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술과 야근에 찌들고 카드값에 허덕이던 영업사원이었습니다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8
조회 2936 추천 6 댓글 7
술 먹고, 야근하는 삶에 지친 영업직 사원이 회사 뛰어나와 벌인 일컵아티스트 김수민 작가영업직 사원에서 프리랜서로“좋아하는 일 할 수 있어 행복”내용물을 다 마시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종이컵. 그러나 이 사람을 만나면 종이컵의 운명이 달라진다. 어떤 컵은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또 다른 컵은 직장상사에게 꾸중을 듣고 있는 우리 모습으로 바꾸는 주인공은 컵아티스트 김수민(37)작가다.그는 2012년부터 종이컵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쉽게 구겨지고 버려지는 종이컵을 보고 직장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순식간에 사라진 월급을 아쉬워하는 사람, 출근길 지옥철에 갇힌 사람 등 일상을 담은 작품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이뿐 아니라 커피 프랜차이즈 로고를 이용해 다양한 패러디 작품도 그린다. 영화 채널 chCGV, 영화 잡지 맥스무비 등과 협업도 했다. 6년째 컵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지만 한때는 야근과 카드값에 치이는 직장인이었다. 그런 그가 직장을 나와 작가로 전향한 사연을 들었다.김수민 작가 / jobsN◇진짜 내 모습 찾기 위해 퇴사 결심김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는 단순히 취미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한 대기업 국내영업팀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그만뒀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원티드(wanted)’라는 영화가 있어요. 영화 속 주인공은 킬러가 되기 전 자신의 정체를 모른 채 삶을 살아갑니다. 그 모습이 마치 나 같았습니다. 아직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걸 찾기 위해선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 입사한 지 2년만인 2009년에 퇴사했습니다."아무 계획이 없었다. 막연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퇴직금을 털어 그림학원에 등록하고 그림 도구를 샀다. 1년 반 동안 그림만 배웠다. 2011년 초 수료 후 조그만 작업실을 얻었다. 그림책을 내려고 초안을 들고 출판사를 찾아갔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할 일이 없어 작업실 책상에 앉아 돌멩이·상자·도시락통·종이컵 등 눈에 보이는 사물에 그림을 그렸다.(왼쪽부터)공식 1호 작품 'healthy'. 종이컵 재질에 맞는 초록색 펜을 찾고 난 후 처음 작업한 작품이다. 김작가는 펜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눈에 보이는 화방은 무조건 들어가 초록색 펜을 사서 써봤다고 한다. 김작가 손을 거쳐 다양한 작품으로 재탄생 하는 세이렌. / the koo 유튜브 캡처, 김수민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세이렌 이용해 그림 그리기 시작점점 종이컵이라는 새로운 캔버스에 매력을 느꼈다. 종이컵 성질을 일러스트에 적용했다. 예를 들면 컵을 구겨 공격받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또 원기둥이기 때문에 그림을 360도로 채워 넣을 수 있다. 그러다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로고, 세이렌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생겼다."그때 책상 위에 가장 많이 쌓여있는 종이컵이었어요. 또 아무것도 없는 바탕에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기준 이미지가 있고 그 주변을 꾸미는 것이 더 수월했어요. 세이렌이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기도 했습니다. 웃고 있는데 '정말 웃고 싶어서 웃는 걸까' '속으로는 욕하고 있을지도 몰라' 같은 생각이 들었죠. 이런 걸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그렇게 처음 탄생한 작품은 'healthy'였다. 세이렌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후 하나둘 종이컵을 그림으로 채울 때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신선하다, 재밌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영상을 찍으면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없는 부분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케이크 돌림판을 샀다. 작품을 그 위에 올려놓고 돌려가면서 영상을 촬영해 공유했다. 과정이 궁금하다는 사람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 찍어 편집까지 해서 올리기도 했다.(왼쪽부터) 김수민 작가가 인터뷰에 직접 가져온 작품들.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후 작업 한 퀸·미야자키 하야오의 토토로를 패러디한 작품·김수민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포커페이스. chCGV 무비버스터즈와 협업한 '배트맨 대 슈퍼맨'과 'Joker' 맥스무비 매거진과 협업한 Harley Quinn. / jobsN, 김수민 작가 인스타그램◇첫 전시부터 책 발간까지자신을 찾아오는 SNS 독자들과 소통하고 지내다 2013년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다. 김작가의 작품과 이야기가 인터넷 매체에 실린 것이다. 종이컵 일러스트를 시작한 지 딱 1년째였다. 마침 목표했던 개인작품 100개를 채우기도 했다. 그해 5월 이를 기념할 겸 개인전시를 열었다. 2015년에는 일본, 대만, 홍콩, 유럽 등 외국 인터넷 매체에서도 그의 작품을 소개했다. 홍콩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모이는 그룹전에 유일한 한국인 작가로 참여했다.2016년 한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도 시작했다. 일명 컵툰(cuptoon)이었다. 컵 여러 개를 이용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직장생활은 물론 일상에서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해 말 연재 중이던 서비스가 사라졌지만 연재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공감 한 컵 하실래요?'라는 책을 출간했다. 김작가는 이 모든 게 열심히 작업한 것에 대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림 작가라면 일단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남들보다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요. 그러나 어떤 내용을 그리는지, 어떤 방법으로 보여줄지에 집중했죠. 부족한 부분을 채울만한 나만의 방식을 찾았고 못하는 만큼 열심히 했어요."우리들 삶을 담아낸 작품들. 직장인들의 큰 공감을 얻고 있다. / 김수민 작가 인스타그램◇좋아하는 일 하는 게 큰 장점'왜 그림 내용이 다 부정적이에요?' 김수민 작가의 작품을 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라고 한다. 실제 종이컵 속 사람들은 현실에 눌려 구겨져 있거나 금방 사라진 월급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내가 잘 알고, 잘 그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을 많이 해요. 결국 그 고민의 끝은 우리 일상입니다. 저는 응어리로 남아있는 과거 경험, 스트레스를 그림으로 나타내요. 또 그 부분을 많은 분들이 가장 공감하시기도 하죠."일상을 담아낸 작품도 좋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건 '포커페이스'라고 한다. 트럼프 카드의 퀸이 카드를 쥐고 있고 그 카드 너머로 상대의 얼굴이 보인다. 종이컵을 잘라내 입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처럼 종이컵 하나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찢기도 하고 구멍을 뚫어 색다른 연출을 하기도한다.6년째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프리랜서인 만큼 수입은 일정하지 않다. 평균적으로 직장인 월급 정도는 벌지만 작업 의뢰가 없을 때는 한 푼도 못 버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한다. 일반 일러스트 작업도 하지만 당분간은 지금처럼 좋아하는 종이컵 작품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저보다 훨씬 즐겁고 윤택한 삶을 사는 작가들도 많아요. 너무 제 이야기만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데에서 오는 자부심과 만족도는 큽니다. 좋아하는 일을 좇으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글 CCBB 에디터 하늘시시비비랩
저흰 1000만원 이상만…올해만 벌써 400억 찾았습니다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8
조회 3440 추천 13 댓글 9
총은 없지만 정의 실현하는 게 우리 일입니다“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징수한다”숨긴 재산 찾고 차 번호판 압수도‘38기동대’ 서울시 38세금징수과A씨는 10억원대 강남 아파트에 사는 고액 세금 체납자다. 수년 째 지방세 1억원을 체납하고 있다. 아파트는 A씨 부인 소유로 압류가 불가능했다. 조사관과 경찰이 집을 찾아가자 A씨는 방금 자른 가스관과 라이터를 손에 쥐고 고함을 지르며 위협했다. 흥분한 그를 경찰관이 진정시키는 동안 조사관들은 TV·냉장고·에어컨 등에 ‘동산 압류’라고 적은 빨간 딱지를 붙였다.서울시 38세금징수과 조사관들은 고액 탈세자범들과 1년 365일 싸우는 것이 일이다. 38세금징수과의 이름은 ‘모든 국민은 납세 의무가 있다’는 헌법 38조에서 따왔다. 이들의 활약상이 대중에 알려지면서 ‘38기동대’라는 별명도 생겼다. 2017년부터 38세금총괄팀장을 맡고 있는 류대창(52) 사무관에게 38기동대가 하는 일에 대해 물었다.서울시 38세금징수과 사무실. /jobsN-38기동대가 하는 일은.“조세 정의를 실현한다. 세무공무원은 지방세징수법 제35조에 따라 재산을 압류하기 위해 체납자의 집을 수색하거나 잠금 장치를 열 수 있다. 조세범을 조사할 수 있는 사법권이 주어진다.서울시에서 부과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일부 체납자를 추적해 세금을 징수한다. 작년까지 서울시 누적 체납 세금은 1조원 정도였다. 2018년에만 3000억원가량 늘었다. 올해 2000억원 정도 징수했는데 그중 400억원가량을 38기동대가 했다. 우리는 1000만원 이상 고액 체납자만 추적한다.”-팀원은 어떻게 뽑나.“세무부서는 세제과·재무과·38세금징수과 3개다. 순환근무제로 3년 마다 인사이동이 있다. 결원이 생기면 인사이동 전에도 뽑는다. 41명이 38세금징수과에서 일하고 있다.”YTN 유튜브 캡처-체납금 징수 과정은.“납부기한까지 세금을 내지 않으면 50일 이내에 ‘세금을 내지 않으면 강제징수 예비 절차에 들어간다’고 알리는 독촉장을 보낸다. 강제징수는 체납자의 재산 및 거주지 조사를 거쳐 압류할 재산을 공매(강제 매각)하는 절차를 말한다.먼저 재산 조사를 해서 체납자가 세금을 낼 능력이 있는지 알아본다. 체납자 대부분은 세금을 내고 싶어도 납부할 능력이 없다. 부동산·차량 등 채권 확보할 재산이 없으면 거주지로 찾아간다. 등록한 주소지에 안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체납자의 집에 가보면 사람은 없고 고지서만 수북히 쌓여 있다. 지인 집이나 고시원에 주소를 등록해놓기도 한다.서류 상 재산은 없는데 호화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은 납세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영업장이나 집을 찾아가 숨겨놓은 재산이 있는지 수색한다. 보통 3명 정도가 가택수색에 참여한다. 이른 새벽에 체납자의 집으로 찾아간다. 체납자를 찾기 위해서 하루 종일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할 때도 있다. 체납자의 반발이 심하다. 물리적인 충돌·위협도 있다.”-우리나라의 납세의식은 어떤가.“납세의식은 선진국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2018년 서울시 지방세 징수율은 98.2%다. 미국 뉴욕시 징수율도 98%다. 국내 은행 채권 미회수율도 1.5%에 불과하다. 소수 악질 체납자만 뉴스에 나와서 그렇지 대부분 납세 의무를 잘 지킨다.”38기동대가 압류한 체납자 소유의 명품. 시계·가방·보석 등 종류도 다양하다. /jobsN-최근 전두환씨 집에 찾아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는데.“전두환씨가 체납한 국세와 지방세가 각각 31억원·9억7000만원 정도다. 지금 살고 있는 주택은 부인과 며느리 명의 집이다. 체납금 징수를 위해 계속 숨긴 재산을 찾고 있다.검찰이 전두환씨한테 부과한 추징금이 총 2200억원이다. 자녀 명의로 돌려놓은 부동산까지 포함해 지금까지 1200억원가량 환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2018년 11월 납부를 독려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비서관이 전두환씨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서 치매 증세가 있다고 했다. 사람을 못 알아본다고 해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전 대통령이라고 봐주는 게 아니냐는 항의 전화를 하는 분들도 있다. 사실은 대중에게 알려져 있는 사람일수록 더 엄격하게 관리한다. 사회지도층이라고 봐주면 다른 시민들의 납세의식도 떨어진다.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봐줄 이유가 없다.”지난 2016년 38기동대를 소재로 활용한 드라마 '38사기동대'가 방영했다. /티빙 홈페이지 제공-체납자는 재산을 어떻게 숨기나.“영업 비밀이다. 수법이 알려지면 세금 징수가 더 어려워진다. 고액의 현금을 다른 곳에 숨기거나 은행 대여금고를 이용한다. 이제는 대여금고를 안 쓴다. 고액 체납자는 사해행위를 많이 한다. 사해행위는 남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사람이 고의로 재산을 다른 사람의 명의로 바꾸거나 몰래 파는 것을 말한다. 기업을 허위로 부도내거나 위장 이혼도 한다.”-체납자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나.“우리가 포착하기 힘든 정보를 제공하는 공익제보자에게 포상금을 준다. 신고는 자주 들어오지만 단순 추측을 바탕으로 조사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사자의 최측근이 아니면 중요 정보를 알아내기 쉽지 않다. 포상금은 보통 체납금 징수액의 15% 정도다. 최고 한도는 1억원이다.”38기동대가 일하는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앞에 해태상이 있다. 해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상상의 동물이다. /jobsN-대중의 오해가 있다면.“검찰 압수수색과 달리 우리가 가택수색을 할 때는 영장이 필요 없다. 체납자의 집으로 찾아가면 영장을 안 가져왔다면서 진입을 막는 사람이 있다. 요즘은 영장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그런 사람이 줄었다.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 있으면 수색 과정에 경찰이 입회하기도 한다. 경찰이 있으면 체납자도 협조를 잘 해준다. 수색을 막다가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38기동대의 목표는.“세금을 낼 능력이 있으면서도 납세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추적해 세금을 징수하겠다. 한국 사회에 더 나은 납세의식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글 CCBB 에디터 송영조시시비비랩
'아이돌'말고 남다른 길 택해서 인생역전 성공한 여배우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7
조회 4512 추천 47 댓글 12
여러분, 요즘 JTBC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 보고 계신가요? 아니면, Tvn 드라마 <또 오해영>이나 <식샤를 합시다 2>를 보신 적이 있나요? 드라마를 즐기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보셨을 드라마일 것 같은데요. 이 핫한 드라마들의 공통점이 있죠. 바로 오늘 소개할 주인공, 배우 서현진이 참여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필모만 보더라도 배우로서 성공적인 것 같네요. 그래서 오늘은 잘 나가는 배우이자 아이돌에서 배우로 전향해 대박난 배우, 서현진의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1. 아이돌 그룹 <밀크> 시절의 서현진출처: SM 엔터테인먼트서현진은 요즘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의 한세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그러나 시작부터 순탄한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서현진은 사실 아이돌로 데뷔해 배우로 전향한 케이스인데요. 서현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기획사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밀크>의 메인보컬로 데뷔했습니다. 출처: 멜론포지션만 보더라도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노래도 수준급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서현진은 그 노래 실력으로 종종 드라마 ost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2. 드라마 속 배우 서현진출처: MBC <수백향>, SBS <낭만닥터 김사부>이번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우 서현진에 대해 알아볼까요? 배우로서의 서현진은 다양한 장르와 역할을 맡으며 성장해왔습니다. MBC 사극 <수백향>이나 SBS 의학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등에서 주연을 맡아 다양한 배역의 연기를 펼쳐 왔습니다.출처: tvN <식샤를 합시다 2>, <또 오해영>, JTBC <뷰티 인사이드>하지만 역시 '로코퀸'이란 호칭에 걸맞게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서현진의 사랑스러움은 더 빛을 발했던 것 같습니다. Tvn <식샤를 합시다 2>, <또 오해영>나 SBS <사랑의 온도>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은 데 이어, JTBC <뷰티 인사이드> 톱스타 한세계 역으로 많은 사랑을 얻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3. 팬사랑을 담은 서현진의 SNS출처: 서현진 트위터서현진은 드라마의 배역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랑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배우인데요. 그녀는 SNS를 통해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거나 일상 셀카 및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아는 서현진이기에 지금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겠죠? 제작 발표회나, 촬영 현장 등에서 챙겨주는 팬들의 마음을 알고, 인증샷과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글을 트위터에 올리는 이 모습까지 너무 사랑스럽네요.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건 바로 서현진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아요.출처: JTBC <뷰티 인사이드>이처럼 서현진은 아이돌에서 배우로 전향한 성공적인 케이스입니다. 이건 그녀의 다방면의 재능과 많은 노력의 결과인 것 같아요. 사실 사람들이 '아이돌'이라는 수식어에 편견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이돌이 연기 활동을 할 경우나 아이돌에서 배우로 전향하는 경우,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하는데요. 아이돌 가수 출신 배우라는 점이 서현진에게는 두 방면의 매력을 모두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플러스 요인인 것 같네요. 노래도 연기도 다 잘했기 때문이겠죠? 일단 배우의 기본기인 연기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는 점이 호감의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연기도 잘하고 매력도 넘치는 만능 배우 서현진, 앞으로의 모습도 기대되네요.글 CCBB 에디터 피클시시비비랩
직장인 대부분이 연말에 한번쯤 후회하는 4가지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7
조회 2885 추천 5 댓글 1
