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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성인용품점 가는 ‘51세기에서 온 엄마’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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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감수성강사 손경이 이해하기 쉬운 성교육 강의로 대중적 인기 시행착오 겪는 초보강사에서 인기강사로엄마와 아들이 함께 성인용품점에 들르고, 스킨십과 자위에 대해 말한다. 엄마는 아들이 첫 몽정을 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하며 '존중 파티'를 열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51세기에서 온 엄마와 아들’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현 사회 통념과는 다르게 파격적이라는 뜻이다. 관계교육연구소 손경이(49) 소장. 51세기에서 온 엄마이자 17년 베테랑 성교육전문가다. 부모·학생·교사·직장인 등 30만명이 그의 강의를 들었다. 한해 350여건의 폭력예방강의를 한다. 법무부 의정부지청 고양시범죄예방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한다. 각종 폭력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를 상담한다. 상고 졸업 후 한화그룹에서 8년간 일하다 결혼 후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됐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폭력적인 남편을 만난 그는 아들만큼은 좋은 남자로 키우고 싶었다. 그는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이기도 하다. 주변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겨낼 수 있었다. 그도 상처 입은 이들을 돕는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왔다. 관계교육연구소 손경이 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통합폭력 예방 위촉 강사. 서울사회복지대학원대학 사회복지학과 석사 졸업-광운대학교 범죄학과 박사과정◇성교육의 시작은 관계 맺기와 자기결정권 그의 명함에는 ‘젠더감수성강사’라고 적혀있다. 그가 직접 만든 단어다. 젠더란 생물학적 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젠더감수성이란 서로 다른 성별의 입장이나 사상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보통 통합폭력예방강사라고 부릅니다. 통합폭력은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성희롱을 가리켜요. 사람들에게 성교육이 익숙하기 때문에 과거에 성교육강사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통합폭력의 원인이 젠더감수성 격차로 인한 문제라서 요즘엔 이렇게 씁니다." 손 소장만의 강의 콘텐츠는 '성(性) 구구단'이다. 9과목 9단계를 뜻한다. 1~4단은 통합폭력 예방법을, 5단은 성평등 교육, 6~9단은 통합폭력 관련 특강이다. “예를 들어 1단 가정폭력 예방법과 9단 연애특강이 짝이고 2단 성희롱과 8단 조직문화가 짝입니다. 한 강연에서 1단과 9단을 섞어 들을 수도 있어요.”급여를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지만 꽤 번다. 한번에 이룬 성과가 아니다. “2001년 무료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6개월 정도 수입이 없다가 이후 시간당 2만~3만원씩 받았어요. 몇년 지나 5만원, 8만원 10만원, 15만원 이런식으로 꾸준히 올랐습니다. 수입은 불규칙적이에요.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는 아예 강의가 없는 날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구청 등과 계약해 활동하는 순회강사는 시간당 3만~5만원을 받는다. 사건 조사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직장에서 성희롱 사건이 일어났을 때 진상조사를 위해 외부위원단을 꾸린다. 변호사·노무사 등 다른 위원과 협업해 2차 가해를 막고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한다.강의하는 모습. /손경이 소장 제공성교육은 육아에서 ‘최고 난이도’로 꼽힌다. 학교에서 본 낙태 비디오가 성교육의 전부인 부모들은 적절한 성교육을 몰라 방황한다. 손 소장은 성교육에 미숙한 부모들을 위해 두권의 책을 냈다.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과 ‘움츠러들지 않고 용기 있게 딸 성교육 하는 법’이다. 아들 손상민씨를 키우면서, 그리고 강의하며 얻은 노하우를 알려준다. "뱃속 아이에게 '건강하게 태어나라'하고 말하는 것도 성교육이에요. 아들이라서 더 건강해야 하고 딸이라서 나오지 말라 하진 않죠.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자기가 의견을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한다는 생각에 '이건 하지 마라', '이건 해라'하며 결정권을 박탈하면 안됩니다."