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시청자 울린 ‘백종원의 푸드트럭’ 핫도그 아저씨, 지금은…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1.19
조회 7028 추천 27 댓글 33
작년 7월 SBS ‘백종원의 푸드트럭’ 출연수수&핫커리 핫도그 박광섭 사장강남역 9번 출구 앞 푸드트럭 존에서 쉬는 날 없이 핫도그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작년 7월21일 첫 방영한 ‘백종원의 푸드트럭’ 강남역 편에 출연한 박광섭 사장(61)이 그 주인공이다. 방송 당시 백종원 대표는 박광섭 사장에게 다양한 비법을 전수했다. 카레 맛을 내기 위해 인도산 향신료 커민을 넣자 그가 원했던 바로 그 카레맛이 났다.반죽법도 바꿨다. 튀김옷에 고춧가루를 첨가하는 대신 반죽을 갤 때 잘게 자른 고추를 넣었다. 탄 맛이 사라지고 매운 맛도 살릴 수 있었다. 변신에 성공한 그는 푸드트럭 운영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매진을 경험했다.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오랜 장사에 처음으로 성공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그의 눈물에 시청자도 눈시울을 적셨다. 하루 50개밖에 팔지 못했던 푸드트럭의 매출은 방송 이후 7배나 늘었다. 지금도 같은 장소에서 푸드트럭 장사를 하고 있는 그는 작년 11월 송파 삼전동에 직영 매장을 열었다.첫 매진을 경험한 박광섭 사장이 눈물을 쏟고 있다. / SBS '백종원의 푸드트럭' 캡처◇오전 8시 30분에 집 나서서 새벽 한 시에 귀가해-방송 이후 1년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일요일도 없이 바쁘게 지냈다. 비 오는 날과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갈 때만 쉬었다. 가게가 해외에도 알려지고, 지방에서 서울에 왔다 찾아주시는 분도 있다. 한 분이라도 헛걸음하시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일했다.”-하루 일과를 말씀해 달라.“아침 8시에 일어나 8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송파구 삼전초등학교 앞에서 운영하는 직영 매장에 가서 문 열 준비를 한다. 10시30분에 매장 직원이 출근하면 강남역 푸드트럭으로 이동한다. 11시부터 오픈 준비를 시작한다. 핫도그 반죽을 만들고, 기름도 올린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30분에 매장을 연다. 영업 시간은 밤 10시30분까지인데, 재료가 떨어지면 그보다 일찍 문을 닫는다. 일찍 끝나면 9시쯤이다. 저녁을 먹고 청소까지 하면 11시가 넘는다. 다시 삼전동 매장에 가서 영업 마무리를 도와주고 새벽 한 시에 귀가한다.”-장사는 오래 전부터 하신 것으로 안다.“음식 장사는 푸드트럭을 하면서 시작했다. 사실 장사 자체는 오래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얼음 통을 메고 다니며 ‘아이스케키’를 외쳤다. 가락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오랫동안 했고, 농산물을 포장해서 파는 소매업도 했다. 이후 노점상을 하다가 푸드트럭 존이 생기면서 서초구청과 합의해 푸드트럭으로 업종을 바꿨다. 이때가 작년 2월이다. 푸드트럭만 따지면 아직 2년도 못 했다. 먹는 장사는 연구와 창작이 필요하니 죽을 때까지 해도 다 못 배운다는 생각이 든다.”◇말 많은 콘셉트로 난처한 상황도-방송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어디에 가든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고향 친구들과 2박3일로 제주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방송에 나올 때처럼 노란 모자에 노란 옷을 입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알아보더라.