 딱 컨택 하나다ㅠㅠ

나도 그런 쪽지 받아보고 시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