"연말이 되면 후회하는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연초에는 계획을 짜면서 한 해를 보람차게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패기 있게 세웠던 많은 계획들은 어디로 간 것인지 돌아보면 한 숨 나오는 것들이 많죠? 역시 마음 먹은 일은 많지만 보람차게 사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다가오는 연말, 그 많은 계획 중에서 사람들이 계획은 세우지만 대부분 안 하고 넘기게 된다는 계획 TOP 4를 준비했습니다.1. 독서출처: Tumblr, Daum 블로그 명쾌한 판사(law_zzang)어렸을 때는 흔히 독후감이라고 하는 숙제가 있어서, 강제로라도 책을 몇 권씩은 읽게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삶이 바빠지면서 다들 독서를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계획표에 '한 달에 1권이상 읽기'와 같은 계획을 세운다고 해요. 출처: 경향신문하지만, 일상이 바쁘다보니 잠을 택하거나, 스마트폰에 빠져 책에는 쉽게 손이 안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때로는 전자파 대신 종이 넘기는 소리와 함께 쉬는 시간을 즐기려고 하다보면 한 달에 1권 정도는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2. 다이어트출처: getty, Express(UK)다이어트는 영원한 숙제라는 말이 있죠. 원푸드 다이어트부터, 퍼스널 트레이닝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방법으로 항상 시도하지만 많은 실패를 가져오기도 하는 게 다이어트 같습니다. 목적은 모두 다르더라도 계획으로 자주 세우는 것 중 하나죠. 몸도 질량보존의 법칙이 있기라도 한 것인지 도무지 살과는 이별하기가 어려워 시작은 많이 하면서도 깔끔하게 성공했다고 하기가 가장 힘든 것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출처: 아카데미아라운지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데에 보통 21일정도 소요된다고 하는데, 작은 습관부터 바꿔나가는 것이 장기적인 다이어트 성공을 위한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3. 어학공부(특히 영어공부)출처: 미디어리터러시아마 어학공부를 매년 새로 시작하고 계시는 분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학, 특히 영어는 우리가 가장 기초를 많이 반복하고 있는 것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여행을 위해서 회화를 공부하거나, 자기계발을 위해 영어 및 제 2,3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목적은 모두 다르지만, 꾸준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 외국어 공부죠.출처: 포켓몬스터익히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만 잊는 게 한 순간인만큼 무엇보다 끈기가 요구되기에 더 어렵죠. 그렇기에 무조건 마스터하기 같은 큰 목표보다는 차근차근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단계적 계획을 세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아요.4. 금연출처: 동아일보물론, 흡연을 안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흡연자분들 중에는 매년 목표를 금연으로 두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혹은 가족을 위해서가 가장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니코틴의 중독성때문에 끊는 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서서히 피우는 양을 줄이거나, 니코틴 해독에 좋은 음식들을 같이 먹어가면서 하면 상대적으로 좀 더 지키기 수월할 것 같습니다. 된장이나, 녹차, 검은콩, 등푸른 생선 등이 니코틴 해독에 좋다고 하네요.지금까지 항상 안 하고 있는 계획 리스트를 살펴봤습니다. 그만큼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실천이 어려운 것들이겠죠. 그렇기에 항상 연말은 '잘했다'보다는 '아쉽다', '후회된다'라는 말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후회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의 후회가 내일의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글 CCBB 에디터 피클시시비비랩
'월세'로 새로운 개념의 선행 베풀고 있는 착한 건물주 연예인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7
조회 4795 추천 17 댓글 67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죠? 이처럼 건물주의 파워는 세입자에게 매우 큽니다. 그래서 요즘 세입자들에게는 건물주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지표 중 하나라고 하죠. 건물주와 세입자 간 다툼이 흔히 뉴스거리로 다뤄질 정도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은 연예인이 신흥 재벌로 떠오르면서, 건물주가 된 연예인들도 많습니다. 아이돌부터, 스포츠 스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요. 때때로 이런 유명인 건물주들이 임차인과의 갈등으로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쁜 건물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착한 건물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스타들도 적지 않다고 하는데요. '착한 건물주'라고 불리는 스타는 누가 있을까요?1. 수지우선, '국민 첫사랑'으로 불리며 가수뿐 아니라 배우로도 사랑받고 있는 수지입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수지는 강남구 삼성동 건물·논현동 고급빌라를 소유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수지는 본인 건물 임차인들에게 착한 건물주로 불린다고 합니다. 임대료를 깎아주거나 입주 기간을 맞춰주는 등으로 임차인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배려하기 때문이죠.보도에 따르면, 100만 원짜리 때 투룸을 85만 원에 살게 해주거나, 방을 옮길 때 입주 시점을 딱 맞추지 못해 1달간의 기간이 공실로 남더라도 이해해 주는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세입자가 보일러나 수도 등을 고쳐달라고 하면 바로 고쳐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수지 건물에는 세입자들이 오래 있는 편이라고 하네요.2. 서장훈예전에는 스포츠 스타, 농구 선수로서 유명했다면 요즘은 예능인으로서 익숙해졌죠. 방송인 서장훈도 착한 건물주 중 하나라고 합니다. 서장훈의 건물은 반값 임대료의 예로 유명한데요. 근처 타 건물 임대료의 60% 선이라고 합니다.우선 저렴한 임대료를 고수하고 있고, 임대료를 크게 올릴 생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었죠. 또, 서장훈 씨가 임차인들 사정을 봐 주는 경우가 많아 한 번 입주한 업체는 나가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투기 목적으로 구입한 것이 아니며 노후 대비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크게 임대료에 얽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2014년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서장훈은 "임대업은 내 30년 농구 인생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임대업을 하고 있으니 웬만하면 사회정의에 맞는 착한 임대업자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습니다.3. 차인표, 신애라 부부차인표, 신애라 부부의 경우에도 임대료가 주변 시세랑 비교했을 때 약 3~40% 정도 저렴하다고 하는데요. 특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건물에는 어린이 관련 업체들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차인표·신애라 부부의 빌딩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 특화 빌딩으로 불리기도 합니다.1층은 교육치료, 2~ 3층은 유치원, 4층은 예체능 쪽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요. 태권도, 발레, 미술, 수학까지 다양하다고 합니다. 심지어 부부가 직접 입점 업체 교육 과정까지 검토한 후, 선별할 정도로 신경 쓰고 있다고 하죠. 아이들을 위한 공간뿐 아니라, 대기하는 부모들을 위한 카페까지 있어 더욱 좋은 평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4. 박찬호착한 건물주로 뽑힌 또 한 명의 스포츠 스타가 있습니다. 바로 박찬호입니다. 그는 보유한 빌딩을 저렴하게 임대할 뿐 아니라 공익사업에도 활용한다고 하는데요. 우선 임대료 인근보다 약 20% 저렴하다고 합니다. 또, 이 빌딩을 장학 재단 운영에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박찬호 장학회 행사 등이 이 빌딩에서 열리고 있으며, 자신의 선수 시절 소품도 전시한다고 하죠.박찬호는 이전에 '사람과 지식'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사람을 키우는 데에 힘이 되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건물을 기반으로 장학사업을 비롯해 공익사업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1995년에 모교 한양대에 1억 원을 기부한 것은 물론, 2001년부터는 '박찬호 장학회'를 통해 야구 꿈나무와 실직자 자녀들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고 하죠.소수의 올바르지 못한 건물주들 때문에 다른 올바른 건물주들까지 프레임이 씌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유치원 교사 사건을 보면, 잘못한 건 일부 교사들이었지만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고 지도했던 다른 교사들까지 매도되기도 했었죠.하지만,  반대로 작은 선행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죠. 현재는 건물주들이 악덕 건물주의 프레임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영향력 있는 연예인들이 착한 건물주로서의 행보를 보이면서 악덕 건물주로만 인식되던 건물주의 인식도 조금씩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글 CCBB 에디터 피클시시비비랩
한때 드라마 주연→월수입 100만원 물류창고 알바 '포기없다'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7
조회 6380 추천 23 댓글 20
더 이상 도망가지 않을겁니다배우 정민진(35). 2007년 드라마로 데뷔, 만 10년을 배우로 살았다. 2013년 아침드라마에서 주연으로도 활약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은 있어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정민진 제공많은 사람들이 ‘배우’라고 하면 화려한 삶을 연상하지만 그의 삶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낮엔 드라마, 영화, CF에 출연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밤엔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물류창고에서 일한다. 그는 여전히 배우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꼭 붙잡고 싶다”고 했다.10년째 ‘뜨지 못한’ 배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민진은 인터뷰 내내 유쾌한 모습을 보였고, ‘자학개그’를 하는 데도 스스럼이 없었다.“제가 82년 개띠인데요, 70년 개띠로 태어났으면 아마 성공했을 겁니다. 그땐 저처럼 ‘느끼한’ 외모가 먹혔거든요. 제가 데뷔할 땐 ‘꽃미남’이 대세였습니다. 유행은 돌고도니 ‘느끼남’의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까 해서 기다렸어요. 그런데 웬걸 꽃미남 유행이 지나가니 ‘훈남’이 대세더라고요. 느끼남이 대세가 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그에게 무명(無名) 배우 10년의 삶을 들어봤다.맞기 싫어서 도망간 미국에서 배우를 꿈꾸다정민진은 1996년 중학교 2학년 때 미국 LA로 떠났다. 미국으로 떠난 이유가 독특했다.“한 여학생에게 ‘러브레터’를 받았는데, 그 여학생이 하필이면 학교에서 싸움 잘하는 ‘일진’이 좋아하던 여학생이었던 거죠. 소문이 나면서 ‘일진’한테 불려가 흠씬 두들겨 맞았어요. 얼굴만은 안 맞으려고 필사적으로 막았는데, 조금 과장을 보태면 목 아래부터 발끝까지 멍이 들 정도로 맞았어요. 맞고 나니 어린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무서웠어요. 학교 가기는 두렵고, 선생님한테 일렀다가는 ‘왕따’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정민진 / jobsN마침 그의 아버지가 미국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혼자 남아서 학업에 열중하라는 아버지 말에 아들은 무작정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그는 “생애 첫 번째 도망이었다”고 했다.    미국 생활도 녹록지는 않았다. 온 가족 4명이 단칸방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고물상을 시작하셨는데, 일거리가 없어 한동안 수입이 없었어요. 좁은 방에 다닥다닥 누워서 잘 땐 ‘이 넓은 미국 땅에 내가 누울 곳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싶었습니다. 다행히 일 년 정도 뒤엔 아버지의 사업이 그럭저럭 자리를 잡으면서 단칸방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이 무렵 정민진은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때 성극(聖劇·성경에 나오는 사실을 소재로 한 연극) 무대에 올랐어요. 한 달 정도 열심히 준비한 걸 쏟아내는데 카타르시스가 대단하더라고요. 불 꺼진 무대, 제가 서 있는 곳에 ‘핀 포인트’ 조명이 쏟아지고, 내 움직임과 내 대사에 관객의 시선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찌릿찌릿했어요.”그는 “주위에서 쏟아지는 외모에 대한 칭찬도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어딜 가나 주위에서 잘생겼다고 얘기했어요. 남들이 들으면 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봐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배우 세계에 입성해보니 내가 생각한 만큼 잘생긴 사람은 아니더라고요. 외모도, 연기도, 끼도 넘쳐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말하자면, ‘동네 리그’와 ‘A매치’는 레벨이 달랐습니다.”'칼잡이 오수정'에 출연한 정민진 / SBS캡처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LA의 한 대학을 다니면서 극단 활동으로 배우의 꿈을 키워오다 중퇴, 연기 전문학교 ‘할리우드 액팅 코프 스쿨’(The acting corps)로 진학했다. 그리고 2006년 배우의 꿈을 안고 귀국했다. 미국의 한 방송사 오디션에 참여했는데,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국내 연예 기획사 관계자의 눈에 띄었다. 2007년, 정민진은 SBS 드라마 ‘칼잡이 오수정’에 다니엘 역(役)으로 데뷔했다.“극 중 다니엘의 대사가 모두 영어였어요. 영어로 대사를 칠 수 있어서 운 좋게 남들보다 빨리 데뷔할 수 있었죠.”전체 16부작인 이 드라마에서 그는 12회부터 출연하기 시작했다. 출연 분량도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20분 남짓. 하지만 능청스러운 연기에다 굵은 목소리로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는 게 인상적이었는지, 시청자 게시판에도 ‘정민진이 누구냐’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왔다.열등감과 질투로 군대로 도망…첫 번째 기회 놓쳤다‘칼잡이 오수정’ 이후 KBS2의 단막극 ‘드라마시티-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사랑’ ‘KBS 드라마시티-레드백’ 등에 출연한 그는 2008년 사법연수원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신의 저울’에 출연했다. 주인공 우빈(이상윤 분)의 가장 친한 친구인 민태 역이었다.'신의 저울'에 출연한 정민진. 사진 왼쪽이 배우 이상윤 / SBS캡처‘신의 저울’은 시청률은 물론이고, 드라마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함께 출연한 이상윤·송창의 등 비슷한 또래의 배우들과 함께 정민진도 이름을 꽤 알렸다. 하지만 ‘신의 저울’ 이후 그는 돌연 군에 입대했다. 당시 우리나라 나이로 27살. 1~2년 정도는 군 입대를 미룰 수도 있었다.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는 왜 군 입대를 선택했을까.'신의 저울'에 출연한 정민진 / SBS캡처“당시 함께 출연했던 이상윤, 송창의 등의 배우들에게 열등감을 느꼈어요. ‘왜 나는 주연을 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죠. 열등감이 질투로 이어졌고, 연기마저 어색해졌어요. 민태 역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고, 흥이 많아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열등감과 질투에 사로잡히다 보니 그게 연기에 묻어 나왔나 봐요. 몸에 힘을 빼고 ‘막춤’을 춰야 하는데, 온몸에 힘이 들어간 채 ‘로봇춤’을 추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다 보니 방송가에서는 ‘안되는 놈’ ‘연기 못하는 놈’으로 낙인이 찍혀버렸죠. 더 악착같이 버티고, 노력했어야 되는데 그걸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렵게 찾아온 첫 기회를 놓치게 된 두 번째 도망이었다”고 생각했다. 배우 정민진 제공군대 2년을 강원도 인제군 원통에서 보냈다. “군에서 느낀 건 두 가지예요. ‘상병 7개월은 진짜 길다’는 것과 ‘내가 생각보다 여자를 좋아하는구나’였죠. 물론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가는 강추위에 야간 경계근무를 설 때면 힘들기도 했지만, 입대 전에 느꼈던 열등감과 질투를 덜어내는 계기도 됐습니다.”2009년 제대한 그는 오디션을 보러 다니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고비가 찾아왔다. 아버지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벌였는데, 일종의 사기를 당했다. “아버지가 한국에서 고물상을 하나 인수하셨어요.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비싼 권리금 내고 샀는데, 알고 보니 고물상 주인이 인근에다 다른 고물상을 내고 기존의 거래처를 다 가져간 상황에서 회사 껍데기만 팔았던 거죠.”결국 아버지가 인수한 고물상은 망했다. 부모님은 인천의 판잣집으로 들어갔다.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군대에서 기합 빡 들어서 나왔는데, 집안이 어려워지니 나 몰라라 할 수 없잖아요. ‘나는 안되는 놈인가 보다’ 싶었죠.”아버지가 미국으로 돌아가 다시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고, 그도 함께 미국으로 따라가 아버지 사업을 도와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중학교 때 미국으로 도망갔잖아요. 그리고 드라마 ‘신의 저울’ 마치고 군대로 도망갔고요. 이번에도 또 도망가면 세 번 지는 거잖아요. 진짜 세 번은 지기 싫었어요. 다운은 돼도 K.O.는 안된다는 심정으로 버텼습니다.”이를 악물고 오디션 장을 찾아다녔다. 수십 번 탈락 소식을 들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2012년 채널A 주말드라마 ‘판다양과 고슴도치’에 출연했고, 영화 ‘밤의 여왕’, ‘우리는 형제입니다’에서도 역할을 맡으며 조금씩 얼굴을 내비쳤다. 그러던 2013년 정민진에게 ‘신의 저울’ 이후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연예인 병’ 걸려 두 번째 찾아온 기회 놓쳐… “세 번째 기회는 반드시 붙잡을 것”KBS2 아침드라마 'TV소설-은희' 포스터 / KBS홈페이지KBS 아침드라마 ‘TV소설–은희’에 주연 중 한 명인 최정태 역으로 캐스팅된 것이다. 은희는 매일 아침 40분씩 140부작으로 기획된데다 주연이었기 때문에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2014년 초 은희 종영 이후 그는 몇몇 드라마와 영화, CF에 잠깐 출연했을 뿐 비중 있는 역할을 맡지 못했다.정민진이 일일드라마 '뻐꾸기 둥지'에 배우 장서희씨의 첫사랑 역할로 특별출연했을 때 모습 / KBS 제공“’이제 됐다’고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연예인 병’ 걸린 거죠. 주인공 역할을 책임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 자존감을 높이는 데 썼습니다. 오디션 보러 열심히 뛰어다녀서 입지를 다졌어야 하는데 ‘이제 주연도 했으니 어디선가 불러주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결과요? 처참했습니다. 불러주는 데가 없었어요.”2015년 결혼한 그는 생계도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먹고 살 만큼 일이 들어오지는 않아 ‘알바’를 뛰기 시작했다. “혼자일 땐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결혼하니까 돈 쓸 때도 생기고 빚이 조금씩 생겼습니다."물류창고에서 일하던 중 찍은 '셀카' / 정민진 제공낮엔 오디션을 보러 다녀야 하기 때문에 밤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래서 찾은 일이 대형마트의 물류창고에서 물건을 나르는 일이다. 한달에 100여만원을 벌지만 생활은 빠듯하다. 그래서 낮에 시간이 날 때면 짬짬이 렌터카를 고객에게 갖다 주고 다시 찾아오는 일도 한다. 그러면서 CF에도 간간이 출연하고 있다.한샘 광고(왼쪽)와 SC은행 CF에 출연한 정민진 / 유투브 캡처지난해엔 SC은행의 CF에 배우 손현주씨와 함께 출연했고, 최근엔 국내 가구업계 1위 기업 한샘의 광고에도 출연했다.“이번에 한샘 광고에 출연하면서 받은 출연료로 석진(배우 하석진)이에게 빌린 돈 300만원도 갚았어요. 이자는 못 주고 일본 라면 한 그릇으로 퉁쳤지만요. 고맙습니다. 한샘!"정민진 제공포기할 법도 하지만 그는 연기 '내공'을 쌓으며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새로운 기회가 올지 안 올지 확신은 없다. 두렵긴 하지만, 한 번 쯤은 더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저희 아버지는 두려움 앞에 도망가지 않으셨어요. 이제 제 차례인 것 같습니다.”글 CCBB 에디터 안중현시시비비랩