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손님도 어떻게 알아보고는 인증샷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평소 행동거지를 나쁘게 한 적은 없지만, 조심스럽기는 하다.” -지금도 방송을 보고 가게를 찾는 손님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나.“방송에서 손님을 상대로 말을 많이 하는 콘셉트로 나왔다. 말을 안 하고 있으면 기분이 안좋은 것으로 오해하는 손님도 있다. 손님이 어떤 음식을 얼마나 주문했는지 잊을까봐 집중하는 것일 뿐이다. 말을 하다가 실수하면 큰일이지 않나.”-새로 생긴 목표가 있으시다고.“앞으로 서울 1개구에 한두 개씩 체인점을 내고 싶다. 소상공인이 어려운 시기다. 이들과 함께 사업을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금전적인 욕심보다는 양심을 걸고 체인 사업에 도전해보고 싶다. 지금도 체인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삼전동 직영 매장도 사적으로 핫도그 장사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문을 열었는데, 장사하면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사람의 입맛도 시대가 지나면 변하니 음식 맛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얼굴이 들어간 캐릭터도 만들 생각이다.”-요즘은 하루 몇 명 정도 손님이 오시나.“하루 300명 정도 손님이 가게를 찾아 주신다. 재료만 추가로 준비하면 손님을 더 받을 수는 있지만, 하루 300인분 분량의 재료만 준비하고 있다. 욕심을 부리다가 본질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작년 2월 푸드트럭을 시작했지만, 첫 장사는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 SBS '백종원의 푸드트럭' 캡처◇푸드트럭의 매력-푸드트럭만의 매력이 있다면.“피자, 치킨 등 대부분 프랜차이즈는 레시피가 정해져 있다. 반면 핫도그는 개인이 얼마든지 맛을 연구하고 재료도 바꿀 수 있다. 푸드트럭에서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메뉴를 만들수 있다.푸드트럭은 소자본으로도 창업할 수 있다. 주변에서 프랜차이즈에 퇴직금을 쏟아부었다가 실패한 사람을 많이 봤다. 보통 프랜차이즈 업장을 열려면 1억5000만원에서 2억원가량의 자금이 필요하다. 푸드트럭은 2000만원이면 집기까지 다 갖출 수 있다.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않아도 혼자서, 또는 식구와 할 수 있다. 푸드트럭 관리만 잘 하면 다른 품이 들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푸드트럭이나 요식업에 막 뛰어든 ‘새내기’ 사장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사업계획을 확실하게 짜야 한다. 이런 저런 장사를 30년 이상 해왔지만, 핫도그 하나를 만들기 위해 200개 넘게 먹었다. 내가 만든 핫도그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주먹구구식으로 장사를 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체면을 내려놓아야 한다. 계속 먹어보고, 맛집 사장을 쫓아 다니는 등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만일 떡볶이 장사를 하고 싶다면 시중에 있는 프랜차이즈 떡볶이는 물론 시장에서 파는 떡볶이도 하나씩 먹어봐야 한다. 음식을 포장에서 가는 손님들도 있으니 다양한 매장에서 포장도 해봐야 한다. 장사는 남의 말을 듣고 하는 게 아니다. 본인이 시행착오를 겪어보고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지금은 남을 써서 장사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인건비 문제도 있지만, 업장 규모가 커지기 전에는 비용을 최소화해야 이익이 난다. 편의점 알바생이 사장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다는 말도 나오지 않나.”