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들이 이것저것 질문할 때는 부모가 아는 선에서 답해준다. 중요한 건 아이가 질문했을 때 부모 입장에서 답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는 질문하고, 부모가 답해주는 것도 ‘관계 맺기’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니'하고 역질문을 하고, 아이가 모르는 부분만 답해줍니다. 미리 많은 걸 알려주려고 해도 안되요. 내가 모르는 게 있으면 '그건 엄마도 알아볼게', '한번 같이 알아볼까'하면서 배워서 알려주면 좋습니다.” 손경이 소장 제공◇꼴등 대기 강사에서 '다시 부르고 싶은 강사'로 고3이던 1988년 한화 경인에너지 경리로 입사했다. 일을 잘한다고 소문 나 1년 뒤 그룹 핵심부서인 경영기획실 인사팀에 발탁됐다. 신입·경력 채용, 승진 및 직원 고과 관리 등을 맡았다. 한양여대 의상학과에 입학해 학업과 직장생활을 병행했다. 하지만 학교에 가려면 6시 정시 퇴근을 해야 했다. 야근하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나오기 쉽지 않았다. 경인에너지 신설부서인 주유소개발부 영업팀으로 이동했다. 좌천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인생 멘토를 만났다. “당시 부서 차장님이 꼰대 문화를 깨부순 분입니다. 차장님을 보고 조직에서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어요. 제가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늘 배려해주셨어요. 퇴근 시간이 되면 학교에 가라고 성화였죠. 제게 '넌 여직원이 아니고 직원'이라 말했고, 커피 타오라 시킨 적도 없습니다. 회식 때는 후배들에게 술 따르라 하지 않고 자작 했습니다. 수직적인 문화와 꼰대 상사를 보고 ‘과거에는 다 그랬다’고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인품은 시대와 직급을 타지 않습니다. 리더가 마음먹으면 조직문화는 바뀔 수 있어요."손 소장이 결혼할 때는 부서 직원들이 ‘결혼해도 계속 다니게 해달라’며 탄원서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의 반대로 퇴사해야 했다. 한동안 육아에 전념하다 아들이 세살 때쯤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근무했다. 리바이스, 지오다노 매장에서 일했다. 재고를 싹다 팔고 진상 손님 응대를 잘해 우수사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만만치 않은 시집살이로 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존감을 되찾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남편의 반대로 그만두어야 했다. 성교육전문가로 첫발을 디딘 건 아들이 여섯살 무렵이다. 유치원에서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겼다는 말에 ‘직접 배워서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동네 엄마들끼리 공부방을 만들어 서로 자녀들을 가르쳐줬습니다. 제가 가정교사자격증이 있었어요.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구청에서 시민강좌를 들었습니다. 부모교육·대화법 논술 등을 배웠어요." 내친 김에 한국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 입학해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2002년 구청에서 모집하는 순회 대기 강사로 뽑혔다. 강사 10명을 뽑는데, 그가 10순위인 꼴등이었다. 1~8등 강사가 일정이 안맞으면 대타로 나가는 강사였다. (왼쪽부터) 아들 손상민씨와 손경이 소장. 손 소장은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가서 성교육 강의를 했다. "아들이 성지식이 많다 보니 친구들에게 '변태'라며 놀림을 당했어요.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때 담임교사가 제게 전화를 해 '정말 성교육전문가가 맞으시냐', '와서 강의를 해달라'고 했죠. 대학교 때까지 성교육 강의를 하러 갔어요."“초보강사였을 때 아이들의 질문에 답을 못했어요. '아빠에게 성폭력을 당했어요', '옆집 형이 만졌어요'라며 강의 중에 물어보는데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피해자라 충격을 받았습니다.  '낯선 사람이 만지면 소리를 질러라'하고 가르쳤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은 그런 상황에서 소리칠 수 있냐'고 묻더라구요. 애들 말이 맞았어요. 이후로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답을 주려 하지 않고 함께 토론하고, 역할극을 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까'하고 애들과 서로 의견을 말했어요.”  대기 강사로 시작했던 그는 1년 후 재계약을 할 때는 정식 강사가 됐다. 강사로 일하면서 장성중학교에서 무급 상담교사로 5년간 일했다. 아이들에게 강의법, 상담법을 배웠다. “첫 상담한 친구가 제게 '상담하는 법 9가지'를 알려줬어요. 우선 이름을 부르지 마라. 이름을 부르면 화부터 난대요. 