8시간 동안 원룸 청소하고 200만원 '유품정리사'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7
조회 5888 추천 30 댓글 49
'떠난 자리'를 정리합니다… 유품정리사가 말하는 고독사 이야기유가족·건물주가 시신 발견 후 유품정리 의뢰시신 악취 때문에 콘크리트 제거하기도‘웰다잉’ 관심 높아져… ‘사명감’ 확실해야 오래 버텨'스위퍼스' 길해용(33·왼쪽 사진) 대표는 7년째 활동하고 있는 유품정리사다. 오른쪽은 길 대표가 현장에서 사용하는 장비들이다. / jobsN‘고독사’는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나 홀로 죽음'이 급증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자연사, 자살, 돌연사 등 사망 원인을 불문하고 임종 당시에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경우를 말한다.유가족이 없는 무연고 사망자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인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신이 홀로 있었던 경우 모두 고독사에 속한다.고독사 한 자들이 떠난 자리를 수습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유품정리사들이다. 국내에는 2010년부터 유품정리 전문 업체가 생겨났다. 경력 7년 차에 접어든 ‘스위퍼스’ 길해용(33) 대표를 만나 홀로 떠난 이들의 외로운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는 모른다, 배째라”…유가족 아닌 건물주가 유품정리 의뢰  길 대표에게 유품정리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 고인(故人)의 유가족이거나, 고인이 세 들어 산 집의 건물주다. 건물주는 “왜 여기서 죽어서 고생을 시키냐”는 말을 한다. 유가족이 시신 인수 자체를 거부하거나 유품 처리를 건물주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다.겨울에 사망했는데 봄이나 여름이 돼서야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날씨가 풀리면 시신이 부패해 냄새가 코를 찌른다. 봄·여름 유품정리 의뢰 건수는 겨울 의뢰 건수의 두 배에 달한다.고독사 한 사람의 집. 소주병과 담뱃갑이 널브러져 있다. / 스위퍼스 제공-유품정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원래 요리를 공부했다. 군대를 다녀온 뒤 고깃집을 운영했다. 하루는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고독사 관련 기사를 봤다. 그때 ‘유품정리’ 일에 대해 처음 알았다. 흥미로웠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날 밤새 인터넷으로 ‘유품정리’ ‘특수청소’란 키워드로 검색을 했다.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 그에 따른 고독사 증가 등을 살펴보니 ‘인간의 죽음’과 관련한 일이 비즈니스적으로 유망하겠다는 확신이 들더라.2011년 당시 우리나라에는 유품정리 전문 업체가 딱 한 군데 밖에 없었다. 빨리 뛰어들수록 선점하기 좋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바로 ‘유품정리·특수청소’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부동산에 가서 가게도 바로 넘겨버렸다. 유품정리 전문 업체를 운영하던 사람을 찾아가 교육 비용을 내고 1년 동안 일을 배운 뒤 독립했다.”-누가 유품정리 의뢰를 하나“작업을 하다 보면 고인(故人)이 혼자 살다가 돌아가신 경우가 100%다. 1인 가구이다 보니 죽음을 빨리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가족이 먼저 발견하는 경우도 있지만, 건물주가 밀린 월세 때문에 세입자를 찾아갔다가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대부분 사망한지 한참 뒤에 발견된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생긴 악취와 구더기 처리 등을 우리 같은 전문 업체에 맡긴다. 고인(故人)에게 가족이 있더라도 ‘나는 모른다, 배째라’ 할 때가 많다. 가족 관계가 끊어진 경우이기 때문이다. 건물주는 또 다른 세입자를 받아야 하니까 자기 돈을 내면서 고인이 살던 집을 정리할 수밖에 없다.가끔 건물주가 멘탈이 붕괴돼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 세입자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당장 와서 정리를 해달라는 거다. 하지만 현장 정리 작업을 건물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검찰과 경찰 쪽에서 사인을 정확히 밝히고 나서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날씨가 따뜻해지면 작업 의뢰 요청이 늘어난다던데여름에는 대략 6건, 많게는 10건까지 의뢰가 들어온다. 한 건당 4~6일 작업 기간을 잡는다.고독사는 보통 사망 후 1주일에서 한 달 이내에 발견된다. 시신이 부패하면서 생기는 악취가 절정에 이르는 때가 이 기간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문을 열고 생활하니까 주변에서 시신 악취를 더 쉽게 알아챈다.의뢰가 들어올 때 ‘파리가 너무 많다’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파리가 부패한 시신에 알을 낳는다. 한 마리의 파리가 수백개의 알을 낳는다. 현장에서는 수천마리의 구더기가 발견된다. 현관문 밖으로 기어 나온 구더기 때문에 시신이 발견되기도 한다.겨울에 발견되는 경우는 고인이 전기장판 위에서 사망했을 경우이다. 시신이 고온에 계속 달궈지다 보니 현장 상황이 더 심각한 경우가 많다.”길해용 대표가 고독사 현장의 유품정리 및 특수청소를 진행하고 있다. / 스위퍼스 제공시신 악취 제거하기 위해 싱크대·신발장부터 콘크리트까지 제거해고독사가 발생했을 때 주변 사람을 가장 괴롭게 하는 건 부패한 시신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다. 이 냄새는 청소를 한다고 가시지 않는다. 특수약품으로 처리를 하고 자외선·오존 살균기로 공기를 정화시켜야 한다. 심지어 집안의 모든 장판과 벽지, 콘크리트 바닥까지 제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유품정리 및 특수청소 과정은 어떻게 되나“먼저 시신이 부패한 자리를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가령 시신이 침대 위에서 발견이 됐다면 이불을 버리고 매트리스도 스프링 등을 분리 작업해서 처리한다. 대부분의 현장에는 시신에서 흘러나온 혈액과 부패하면서 생긴 액체가 바닥에 엉겨 붙어 있다. 이걸 약품 처리해서 다 닦아낸다.그다음 단계로 유품정리를 한다. 정리 중에 발견된 귀금속이나 현금, 도장, 부동산 계약서 등은 유가족에게 전달한다. 사진이나 다이어리 같은 정서적 유품도 마찬가지이다.텔레비전이나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은 의뢰인이 원하는대로 처리한다. 유품 종류와 상태에 따라 재활용 처리, 폐기물 처리, 중고 매입 등을 진행한다.따로 직원을 두고 있지는 않다. 대신 현장 작업을 할 때 협력 업체로 두고 있는 고물상과 폐기물 업체 직원들이 함께 일한다. 대략 아침 9시 30분부터 6시까지 작업을 하는데, 보통 하루 작업해서 유품정리 단계까지 끝마친다.”-그 과정이 끝인가“아니다. 시신이 부패할 때 생긴 악취가 온 집안에 배기 때문에 악취 제거 작업을 반드시 따로 해야 한다. 우리 같은 전문 업체가 생기기 전부터 일반 포장 이삿짐 센터나 장례식장에서도 유품정리 일을 대행해줬다. 그들은 유품정리 단계까지만 작업을 한다. 시신 악취를 없애겠다고 방 안에 섬유 탈취제를 뿌린다고 하더라. 웃기는 소리다. 시신 악취는 그렇게 해서 제거되지 않는다.장판과 벽지에도 시신 부패 냄새가 배기 때문에 아예 다 뜯어내는 경우가 많다. 구조물 처리 작업이 끝나면 자외선·오존 살균기로 공기 정화를 시킨다. / 스위퍼스 제공유품정리를 마치고 나면 우선 인테리어 시설물을 처리한다. 싱크대나 신발장 외관이 코팅처리돼 있으면 그나마 낫다. 약품 처리를 해서 닦아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 전에 설치된 것일수록 코팅 처리가 안된 것들이 많다. 이 경우엔 시신 악취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뜯어내서 제거하지 않으면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집안에 숨어 있는 구더기도 이 단계에서 제거한다. 번데기가 되기 전 구더기들은 본능적으로 구석으로 숨어든다. 문틈, 싱크대 밑 등이 구더기가 숨어들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여기를 꼼꼼히 청소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장판과 벽지도 제거해야 한다. 인테리어 시설물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시신 악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기 때문이다. 사체에서 나온 부패액이 장판 틈새로 콘크리트에 스며들면 아예 콘크리트까지 제거하는 공사를 하기도 한다.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는 집안 전체 청소를 하면서 자외선·오존 살균을 한다.5평(약 17㎡)~10평(약 33㎡) 규모의 원룸 작업 비용은 200만~400만원 수준이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장판과 벽지 처리 작업을 최소화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원하는 대로 작업을 해줘도 결국 시신 악취가 사라지지 않는다며 다시 연락이 온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 면적의 부패액만 묻어 있어도 온 집안에 시신 악취가 풍긴다. 감안해서 이 모든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길해용 대표는 고독사 현장을 수습하면서 우리 사회에 붕괴된 가정을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스위퍼스 제공-이 일을 하면서 가족 붕괴 현상을 많이 체감 한다던데“이 일을 하기 전에는 우리 사회의 가족 붕괴가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다.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주가 자기 돈을 부담하면서 유품정리를 의뢰하는 경우가 50%를 넘는다. 가족이 시신 인수 자체를 거부했거나, 남아 있는 보증금을 가지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떠넘기기 때문이다.씁쓸한 사연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사망한지 두 달 후에 발견된 고인이 있었다.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아버지의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건물주가 알아서 처리하겠으니 마지막으로 아버지 살던 곳 정리하는 거라도 와서 보라고 조언했다. ‘왜 그래야 하죠?’ 아들은 이 한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유품정리를 한창 하고 있는데 서랍에서 통장과 도장이 나왔다. 통장에는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다. 건물주에게 말해서 아들이게 이 사실을 전달했다. ‘어휴, 세상이 말세야!’ 한참 후에 건물주가 아들 욕을 하면서 왔다. ‘택시를 타고 20분 만에 왔더라고. 아저씨가 정리해준 사진은 그냥 버려 달라고 하더구먼.’기러기 아빠가 남긴 짐을 정리하는 날도 마음이 먹먹했다. 그는 고시원 화장실에서 심장이 멎어 그대로 숨졌다. 고시원장이 의뢰를 해오긴 했지만 비용 부담은 유가족이 맡기로 했다. 현장에 가 보니 가족들이 방에 올라와 보지도 않고 1층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와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들이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들은 대화 내내 옆에서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한 거였다.기러기 아빠가 남겨놓은 물건 중에 사치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손목시계 하나쯤은 남겨 놓는데 그분은 그런 것도 없었다. 치약, 비누 같은 단출한 세면도구와 옷 몇 벌, 라면 2봉지가 전부였다. 아내와 아들은 정리를 다 마치고도 끝내 방에 올라와 보지 않았다. ‘가족이 아니라 차라리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       도전한다면 ‘사명감’ 가지고 뛰어들었으면과거 고독사는 저소득층 독거노인에 집중됐다. 최근엔 1인 가구가 늘면서 노인 뿐만 아니라 청장년층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독사에 대해 제대로 정리된 통계가 없다. 비슷한 개념의 무연고 사망자로 고독사 통계를 유추하고 있다.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1년 693명이었던 우리나라 무연고 사망자는 2016년엔 1232명으로 증가했다. 5년 새 2배 가까이 늘어난 거다.-앞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국내에서 유품정리와 특수청소를 전문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업체는 10개 미만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일반 포장 이삿짐 센터나 고물상 등에서도 유품정리를 대행하고 있다. 그런 비전문 업체까지 포함하면 이미 업계는 레드오션이 됐다. 하지만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만큼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높은 분야라고 확신한다.이 분야에 뛰어들고 싶다면 꼭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단순히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는 일이 아니다. 고인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면서 남겨진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서 살아갈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이다. 특히 유품정리 작업은 악취나 오염 물질 등을 다뤄야 하는 일이어서 매우 고되다. 주변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맞냐’ ‘이보다 더한 극한직업이 있겠냐’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굳건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오랜 시간 이 업계에서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다.”글 CCBB 에디터 박가영시시비비랩
요즘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인은 저희입니다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7
조회 6876 추천 9 댓글 49
13억 中유튜브시장을 잡아라, ‘왕홍 경제’한국인 유튜버들이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유창한 언어와 탄탄한 콘텐츠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모바일 시장 속을 파고든 한국인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다. 이들은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이 금지된 중국의 환경에 맞춰, 중국 플랫폼에 자막을 추가한 동영상을 올리는 방식 등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하고 있다.중국에선 모바일시장의 확산과 함께 ‘왕홍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왕홍’이란 인터넷 방송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신의 개성과 매력을 드러내며 높은 인기를 얻은 인터넷 스타를 지칭한다.대한무역투자공사(KOTRA)는 2016년 말 중국의 모바일 동영상의 월간 시청자 수는 10억 명에 달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시장으로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쉽게 말해 능력 있는 동영상 제작자들이 시장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 모바일 동영상 시장의 인기를 업고 이 시장에 등장한 게 왕홍이다. 유명 왕홍의 경우 SNS 팔로워가 수백만 명 수준으로, 이들의 패션, 소품 등이 모두 화제가 된다. 중국시장조사기관 아이리서치(iResearch)는 올해 왕홍시장의 팔로워 규모는 총 5억9000명에 달할 것으로 본다. 화장의 여신 포니/포니 유튜브 캡처유튜브 화장의 여신 ‘PONY’중국 SNS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경제적 수익을 창출는 한국인 ‘왕홍’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한국인 왕훙은 포니(PONY)다. 투애니원(2NE1) 소속가수 씨엘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그는 2016년 중국 웨이보에 인기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화장법을 모방하는 메이크업 동영상을 올리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웨이보 계정의 팔로워수가 670만명을 넘어서며 중국 팬들로부터 ‘화장의 여신’이라 불린다.포니는 온라인 공간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한국에서 런칭한 그의 메이크업 브랜드 ‘Pony Effect’는 중국 최대 오픈마켓 타오바오에 입점해 막대한 매출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다.‘조르지오 아르마니’행사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초청하기도 했다.포니의 메이크업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다양한 중저가 메이크업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고, 화장에 맞는 다양한 의상과 공간을 함께 연출하는 등 세심한 스토리텔링에 신경쓰기 때문이다. 포니는 현재 중국의 패션·뷰티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1인으로 꼽힌다.한국뚱뚱은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 명단에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올랐다./한국뚱뚱 유튜브 캡처회당 평균 300만명 시청 ‘한국뚱뚱’한국뚱뚱(韩国东东)도 대표적 한국인 왕홍으로 꼽힌다. 한국과 중국 양국의 문화를 주제로 방송 콘텐츠로 제작하는 한국뚱뚱은 중국 데뷔 2년 만에 수십만 중국 팬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올랐다. 그의 콘텐츠는 중국에서 회당 평균 300만명이 시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10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플랫폼 ‘빌리빌리’에서 한국뚱뚱의 방송을 구독하는 중국인의 수는 약 63만명에 달하며, 2017년에는 중국 관영 영자신문사 ‘차이나데일리’가 선정한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 명단에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한국뚱뚱은 주로 음식, 연예, 패션 등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중문화를 주제로 콘텐츠를 제작한다. 중국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중국어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사용해 시청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다.글로벌 ASMR 유튜버 뽀모/뽀모 유튜브 캡처구독자 80%가 외국인, ‘소리’로 말하는 ‘뽀모’2018년 초 한국 ASMR 유튜버로는 최초로 조회 수 2억 뷰를 달성한 유튜버가 나타났다. ASMR 유튜버 ‘뽀모(PPOMO)’다. ASMR은 특정 자극을 통해 심리적 안정이나 쾌감을 느끼는 감각적 경험을 말한다. 속삭이는 소리, 화장품의 뚜껑을 여는 소리, 음식을 먹는 소리처럼 몸과 정신을 이완시키는 소리가 여기에 속한다.뽀모는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시청자들과 소통한다. 코 아래로만 촬영하며 얼굴을 공개하진 않지만 구독자들은 이런 신비주의 콘셉트에 더 열광한다. 오히려 소리에만 더 집중할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온다. 콘텐츠와 콘셉트가 딱 맞아 떨어진 사례다.한국 구독자보다 외국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뽀모는 “일본인 25%, 미국인 20%, 나머지는 다양한 국적의 시청자들이라고  많은 말이 필요없는 콘텐츠 특성상 언어의 장벽이 낮은 장점도 있다.13억 인구를 보유한 거대한 중국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증가하면서 다국적 MCN(Multi Channel Network) 시장도 커지고 있다. 업계관계자들은 왕홍으로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개성’과 ‘소통’을 꼽았다. 팔로워와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SNS 콘텐츠 특성상 아무래도 언어가 가장 큰 장벽인 셈이다. 뷰티정보나 ASMR처럼 언어보다 시각정보 및 후각정보 자체의 전달이 더 중요한 콘텐츠의 경우 틈새를 공략할 수 있다.한류콘텐츠를 기획하며 한국인 왕홍을 발굴하는 에이전시도 등장했다. 대표적 왕홍 에이전시인 '브랜드건축가'의 김정민 대표는 “이미 중국과 미국은 왕홍과 유튜브 스타들이 헐리웃 스타 못지 않은 큰 인기를 얻고 있다”며 “1인 크리에이터가 앞으로 대중들이 사랑하는 스타의 패러다임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MCN 사업 관계자는 “왕홍은 우선적으로 자신만의 개성과 소통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편집이나 촬영 등 제작 기술과 관련한 능력은 입사 후 충분히 기를 수 있지만, 자신만의 개성와 전달하고 싶은 정보를 잘 풀어내는 능력은 타고난 것“이라고 말했다. 글 CCBB 에디터 TC시시비비랩