그는 말 대신 행동으로 백종원 대표에게 보답하겠다고 했다. / SBS '백종원의 푸드트럭' 캡처◇발로 뛰는 모습으로 보답할 것요즘 그의 푸드트럭에서는 하루 평균 300개의 핫도그가 팔린다. 개당 1500~2000원의 가격을 고려하면 월 매출은 약 1500만원 선이다. 박광섭 사장은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한 뒤로 한 번도 백종원 대표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몸으로 직접 실천하는 게 최고의 보답이라고 믿는다.그는 “손님들께서 핫도그를 맛보고 ‘역시 백종원이다’라는 말을 해주실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이런 그의 속마음을 백 대표가 먼저 알아보고 독려해줬다. “은혜를 받았으면 최소한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장사를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글 CCBB 송영조 인턴시시비비랩
한국서 가장 소득 낮은 직업 2위 수녀…1위는?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1.19
조회 4939 추천 7 댓글 17
직장인 평균연봉 4100만원가장 가난한 직업은 시인영화 '설행'한국고용정보원이 2018년 4월, 소득별 직업 순위 정보를 포함한 ‘2016 한국의 직업정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서울 및 전국 6대 광역시와 인접산업도시를 중심으로 639개 직업, 재직자 1만 9827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인원의 59.8%가 외국계기업(개인사업체 포함)을 포함한 민간 기업 재직자이며, 300명 이상 대기업 재직자는 20.6%다.조사결과 재직자의 평균연봉은 4100만원으로 나타났다. 상위 25% 집단의 평균연봉은 5000만원, 하위 25%는 2700만원이다. 소득이 낮은 직업은 주로 서비스 분야였다. 비정규직이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2016년 가장 가난한 직업은 시인이다. / 사진 영화 '동주' 포스터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은 시인이었다. 시인의 평균소득은 542만원. 2015년 1864만원이었던 평균소득이 1300만원 가까이 하락했다. 성직자, 특히 천주교 성직자들이 박봉이었다. 수녀가 2년 연속 평균 소득이 가장 낮은 직업 2위였다. 수녀의 평균소득은 1262만원이었다. 수녀 가운데 연봉 하위 25%는 연봉 1000만원을 받았다. 1500만원을 받으면 상위 25%에 드는 수준이다. 신부는 1471만원으로 3위를 기록했다.연극 및 뮤지컬배우는 대표적인 벌이가 좋지 않은 직업이지만 상황이 조금은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연극 및 뮤지컬 배우는 2015년 평균소득이 980만원으로 가장 낮았지만, 2016년에는 1481만원으로 약 500만원 상승했다.인문계열 교수(평균소득 8622만원), 자연계열 교수(8348만원), 교육계열 교수(8100만원) 등 교수 직종은 대부분 연봉을 많이 받았지만, 보따리 장사라고도 불리는 대학 시간강사의 평균소득은 2164만원으로 하위 31위를 기록했다. 평균소득이 가장 낮은 직업 10위 / 자료 2016 한국의 직업조사(한국고용정보원)<소득이 가장 낮은 직업 10가지>1위. 시인 : 평균소득 542만원하위 25% 평균소득은 200만원, 상위 25%도 600만원에 그쳤다. 소득 상위 시인도 한달에 50만원 밖에 벌지 못한 셈이다.2위. 수녀 : 평균소득 1262만원하위 2500만원, 상위 2500만원3위. 신부 : 평균소득 1471만원4위. 육아도우미(베이비시터) : 평균소득 1476만원5위. 연극 및 뮤지컬 배우 : 평균연봉 1481만원하위 2500만원, 상위 2500만원6위. 전도사 : 평균소득 1540만원7위. 보조교사 : 평균소득 1543만원8위. 농업어업관련 단순종사원 : 평균연봉 1544만원9위. 소설가 : 평균소득 1566만원10위. 통계 및 설문조사원 : 평균소득 1596만원글 CCBB 에디터 CBCB시시비비랩
‘세계최초’라는 찬사받았지만…한국에선 ‘안된다’고 하네요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1.19
조회 873 추천 4 댓글 1
세계최초지만…한국에서는 인정 못 받는다?
