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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서울대 경제학부 소식지(2007. 10)에 기고한 글.모바일에서 작성

유후(14.45) 2017.06.08 13:27:45
조회 311 추천 18 댓글 8



갤주 글 솜씨.

밑에 글 때문에 빠직해서 가져옴.


유승민 의원이 서울대 경제학부 소식지(2007. 10)에 기고한 글.

“춘천 가는 길”

바쁘다는 핑계로 동문회에도 잘 나가지 않던 제가 경제학부 소식지에 글을 쓰게 되니 좀 쑥스럽습니다.  빚진 기분에 선뜻 쓰겠다고는 했습니다만 지난 수년간 정치 한복판에서 몸을 버렸던 터라 막상 노트북을 열고 나니 정치색 없는 글을 쓴다는 건 저로선 정말 힘든 일이군요.  그래서 지난 1년반 동안 매주 춘천 다녔던 기억이나 더듬어보려 합니다.

저는 대구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강원도와는 특별한 인연이 없었습니다.  기억에도 없지만 갓난아이 때 군법무관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잠시 홍천과 원주에서 살았다는 어머니의 증언만으로 강원도라고 하면 왠지 애착이 있었나 봅니다.  재작년 12월에 대통령선거에서 지고 나서 이제 백수생활을 어떻게 하나 막막하던 때였습니다.  제 처지를 불쌍하게 여겼는지 춘천 한림대 친구가 연구교수로 오겠냐고 제안을 하길래 두말 안하고 갔습니다.

춘천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27년전 대학 2학년때 지금 제 아내가 된 당시의 이화여대 1학년생을 어떻게 꼬셔보려고 소양댐 건너편에 있는 청평사에 갔던 기억에 절로 웃음이 납니다.  어느새 중년이 되어 그 길을 다시 가니 세월의 무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더군요.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적어도 춘천 가는 길에는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 눈에는 강도, 산도 옛날에 있던 그대로인 것 같았습니다.  

매주 화요일 아침이면 자동차를 몰고 팔당대교를 건너 홍천가는 6번 국도를 타는 척 하다가 양수리로 빠져 대성리, 청평, 가평, 강촌을 지나면 바로 춘천입니다.  강촌하우스라는 휴게소에서 천원짜리 원두커피를 한잔 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3월 첫 수업에서 시작해서 12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팔당호부터 양수리까지, 그리고 북한강을 따라 올라가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이지요.  길따라 수없이 늘어선 식당과 러브호텔의 요란한 현수막만 없다면 더 좋은 길인데 그게 좀 아쉽습니다.  하기야 다 필요하니까 그 자리에 있는 것이겠지요.  화요일 아침에 출발하면 학교옆 세종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수요일 오후에 돌아옵니다.  제가 호텔측 판촉사원은 아니지만 봉의산 중턱에 자리잡은 춘천 세종호텔은 자기들이 선전하는 대로 정원이 아담한 조용한 호텔입니다.  

꽃이 언제 피고 언제 지는지를 모르고 몇 년을 악발이같이 살았던 터라 제 눈에는 춘천 가는 길에 매주마다 색깔과 몸집이 변하는 산과 강과 들판을 감상하는 게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물안개라도 자욱히 끼는 날이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직업을 알선해준 그 친구는 제가 춘천이라는 유배지에 귀양살이를 왔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춘천에서 반성도 많이 했지만 사실 춘천을 오가는 생활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화요일 오후 두시간 수업을 마치고 나면 자동차로 강원도를 탐험하기도 합니다.  봄비가 촉촉하게 오는 날 소양호를 따라 꼬불꼬불하게 난 인제 가는 국도로 차를 몰면 우리나라에 이렇게 한가한 길도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내린천 주위를 돌아보다가 해가 지면 홍천으로 빠져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돌아오면 금방 춘천입니다.  저녁은 짜장면으로 때우거나 순대국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이면 딱 좋습니다.  솔직히 누가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는 날은 춘천을 즐기는 자유를 빼앗긴 기분에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래도 이 친구들 덕분에 춘천 교외의 감자골이라는 허름한 식당에서 먹어본 묵사발과 두부는 최고였습니다.

한림대에서는 지난 세 학기 동안 한국경제론과 산업경제학을 가르쳤습니다.  교과서대로 가르치기 싫어서 교재 없이 강의노트를 만들어 경제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제가 아는 것 위주로 강의를 했는데 학생들은 그게 생소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KDI와 여의도연구소에서 경제정책이 어떻게 결정되고 정치논리가 정책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신물나도록 봐왔던 터라 현실을 자세히 설명해주면 학생들이 퍽 재미있게 듣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제발 좀 신문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제 강의노트는 항상 지난 1주일 동안의 신문기사나 칼럼, 사설, 그리고 새로 나온 자료들 중에서 학생들이 꼭 읽어볼 만한 것들의 리스트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도 해 줍니다.  신문기사를 읽고 이해하고 비판할 능력만 있다면 하산해도 좋다는 심정으로 한국경제를 가르칩니다.  

처음 한림대에 가기로 결정되었을 때 한림대 경제학과 자유게시판에는 한나라당의 수구꼴통이 온다는 비판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학생들과 대화를 시작하고 나니 보수야당 출신이라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음을 쉽게 열어준 학생들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요즘 대학생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림대 경제학과 학생들은 참 착하고 예절이 바르답니다.  수업도 열심히 따라오고 처음 보는 황당한 시험문제를 내줘도 제가 깜짝 놀랄 정도로 잘 합니다.  이런 좋은 학생들이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해 저렇게 풀이 죽어있는 걸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저는 유달리 학생들에게 경제성장이 왜 중요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당신들 인생에 왜 중요한지를 역설하는 편입니다.  국민연금이 고갈되고 건강보험 재정이 바닥이 나면 20년후에 당신들의 삶이 얼마나 괴롭게 되는지 목청을 높여 설명합니다.  만약 포퓰리즘 경제학에 빠져 있던 일부 학생들이 제 강의로 한국경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을 바꿨다면 정말 큰 보람이겠습니다.

정치판은 조폭세계와 같아서 들어가기는 쉬운데 손을 씻기는 어려운가 봅니다.  우연곡절 끝에 17대 국회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4년 더 정치판에 머무는 것이 제 팔자인 모양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서울대 경제학과 동문들은 여당 야당에 골고루 많습니다.  우리 경제과 출신 중에는 진보도 있고 저와 같은 보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은사님들의 균형잡힌 교육의 덕분 아니겠습니까.  사실 우리나라 최고의 진보적 경제학자 중에는 평생을 학처럼 깨끗하게 사시면서 치열하게 고민을 해오신 선배님들이 많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선배님들을 무척 존경하고 가끔씩 만나 뵙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X같은 자들이라 비아그라가 필요 없다는 어느 선배정치인의 농담에 크게 웃어본 적이 있습니다.  1년반의 춘천 가는 길은 이렇게 일단 접게 되었습니다만, 언제 춘천 가실 일이 있으면 그 오가는 길의 색깔과 풍광을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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