원전 터졌을 때도, 쓰나미 났을 때도 그곳엔 이 한국인 있었다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7
조회 1983 추천 7 댓글 8
목숨 걸고 사진 찍는 일이 직업입니다중미 이주민 ‘캐러밴’ 찍어 주요 외신 장식동남아 쓰나미·후쿠시마 원전 현장도 갔다17년 동안 전 세계 다니며 사진 찍어미국과의 접경지역인 멕시코 티후아나에 최루탄이 떨어진다. 국경을 넘으려는 중남미 이주민 ‘캐러밴’을 막기 위해 미군이 발사한 것이다. 기저귀를 찬 두 아이는 맨발에 몸도 가누지 못하고 있다. 다급해진 엄마가 아이의 팔을 붙잡고 도망친다. 이 장면을 뉴스통신사 로이터의 사진기자가 카메라에 담았다. 2018년 11월25일 찍은 이 사진은 전 세계 주요 언론의 머리 기사에 실렸다.워싱턴포스트에 실린 김경훈 기자의 사진. /WP 홈페이지 캡처촌각을 다투는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로이터 사진기자는 한국인 김경훈(44) 기자다. 사진이 유명해지면서 뉴욕타임즈·타임·피플지 등에서도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김경훈 기자는 로이터통신의 도쿄지국에서 일한다. 1993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 입학해 보도사진을 전공했다. 졸업 후 일간스포츠에서 일을 시작해 3년 정도 일하고 로이터통신으로 이직했다. 그에게 사진기자의 삶에 대해 물었다.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방사능 유출로 인한 출입금지 지역에서 방호복을 입고 취재했다. /김경훈씨 제공-지금까지 다닌 현장은.“2002년부터 2007년까지 로이터통신 서울지국에서 일했다. 2002년·2006년 월드컵과 2004년 동남아시아에서 쓰나미 피해가 있을 때 인도네시아에서 한 달 정도 머무르면서 현장을 취재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도쿄지국에서 근무할 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도 있었다. 2010년 태국의 반정부 시위 현장도 다녀왔다. 2013년부터 2016년 7월까지 베이징 지국에서 일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양쯔강 여객선 전복 사고 현장 등에 갔다. 2016 7월 도쿄지국으로 돌아와 평창올림픽·멕시코 캐러밴 등을 취재했다.”-보도사진을 전공한 이유는.“대학교 3학년 때 순수·광고·보도사진 3개 전공 중 보도사진을 선택했다. 사진을 통해 남에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로버트 카파의 사진을 보고 사진기자의 삶을 동경했다. 로버트 카파는 스페인내전·제2차 세계대전 등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한 사진작가다.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 셔터를 눌렀다. 기자정신을 뜻하는 '카파이즘'(Capaism)은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대학교에서 사진을 배우는 동안 사진기자가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로버트 카파의 작품 '쓰러지는 병사'. 김경훈 기자는 로버트 카파의 사진을 보고 사진기자를 꿈꿨다.-사진기자는 사진을 어떻게 찍나.“눈 앞에서 상황이 벌어지면 일단 찍는다.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하는 순간 간섭이 일어나 표정·행동 등이 바뀐다. 사진을 찍은 뒤에 나를 소개하고 사진을 찍은 취지를 설명한다. 그러고 나서 사진을 기사에 써도 괜찮냐고 묻는다.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은 적다. 자신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이 들어주기를 바란다.멕시코에서 캐러밴을 취재할 때는 이주민 행렬을 2주 동안 쫓아다녔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들이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분명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위험 지역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특수부대 출신 전직 군인 등 전문 강사한테 위험지역 생존법 등을 교육받는다. 지금까지 큰 사고는 없었다. 존중하는 자세로 취재를 하면 상대방도 진정성을 알아본다.”-기억에 남는 취재는.“2015년 6월 중국 양쯔강에서 유람선이 침몰했다. 중국 정부가 언론 통제를 해서 취재가 어려웠다. 정부 감시망을 피해 현장 인근 갈대숲으로 들어갔다가 온 몸에 벌레가 달라붙어 고생한 적이 있다. 최근 캐러밴을 취재했을 때는 멕시코시티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차로 갈아타 25시간을 달려 국경으로 갔다. 이동 중에 한 시간 밖에 못 잤다.2014년 세월호 사고 때는 아이가 있는 아버지로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어떤 현장이든 공정한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관찰자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려고 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여러 재난·재해 현장에서 유족 분들을 만나다 보면 가슴이 착잡해질 때가 많다.”-무슨 장비를 쓰나.“기본적으로 카메라 바디(몸체)와 렌즈 2개씩 챙긴다. 바디는 회사에서 쓰는 캐논 EOS 1DX와 5D 2개를 가져간다. 렌즈는 28~70mm 광각 줌렌즈와 70~210mm 망원 렌즈를 쓴다. 예비용 카메라도 챙긴다. 취재 도중 카메라가 고장날 수 있어서다. 취재 현장에 가기 전 머릿속으로 어떤 사진을 찍을지 생각해본다.가령 중남미 이민자 행렬을 찍으면 이들이 강을 건널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방수 관련 기자재를 챙겼다. 수백명이 열을 지어서 행진할 수도 있으니 이 장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100~400mm 장초점 렌즈도 가져갔다. 오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취재하기 전에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예상할 수 있다. 사진 전송을 위해 노트북도 챙긴다.”-위험수당도 있나.“위험수당은 없다. 통역·운전사 등 현지에서 필요한 것은 회사가 아낌 없이 지원해준다. 정기적으로 생존 훈련 교육도 받는다. 혼자 힘으로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배운다. 현장에서 보거나 겪은 일로 정신적 충격을 받고 트라우마가 생긴 직원을 위해 심리 상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멕시코 티후아나 국경 지대. /VICE 뉴스 유튜브 캡처-일하면서 언제 가장 뿌듯한가.“동남아에서 쓰나미가 났을 때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헤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만났다. 난민캠프에 머무르던 아이를 찍은 사진이 인도네시아 지역 신문에 실렸다. 아이의 행방을 몰랐던 가족이 사진 설명에 적힌 장소를 보고 찾아간 것이다. 상봉한 가족이 현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사진 덕분에 가족을 만났다’고 했을 때 보람을 느꼈다.메시지가 있고 미학적으로도 좋은 사진을 찍었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내가 찍은 사진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때도 뿌듯하다. 많은 사람이 보거나 역사에 남을 만한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진으로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때 행복하다.”-힘들었던 적은 없었나.“심리적으로 힘들 때가 많다. 2010년 태국에서 ‘레드 셔츠’라 부르는 반정부 인사들이 격하게 시위를 했다. 카메라맨이었던 친한 일본인 동료가 현장에 같이 있다가 총에 맞아서 사망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취재하고 싶은 현장이 있나.“큰 사건이 일어난 게 아니면 현장에 가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날그날 취재에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평범한 기자회견장에 가도 새로운 구도를 찾아서 사진을 찍는다. 전 세계를 다녔지만 아직 평양은 한 번 밖에 못 가봤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달라지고 북한도 바뀐다면 북한 취재를 더 해보고 싶다.”김경훈씨 제공-사진기자는 어떻게 하나.“사진기자는 ‘비주얼 스토리텔러’다. 스토리텔링 능력이 중요하다. 좋은 사진을 찍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사진에 담아낼 줄 알아야 한다. 사진기자를 꿈꾸는 후배를 가르친 적이 있다. 사진을 왜 찍었냐고 물어보면 ‘사진을 찍는 대상이 미관상 보기 좋아서’ 또는 ‘당장 눈 앞에 있어서’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먼저 취재하려는 사람이나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 촬영 기술은 기본이고 인문학적 소양도 쌓아야 한다.동료나 선후배 중에서 사진을 전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학교 동기 60명 중에서 사진기자를 하고 있는 사람은 10명 미만이다. 회사에서도 20~30% 정도만 사진 전공자 출신이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많이 찍어보고 독학한 사람들이 많다.”-사진기자를 꿈꾸는 청년에게 조언 한 마디.“영상 콘텐츠 수요가 늘고 있다. 나도 사진기자이지만 가끔 비디오 취재도 한다. 앞으로 ‘포토 저널리스트’라는 말보다 ‘비주얼 저널리스트’라는 말을 더 자주 쓸 거다. 전 세계를 다니며 취재하려면 외국어 실력도 중요이다. 나는 영어·중국어·일본어도 한다. 외국어를 할 줄 알면 현지에서 더 깊이 있는 취재가 가능하다.”글 CCBB 에디터 송영조 시시비비랩
‘연예가중계 공무원’, 18년 만에 드디어 ‘대박’ 터뜨렸다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7
조회 4713 추천 14 댓글 22
직장인의 아이돌 ‘잼아저씨’‘잼라이브’ 김태진 리포터 동시접속자 22만명에 달해특유의 성실함과 노력이 비결점심시간, 직장인들이 한 데 모여 스마트폰을 꺼낸다. 한 애플리케이션(앱)을 열고 퀴즈 풀기에 열중한다. 한쪽에선 환호성이, 다른 쪽에선 탄식이 터진다.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만든 이 앱은 2018년 2월 출시한 모바일 라이브 퀴즈쇼 ‘잼라이브’다. ‘잼심시간’(잼라이브+점심시간)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잼라이브. 2018년 5월 20일에는 22만명이 동시에 접속해 퀴즈를 푸는 진기록을 세웠다. 게임의 인기가 치솟자 KBS는 지난 9월부터 꿀잼 퀴즈방이란 이름으로 잼라이브를 전파에 실어 내보내고 있다.2003년 11월부터 16년간 KBS '연예가중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김태진 리포터잼라이브 열풍의 배경엔 이 사람이 있다. 15년간 연예가중계에 출연해 ‘연예가중계 공무원’으로 불리던 그가 ‘잼아저씨’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김태진 리포터는 학창 시절 책과 발표를 좋아했다.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걸 좋아했던 그는 아나운서를 꿈꿨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장래 희망을 바꿨다. 케이블TV 태동기, 김태진 리포터는 케이블 TV 속 VJ(Video Jockey)에 빠졌다.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만 사용하는 아나운서와는 달리, 자유롭고 재미있게 방송을 이끌어 가는 그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교과서보다 TV를 보는 시간이 늘었고 자연스레 VJ의 꿈을 품었다.“고등학교 때 방황이 심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저를 늘 응원해주시면서도 진로에 관해서는 확고한 철학이 있으셨어요. 어느 날 저를 불러 ‘대학에 입학해 제대로 된 전공 공부를 체계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이 말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진로를 분명히 해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죠. VJ의 꿈을 위해 꾸준히 준비했습니다. VJ 오디션을 찾아다니고, 혼자 수시로 방송 연습도 했어요. 그러다가 2001년 Mnet에서 VJ 공채 9기를 선발한다는 공고를 봤죠. 보자마자 달려가서 1번으로 접수하고 합격했습니다.”데뷔만 하면 화려한 스타의 길이 펼쳐질 줄 알았던 21살 김태진 리포터. 가만히 있으면 방송 섭외가 들어올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또 다른 도전과 노력이 필요했다. 프로필을 작성해두고 오디션 공고가 나올 때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원했다. 수차례 낙방 끝에 그는 SBS 교양 프로그램 ‘잘 먹고 잘 사는 법’ 리포터로 공중파에 입성했다. 그 후에도 오디션 응시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수십 번 낙방해도 낙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운명처럼 ‘연예가중계’를 만났다.“‘연예가중계’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당시 PD님이 저더러 말이 너무 빨라서 아쉽다고 했죠. 그 후 다른 프로그램들에서 리포터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1년 후 저를 불합격시켰던 그 PD님이 함께 하자고 제안하셨어요. 2003년부터 ‘연예가중계’에 합류했습니다. 데뷔 초반에는 제가 찾아다녀야 하는 섭외였죠. 실패해도 그 주위를 맴돌다 보면, 다른 방송에서도 진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연락이 오더라고요.”모바일 라이브 퀴즈쇼 '잼라이브'를 진행하는 김태진 리포터◇‘연예가중계’ 16년 차의 내공이 터지다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도 마이크를 통해 들릴까 봐 조마조마했던 2003년 11월의 첫 방송. 이 방송을 시작으로 그는 16년간 ‘연예가중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가 소위 ‘연예가중계의 공무원’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성실함’이다.“어떤 인터뷰든 상대방에 대한 기사를 최소 10페이지를 보고 갔어요. 심층 인터뷰는 꼭 챙겨봤고요. 그 사람이 어떤 말투를 쓰는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를 파악해두는 거죠. 그래야 상대가 어떤 말을 하든지 받아칠 수 있고, 상대를 감동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아이돌과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음악방송을 챙겨 보는 등 아이돌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제는 최소한 연예가중계 내에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 것 같습니다. 이런 저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연예가중계는 제 청춘을 다 바친 프로그램이죠.”10년 넘게 방송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대중 인지도 면에서 한계를 느꼈고,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에 대한 갈증도 있었다. 이 시기에 ‘잼라이브’ 섭외가 들어왔다. 모바일 라이브 퀴즈쇼 잼라이브는 중국과 미국에서 흥행한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일정 때문에 오디션을 못 봤지만, 간이 세트장을 만들고 모바일 퀴즈쇼를 진행하는 영상을 보내 인정받은 후 합류했다.그의 예상대로 잼라이브는 대박을 터뜨렸다. 출시 후 두 달 만에 동시 접속자 수 22만 명을 기록했다. 잼라이브가 터지면서 김태진 리포터의 잠재력도 동시에 터졌다. 15분이라는 시간 동안 18년 차 리포터의 내공을 유감없이 드러냈다.“‘연예가중계’ 첫 방송의 떨림은 마이너리그 무대에서 메이저리그로 올라간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잼라이브 첫 방송의 떨림은 달랐어요. 메이저리그 10년 차에 투수가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다른 팀에 가서 첫 선발투수가 된 느낌이었죠. 자신은 있었지만 실투를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컸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했죠. 유튜브 크리에이터나 BJ들의 방송을 보며 연구했고 ‘잼아저씨’ 캐릭터 구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평소 정장을 잘 안 입지만 캐릭터에 맞게 정장을 사 입고, 초창기에는 SNS에 아재개그를 게시했죠. 잼라이브는 그 어떤 방송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시청자분들은 잼라이브를 이용하지 않아요.”직장인의 아이돌, '잼아저씨' 김태진 리포터◇노력하지 않는 후배들에게잼아저씨로의 변신은 김태진 리포터를 전성기로 이끌었다. 길을 걷다 마주친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는 경우가 늘었다. 젊은 세대와 소통도 늘었다. 연예가중계를 뒤늦게 본 젊은 시청자가 댓글에 ‘잼아저씨가 공중파에 진출했다!’라고 쓴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생겼다. 피드백에 민감한 프로그램이라 작은 반응에 울고 웃을 때가 많다.인기만 높아진 것이 아니다. 잼라이브 덕분에 지갑도 두둑해졌다. "2015년에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어요. 꼬박꼬박 상환하다가 올해(2018년) 수입이 많이 늘어서 내년(2019년) 즈음에 다 갚을 것 같습니다." 30년 갚을 생각하고 빌린 돈을 2~3년이면 돌려 줄 정도라는 이야기다. “제 몸이 힘든 건 상관없는데, 방송에서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피드백을 들으면 너무 속상합니다. 저 자신도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고요. 방송의 양과 질을 다 채우고 싶은데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최고점을 찍고 있어도 언젠가는 꺾이는 걸 알기 때문에 계속 열심히 해야죠.”김태진 리포터는 백발이 돼도 현역이고 싶다고 말했다.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고 흐름을 이끌어가는 리포터가 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특유의 성실함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그는 후배 리포터들에게 뼈 있는 조언을 던졌다.“노력을 동반하지 않는 후배들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리포터를 자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려면 자신의 욕심 이상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욕심만 있고 노력을 하지 않는 후배들이 보여서 안타까워요. 꼰대같이 보일까 봐 걱정되는데, 그래도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습니다.”글 CCBB 에디터 TC시시비비랩
이디야가 스타벅스 옆에만 있다는 소문에 화나서 분석한 자료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4
조회 3904 추천 10 댓글 24
