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이념, 보수, 진보 등과 관련해서 책을 찾아서 읽어본 경험도 적고 나 역시도 단단한 이념이란 걸 가졌다기보다는 아직 내 생각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진보라고 하는 사람,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건 있다.

같은 이슈나 쟁점을 두고서도 그것을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둘이 분명 다르고, 이해의 기본 틀이 다르고, 우선으로 두는 가치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변화를 지향하더라도 보수적인 사람들은 안정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지향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조금 더 이상적인 상황을 그리며 과격한 변화를 지향한다.
세세히 파고 들어가면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저쪽이 더 맞는 것 같아, 싶은 순간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큰 틀에서 봤을 때 분명 기본적인 사고 메커니즘의 차이는 있다고 본다. 이게 바로 내가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 이유이다.

그래서 당 하나에 진보와 보수를 모두 담아내겠다는 비빔밥 같은 생각을 나는 허황되게 본다.

허울은 좋지만 그럴 거면 정당이 왜 존재하고 다당제가 왜 보장되고 있겠는가.

진보적 생각에 더 가깝다 싶은 사람은 그러한 성향의 정당에서, 보수적 생각에 더 가깝다 싶은 사람은 보수적 성향의 정당에서 활동을 하며 때로는 치열하게 대립하고, 때로는 합의도 하며 정치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통합 전에 한창 바른정당, 국민의당 의원들이 이념 합의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의견이 매우 비슷하거나 같다’라는 대답으로 일관할 때 나는 계속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었다.

나는 두 집단이 방법론이 아닌 그 방법론이 나오기까지의 생각의 뿌리, 메커니즘에 대한 합의를 보길 바랐기 때문이다.
방법론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같은 당을 할 수 있다는 논리는 조금 극단적으로 발전하면 갤주의 기존 보수 정치인보다는 복지에 유연한 스탠스와 일부 정책들을 두고서 ‘사회민주주의 사상에 젖은 것 같다’, ‘정의당 가서 활동하시는 게 어떤가’ 라는 말을 ‘진지하게’ 던졌던 전원책의 궤변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중도, 나는 ‘중도진보’, ‘중도보수’ 등 ‘온건’, ‘극에 치우치지 않는 성향’ 등을 대신하는 의미의 용어로서 사용되는 것에는 동의를 하는 편이다.
그러나 중도 그 자체를 하나의 스탠스로 삼는 것,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명확히 드러내고 어필해서 표를 받아야 하는 정치인들의 몫이 아니다. 그러한 정치인들을 심판하는 유권자들의 몫이다.

스스로 ‘나는 보수/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야’라는 자각이나 이념에 대한 명확한 소신을 가진 국민들도 있을 것이지만 그러한 깊은 생각이나 자각을 딱히 가지지 않고 사는 국민들이 더 많을 것이다.

전자는 정말 이건 아니지 않나, 싶은 순간이 아니고서야(16총선 새누리 공천같은) 웬만하면 특정 성향의 정당을 찍을 것이다. 후자는 특정 정당을 점 찍어두고 민다기보다는 그 때 그 때 더 끌리는 정당을 찍을 것이다. 중도표란 바로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중도를 위한 정치라는 게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보수든 진보든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해서, 사람들이 보았을 때 더 합리적이고, 더 일 잘하고, 나라를 더 잘 이끈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 그게 바로 중도표라는 것까지 끌어모을 수 있는 정치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바로 외연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중도를 위한 정치, 중도를 위한 정책이란 게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저렇게나 유동성을 지닌 계층이기에, 유동층이나 뚜렷한 이념색을 띄지 않는 층을 중도라는 명칭 아래 묶는 것에는 동의하나, 중도라는 단단한 집단이 존재함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중도라는 존재는 외연확장으로 노릴 표밭일뿐 꾸준한 표밭이 될 수 있다고도 믿지 않는다.

중도 표심을 기반으로 하자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나는 진보라는 사람들보다도 더 현실 모르고 허황된 사고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