6개월만에 4000만원…달리기로 돈 버는 그녀의 직업은?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1.19
조회 358 추천 1 댓글 0
소셜미디어 셀럽 '런소영' 임소영씨달리기 인플루언서달리는 게 너무 좋아서 자신의 달리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한 임소영(27) 씨는 ‘런소영(Run soyoung)’이라는 닉네임으로 8만 팔로워를 거느리는 소셜미디어 셀럽이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그는 42.195km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8번 참가했고, 3시간 42분의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주말마다 각종 대회에 참가해 받은 완주 메달만 100개가 넘는다.'Run soyoung' 임소영씨수영강사이자 헬스 트레이너였던 그는 올해 5월 하던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러닝 행사를 맡아 진행하고 러닝 강의와 광고 모델 등을 하며 6개월 만에 수천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18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든 임소영씨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운동을 엄청나게 하는 것 같다.“워낙 운동 하는 걸 좋아해요. 마라톤도 좋아하고, 철인 3종 경기, 등산, 수영, 수상스키 등 거의 모든 운동은 다 해본 것 같아요. 사회체육학과를 나왔는데 대학교 때부터 수영 강사로 일했습니다. 헬스클럽에서 헬스 트레이너로도 일했죠. 살면서 늘 운동과 함께한 것 같아요.”스위스 트레일러닝 110km 참가당시(좌), 헬스 트레이닝 중 찍은 셀카 / 임소영씨 제공-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하던데, 언제부터 시작했는지.“인스타그램을 다른 사람보다 늦게 시작한 편이에요. 2년 전에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수영 강사 하면서 수영하는 영상도 올리고 홈 트레이닝을 비롯해서 제가 하는 모든 운동 사진을 찍어서 올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운동이 달리기이다보니 러닝 위주로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팔로워가 8만 명이 넘었습니다. 요즘 러닝 인구가 늘어나다보니 많이 찾아주신 것 같아요. 필라테스나 요가를 콘셉트로 하는 인스타 셀럽은 많은데 러닝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거든요.”- ‘런소영’이라는 닉네임은 본인이 지은건가.“인스타그램을 하다보니 닉네임 같은 것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생각난 게 달리기(Run)와 제 이름을 합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런소영(Run soyoung) 이라는 닉네임으로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팔로워가 엄청나게 늘면서 브랜드 같이 돼버렸어요. 지금은 제 이름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런소영이 더 유명합니다.”프라하 마라톤 10km 참가 당시 / 임소영씨 제공-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궁금하다.“대학교를 졸업하고는 계속 수영강사와 헬스 트레이너를 해왔어요. 그러다 6개월 전에 모두 그만두고 지금은 러닝 관련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어요. 기업이 후원하는 다양한 러닝 행사를 진행하고, 러닝 관련 업체와 함께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합니다. 여러 업체에 광고 모델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러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져서 강의 요청도 많이 들어와요. 문화센터에서 강의도 꾸준히 하고 있구요, 최근에는 야핏이라는 브랜드에 소속되어 다양한 영상 콘텐츠도 제작하고 있어요.”- 일정을 관리해 주는 사람이 있나.“잘 안 믿기시겠지만 오로지 인스타그램으로 합니다. 러닝 이벤트 모집도 인스타그램 댓글로 신청을 받고, 기업들의 협찬 제의나 광고 모델 요청도 메시지로 들어와요. 제가 진행하는 행사 공지도 인스타그램으로 하죠.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워낙 많고, 그중 저의 팔로워 대부분이 러닝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 인스타그램만으로도 가능했습니다.”벤쿠버에서의 러닝(좌), 하와이에서의 러닝 / 임소영씨 제공- 인스타그램으로 돈을 버는군요.“그렇다고 봐야죠. 