2018년 10월, 커피전문점 브랜드 평판을 조사한 결과 1위는 스타벅스가 차지하였고 3위는 이디야로 분석되었습니다. 수많은 커피 브랜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가운데 스타벅스와 이디야만이 매출액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기도 하였는데요.그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고 있는 두 브랜드죠. 스타벅스와 이디야는 각각 해외 브랜드와 한국 브랜드를 대표하는 커피 전문점으로 국내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습니다. 그러나 이디야는 스타벅스 옆자리만을 고집한다는 오명을 듣고 있는데요. 스타벅스가 찾은 좋은 입지에서 보다 저렴한 커피를 판매해 스타벅스의 고객들을 뺏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의 중심에 선 이디야입니다. 이와 같은 억측에 이디야 역시 난감을 표하며 반박자료를 제시했다고 했는데요. 어떤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디야가 전략적으로 스타벅스 옆자리를 꿰찬다는 의혹은 예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실제로 서울 광화문이나 강남 일대, 부산, 대전, 청주 등에서 스타벅스와 나란히 붙어있는 이디야 매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요. 이처럼 스타벅스 옆 이디야 매장이 자주 목격되었기 때문에 이디야의 추종 전략이 아주 뜬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스타벅스 매장을 좇아간다는 전략은 상당히 합리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죠. 업계의 후발주자로서 검증받은 롤모델의 전략을 모방하는 것만큼 안전한 투자방식이 어디 있을까요. 과거에도 모방을 창조의 어머니격으로 여긴 회사들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따라서 이디야가 추종 전략을 펼친다는 소문은 업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까지 대부분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죠. 스타벅스는 매장 위치 선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모든 매장을 직영점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회사 자체에서 철저한 시장 조사를 거쳐 매장 위치를 선정한다고 알려져 있죠. 이것이 스타벅스가 항상 흥하는 비결이자 스타벅스 롱런의 원칙이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스타벅스는 ‘허브 앤드 스포크’라 불리는 전략을 통해 입지를 정한다고 하는데요. 이는 유동인구가 많은 특정 지역에 매장을 집중시키는 전략으로 강남 일대에 스타벅스가 밀집해있는 현상도 이와 같은 전략과 연관이 있습니다.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스타벅스 매장 8곳 중 7곳이 목동에 쏠려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죠. 스타벅스가 위의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는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쉬우며 종업원을 이동 근무시키기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처럼 검증을 마친 목 좋은 자리에 스타벅스를 따라 매장을 오픈한다는 의혹은 이디야로서는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디야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기 때문이죠. 더불어 스타벅스가 찾은 좋은 입지에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커피를 공급해 스타벅스의 고객들을 뺏는 것이 이디야의 유일한 판매 전략이라는 조롱도 뒤따랐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디야 관계자는 "이는 사실과 다르다"라고 단호한 의사를 밝혔는데요. 위와 같은 논란은 실제 수치 자료만 확인해도 사실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939곳에 이르는 스타벅스 직영점과 이디야의 1767개 가맹점 입지를 분석한 결과 얻은 결론입니다. 하지만 이에 덧붙여 이디야 관계자는 위 소문이 뜬 소문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도 추가로 제시했습니다. 1. 이디야의 수많은 매장이디야는 스타벅스와 달리 가맹점이 매장 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부만이 직영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이죠. 따라서 매장 수면에서는 이디야가 스타벅스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매장 수가 1천여 개인 반면 이디야는 5년 전인 2013년 이미 '1000호점'을 달성했고 올해는 2,600개를 돌파했다고 하는데요. 서울시 매장만 따져보면 스타벅스는 445개, 이디야는 612개입니다. 이처럼 이디야의 매장 수는 스타벅스를 포함한 다른 커피 브랜드보다 최소 2배 이상 많습니다. 그리고 매장수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에 자주 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어딜 가도 많은 이디야가 스타벅스 옆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눈총을 받을 이유는 없는 셈이죠. 이디야 관계자는 "매장 수가 많으니 눈에 많이 띄고 스타벅스 근처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것일 뿐"이라며 ‘스타벅스 옆 이디야’ 논란을 소문에 불과하다고 일축했습니다. 2. 스타벅스와는 차별화되는 이디야의 입지 전략회사 자체가 추구하는 전략 면에서도 이디야는 스타벅스와 사뭇 다릅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 골리앗의 모방이 다윗에게 무슨 메리트가 있겠냐는 것이 이디야 측의 입장이죠. 실제로 스타벅스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선정한 자리는 이디야로서는 감당할 능력도 안된다고 관계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목 좋은 자리는 당연히 임대료가 비쌉니다. 모든 매장을 본사 직영으로 운영하는 스타벅스라면 모를까 가맹점주들은 턱 없이 비싼 임대료를 부담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스타벅스와는 차별화되는 전략이 구사되는 것이죠. 이디야는 자생의 방법으로 분산정책을 펼쳤는데요. 유동인구가 많은 대형 상권이 아니어도 다양한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점포를 확장하는 전략이죠. 이디야 본사가 공개한 점포 입점 기준에도 '지방 및 특수상권을 포함한 미개척 상권 개발'이 있었습니다.따라서 도시의 밀집 지역을 제외하면 ‘스타벅스 없는 이디야’가 넓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에서도 중구, 강남구 등의 번화 지역을 논외로 치면 스타벅스와 이디야 매장의 관련성을 찾기 어려운데요. 강서구의 스타벅스 매장은 12개인 반면 이디야는 40개가 영업 중이며 도봉구에는 18개의 이디야 매장이 있지만 스타벅스는 단 1개뿐입니다. 이처럼 외곽지역에까지 넓게 분산되어 있는 이디야의 매장을 일부 예만을 가지고 ‘스타벅스 옆 이디야’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이죠. 오히려 스타벅스가 없는 지역에까지 퍼져있는데 말입니다. 이상 이디야가 스타벅스 옆에만 있다는 소문에 화나서 분석한 자료였습니다.글 CCBB 에디터 스마트인컴시시비비랩
취미로 영상 시작했다가 유튜브계 평정중인 금수저 크리에이터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4
조회 10185 추천 8 댓글 38
요즘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유튜버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는 올해 가장 돈을 많이 번 유튜버는 7살 꼬마 라이언이라고 발표했는데요, 그가 2년 동안 올린 수익은 우리나라 돈으로 242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유튜브는 전 세계적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직업으로 주목받고 있죠. 우리나라 유튜버 스타들도 예외가 이닙니다. 최근 한 프로그램에서 대도서관은 연 매출이 17억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하지만 그들 중에는 유튜버를 하지 않아도 태초부터 여유로운 삶은 사는 이들도 있다는 거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돈을 버는 목적이 아닌 취미로 영상을 만드는 금수저 유튜버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1. 70평짜리 자취방, 레나금수저 유튜버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뷰티 유튜버 레나입니다. 그녀는 털털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구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유튜브 스타인데요. 동시에 천 단위 명품 하울의 시초이기도 하죠. 구독자들이 그녀를 금수저라고 추측하기 시작한 건 그녀가 부모님이랑 같이 살던 집을 공개했을 때부터인데요. 그 당시 그녀는 평창동 집을 본가가 아닌 세컨드하우스라고 밝혔었죠. 그 후 그녀가 독립을 하게 된 집을 공개하면서 그녀가 금수저라는 걸 모두가 인정하게 되었답니다. 무려 그녀가 자취를 하게 된 집은 한남동에 위치한 유엔빌리지 형우베스트빌로 알려졌기 때문이죠. 지금은 각종 논란으로 유튜브 활동을 중단했지만 금수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튜버라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2. 집 아니고 궁전, BJ 케이남자 BJ에서도 별 풍선 수익이 상위권이라고 알려진 BJ 케이, 그는 얼마 전 그의 두 번째 슈퍼카 구매 기념 영상을 업로드해서 화제가 되었죠. 영상 속 람보르기니 우라칸 스파이더 가격은 3억2천만원 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의 집 한 채에 가까운 금액으로 자동차를 구입한 건데요. 아직 놀라기는 이릅니다.진짜 놀라운 건 포항에 있는 그의 집이었습니다. 일명 '포항 궁'이라고 불리며 300평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차고, 수족관, 찜질방, 헬스장, 일하시는 분만 3명인 식당까지 있는데요. 그의 부모님은 힘들게 자수성가하신 분들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초호화 집을 공개하기 전 많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BJ로 활동하며 노력했던 것들이 금수저라는 단어만으로 무너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많았고 밝혔죠.3. 페라리를 사랑하는 의사, 오프 라이드최근 역대급 이벤트로 유트브계를 뒤집어놓은 유튜브가 있습니다. 바로 자동차 유튜버 오프 라이드입니다. 2019년 신형 자동차를 선물하겠다는 이벤트를 열어서 구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죠. 그의 재력은 의사라는 직업으로 간단하게 설명이 가능합니다. 심지어 본인의 소유 차량만 페라리 5대, 람브르기니, bmwM, 벤츠amg, 레인지로버등 10대가 넘어갑니다. 대부분의 카유튜버들은 부유하지만 특히 그가 주목받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신차가 출시되면 1-3억이 넘어가는 차들을 주저 없이 바로 구매해 컨텐츠를 만듭니다. 또 자동차에만 그치지 않고 갤러리아 프라이빗 데이 쇼핑, 고급 음식점 방문 등 다양한 컨텐츠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금수저가 맞냐는 질문에 " 단지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해주셨던 것뿐 자동차를 사주시는 건 아니다. 돈은 있어야만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금수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산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죠. 또 자동차를 할부로 결제하면 매달 열심히 일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며 인간적인 면모도 드러냈습니다.   4. 유명 BJ들의 열혈팬 출신, 슘짱정겨운 대구 사투리와 뛰어난 입담이 트레이드 마크인 슘짱, 그녀는 유명 bj들의 열혈팬으로 개인 방송에 여러 번 출현했다고 해요.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평범한 수저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팬클럽 중 별 풍선을 많이 쏜 20위까지가 열혈팬이 되기 때문이죠. 과거 세야라는 bj, 철구 등에게 수천만 원 어치 별 풍선을 후원했다고 해요.  슘짱은 그렇게 취미로 개인 방송을 하다가 팬의 권유로 유튜브로 넘어오게 됩니다. 그녀의 입담이 담긴 명품 언박싱은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올 초 명품관 영상으로 크게 화제가 되며 유튜버 스타로 거듭났습니다. 인터넷상에서는 그녀가 대구의 유명 무역회사 회장님의 딸이라고 알려졌는데요. 30살 때 버스를 처음 타봤다고 해요. 금수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이겠죠.5. 자칭 청담 언니, 치유지금껏 명품 하울은 그녀와 비교할 수 없죠. 8000만 원 명품 하울의 주인공, 디자이너이자 패션 유튜브인 청담 언니 치유입니다. 8000만 원 하울이 끝이 아니라 무려 14편의 명품 하울 컨텐츠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패션 이야기를 들려주는 브이로그도 인가가 많은데요. 그녀는 치유와 소누아를 론칭한 패션디자이너입니다. 패션전공이 아닌데 패션 브랜드를 성공시킨 걸로 유명하죠. 전공자도 힘든 브랜드 론칭 성공에 금수저라는 꼬리표는 그녀를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금수저라는 질문에 "좋은 부모님이지만 부유하게 자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금수저설을 일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패션 하울에서 독보적인 그녀의 존재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죠.지금까지 금수저 유튜브 스타들을 알아봤습니다. 그들이 금수저라서 쉽게 성공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부모님으로부터 일찍 독립해 자기 힘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금수저라는 걸 밝히기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과 노력을 폄하당하기 때문이죠. 금수저들과 평범한 사람들과 출발 선이 다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을 무조건 비난 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을까요?글 CCBB 에디터 스마트인컴시시비비랩
삼성 디자인에 로고만 바꿔넣어 팔다가 딱 걸린 대기업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4
조회 5517 추천 8 댓글 40
2018년 10월 일본의 대기업 소니가 대망의 스마트폰을 새롭게 출시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만, 소니 XZ3의 디자인은 익숙함을 넘어 친근함마저 들게 했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후 소니의 신제품이 퍼지면서 네티즌들의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그 찜찜함의 원인이 드러났습니다. 바로 삼성전자의 갤럭시 8과 꼭 빼닮았다는 것이죠. 물론 엣지 부분과 버튼의 위치 차이가 있긴 했지만, 네티즌인 이렇게 결정 내린데에는 과거의 전적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표적으로 동남아시아로 수출한 일본 닛신사의 짝퉁 불닭이 있죠. 마치 한국 제품인것 처럼 한국어까지 넣어 놓았으니 괴씸죄가 추가돼 한국인들의 분노는 폭발 적이었습니다. 여기에 아이돌 그룹인 방탄 소년단을 따라 탄도소년단까지 따라 만들었으니 일본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 말 그대로 갤럭시까지 닿을 수준 이었죠. 이렇게 일본기업이 따라 만든 것이 한 두번이 아니지만 '소니'라는 일본 대기업의 카피사건은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현재 일본 스마트폰 업계에서의 소니와 삼성에 대한 사회 이슈를 좀 더 살펴 보겠습니다.1. 자국민이 등돌린 소니의 스마트폰현재 소니의 스마트폰 사업에 대해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막강한 스마트폰 기업인 애플, 삼성은 물론 현재 화웨이에도 뒤처져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인들 또한 '소니가 내세울 건 오직 플레이스테이션 뿐이다' 라고 자기 학대를 한지 오래인데요. 소니의 이전 모델인 '엑스페리아XZ 프리미엄' 점유율은 나날이 줄어 애플이 54%인 것에 비해 민망한 수준인 12%라는 하락세를 보여줬습니다. 상하단 광할한 베젤로 인해 구시대적 이미지를 보여주었고, 물리 버튼이 아닌 소프트 버튼을 고수한 모습으로 업그레이드 된것인지 조차 의문을 들게 했죠. 다행이도 이후 출시된 엑스페리아 XZ 프로는  사이즈가 커지고, 베젤리스 디자인이 적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소니라는 명성에 걸맞게 고스펙 카메라를 장착하였지만 듀얼 카메라 붐이라는 시장 상황에서 단일 카메라를 탑재한 것은 단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이렇든 소니에 대한 실망감이 쌓이다보니 자국민들은 소니 스마트폰에 등을 돌려버렸었죠. 하지만 이제까지 스마트폰 업계에서 두각이 없던 소니가 2018년 신규모델 발표 소식을 전하자,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졌었습니다. 결과는 짝퉁 논란으로 휩쌓였지만 말이죠.2. 일본인이 삼성을 대하는 자세지난해 일본 스마트폰 시장에서 자국 업체들의 점유율이 반토막이 났습니다. 이때 갤럭시 노트8 출시를 앞두고 있던 삼성 입장에서는 점유율을 향상시킬 절호의 기회로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삼성휴대폰의 일본 시장 점유율은 3.8%로 5위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볼 수 있는데요. 이렇게 저조한 원인은 일본 통신회사 Docomo와의 협력관계가 끊긴 것도 일부 차지합니다. 또한 일본인이 자국산을 선호한다는 것과 내수시장이 활발하게 형성돼있어 한국산을 단체로 밀어내는 경향도 있죠.이 문제를 혐한 문제로 볼수 있는 것이 애플 스마트폰의 경우 매년 점유율이 상승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애플의 강세로 일본 시장 점유율 4위를 차지하던 후지쯔가 최근 철수하며 현재는 소니, 샤프, 교세라, 파나소닉만 남게된 상황입니다. 이렇다 보니 삼성에게만큼은 절대 밀릴 수 없다라는 것이 일본인의 속마음이라고 하는데요.3. 갤럭시 S6의 비하인드 스토리일본에서 삼성로고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인데요. 일본과 한국이 역사적인 문제로 얽혀 있기 때문에 거리상으로 가깝지만 절친한 나라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2015년 삼성에서 출시된 갤럭시 S6 제품에 삼성 로고를 빼서 일본에 출시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삼성은 글로벌 버전 폰에는 삼성(SAMSUNG)로고를 넣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 출시한 제품에는 예외였는데요. 이것은 미적 문제가 아닌 혐한 감정과 관련된 것임을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소니 판매율이 저조해지면서 삼성에 대한 열등감이 심해지고 있다' '일본은 삼성 로고가 붙으면 절대 사지 않는다'라는 의견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국가간의 관계에 따라 자국민의 소비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실제로 많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의 경우도 갤럭시를 '세상을 즐거움을 덮는다'는 뜻의 '가이러스'로 바꾸었죠. 특히나 일본은 외산의 무덤이라 불리기 때문에 기업로고를 지운다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글 CCBB 에디터 스마트인컴시시비비랩
대한항공 승무원 세후 500만원의 급여는 정말 사실일까?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4
조회 4699 추천 7 댓글 38
전직 승무원이 유튜브에서 말하길 승무원의 덕목은 가벼운 엉덩이라고 했습니다. 쉴 틈도 없을 만큼 강도 높은 업무임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죠. 실제로 고객 안내는 기본이고 기내 화장실 청소와 승객의 뒤처리 등 모든 궂은일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화려한 유니폼에 가려져 망각하고 있었지만, 입사 후 조금만 일하다 보면 체력테스트가 필요했던 이유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고 하죠. 이렇다 보니 서비스업의 최고봉이라고 불리며, 사람들은 승무원 월급에 대해 관심이 몰렸는데요. 예전 온라인 게시글에서는 대한항공 승무원은 세후 500만원을 받는다고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실제로 항공사 공고에 나와있는 연봉 외에 추가적으로 지급되는 수당들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세후 월급이 500만 원일지, 그리고 어떤한 추가 수당에 대한 항목은 무엇일지 알아보겠습니다. 1. 승무원 기본 급여 3가지승무원의 급여는 기본적으로 기본급과 비행 수당, 상여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본급의 경우 공고에 나와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2년제와 4년제가 500만원정도의 연봉차가 있었지만, 현재는 구분이 없어지며 평균 초봉이 3천만원 초중반대로 동일해졌습니다. 그렇다면 비행수당은 어떨까요? 이 수당은 지역이 아닌 비행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승무원마다 편차가 생깁니다. 최소 비행시간은 60시간으로 대게 한 달에 75시간~80시간을 비행하기 때문에 평균 200만원 중후반대를 받습니다. 비행수당은 [비행 1시간당 수당 x 시간]인데요. 대략 8천원~2만원 사이입니다. 그래서 간혹 승무원이 부족해서 90시간 이상씩을 비행할 경우 세후 300까지 받는 게 가능합니다. 그다음으로 연봉을 가장 많이 높여주는 상여금을 보겠습니다. 올해 대한항공 명절 상여금은 160만원 도로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명절 상여금만 있는게 아닌데요. 격달로 연말까지 보너스 개념의 상여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총 여섯 번의 보너스가 존재합니다. 대한항공의 경우 인턴과정이 끝나면 연봉에 780%의 상여금이 플러스 된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그래서 상여금을 모두 합치게 되면 평균 월급이 300만원 이상은 되는 것이죠.2. 달러로 들어오는 제2의 통장승무원에게는 기본 기본 급여와 별도로 들어오는 수당이 있습니다. 바로 체류비 명목으로 나오는 퍼듐이라는 것이죠. 해외에서 체류할 동안의 생활비 개념으로 지급되는 것으로 지역에 따라 금액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아시아는 유럽보다 적게 나오는 편이죠. 지급 방식은 기본 수당과 별도로 분리되어 다른 시기에 다른 통장으로 들어옵니다. 바로 외화통장으로 달러가 들어오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월급을 두 번 받는 기분이 들죠. 그래서 이 월급통장들의 알람 덕분에 승무원들이 고된 업무를 견디는 힘이 된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합니다. 이외에는 출근비와 초과근무수당이 있는데요. 출근비에 해당하는 교통비는 공항버스 기준으로 5~6천원 정도가 지급되고 있습니다. 3. 승무원의 파격적인 티켓 가격승무원의 복지혜택 중 일반인들은 가장 부러운 것을 꼽자면 바로 항공 티켓입니다. 국내 대기업 항공사의 경우 승무원에게는 50-90% 할인된 가격으로 매년 25개 정도의 왕복 티켓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할인율이 높은 경우 비확정 티켓이라서 승객이 우선순위입니다. 그래서 튕길 확률이 높아 대부분 비수기에만 사용하는게 일반적이죠. 하지만 50%티켓은 부담금액은 높지만 튕길 확률은 낮아집니다. 그리고 확정 티켓이 한가지 더 있는데요. 바로 신혼여행 티켓으로 10% 요금만 내지만 확정 좌석이라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위에서 언급했듯이 승무원 급여 체계를 확인해보면 인터넷 게시글에서 의문을 던진 '35살의 승무원 월급 500만원'은 현실성이 있습니다. 물론 기본급 이외에 지급되는 항목이 많기 때문에 개인 편차가 있고, 개인도 매월 변동되는 근무 스케줄 때문에 급여 변동 폭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 300만원 이하로 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하지만 비행시간이 많고, 연차가 쌓이고 또 보너스 달이 끼워진다면 세후 500만원까지 받는 것도 가능한 것이죠. 글 CCBB 에디터 스마트인컴시시비비랩
