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KSPO 돔 공연이후 반년 이상이 지나 다시 한번 임영웅 공연을 어머니 모시고 다녀온 30대 후반 아재야.

사실 남들 두번 하기도 어려운 KSPO 돔 공연을 몇 주 연속으로 하고, 전국 투어 다음 행보가 상암이라 해서 "그래, 당연하지. 한국에서 남은건 그 곳 (리모델링만 아니었으면 잠실이 충분히 우선순위였겠지만) 뿐이니" 라고 생각했지.

결국 남은건, 이걸 어떻게 소화할까? 라고 하는 궁금증이었어. 

미국에 살면서 정말 많은 공연을 갔고, 대형 스타디움 공연만해도 콜드플레이, 위켄드, 레이디 가가, 엘튼 존 등등... 이런 경험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이정도는 해야지" 라고 할법한 나름의 기준이 있는 상태였어. 

어머님이 영시니까 물론 팔이 조금 더 안으로 굽을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소위 말하는 "공연의 퀄리티" 라는 부분 만큼은 오히려 막연히 팬덤에 의지하는 모습이 아니라, 공연 자체로만 봤을 때도 정말 준비 많이한, 누구라도 공연을 본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수준을 원했던것 같아. 

애초에 슈퍼스타 급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스타디움 공연이기 때문에 눈높이는 높아질 수 밖에 없고, 주제넘게도 "내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내 비교 대상은 콜드플레이, 위켄드인데?" 라는 물음표가 어느정도는 있었어.

그렇게 찾아온 저녁 여섯시 반. 각 곡마다의 후기나 반응은 이미 많이들 올라와 있으니 생략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케일 큰 공연에서 내가 작게나마 가지고 있던 물음표를 확실한 느낌표로 바꿔준 공연이었다고 생각해. 

무대 설치 마저 공연 컨텐츠로 활용하는 전략은 잔디 보호라는 명분 뿐만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했고, 이건 마치 F1 레이싱에서 차량들이 (일종의 정비소라고 할 수 있는) 피트인하는게 단순히 타이어를 교체하는 과정이 아니라 경기의 중요한 요소이자 즐길 거리가 된 부분을 떠올리게 했을 정도였어. 

그 과정에서 좌석 대신 그라운드를 덮은 흰색 천막은 미국 NBA 경기에서나 볼 수 있었던 레이저 프로젝션 맵핑을 활용하는 캔버스로 활용됐더라. 이걸 보면서, 얼마나 많은 레퍼런스를 검토하고 실제로 반영하려고 준비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실리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축구장 그라운드에 좌석을 놨을 때 대략 1만석에 티켓가격 20만원만 해도 20억이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최다 관중 타이틀, 금전적인 수익 그걸 다 포기하고, 추가 지출을 해가면서 또 다른 무대 장치로 활용한거야. 이건... 대인배, 통크다 정도로 말하기엔 사실 말이 안되는 결정이지. 

비가 와서 다소 걱정을 했지만, 오히려 이게 야외 공연의 매력을 극대화시켰고, 사전 MC분의 "올림픽 개막식, 슈퍼볼 하프 타임쇼처럼 빠르게 무대를 셋팅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어서인지 비를 맞으며 공연하는 장면에서 바로 머릿속에 한 장면이 오버랩됐어.

바로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이라고 불리는 2007년 하프타임쇼의 프린스, 그리고 비를 맞으며 그의 목소리, 일렉 기타, 관중이 하나되어 부르는 Purple Rain. 그와 비슷한 감동을 5월 26일 밤 상암에서 5만명이 함께즐길 수 있을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범위 밖의 순간이었어. (나중에 꼭 유튜브로 찾아서 보는걸 추천해)

그와중에 팬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해 그라운드를 둘러싸는 방식으로 서브 스테이지를 놓은건, 아마 역대 스타디움 공연 역사상 (동선 길이로 봤을 때) 최장거리 무대로 남을거고, 그게 보여주는건 임영웅이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축구와 팬에 대한 리스펙트, 그리고 진정성이라고 생각해. 

내 최애 뮤지션은 콜드플레이인데, 그들의 스타디움 공연이 주는 특유의 감동이 있어. 마치 동화 속 세상에 있는 것만 같은, 현실과는 완전히 차단된 채 오롯이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그 것. 

그 경험이 너무나도 신선하고 놀라워서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다니면서 몇번이고 그들의 공연을 즐기고 매번 전율을 느꼈었는데, 놀랍게도 이번 임영웅의 공연을 즐기면서 그 때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어.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임영웅이라는 아티스트에게 감사한 부분이 커. 임영웅이 아니었으면 우리 어머님을 비롯한 중장년층 분들이,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접하고 좋아하게 될 수 있었을까? 그가 아니었다면 클럽에서나 나올법한 EDM 장르의 곡들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즐기고, 젊은 친구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챌린지나 플래시몹을 함께 시도하고 소화하는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내 개인적인 작은 의구심을 환상적인 세 시간을 통해 확신으로 만들어준 임영웅에게 감사하고, 이 다음에는 또 어떤 즐거움과 놀라움을 우리에게 선사해줄지 다시 한번 기대케 해준 밤이었어. 

그간 내 기억 속 스타디움 공연에서의 하늘색은 학창시절 갔던 드림콘서트에서 잠실 주경기장 2층을 차지했던 fan god의 하늘색 풍선이었는데, 오늘부로 나에겐 스타디움과 하늘색 조합의 최종 진화형은 궂은 날씨 속에서도 5월 상암의 밤을 수놓은 5만명의 영웅시대와 임영웅이야. 

모든 임영웅 팬들은 본인이 지지하는 아티스트를 충분히 자랑스러워 해도 될 것 같아. 팬도, 아티스트도 정말이지 형용할 수 없을만큼 너무나도 빛났고 멋졌어. 그리고 이런 추억을 선사해줘서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