러닝 인구가 늘어나면서 러닝과 관련된 행사나 이벤트를 기획하려는 업체들이 많아요. 그런 업체에서 저를 보고 연락을 해요. 저는 단지 달리기가 좋아서 하고 있었는데, 팔로워 숫자가 늘어나자 기업으로부터 캐스팅 제의가 자연스레 들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부터 수익 창출을 염두하고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지.“인스타그램을 하는 게 돈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처음에는 수영강사와 헬스 트레이너를 하며 일 하는 모습을 올렸으니까요. 평일에는 직장에서 일 하다가 주말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러닝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재밌어서 시작한 달리기 모임에 후원하겠다는 업체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신기하더군요. 주중에는 헬스클럽에서 일하고 주말마다 후원을 받으며 러닝 모임을 기획했어요. 그러다보니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 뒀어요. 그냥 좋아하는 달리기만 하면서 돈 버는 게 어떨까 생각한 거죠.”임소영씨(좌), 임소영씨가 각종 대회에서 획득한 메달들- 인스타그램은 사진 위주의 소셜미디어인데, 팔로워를 늘린 비결이 있다면.“어렸을 때부터 사진 찍는 걸 워낙 좋아했어요. 셀카가 몸에 밸 정도로 무얼 하든 사진을 남기는 걸 좋아해요. 운동 할 때에는 바닥에 스마트폰을 받쳐놓고 찍을 정도니까요. 운동하면서 늘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놨는데, 인스타그램이 사진 중심이다 보니 찍어놓은 사진 콘텐츠가 풍부한 게 장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러닝 모임마다 포토그래퍼 분들이 나오셔서 멋진 사진을 남겨주기도 하세요. 다양한 곳에서 달리는 사진을 보고 팔로워들이 대리만족도 느끼시는 것 같아요. 가끔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데, 풍경 좋은 곳에서 달리는 사진들이 특히 반응이 좋습니다.”- 마라톤을 하러 세계 여행을 하신다구요.“풍경을 보면서 달리는 걸 좋아해서 국내 마라톤 대회에 자주 참가해요. 자유롭게 달리는 것도 좋지만, 정해진 코스를 완주하며 느끼는 희열도 잊을 수 없거든요. 저의 목표 중 하나가 세계 주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보는 거예요. 지금까지 베를린, 밴쿠버, 하와이, 스위스, 오사카 등에 찾아가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벌어놓은 돈을 여기에 많이 쓰기도 했어요. 여행을 하면서도 아쉬움 마음에 꼭 그 지역의 마라톤 대회를 찾아서 참가하고 와요. 검색해보면 주요 도시에는 작은 마라톤 대회도 많습니다. 얼마 전 체코 프라하에 여행 갔다가 마침 10km 마라톤이 있어서 뛰고 왔어요.”베를린 마라톤 참가 당시 / 임소영씨 제공- 일상이 달리는거군요. 뛰는 게 그렇게 좋은지.“달리는 게 즐거워요. 처음에는 다이어트로 러닝을 시작했는데, 음악을 들으며 풍경을 보고 뛰는 게 너무 좋더군요. 달리면서 즐거운 상상을 많이 해요. 목표해 놓은 대회가 끝나면 무엇을 할지, 주말에 누굴 만나서 어떻게 놀지,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며 뛸 때도 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일도 달리는 기록을 단축해 주는 게 아니라, 재밌게 뛰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운동하는 것 말고 다른 취미는 없나요.“미술을 좋아했어요. 대학교를 갈 때 미대를 갈지, 체대를 갈지 끝까지 고민했었거든요. 지금도 시간 나면 그림을 그려요. 찰흙 같은 것으로 만드는 것도 좋아합니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도 좋아하는데, 마라톤 대회 준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식단을 조절해야 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마라톤을 뛰며 ‘끝나면 무엇을 먹을지’생각하며 달리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러닝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여자들끼리 캠핑하면서 러닝 하는 모임도 준비 중이고, 내년에는 마라톤과 여행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여행 업체와 계획하고 있어요. 그리고 달리는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더 알릴 수 있을지도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글·사진 CCBB 오종찬시시비비랩
서울대·연세대 진학한 수능 만점자들, 지금 뭐하고 있을까?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1.19