억대 매출+넘사벽 미모까지 거머쥔 대표적인 한국 여성CEO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4
조회 5590 추천 9 댓글 52
‘억대 매출’, ‘성공’이라는 단어는 생각만 해도 얼굴에 흐뭇한 웃음이 그려집니다. 이 단어들에는 누구나 꿈꾸는 미래가 담겨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젊은 나이에 이미 이 모든 걸 이뤄내 ‘성공신화’를 완성한 여성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미모까지 갖추고 있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하는 그녀들인데요. 그리고 이들에게는 미모에 부까지 모두 거머쥔 여성 CEO라는 사실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존재합니다. 바로 직접 경험한 불편함을 불편함에서 끝내지 않고 이를 사업으로 가져왔다는 점이죠. 자신이 경험한 것을 사업의 영역에 반영하는 개척정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죠. 최근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여성 CEO들의 도전정신과 열정을 한 번 느껴보러 가볼까요. 1. ‘요가복 브랜드 CEO’ 신애련한 요가 강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400억 대의 대박신화를 이룬 젊은 CEO가 되었죠. 신애련씨가 요가복 브랜드 ‘안다르’를 만들게 된 이유는 가격 대비 품질이 좋지 못한 요가복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데요. 그녀는 요가 강사였던 만큼 요가복을 입고 활동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당시 만족스러운 요가복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요가복은 대체로 불편했으며 민망한 디자인이 많았죠. 그리고 심지어 가격마저 비쌌습니다. 그 값어치를 하지 못하는 요가복에 많은 실망을 한 신애련씨는 ‘직접 요가복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안다르’입니다. 누구보다 요가 레깅스의 불편한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그녀는 어떤 부분을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지 완벽하게 캐치하여 여성들이 원하던 레깅스를 완성해냈는데요. 그렇게 본인이 경험한 불편함을 적극 반영하여 만든 레깅스는 2,30대 여성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여성들이 레깅스 입을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역시나 Y 존이었죠. 그래서 신애련씨는 Y 존을 부각시키지 않는 '시리 레깅스'를 만들어냈고 ‘대박 히트’를 치게 된 것입니다. 시리 레깅스는 출시 하루 만에 품절되는 사태까지 일어날 정도였으며 안다르는 브랜드 론칭 3년 만에 약 2천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에 실용성까지 갖춘 레깅스를 외면하려야 외면할 수가 없겠죠. 안다르의 레깅스는 일상생활에서도 편히 입을 수 있는 레깅스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신애련 CEO의 안다르는 현재 레깅스 외에도 맨투맨, 후디, 집업 등 다양한 여성 의류로 확장해가고 있는데 그녀의 성공 신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2. ‘천연화장품 브랜드 CEO’ 김다해보나쥬르는 자연주의를 지향하는 ‘천연 기능성 화장품’으로 현재 각종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설립되어 올해로 8년 차를 맞이하고 있는 보나쥬르는 소비자가 직접 선정한 ‘2018 대한민국 퍼스트브랜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인기는 보나쥬르의 CEO 김다해씨를 연 매출 50억의 여성으로 만들어주었는데요. 보나쥬르의 김다해 CEO는 어린 시절부터 아토피, 여드름, 각종 알레르기 등 많은 피부 고민을 겪었는데 이때, 직접 연성초, 부활초 등을 이용한 천연 화장품을 만들어 사용하고 많은 효과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천연화장품 사업의 기초가 되었죠. 그녀는 현재도 “나와 우리 가족이 쓰는 화장품을 만들겠다"라는 생각에서 전 직원이 직접 테스트를 진행하며 직원 중 단 한 명에게라도 문제가 생기면 해당 제품은 전량 폐기 처분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개발된 화장품 중에 ‘그린티 워터밤’은 중소제품 베스트 10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인기 제품은 50만 개 이상이 판매되었습니다. 일명 ‘흔적 세럼’이라 불리는 ‘익스트림 스팟세럼’ 또한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은 보나쥬르이죠. 보나쥬르는 한국을 넘어 미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터키 등 다양한 국가에서도 뷰티 박람회를 통해 우수한 제품력을 인정받았는데요. 연간 100만 달러 인도네시아 수출 계약과 함께 오프라인 쇼핑몰을 오픈하여 해외 진출에도 성공한 김다해 CEO입니다. 그녀는 앞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진 글로벌 브랜드를 목표로 더욱 사업에 매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3. ‘속옷쇼핑몰 CEO’ 하늘2011년, 케이블 채널 Comedy TV '얼짱시대 6'에 출연하여 귀여운 외모로 주목받았던 한 학생이 현재는 연 매출 40억 원의 쇼핑몰 CEO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쇼핑몰 ‘하늘하늘’은 특색 있게도 속옷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2년 연속 동종 업계에서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녀가 수많은 패션 의류 중에서도 ‘속옷’을 선택한 것에는 그녀의 취향도 담겨 있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속옷 모으는 걸 좋아했던 하늘 씨는 ‘내가 하면 정말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확신에서 속옷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웹서핑 중 그녀는 ‘왜 속옷 쇼핑몰은 모델에게 속옷을 입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당시에는 모델이 속옷을 직접 착용해 보여주는 쇼핑몰이 전무했습니다. 이에 하늘 씨는 ‘내가 직접 입어보고 착용샷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주면 훨씬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녀의 이 생각은 100% 적중하여 쇼핑몰을 오픈하자마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피팅모델을 했던 경험을 살려 직접 속옷 모델로서 착용샷을 공개했고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많은 이슈가 되어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톡톡한 홍보 효과를 누렸습니다. 더불어 속옷만 중점적으로 파는 쇼핑몰도 없었기 때문에 경쟁사도 레드오션 속 블루오션을 정확히 파고든 셈이었죠. 가장 크게 히트 친 상품은 ‘코르셋 브라’로 놀라운 볼륨업 효과로 넘치는 후기가 달리기도 했었습니다. 하늘 씨는 “쇼핑몰이 처음 시작부터 흑자를 보긴 쉽지 않은데 저희는 쭉 흑자를 봤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손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라고 인터뷰하기도 했죠. 그녀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그녀를 20대 젊은 나이에 연 매출 40억 원을 달성한 CEO로 만들어 준 것인데요. 11월 15일에는 ‘하늘하늘’ 오프라인 매장도 오픈하여 더욱 사업을 확장해가고 있는 하늘입니다.글 CCBB 에디터 스마트인컴시시비비랩
'뽀샵질' 안하는데 해외서도 찾아오는 동네사진관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4
조회 3790 추천 5 댓글 15
찰칵, 당신의 지금 이 순간을 찍어드립니다.아날로그 감성의 '연희동 사진관'웨딩 사진가 출신의 김규현씨가 운영보정없는 사진에도 하루 70명 넘게 찾을만큼 인기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연희동 사진관'. 흰색 외벽에 검은색 글씨로 정직하게 쓰인 수수한 간판이 인상적이다. 밝은 갈색 나무로 된 유리문은 따뜻해 보인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정원(한석규 분)의 사진관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10평(33㎡) 남짓한 공간에는 오래된 카메라 두 대와 검은 천이 둘러진 촬영 공간만이 덩그러니 있다. 사진관 주인 김규현(31)씨는 부지런히 셔터를 누른다. 연희동 사진관은 필름촬영을 주로 하고 촬영 후 보정은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찍는다. 꾸미지 않고, 고치지 않고 그 순간을 날 것 그대로 사진에 담는다. 흑백 사진이 많다. 그럼에도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벌써 2개월 가까이 예약이 꽉 차 있다. 주말 하루 평균 70여명이 이 구닥다리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다.  포토샵도 안 해주는 '솔직한 사진관'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뭘까. 잡스엔(jobsN)이 사진가 김규현씨를 만나 창업 배경과 성공 비결을 물었다.흑백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김규현 씨 모습 / 김규현 씨 제공-사진은 어떻게 시작한 건가."아버지가 카메라에 관심이 많아 저도 자연스럽게 사진을 접했어요. 15세때부터 필름 카메라를 썼고, 중학교 졸업선물로 디지털 카메라를 받았어요. '쿨픽서(니콘 디지털 카메라 동호회)'라는 사진동호회 활동을 하며 본격적으로 사진촬영을 시작했고요. 부산에 살면서 해안절벽과 다대포 해수욕장의 모래절벽을 주로 찍었어요. 고1때 사진을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그는 2006년 서울예술대학 사진과에 입학했다. 전공은 파인아트, 부전공은 광고사진이었다.-대학에선 주로 어떤 사진을 찍었나."지금 하는 연희동 사진관의 사진 촬영과는 정반대의 사진들을 많이 찍었어요. 인물 사진 보다는, 주제가 정해진 연출 사진을 주로 찍었습니다. 공모전에서 수상도 했고요. '레트로 스튜디오'(故이재오 씨가 운영하던 신사동 패션 스튜디오)에서 11개월 동안 어시스트로 일하며 패션 사진도 찍었습니다."(왼) 20대의 흔들리는 마음을 표현한 작품 '마인드스케이프' (오) '2010 한국광고사진공모전' 입선작 '드라이피니쉬 #3' / 김규현 씨 제공-지금 연희동사진관은 인물사진 위주인데 인물촬영은 언제 익혔나."계룡대 육군 본부에서 사진병으로 있었어요. 군대에서는 상급자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일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좀 더 잘 돋보이게 할까'를 염두에 두고 찍거든요. 그러면서 인물사진 촬영에 점점 익숙해졌어요. 그때의 경험이 지금도 도움이 많이 돼요. 사진촬영 기술은 학교에서, 인물사진 촬영의 관점은 군대에서 배운 셈이예요."여기까지는 여느 사진 전공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하나씩 전문 기술을 터득한 것은 보통 사진가가 걸어가는 길이다. 하지만 이후 그는 달라지는 현실에 적응하며 조금씩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갔다.-그럼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사진업을 시작한건가."2011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강남'허그스튜디오'에서 8개월간 일하고 그 해 10월 개인사업을 시작했어요. 웨딩촬영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했습니다. 처음엔 독일유학 자금을 모으는 게 목표였어요. 독일이 현대사진의 메카거든요. 돈이 필요했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다녔어요. 샘플 사진을 촬영해서 웨딩업체에 영업도 많이 다니고요. 그리고 2013년 초에 방배동에 웨딩 스튜디오를 차렸습니다."-웨딩 스튜디오는 어떻게 운영했나."주로 결혼식 스냅사진(결혼식 예식 전과정을 따라다니면서 촬영)과 본판 사진(결혼식 단체사진)을 찍었어요. 웨딩촬영에 대해서 대학에서 별도로 가르쳐주는 건 아니라서 처음엔 어려움도 있었죠. 하지만 웨딩 업계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작업 의뢰도 많이 받고 차츰 적응해나갔어요. 그렇게 약 2년간 스튜디오를 운영했습니다."-대학 때 주로 찍은건 연출사진, 광고사진인데 막상 일은 웨딩 촬영을 선택한 이유는."연출·광고·패션 사진은 사업자간 만남이라 작업을 의뢰받는데 한계가 있어요. 인맥이 없으면 힘들죠. 그에 비해 웨딩이나 아기 사진은 사업자와 고객이 직접 만나다보니 시장이 커요. 그런 현실적인 이유가 컸습니다."-그런데 왜 그만두었나."웨딩촬영은 꾸준히 수요는 있지만 앞으로의 발전가능성을 생각하면 전망이 좋진 않아요. 뉴스에 나오는 통계만 봐도 결혼하는 커플도 점점 줄고 있잖아요.그리고 결혼식 스냅사진이 보통 3시간의 결혼식에 1000~2000컷을 찍고난 후 작업실로 돌아와 괜찮은 사진을 150컷 정도 골라내요. 수많은 컷을 찍지만 단 10프로의 사진만이 남는거죠. 이런 작업이 어느 순간부터 소모적으로 느껴졌어요. 이런 방식은 기존의 웨딩 촬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거라 재미도 없었고요.그리고 웨딩사진은 포토샵으로 보정을 많이 합니다. 점점 포토그래퍼가 '사진을 잘찍는 사람'이 아니라 '포토샵을 잘하는 사람'인 것처럼 되는 게 싫었어요. '찍는 중요성'보다 '고치는 중요성'이 더 커진 데 대한 회의감도 들었고요."-그럼 웨딩 스튜디오를 그만두면서 현실적인 고민은 없었나."마침 아기가 태어났을때라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책임이 무거웠어요. 그래도 사진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건 사진이니까요. '사진으로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없을까' 매일 고민했어요. 웨딩 스튜디오 운영이 잘 되긴 했지만, 웨딩업의 특성상 수입이 들쑥날쑥 했거든요. 수입이 한 달에 100만~200만원 정도였어요."그는 오랜 고민과 준비 끝에 2015년 5월 '연희동사진관'을 열었다. '사진으로 먹고살되, 남과 다른 사진을 찍자'는 것이 목표였다.공간 디자인부터 정성을 들였다. 사진관까지 찾아와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라면 사진관 인테리어도 중요하게 여길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구상부터 시공까지 모두 직접 했다. 입구는 유럽의 옛 제과점처럼 디자인했고, 벽면은 철판이나 강화유리 대신 통유리를 사용해 내부에 햇살이 들어오도록 했다. 한국적인 느낌을 담기 위해 일부러 나무를 소재로 사용했다. 사진관 벽면 창문엔 한옥에서 쓰는 창호로 격자무늬 느낌을 살렸다.연희동사진관 전경 / '연희동사진관' 제공-초기부터 반응이 좋았나."처음에는 동네 주민들이 찾아오셨어요. 주로 연세 꽤 드신 분들이었죠. 어릴때 본 사진관처럼 옛 사진관같은 풍경에 끌리신 거에요.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제주도에서 일부러 찾아오시기도 하고, 해외에서도 많이 오세요. 미국에 오래 살던 한국분이 오셨는데 멀리서 왜 우리 사진관을 일부러 찾아왔냐고 물었더니, '한국적 느낌이 나는 곳이라 좋았다'고 하더군요. 처음에 사진관 디자인에 신경쓴 것이 통하는구나 싶었어요."-기억나는 촬영 에피소드 또는 사람이 있나."1년전쯤 70대 어르신이 사진관을 찾아오셨어요. 추리닝 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편한 차림으로 오셨는데 상의는 깔끔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양복자켓을 걸치고 오셨죠. '내 마지막 모습을 담아주소'라고 하시더군요. 영정사진을 찍으러 오신 거였어요. 저도 영정사진을 찍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그 분의 환한 미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또 한 번은 딸, 사위와 함께 온 어머님이에요. 한 눈에 보기에도 많이 편찮으신 모습이었어요. 세 분이서 함께 가족사진을 찍고, 다음에 어머님 혼자서 영정사진을 찍었어요. 촬영 전 "내가 너희들에게 미안하구나"하시더니 눈물을 흘리셨죠. 하지만 입가는 웃고 있었어요. 그런 분들이 기억이 납니다. 짧지만 그 찰나, 먹먹함을 주셨던 분들입니다.20대의 마지막을 남기고 싶다던 스물아홉 아가씨도 기억나요. 단체사진을 찍을때면 항상 뒤로 숨거나, 셀카를 찍어도 보정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는데 청춘의 한 시절은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싶다고 했어요."(왼)흑백 필름촬영한 할아버지와 손자 (오)손을 맞잡은 엄마와 딸 / '연희동사진관' 제공김씨는 필름 및 아날로그 사진을 주로 다룬다. 필름사진은 흑백 120㎜중형 필름으로 찍고, 아날로그 사진은 폴라로이드로 찍는다. 필름사진은 흑백과 컬러로 나누는데 흑백 필름 촬영의 경우 촬영과 원본 비용을 합해서 20만원이다. 촬영 후 필름 사진을 인화하는데 보통 한 달이 걸린다. 필름 사진은 보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디지털 촬영으로 테스트 촬영을 20컷 정도 한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한 컷에 3만원이다. 폴라로이드 촬영 후 인화까지 30초~1분 정도 소요되는데 그 동안 사진관 외관 앞에서 무료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준다. 이 서비스 때문에 블로그와 소셜미디어에서 저절로 홍보가 됐다. 김씨는 "사진관 자체가 아날로그 컨셉이기 때문에 온라인 홍보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전혀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고객들 사이에 자연스레 홍보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장비도 오래된 옛날 장비를 선호한다. 그가 사용하는 필름카메라는, 'hasseblad' 카메라로 1980년대 스웨덴에서 제작된 것이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1970년대 후반 제작된 '위스타'이다. 이 카메라는 소형 카메라가 없던 시절, 촬영용으로 흔히 사용되던 오래된 카메라다. 오래된 카메라로 아날로그 감성이 담긴 사진을 찍는 것이다.소박한 사진관 내부 / '연희동사진관' 제공-사람들이나 얼마나 찾아오나."하루 기준으로 폴라로이드 사진은 평일엔 15~20장, 40~50장을 찍습니다. 필름 사진은 최종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주말엔 3팀 정도 찍어요. 사진관은 날씨가 화창한 봄, 가을이 성수기인데 그럴 때는 하루에 폴라로이드 사진 70장 정도 찍습니다."-매출은 어느 정도인가."한 달 2500만원 작년 매출은 1억원대 중반이었고, 현재 한달 총매출은 2500만원 정도입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이 1억원 이상이었고, 연말까지 2억원 내외로 예상하고 있어요. 필름 촬영 업체의 평균적인 매출과 비교하면 조금 높은 편입니다. 그렇지만 순수익률이 높지는 않아요. 필름, 재료비를 고려해야 하니까요. 촬영 때 장비 렌탈비가 꽤 드는 편입니다. 사실 사진관을 찾는 사람들이 문의하는 것처럼 필름의 값은 비싸지 않거든요. 가격에는 손기술이 포함된 거죠. 손기술에 대한 가치를 더 인정해주셨으면 합니다."흑백 필름촬영은 아날로그 감성이 담긴 사진을 만들어낸다. / '연희동사진관' 제공-연희동엔 연희동사진관 하나뿐이지만, 다른 지역에 필름 촬영 사진관이 몇 개 더 있다. 연희동사진관만의 차별점이 있다면."우선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보통 필름 촬영 전문 업체들의 평균 가격이 6~8컷에 50만~100만원 정도인데 비해 저희는 12컷에 20만원이니까요. 