조회 5315 추천 4 댓글 46
수능 만점자, 지금은 이렇게 살아요11월15일은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1993년에 처음 시작한 수능은 올해로 25년째를 맞았다. 첫해인 1993년에는 수능을 2차례 치러 모두 26번의 수능이 있었다.오랫동안 준비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시험인 만큼 가끔 들리는 수능 만점자의 소식은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질투를 제공한다. 다가오는 수능을 맞아 몇몇 수능 만점자의 근황을 갈무리해보았다.◇1999학년도 ‘최초 만점자’ 오승은1999년 수능 직후 “H.O.T가 뭐죠?”라는 어록으로 이름을 날렸던 오승은씨. 오씨는 1999년 수능 유일한 만점자이자 수능 역사상 첫 만점자였다. 그는 서울 한성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해 서울대 물리학과에 수석입학했다.오승은씨3년 6개월만에 대학을 조기졸업한 오씨는 미국 MIT로 유학을 떠나 생물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하버드 의대 시스템 생물학과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세계 3대 과학저널 중 하나인 ‘네이처’에 성장판 세포가 어떻게 뼈 길이를 결정하는지 연구한 논문을 실었다.박사가 된 오씨는 “공부할 때 남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을 남겼다.  ◇2000학년도 수능 만점자 박혜진박혜진씨. / MBC뉴스 캡처, 김&장 공식 홈페이지박혜진씨는 2000학년도 유일한 수능 만점자다. 서울대 법대 출신 법조인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졸업 후 현재 한 유명 법률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2005학년도 수석 손정구2005년 수능에서는 500점 만점에 2점짜리 문제를 딱 하나 틀린 손정구씨가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삼수를 거쳐 수석을 차지한 손씨는 스스로 ‘대치동 키즈’임을 털어놓있다. 재수 시절까지 사교육의 도움으로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삼수를 하면서 사교육으로 점수를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깨달았다. 이후 모든 학원을 끊고 독학에 돌입해 수능 수석을 달성했다.손정구씨. / 방송통신대학교 한국 유튜브 '공부, 내 인생의 이야기 17 공중보건의 손정구' 캡처.손씨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로스쿨 다니는 치과의사’다. 공부가 취미인 그는 공중보건의 시절 방송통신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서울 서초동에서 치과의사를 하고 있다. 치과를 운영하면서도 2013년에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한 그의 학구열은 끝이 없다.     ◇2009학년도 오랜만의 만점자 박창희서울 환일고등학교를 나온 박창희씨는 오랜만에 나온 만점자였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수능 만점자는 나오지 않았고, ‘유일한 등급제 수능’인 2008년 수능은 성적표에 점수가 안 나와 만점자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박창희씨. / 환일고등학교, 환일고등학교 공식 페이스북 제공.박씨가 만점 받은 2009학년도 수능은 손에 꼽히는 불수능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박창희 군은 극한의 어려움을 자랑했던 수리(가) 형을 40분만에 풀고 친구들에게 "쉽게 푸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대 의예과에 진학한 박씨는 2015년 초 모교를 방문해 내과 계열을 전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11학년도 언·수·외 만점자 최지훈2011학년도 수능에는 2010년학도와 더불어 만점자가 없었다. 서울외국어고등학교를 나온 최지훈씨는 2011학년도 수능에서 주요과목 언어·수학·외국어(영어)에서 만점(300점)을 받았다. 그는 대학교 1학년인 2011년 KBS2 프로그램 ‘1대100’에 출연하기도 했다. 최지훈씨 제공.재수생활을 한 최씨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도 정시 지원했으나 논술시험에서 낙방했다. 2018년 제53회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회계법인 삼정KPMG에 입사했다. 최씨는 회사를 다니며 회계·감사 분야 실무경험과 지식을 충실히 쌓은 뒤 추가적으로 IT분야를 공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2학년도 만점자 김승덕 김승덕씨. / KBS2 '1대100', '1박2일' 캡처.