물론 저희는 인화와 액자값이 별도이긴 하지만, 꼭 액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보통 액자값까지 가격에 포함시켜 강매를 하거든요. 또 한 가지, 원본 데이터 사진을 무료로 드립니다. 사진관에서는 촬영한 원본 사진을 사진관이 소유하는 경우가 많아요. 고객에게 줄 때도 대부분 유료로 주죠. 하지만 저희는 무료로 드려요.연희동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이 주는 장점도 있습니다. 사진만 찍기 위해 집을 나서기는 쉽지 않잖아요. 사진 촬영하고 볼거리가 많은 연희동에서 데이트하거나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고, 동네가 주는 분위기가 사진관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고요.보통 필름 촬영 업체들이 흑백 사진진을 다룬다는 이유로 무거운 분위기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 사진관은 그보다는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인 것도 장점이에요."필름사진을 찍으면 카메라에서 롤필름이 나온다. 이때는 아직 상(像)이 맺혀있기만 할뿐 약품과정을 거치지 않아 희미하게만 보인다. 이것을 '라킹이미지(잠상)'라고 하는데 우리 눈에 보이게끔 하는 것이 현상 작업이다. 이때부터 빨간색 암실에서 길고 세밀한 작업이 이루어진다. 인화는 사진과 싸우는 과정이다. 톤 보정을 하고 스크래치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우선 적게는 3~4장, 많게는 10장을 골라낸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사진에 손상이 가기 때문에 매순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약품 반응을 하면서 빛의 흔적만 남게 되는 게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사진이다. 이 과정에서 저절로 사진에 마음이 담길 수밖에 없다.(왼)사진을 인화하는 암실 내부 (오)연희동사진관 외부를 흑백촬영한 사진 / 김규현 씨 제공-사실 요즘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다. 사진을 '업'으로 삼는 것의 매력은 무엇인가."사진을 손쉽게 찍을 수 있음에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은 제게 믿고 맡기는 거죠. 저를 신뢰해준다는 게 즐겁고 감사해요. 한 번 방문했던 분들이 꾸준히 찾아오시는 것도 보람되고요. 결혼할 때 커플 사진 찍고 임신했을 때 또 찍고 아기가 태어나면 가족사진을 찍으러 오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그리고 모든 동네 사진관들이 디지털 촬영으로 바꿀 때 대세를 따르지 않고 아날로그 필름을 사용하고 필름 시장을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같은 직업이지만 내가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르게 해내고 있다는 거, 그리고 내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다는 거, 직업인으로 대단한 행복 아닌가요?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사진을 찍고 있다는 거, 그리고 꾸준히 해온 결과 지금은 특별한 사진이 됐다는 게 좋습니다."-반대로, 사진을 업으로 삼아서 느끼는 어려운점이 있다면."모든 일이 그렇듯이 제가 좋아하는 사진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마냥 좋지는 않죠. 고객을 만나는 게 주된 업무다보니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고요. 가장 힘든 건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는 고객들이에요. 특히 저희 연희동사진관은 필름촬영을 주로 하는데 필름촬영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 시간이 정해져있어요. 평일엔 1~6시, 주말엔 2~4시반까지만 가능합니다. 예약시간에 늦거나 무단으로 취소하시면 운영에 차질이 생겨요.그런 '노쇼'를 방지하기 위해 촬영 가격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예약금으로 받거나 늦게 오는 사람은 아예 촬영을 해주지 않는 방법으로 일단 해결하고 있어요.특히 어려운 점은 저희 사진관의 촬영과 반대의 컨셉을 원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에요. 필름 촬영이고 보정이 없는 사진이라는 걸 알고 오시는 분들도 막상 와서는 보정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종종 있어요. 그럴때는 힘들긴 하지만 설득을 하죠. 우리 촬영의 컨셉을 설명하면 대부분 받아들이세요."-사진업은 요즘 '사양 사업'으로 여겨지는데 어떻게 생각하나."그 부분에 대한 고민도 현재진행형이에요. 하지만 대세의 흐름은 어쩔수없다고 봐요.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을 수 있게 된게 오히려 디테일한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를 높이는데도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사진관도 자체적으로 변화를 모색해야죠. 디지털 기술로만 전환하고 가격을 싸게 하려고만 하지 말고, 원래 갖고 있는 전문 촬영 기술과 필름 시장을 살려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동네 사진관 프로젝트'를 추진하려 준비중이에요. 동네 사진관들끼리 서로 어울려 일반인들에게 사진 기술 강좌도 열고 촬영 기법도 전하고. 우리가 먼저 고객에게 다가가야죠.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쉽게 찍을 수 있는 사진과 전문가들이 찍는 사진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촬영은 간편하지만 당장 사진이 실물로 존재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아무리 스마트폰 메모장이 있어도 급할 땐 종이와 펜을 찾는거처럼 있듯이 아날로그는 사라질 수 없어요. 더구나 사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가져가는 거잖아요. 한 사람의 일생 동안요. 사진관도 없어지진 않겠지만 방향 설정을 다시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연희동사진관에는 가족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 '연희동사진관' 제공-필름 촬영의 매력은 무엇인가. "필름 촬영은 정해진 컷에서 결과물을 얻어야 하는 만큼 한 컷 찍을때 심혈을 기울이게 돼요. 그만큼 한 컷에서 다음 컷으로의 호흡도 길고요. 암실에서 인화작업 할 때도 사진 한장 한장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돼요. 신기한 건, 사진을 찍는 저 못지 않게 사진을 찍히는 사람도 더 주의깊게 찍으려 한다는 거에요. 필름 사진은 보정을 안해주니까요.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앞으로의 꿈이 있다면."사람들의 영정사진을 잘 찍고 싶어요. 사진가들이 많이 하는 1년에 몇 번 양로원 가서 봉사활동으로 찍는 그런 거 말고요. 배경, 조명까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신경써서 멋지고 화려하게요. 영정사진이라고 꼭 무겁고 어두울 필요는 없거든요. 그렇지만 진중하고 책임감있는 마음으로 찍고 싶어요. 그 사람의 인생 가장 전성기 때 모습을 컨셉으로 찍어도 좋을 거 같고요. 그건 제가 좀 더 내공을 쌓았을때 이룰 수 있는 꿈입니다. 그리고 삶을 꾸려가느라 잠시 놓아둔 독일 유학에 대한 꿈도 조금씩 다시 준비해보려 합니다."글 CCBB 에디터 김민정 시시비비랩
리틀 이건희, 대모…세계가 인정한 한국 대표 여성 CEO들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4
조회 2969 추천 6 댓글 17
국내 여성 CEO(Chief Executive Officer)국내 여성 CEO(Chief Executive Officer)리틀 이건희·철의 여인·의약품 유통업 대모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이 6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습니다. 100점 만점 중 25점으로 29개 회원국 중 29위에 올랐죠. 유리천장 지수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직장 내 여성차별 수준을 평가한 것입니다. 간부직 내 여성 비율, 남녀 육아휴직 등 10가지를 평가하죠. 한국 여성 기업인 머리 위에 있는 유리천장이 높고 두껍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회사를 이끄는 여성들이 있습니다.포브스코리아가 2017년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여성 CEO를 조사했습니다. 이중 여성 CEO는 21명이었습니다. 회사 창립부터 시작한 자수성가형, 가족경영으로 회사를 이끄는 오너가 출신,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전문경영인 출신 CEO를 알아봤습니다.호텔신라 이부진 대표(좌), 황타오(黃燾) 중국 비잉메이트 사장과 악수하고 있는 매일유업 김선희 대표(우) / 조선DB, 매일유업 제공◇세계에서 인정받는 오너가 출신 CEO호텔신라 이부진 대표는 국내 대표적인 오너가 출신 여성 CEO입니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장녀로 경영방식이 이건희 회장과 닮아 '리틀 이건희'라고 불립니다. 호텔신라에는 2001년 기획부 부장으로 입사해 2011년 호텔신라 CEO로 취임했습니다. 이 대표는 재계 안팎에서 경영능력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면세점 사업 진출 후 헤네시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을 만나는 등 3년의 노력 끝에 루이비통을 인천공항에 유치했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2014년 택시가 신라호텔 회전문을 들이받아 5억원의 피해를 냈습니다. 운전사의 어려운 사정을 안 이 대표는 변상 의무를 면제해줬습니다. 그는 2017년 11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서 93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제약업계에는 보령제약 김은선 대표가 있습니다. 창업자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의 맏딸입니다. 1986년 보령제약 입사 후 전 부서를 거치면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2015년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 파워 여성 기업인 50인'에 선정됐습니다. 포브스는 선정 당시 “지난 2001년 부회장 승진 이후 보령제약을 매출액 3595억원의 제약업체로 키웠다”고 평가했습니다.매일유업 김선희 대표도 오너가 출신 CEO 중 한 명입니다. 국내 유제품 업계 최초의 여성 CEO기도 하죠. 매일홀딩스 김정완 회장의 사촌 동생입니다.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씨티은행, BNP파리바, UBS 등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2009년 매일홀딩스 김 회장이 김선희 대표를 매일유업 재경본부장으로 영입했죠. 당시 매일 유업 지분을 하나도 받지 않아 전문경영인에 가까웠습니다. 이후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쳐 2014년 CEO로 승진했습니다.네이버 한성숙 대표(좌), 홈플러스·홈플러스스토어즈 임일순 대표(우) / 조선DB, 홈플러스 홈페이지 캡처◇매출 1~3위 기업 모두 전문경영인 출신여성CEO가 운영하는 기업 중 매출 1, 2, 3위를 다투는 기업 모두 전문경영인 출신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출 1위 홈플러스스토어즈(7조9456억원)는 임일순 대표가 이끌고 있습니다. 6조6629억원의 매출을 올린 홈플러스 대표기도 합니다. 코스트코, 바이더웨이 등에서 재무업무를 맡아 유통업계의 유리천장을 뚫었습니다. 2015년에는 적자에 빠진 홈플러스 재무부문장(CFO)과 경영지원부문장(COO)을 맡았고 흑자전환에 성공했습니다. 2017년 10월 대표로 취임했습니다.매출 2위 이랜드월드(6조5505억원)는 정수정 대표가 수장입니다. 1996년 이랜드그룹에 입사해 로엠 본부장, 미쏘 본부장 등을 지낸 패션업계 베테랑이죠. 2017년 2월에 CEO에 취임했습니다. 취임 후에는 부실사업을 정리하면서 올 상반기 20개 브랜드 흑자전환에 성공했습니다.매출 3위(4조6784억원) 기업 네이버는 전문경영인 출신 한성숙 대표가 이끕니다. IT기자 활동하면서 10여년 동안 전문지식을 쌓았던 그는 2007년 검색품질센터 이사로 네이버에 합류합니다. 본부장과 총괄 이사를 거치면서 ‘네이버 페이’, 글로벌 동영상 라이브 플랫폼 ‘브이 라이브’ 등을 만들었습니다. 2017년 3월 대표이사에 올라 IT업계에서 유일하게 유리천장을 깬 인물로 평가받습니다.이밖에 전문경영인 출신은 이랜드파크 민혜정 대표,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 장인아 공동대표, 한독 조정열 대표 등이 있습니다.지오영 그룹 조선혜 회장(좌), 기보스틸 최승옥 대표(우) / 지오영 홈페이지 캡처, 기보스틸 홈페이지 캡처◇회사 설립과 성장 함께 한 자수성가형회사를 설립해 매출 1000억원이 넘는 곳으로 성장시킨 자수성가형 CEO도 있습니다. 지오영 그룹 조선혜 회장은 의약품 유통업계에서 '대모'라고 합니다. 지오영은 의약품 및 의료용품 도소매 업체입니다. 36살 늦은 나이에 창업해 11년 만에 매출액 1조원을 달성했습니다. 시장에 생소한 웹 주문 시스템을 도입했고 업계 최초로 자동화 물류센터를 구축 했습니다.'철의 여인'으로 통하는 기보스틸 최승옥 대표 역시 자수성가형 CEO입니다. 기보스틸은 철판 및 철강재 부품, 금속절삭 가공기계 제조 및 도매사업을 하는 중견기업입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대표 거래처죠. 최 대표는 졸업 후 세일철강에 입사. 업계 최초로 여성 영업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이후 삼신철강(구 동암철강) 초대 CEO로 취임했고 1999년에는 직원 4명과 함께 독립해 기보스틸을 설립했습니다.이 밖에 자수성가형 CEO는 의약품 도매업체 비아다빈치 정영숙 대표, 식품 수입·유통전문기업 하이랜드푸드 윤영미 대표가 있습니다.글 CCBB 에디터 하늘 시시비비랩
꼭꼭 숨어있던 90년대 인기스타의 인생 2막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4
조회 3270 추천 12 댓글 1
미용 관련 자격증만 13개···개그우먼에서 뷰티 전문가로1987년 19세때 MBC 개그 콘테스트 데뷔취미이자 유일한 낙을 '직업'으로 미용 자격증만 13개 뷰티 전문가로 거듭나“무슨 화장품 쓰는지 사진 찍어서 저한테 보내주세요. 뒷면에 붙은 성분표도요. 얼굴에 바르는 건 전부 다 찍어 보내세요. 꼭이요.”  홍대에서 작은 피부관리숍을 운영하는 정재윤(49)씨. 그가 나가려는 손님을 붙들고 신신당부했다. 손님의 얼굴 피부는 울긋불긋 이른바 ‘뒤집어진’ 상태였다. 손님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정씨가 손님을 놓아주었다.  “아무리 숍에서 관리를 해도 피부가 민감한 분들은 화장품을 잘못 쓰면 소용없어요. 피해야 하는 화학성분도 많구요. 게다가 평소 수면시간, 먹는 약, 바르는 화장품, 음식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녀는 원래 30년전 개그우먼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대 초 후배 개그맨 박미선씨와 '별난여자'라는 코너에서 '미선이 할머니'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엔 라디오DJ, MC로 오랫동안 활동했다.정재윤씨. /jobsN이제는 뷰티 전문가로 더 유명하다. 피부미용사 국가 자격증, 대한경락사협회 경락 자격증, 국제발관리협회 자격증, 화장품전문가 1급, 아로마테라피 국제 자격증, 국제 왁싱 테라피스트를 포함해 13개 자격증을 땄다. 2013년엔 중앙대학교 의약식품대학원 향장미용학과 석사를 받았다. 운영하고 있는 숍은 100% 예약제이기 때문에 손님이 많진 않다. 30평 정도 되는 가게를 찾는 손님은 하루 5~6명 정도. 10회 분에 50만~70만원을 받는다. 각종 대학과 주요 기업에 강연을 나간다. 방송에서도 '개그우먼'보다 '뷰티 전문가'로 출연할 때가 많다. 숍운영, 강연, 방송 출연까지 합해 한해 수입이 억대다. 제2의 인생을 사는 정씨를 만났다.jobsN◇제2의 인생 성공 비결 1.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연예인은 사업을 시작하기가 비교적 쉽다. ‘유명인’이라는 점이 공짜 홍보수단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나 동업자를 찾기도 수월하다.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이름만 빌려주는 ‘얼굴마담’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정씨는 동업자가 없다. 직원은 단 2명뿐이다. 손님이 누구든 정씨가 직접 상담하고 관리한다. 전부 관리하지 못하면 마무리 팩이라도 하면서 앞으로 피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꼼꼼히 조언한다. 가게를 비울 때는 직원에게 화상 통화로 지시한다.  “방송일이 아닌 다른 일로 성공하는 연예인들의 특징이 '직접 한다'는 점이에요. 대표적으로 배우 김종결씨를 보고 배웠어요. 여의도에서 큰 고깃집을 운영하는데 서빙이나 계산은 물론이고 신발정리도 직접 하세요. 그걸 보고 ‘저렇게 해야 성공하는구나’ 깨달았습니다.”여러 연예인이 정재윤씨 가게를 찾아 피부 관리를 받는다. /정재윤테라피 블로그피부 관리를 하기 전 '상담'이 중요하다. ‘재밌는 상담’을 원칙으로 한다. 개그맨, 라디오DJ, 리포터, MC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쌓은 입담 덕분이다. 체질, 혈액형, 별자리에 따라 맞춤 상담을 한다. 재밌는 콘셉트로 고객이 상담에 집중하게 만든다.  “가령 별자리가 ‘쌍둥이자리’라면 쾌활하고 민첩해요. 속박을 싫어하고 잘 변화하는 스타일입니다. 쉽게 뚱뚱해지지는 않지만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감기 같은 잔병치레를 조심해야 합니다. 주로 소음인이 많은데 격렬한 운동보다는 요가를 하는 게 좋아요. 이런 분들은 레몬그라스, 일랑일랑, 로즈메리 같은 향이 좋습니다.”   30~40분 길게는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고객이 피부 고민을 털어놓다보면 '인생 상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피부 때문에 정신적으로 위축된 분들이 많아요. 실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도 많이 봤어요. 피부는 눈에 바로 보이니까 남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마음을 다독이는 것도 제 임무입니다.”고객의 체형과 건강 상태, 피부 상태를 자세히 파악하고 나서야 팩이나 마사지를 시작한다.  “손님이 ‘뭐 하러 왔어요’한다고 바로 해드리지 않아요. 지금 피부 상태가 어떤지 제대로 알고 난 다음 관리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충분히 잡고 오라고 말해요. 사업가로만 보면 서운합니다. '전문가'로 봐주면 좋겠어요.”[1989] 신혜수+견미리 VS 박미선+정재윤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있지만 VS 짚시여인◇제2의 인생 성공 비결 2. 전문 지식을 쌓아라  어릴 적 꿈은 가수였다. 학교에서 장기자랑이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뛰쳐나가는 학생이었다. 정씨가 중학생 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졌다. 이후 그는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을 이끄는 가장 역할을 했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한 후 1987년 MBC 개그맨 콘테스트에 응시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한가지 생각만 했다. 당시 인기 드라마 ‘전원일기’에 나오는 일용엄니 성대모사로 단번에 합격했다. 3만명이 몰린 시험에서 최종합격자 1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9세 때였다.  “개그 프로보다 ‘토토즐(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같은 음악 프로그램 녹화장을 더 많이 구경했던 것 같아요. 가수분들과 함께 노래 부를 때도 많았어요. 도시의 아이들, 박남정, 소방차랑 무대에 올랐죠.”  끼를 인정받아 무명생활 없이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하루 스케줄은 3개가 기본이었다. 아침 생방송, 지방 촬영, 스튜디오 녹화, 라디오 게스트 등 많게는 5~6개를 소화했다. 어린 나이에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개그계에서 살아남기에도 쉽지 않았다.개그맨, 리포터, DJ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 모습. /정재윤씨 제공“한창 바쁠 때는 1시간씩 잤어요. 스트레스나 피로를 풀 시간이 없었죠. 방송국 주변에 있는 피부관리숍에서 마사지 받는 게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3만~5만원, 비싸도 10만원이면 피로를 풀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했어요.”  기회는 우연히 왔다. 2007년 ‘피부 미용사 국가 자격증을 시행한다’는 뉴스를 봤다. 1998년 재미 사업가와 결혼 후 딸을 키우고 있을 때였다. “민간 피부 미용 자격증이 난립하고 있는데 이걸 모두 없애고 국가 자격증을 만든다는 내용이었어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학원에 등록했다. 당시에도 그는 아침과 저녁에 라디오 DJ로 일하고 있었다. 시간을 쪼개며 전문 용어를 외우고 실기를 연습했다. 주말에는 아침9시부터 오후6시까지 종일반 수업을 들었다.방송에 출연해 피부 관리법을 설명하는 정재윤씨. /정재윤씨 제공“기술은 정직해요. 연습하면 할수록 늘어요. 하다보면 무아지경에 빠져 집중하게 되더라구요. 힘들지만 힘든 줄 모르고 했죠.” 공부와 방송일, 육아를 함께했다. 스트레스로 ‘돌발성 난청’을 앓기도 했다. 2008년 피부미용사 국가 자격증을 시작으로 미용 관련 자격증이란 자격증은 모두 땄다. 2013년까지 1년에 2개씩 딴 꼴이었다. 2010년에는 서울호서전문학교 미용과에 입학하고 내친김에 중앙대에서 석사까지 땄다.  “자격증 개수에 연연한 건 아닙니다. 하나를 공부하니 다른 하나도 공부하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연예인이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지면 ‘연예인이니까’라는 소리로 평가절하 받을 때가 많아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노력했으니까 지금은 자신 있어요. 많은 연예인들이 찾아오는데 지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제가 실력이 없었다면 몇 번 오다 말았을 겁니다.”정씨가 딴 자격증과 상장 일부. /정재윤씨 제공◇제2의 인생 성공 비결 3. 고여있지 마라  정씨는 일주일에 2번씩 경기도 고양에 있는 미디어 센터에서 ‘1인 미디어’ 강의를 듣고 있다. 영상 촬영·편집·기획을 직접 하는 ‘크리에이터’로 나서기 위해서다. 7월 말 피부관리 지식을 전달하는 1인 창작자로 활동할 생각이다.  “제 나이 정도 되면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가기가 힘들어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안일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걸 항상 경계하려고 해요. 신문이나 책보다 스마트폰으로 보는 유튜브 영상, 아프리카TV 파급력이 대단해요. 그런데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나올 때가 많더라구요. 전문가로서 잘못된 상식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디오DJ, MC를 많이 해서 재밌게 진행할 자신도 있습니다.”글 CCBB 에디터 욘두시시비비랩
사업실패→연봉 8천만원 ‘정년 없는 직업’ 찾은 30대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4
조회 4762 추천 4 댓글 19
정년없이 연 8천만원 버는 남성의 직업은?강성일(38)씨는 한때 잘 나가던 휴대전화 대리점 사장이었다. 그는 “전성기엔 대리점 3곳을 운영하면서 수천만원대 월수입을 올렸다”고 했다. 그러나 업계에 종사한지 8년째 되던 2012년 사업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억지로 버텨보려고 했지만 되질 않았습니다. 당시 업황이 좋지 않아 모두들 어려웠습니다. 심지어 보증금까지 거의 까먹었을 정도였어요.” 결국 그 해 사업을 접었다.반려동물 장례지도사 강성일씨/본인 제공5년이 흐른 현재 강씨는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로 ‘제2의 인생’을 산다. 경기도 광주 반려동물 장례식장 펫포레스트에서 장례총괄 실장을 맡고 있다. 말하자면 이 회사의 장례지도사 4명 중 최고 책임자다. 자영업자에서 직원으로 변신한 것이다. 두 차례 이직을 거쳐 올해부터 이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강씨의 연봉은 8000만원. 업계에서 5년가량 경력을 쌓은 그는 “우리 나라에서 마음 편하게 웃고 살 수 있는 자영업자, 사장이 얼마나 되느냐”고 되묻는다. “직원이지만 보람을 느끼고 심적으로 훨씬 편합니다. 지금이 더 행복하죠.”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는 아직 일반에 생소한 신종 직업이다. 이 직업과 관련된 신뢰할만한 민·관 통계도 전무하다시피하다. 강씨는 “현직 종사자가 50명도 채 안 될 것”이라며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반려동물 산업이 유망하기 때문에 전망이 밝다”고 했다. 그를 통해 반려동물 장례지도사에 대해 알아봤다.  ① 어떻게 됐나 사업 실패를 겪고 먹고 살 방법을 고민한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요소는 ‘평생 직업’과 ‘전망’이었다. 평소 반려동물에 관심이 있었던 강씨는 그쪽 업계에 몸담기로 결심했다. “반려동물 화장장 알바로 2년가량 일했습니다. 그러다 좀더 배우고 싶어 반려동물 산업 선진국인 일본에 갔습니다.” 2014년 봄 화장장 알바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엔 도시 곳곳에 반려동물 장례식장이 널려 있었습니다. 한 도시에만 50곳이 넘는 곳도 있었습니다. 장례문화가 정착된 것이죠.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반려동물 장례식장이 많이 생기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반려동물 사체를 염습하고 있는 강성일씨/본인 제공장례지도사가 되기로 마음을 굳힌 강씨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 장례식장을 찾아봤다.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이 20곳 정도, 그나마도 절반은 ‘무허가’였다. 게다가 가족 회사가 대부분이라 신규 채용을 꺼렸다. 강씨는 당시 영업 중이던 모든 장례식장에 자필로 ‘일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단 한 곳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회신을 받았다. 충남 예산의 한 장례식장이었다.  ② 수련기간과 관련 자격증은2014년 7월부터 장례식장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기술이라면 기술이기 때문에 보안이 철저 했습니다.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른바 ‘도제식 교육’을 받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배운 기술 중의 하나가 ‘메모리얼 스톤’ 제작. 반려동물의 유골을 녹여 구슬이나 반지 등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2년반 이 회사에서 기술을 배우고 경력을 쌓은 강씨는 2017년 1월 1일부로 현 직장인 펫포레스트로 이직했다.강성일씨가 실무 경험 이후 취득한 반려동물 관련 자격증/본인 제공아직 이 업계에서 자격증이 보편화 돼 있진 않다. 직업이 먼저 생기고 제도가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강씨는 2015년 12월 반려동물장례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사단법인 한국반려 동물관리협회에서 주관하는 민간 자격증이다. 1차 필기 시험(장례학 개론, 공중보건학 및 위생관리, 반려동물 장례행정)를 통과하면 2차 실기시험(장례절차 실습, 매개식물 관리, 펫로스 상담)을 치른다. “지금도 업계에서 자격증보다 운전면허증을 선호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점차 자격증의 중요성이 높아질거라 생각합니다.” ③어떤 일을 하나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는 장례절차의 상담, 절차 진행, 납골, 펫로스 극복 상담 등 장례 전반을 대행한다. 일단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장례를 의뢰하면 직접 데리러 가는 경우가 많다. 사체를 임시 운구함에 넣고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면 사체를 닦는 염습을 진행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고객이 반려동물과 작별의 시간을 보낸다. 헌화를 하는 이들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장례를 진행하면서 고객의 감정을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강성일씨가 근무하는 펫포레스트/본인 제공마지막으로 사체를 화장기에 넣는다. 화장기 운용 방법도 장례지도사가 알아야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 장례지도사가 아닌 전담 직원이 화장기를 담당합니다. 그러나 다른 회사는 보통 지도사가 직접 화장기를 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례식을 진행할 때 관과 수의, 유골함은 어떻게 할지 고객과 협의하는 것도 지도사의 역할이다.  ④ 장단점은 반려동물 장례지도사의 장점과 단점은 모두 반려동물 자체의 특성에 비롯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반려인이라고 하는데, 반려인이 아니면 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공유하면서 장례를 도와주고, 위로해주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실제로 강씨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이는 ‘감정노동’이라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매일같이 슬퍼하는 고객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감정 이입이 되면서 함께 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홀로 사는 할머니가 생활을 함께한 반려동물을 데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구슬프게 우셔서 계속 눈에 밟혔던 기억이 납니다.” 자연사가 아닌 사고사의 경우엔 끔찍하게 훼손된 사체도 많다고 한다.강성일씨는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장례지도사란 직업에 종사하기 어렵다"고 했다/본인 제공⑤ 근무 여건과 급여수준은 강씨는 업계 대우에 대해 “회사의 성과, 그리고 개인 실적이 연동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아직은 월 200만~300만원 수준이 가장 많다”고 했다. 경력과 근무실적에 따라 업계 상위권은 월 500만원을 넘게 벌어가기도 한다. 연봉 8000만원 수준인 강씨는 업계 상위권인 셈이다. 강씨는 “저도 월 200만원 수준부터 시작했다”며 “신규 업종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앞으로 대우가 점차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일반 장례식장과 달리 반려동물 장례식장은 24시간 체제가 아닌 곳도 많다. 펫 포레스트도 그중 한 곳이다. 강씨의 경우 오전 9시에 출근, 오후 8시에 퇴근한다. 강씨는 “총 책임자인만큼 저는 주5일이 어렵지만 다른 직원은 대부분 주5일”이라고 했다. 다만 업종 특성상 연휴는 포기해야한다. 강씨가 하루에 처리하는 장례식은 보통 5~7건이다. 건당 1~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⑥ 향후 전망은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수는 총 457만이다. 인구로 치면 약 1000만명에 이른다. 강씨는 “기하급수적으로 반려동물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이런 흐름에 발맞춰 장례문화도 선진국처럼 변할 것”이라고 했다. “아직 어려운 곳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급증 추세인 반려동물이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기 때문에 미래를 보고 이 직업에 뛰어든다면 충분히 매력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수요는 10~15년 전에 태어난 반려동물입니다.”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전망/한국반려동물관리협회 홈페이지가장 중요한 일자리 개수가 대폭 늘 것이라고 강씨는 전망했다. 장례 문화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면서 관련 업체가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다. “지난해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처음으로 장례식장, 화장시설, 납골시설 등의 용어가 명문화 됐습니다. 과거엔 죽으면 그냥 버리는 경우도 흔했으나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게 되면서 장례식장을 찾는 이들이 점차 많아질 것입니다. 처음 업계에 종사한지 5년이 지난 현재 업체가 2배 수준인 35개로 늘어났습니다." 2009년 서울시가 예측한 반려동물 장례식장의 규모는 서울에서만 연간 8만3000마리 규모였다. 정년이 없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일할 능력만 있다면 나이는 상관 없습니다. 오히려 고객이 나이든 분들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60대 이상의 은퇴자를 고용하는 업체도 있다. 반면 단기적으로는 비교적 열악한 대우와 도제식 수련기간을 견뎌내야한다는 것, 그리고 반려동물 장례식장이 ‘님비 시설(Not In My Backyard·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뜻)’로 인식된다는 점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글 CCBB 에디터 오유교시시비비랩
자고나면 매장 ‘뚝딱’…10억 빚을 4000억으로 바꾼 비결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14
조회 4815 추천 13 댓글 25
유럽이 주목하는 '켈리델리' 켈리 최 회장유럽이 주목하는 '켈리델리' 켈리 최 회장 7년 만에 유럽 10개국 700여개 매장첫 사업 실패 10억원 빚 더미에서 재기 성공 켈리델리(Kelly Deli)는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회사다. 도시락 브랜드 ‘스시 데일리(Sushi daily)’를 운영한다. 대형마트에 입점한 크기 15㎡ 매대에서 요리사가 초밥 도시락을 만든다. 인기는 폭발적이다. 2016년 매출 4000억원을 냈다. 올해 예상 매출은 5000억원. 유럽 10개국에 700여개 매장이 있다. 이 회사가 화제인 이유 중 하나는 창업자가 아시아 동쪽 끝에서 온 한국여성이라는 것이다.켈리 최 회장. /jobsN주인공은 켈리 최(Kelly Choi·본명 최금례·49) 회장이다. 그는 7년 전 프랑스 리옹에서 무일푼으로 사업을 시작해 ‘유로피안 드림’을 이뤘다. 최근 성공담과 경영철학을 담은 책 '파리에서 도시락 파는 여자'을 냈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러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빈털터리 40대 한국인이 유럽에서 성공하기까지 최 회장은 전북 정읍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홀로 상경해 와이셔츠 공장에서 일하면서 고등학교 학비를 스스로 벌었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1988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7년 후 패션 중심지인 프랑스로 갔다. 하지만 ‘최고는 힘들겠다’는 한계를 느꼈다. 때마침 프랑스에서 한국 대기업을 상대로 광고회사를 하던 친구가 최 회장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최 회장은 한국인이고 3개 국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9년 동안 회사를 운영했지만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그에게에게 남은 건 빚 10억원 뿐이었다. 그는 실패 원인으로 ‘모든 것을 다안다’고 착각했던 자만심, 눈앞에 있는 업무에만 매달리는 근시안적인 태도를 꼽았다. “2년 동안 찌질하게 살았어요. 오랜만에 찾아온 후배를 두고 ‘커피값을 내가 내야 하나’ 눈치볼 정도였죠. 죽고싶던 날, 어머니를 생각하며 겨우 다시 일어났습니다.”  경기를 타지 않으면서 창업 비용이 적게 드는 도시락을 생각했다. 2년 동안 마트 직원보다 더 오래 마트에 머무르며 시장조사를 했다. 유통·사업에 관한 책은 100권 이상 읽었다. 만나본 적 없는 전문가들에게 끈질기게 만남을 요청해 비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진심을 담은 메일을 보내고 수시로 찾아갔다. 프랑스 대통령이 국가 중요 행사마다 찾는다는 초밥 장인인 야마모토씨에게는 초밥 만드는 법을, 김밥 도시락으로 미국에서 성공한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에는 경영방식을, 맥도날드 유럽 CEO 드니 하네칸(Denis Hannequin)에게는 글로벌 시스템을 배웠다.야마모토 장인과 켈리 최 회장. 야마모토 장인은 켈리델리에서 고문 역할을 하고 있다. 재료를 직접 고르고 정기적으로 신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켈리델리 제공“‘유명한 사람은 내게 관심이 없을거야’라는 생각을 버리세요. 들이대세요. 다만 들이대더라도 ‘센스있게’ 해야 합니다. 멘토로 삼고자 하는 사람의 저서와 인터뷰를 모두 읽으세요. 그 사람의 약력·철학·비전을 달달 외웁니다. 이렇게 하고도 해결 못한 궁금증이 있다면 메일을 보내보세요. 진정성이 통하면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답해줍니다.” 유럽 1등 마트 까르푸에 사업 제안을 할 때는 천운이 따랐다. 최 회장이 단 3장의 사업계획서를 까르푸에 보냈는데, 마침 까르푸 회장이 직접 그 계획서를 읽고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최 회장에겐 매대 설치·운영 비용조차 없었다. “파리시(市)의 창업지원사업에 뽑혀 자본금 3만유로(약 3900만원)을 지원받았어요. 까르푸와는 정식 계약 전에 2년 간 테스트 매장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즉석에서 초밥을 만드는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할테니 까르푸에서 운영 비용을 감당하라고 했어요. 까르푸에 돈을 꾼거나 마찬가지였죠.”  2010년 8월 프랑스 리옹 까르푸에 첫 매대를 냈다. 공장에서 생산하지 않고 요리사가 즉석에서 초밥 도시락을 만들었다. 요리사는 손이 크고 투박한 서구인 대신 젓가락을 써 손 근육이 섬세한 동양인만 채용했다. 또 생선과 밥 뿐인 기존 도시락과 달리 채소를 듬뿍 넣어 ‘건강한 음식’임을 어필했다. ‘마트 도시락은 형편없다’는 편견을 깼다. 최 회장은 까르푸에 사업을 제안할 때 월매출 3만유로를 약속했다. 개인 매장이 아닌 마트 안에 있는 작은 매대에서는 불가능한 매출이었다. 우려를 깨고 켈리델리 도시락은 고객의 이목을 끌면서 첫달에 7만5000유로(약 9700만원) 매출을 냈다. 지금도 14㎡~16㎡ 크기 매대에서 30만~450만 유로 매출이 난다. 캘리델리는 55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판 도시락만 1억5000만개가 넘는다. 시장 점유율은 50%로 업계 1위다. 지금도 하루에 한개꼴로 매장이 생긴다. 경쟁업체는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 초기 맥도날드보다도 빠른 성장세다. (왼쪽) 매장에서 도시락을 만드는 직원들. /스시데일리 인스타그램◇대표가 자리를 비우고 세계여행할 수 있었던 이유 회사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자 2016년 7월 세계 일주를 떠났다. 13개월 동안 요트 하나에 의지한 채 남편, 딸과 17개국을 돌아다녔다. 4명의 CEO가 최 회장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직원들이 필요로 할 때만 화상통화로 회의에 참여했다. 처음엔 13일도 아닌 13개월 동안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는 그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미쳤다’고 만류했다. “성공한 여성 사업가라면 가정을 포기하고 독하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저는 행복하기 위해 사업합니다. 5살 딸이 크는 모습을 볼 순간은 지금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정의 행복’만을 위해 세계여행을 결심한 건 아니다.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사장이 없어도 타격이 없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켈리델리의 시스템을 증명하고 싶었어요.”켈리 최 회장 부부는 2014년부터 세계여행을 준비했다. 요트를 제작하고 휴가 때마다 요트 타는 연습을 했다. 요트를 모는 법 뿐만 아니라 위기상황에서 대처하는 법을 익혔다. "유서 쓰고 요트 탔습니다. 대서양을 건널 때는 2주 동안 아무도 만날 수 없어요. 가령 맹장이 터지면 GPS 무전기로 구급대원, 병원 측에 연락해서 직접 수술을 해야 하죠. 별안간 준비없이 떠난 여행은 아닙니다." /켈리 최 페이스북켈리델리의 시스템이란 기업문화인 ‘totally togerther’를 말한다. ‘전적으로 함께’를 뜻한다. ‘가족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수평적인 문화’만을 뜻하진 않는다. 켈리델리에선 누군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동료가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다. 평소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켈리델리의 기업문화는 프랑스 경영대학원 교재에 소개되기도 했다. “가족 같다고 동료를 막 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서로를 믿는다’는 의미예요. 켈리델리에는 ‘결재’나 ‘보고’가 없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알아서 해요. 동료들이 서로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의심 안합니다.”   ◇실패하지 않는 게 실패하는 것이제 그의 꿈은 고속 성장 중인 켈리델리를 100년 기업으로 만드는 일이다. 도시락 사업에서 시작했지만 '아시안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회사를 목표로 한다. “오래가는 기업은 고객과 직원, 파트너사가 모두 행복한 회사입니다. 이를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할 겁니다.” 그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했다. “실패해보지 않는 게 실패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흙수저였다가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이 하나 있어요. 지금 절망해도 언젠가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는 겁니다. ‘나는 안될 거야’ 생각하기 보다 나의 오늘에서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 보세요.”글 CCBB 에디터 욘두시시비비랩
갤러리 내부 검색
전체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