김승덕씨는 2012학년도 수능 만점자 총 30명 중 한 명이다. 훈훈한 외모로 주목받으며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다국적 기업 CEO’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졸업 전 창업에 도전하기 위해 창업대회를 기획·운영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  ◇2014학년도 만점자 하형철서울 중동고등학교 출신 하형철씨는 2014학년도 수능 만점자다. 애초에 모의고사에서 만점을 받은 전력이 없었다는 하형철씨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수능 만점 채점 결과를 받았다. 수능 직후 인터뷰에서 하씨는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에서 전세계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을 돕는 것이 꿈이라 밝혔다.하형철씨. / 모티뷰 - Motiview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로 진학한 하씨는 2017년 5급 행정고시를 합격했다.    ◇2015학년도 만점자 이동헌2015학년도 수능 만점자는 이동헌씨를 비롯해 총 29명이었다. 그중 어려운 과목들을 선택했던 이씨는 ‘사실상 전국 수석’이라는 평을 받는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무엇을 위해 대학에 가는 건지 알려주지 않는 우리나라 교육에 분노했다.” 이씨는 수능 만점자임에도 한국 교육을 비판하는 SNS 글이나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동헌씨. / SBS 스페셜 캡처.그는 서울·부산에서 청소년 포럼·토론 행사를 개최해 학생들과 의견을 나눴다. 2017년 4월에는 ‘SBS 스패셜, 대2병 학교를 묻다’에 출연해 현행 입시제도의 대안을 고민하기도 했다. ◇2017학년도만점자 김재경, 이영래2017년도 수능은 당시 최근 6년 간 가장 뜨거운 불수능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한편, 17년도 수능 만점자들은 “연예인이 공부에 힘이 됐다”고 밝혀 시선을 모았다. 용인한국외대부고 김재경(20)씨와 울산 학성고 이영래(20) 씨가 그들이다. 김재경, 이영래씨. / tvN '문제적 남자' 캡처.두 만점자는 2017년 1월 케이블채널 tvN 예능프로그램 ‘문제적 남자’에 나란히 출연했다. 프로그램에서 김씨는 “빅뱅의 지드래곤을 가장 좋아한다”며 팬심을 드러냈다. 한편, 아이오아이 전소미를 좋아한다고 밝힌 이씨는 전소미와 영상통화를 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씨와 이씨 모두 수능 만점의 비결을 사교육이 아닌 ‘학교 생활 충실’로 꼽았다. ◇2018학년도 만점자 민준홍 강현규곧 입학할 19학번에게 캠퍼스 ‘새내기’자리를 내줘야 할 18학번 수능 만점자들도 있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출신 민준홍씨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훈훈한 외모로 ‘준홍 프린스’로 불린다.민준홍, 강현규씨. / EBSi 고교강의 유튜브 캡처.한편, 또 다른 만점자인 강현규씨는 자신의 꿈을 “이국종교수처럼 되는 것”이라 밝혔다. 대구 운암고를 나온 강씨는 현재 서울대학교 의예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글 CCBB 정경훈 인턴시시비비랩
전세계를 감동시킨 사진 1장, 이 허벅지의 주인공은 누구?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1.14
조회 1522 추천 10 댓글 6
요즘 ‘노력’이란 단어를 부정적으로 보는 젊은이들이 많다. 아무리 열심히해도 좋은 결과를 만들기 힘든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노오오오력’해도 타고 난 금수저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노력, 노력 또 노력하는 노력의 끝판왕들이 있다. 필리핀 세부에 사는 다니엘 카브레라(Daniel Cabrera)는 한밤 중 공부를 하기 위해 맥도날드가 있는 거리로 갔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빛에 의지해 공부하는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며 ‘맥도날드 소년’이라고 불렸다. 다니엘은 ‘경찰이나 의사’의 꿈을 갖고 매일 나무상자에 의지해 공부했다. 소년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하나밖에 없는 연필을 잃어버리는 것. 연필을 잃지 않기 위해 항상 묵주에 묶어 놓았다.다니엘 카브레라가 밤중에도 맥도날드 매장 불빛에 의지해 공부하고 있다. / Joyce Gilos Torrefranca 페이스북 캡처.그의 소식이 알려지자 각계에서 후원의 손길이 잇따랐다. 맥도날드는 다니엘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 지급하기로 했다. 필리핀 정부도 학용품비로 125만원을 전달했다. 아버지가 없는 다니엘은 하루 80페소를 버는 어머니의 수입(한화 약 2000원)으로 산다. 다니엘은 지금 경찰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사이클 선수 파블 볼랸스키(Pawel Poljanski)는 2017년 뚜르드프랑스 직후 인스타그램에 올린 허벅지 사진으로 유명해졌다.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뚜르드프랑스를 마치고 핏줄이 가득 선 그의 두 다리에 전세계가 감동했다. 그의 뚜르드프랑스 최정성적은 75위.그러나 사람들은 “노력만큼은 우승”이라고 찬사를 던졌다. 그의 허벅지 사진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만 1만30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사진 파블 볼랸스키(Pawel Poljanski) 인스타그램 캡처.사이클 선수의 허벅지는 과거부터 노력의 상징이었다. 2013년 제100회 투르 드 프랑스 종합 우승을 거머쥐고, 2017년 투르드프랑스에서도 선두에서 달린 크리스토퍼 프룸(Christopher Froome) 역시 2014년 경기 후 달라진 자신의 허벅지 모양을 SNS에 공개한 바 있다. ‘치마와 샌들’을 착용하고 50km 산악 마라톤 대회를 우승한 여성도 ‘인간 승리’의 메세지를 전했다. 2017년 멕시코에서 열린 ‘울트라 트레일 세로 로호(Ultra Trail Cerro Rojo)에 참가한 마리아 로나 라미레스(María Lorena Ramírez·23)가 그 주인공이다. 전문 마라톤 선수가 아닌 일반 참가자가 12개국, 500명의 선수가 출전한 대회에서 7시간3분의 기록으로 우승을 거머줬다.   사진 Indigenous Life Movement 페이스북 캡처.구불구불한 산길과 개울을 지나는 울트라 트레일 세로 로호의 50km 코스는 험준하다. 그러나 인근 토착 부족 타라우마라 출신인 라미레스는 부족 특유의 달리기 방법으로 우승할 수 있었다. 그가 사용한 장비는 ‘물 한 통’이 전부다. 마을과 마을 사이 간격이 아주 먼 타라우마라 부족은 전통적으로 달리기를 중시하며, 하나의 예술로 생각한다. 먼 거리를 달리기 위해 아이들에게 페이스를 조절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라마레스 또한 평소 염소와 방목하는 일을 하면서 매일 10~15km를 뛰었다. 불굴의 노력과 의지로 타인과 공동체의 삶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전체 인구의 60%가 절대빈곤층인 인도 비하르주의 가난한 시골마을 가흘로우르의 촌로 다쉬라트 만지히(Dashrath Manjhi)는  ‘불굴의 의지’의 상징이다. 그는 인도에서 가장 천하다고 여기는 수드라 계급이다. 그는 ‘정(丁)’ 하나 들고 바위산을 뚫었다. 그의 마을은 드넓은 힌두스탄 평원에서 드문 분지였다. 마을 주민들은 가까운 읍내를 가기 위해 88km를 걸어야 했다. 그는 1960년부터 1982년까지 20년이 넘는 작업 끝에 결국 산을 뚫고 마을과 바깥 세상을 연결했다. 사진 플리커.산을 부순 뒤, “마을을 위해 다리를놓겠다”던 그는 2003년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4년 뒤인 2007년 인도 정부는 만지가 만든 산길에 도로를 완공했다. 그가 돌산을 깨기 시작하고 52년 만의 일이었다.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 가운데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발로 그것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엄홍길 대장, 박지성 선수, 김연아 선수,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 사진 조선 DB.뼈가 뒤틀리고 단단한 굳은살이 생긴 발레리나 강수진이나 박지성, 정현, 김연아 선수의 발은 ‘세계 정상’을 만든 노력을 나타내는 유명한 사례다.  사진 정현 인스타그램 캡처.노력은 손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2017년 5월 롯데월드 타워 등반에 성공한 클라이밍 선수 김자인의 손이 화제를 끌어모았다.  사진 김자인 인스타그램 캡처.2016 리우 올림픽 조정 남자 포어에서 금메달을 받은 영국 선수 알렉스 그레고리(Alex Gregory)가 경기 직후 SNS에 올린 그의 손은 ‘노력의 상징’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사진 알렉스 그레고리(Alex Gregory) 인스타그램 캡처.세상엔 성공을 향해 올라가기 위한 보이지 않는 사다리가 있다. 예전보다 사다리가 줄어들었다. 먼저 올라간 누군가가 그 사다리를 차버렸다고 한다. 몇개 남지 않았다고 해도 사다리를 손으로 잡고 발로 밟으면서 성공을 향해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글 CCBB 정경훈 인턴시시비비랩
갤러리 내부 검색
전체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