이름 부르고 나서 하는 말이 잔소리나 벌주는 거 밖에 없으니까. 그 친구가 알려준 대로 하니 상담실이 아이들로 북적였습니다. 나중에는 월급 받는 정식 교사로 일했어요. 아이들이 하는 말이 '선생님, 저희 말고 나가서 어른들을 바꿔주세요. 바뀐 어른 보고 배울게요'라고 하더라구요.”한달에 서너번 나갈까 말까 한 강의 수가 40~50회로 늘었다. 강연을 들은 보건교사가 다른 학교에 손 소장을 추천하며 입소문이 났다. 강연 대상도 학생에서 학부모와 교사로, 회사 직원과 임원으로 늘었다. 방송출연모습. tvN 어쩌다 어른,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MBC 판결의 온도 등에 출연했다. /tvN 어쩌다 어른, MBC 판결의 온도 영상 캡처◇외상 후 성장할 수 있는 사회 만들고 싶다그는 스물넷에 낯선 사람에게 성폭력 피해를, 결혼 후에는 가정폭력 피해를 입었다. 성폭력 가해자를 잡지 못해 사건은 미제로 남았고, 가정폭력의 경우 남편이 처벌받는 것으로 끝났지만 트라우마는 가정폭력이 컸다. 그는 10년 전 결혼생활을 마감했다. “스물넷에 일어난 사건의 경우 2차 가해를 안당했어요. 처음에는 경찰서에 신용카드를 뺏겼다고만 신고했어요. 벌벌 떨던 제게 경찰분이 ‘돈이 아니라 몸 걱정하라’는 말부터 했죠.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당시 CCTV도 없었고 몽타주만으로 범인을 찾으러 다녔어요. 경찰 2분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고생했습니다. 저도 주말마다 같이 찾으러 다녔어요. 9개월 후 사건을 마무리지었는데, 그분들이 그렇게 노력하시는 걸 보고 포기할 수 있었어요.오히려 가정폭력을 신고했을 때 2차 가해를 입었죠.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은 차에 태우려고 했어요. ‘아줌마가 드세니까 맞았지’라는 말도 듣고요. 다행히 무료 변론을 해준 변호사분과 제대로 판결해준 판사님 덕분에 잘 해결했지만, 상처는 남았습니다.”광운대학교대학원 범죄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외상 후 성장(PTG)센터’도 준비하고 있다. 피해자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피해자였지만 상처를 극복한 8~9명의 위원이 모였다. 어떻게 상처를 치유했는지 이야기를 공유해 모두가 ‘외상 후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피해자 잘못’이라는 피해자 중심주의 프레임을 깨고 정상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대리 외상’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피해자 가족, 목격자, 경찰 등 제 3자들이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요. 남의 일이 아닌 내 일로 받아들입니다. 공감능력이 높은 분들이 대리 외상을 겪습니다. 심각하면 전문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대리 외상을 겪는 분들도 자신의 아픔을 드러낼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함께 아파하는 분들이 있으면 피해자가 상처를 치유할 가능성도 높아질 겁니다.”글 CCBB 에디터 욘두시시비비랩
“남성용 트렁크 입어보니 신세계…그게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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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속옷 입던 경험이 발판언젠가 트렁크 입은 여자 마네킹 봤으면“대학에서 옷만 공부했는데, 정작 속옷 만들려니 너무 배울 게 많더라고요.” 케인피오니어 조상훈(25) 디자이너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도 이 프로젝트로 저희는 말하고자 했던 바를 모두 말했으니 성공 아니겠어요?” 옆에 있던 조수현(24) 디자이너가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은 케인피오니어를 공동 창업했다.‘편한 속옷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취지로 시작한 케인피오니어는 지난 8월 한 달간 호평을 받으며 크라우드 펀딩을 마무리했다. 크라우드 펀딩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이다. 10월 2차 펀딩을 앞둔 그들을 jobsN이 만났다. 케인피오니어의 공동창업자 조상훈(왼쪽) 디자이너, 조수현 디자이너. / 케인피오니어 제공.◇ 불편한 속옷을 입던 경험에서 시작한 케인피오니어-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상훈) “현재 남성복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조상훈입니다. 케인피오니어의 남성 제품을 디자인 했어요. 케인피오니어가  ‘여성용 드로즈’(W.drawers)로 유명해졌지만 남성 이너웨어도 만듭니다.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경험이 일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수현) “케인피오니어의 여성 속옷을 디자인한 조수현입니다. 대학에선 서양화를 공부했어요. 패션은 졸업 이후 배우기 시작했죠. 저희 둘을 남매로 많이 보시는데 그냥 같은 유학원에서 만난 동기사이에요.”      드로즈는 몸에 딱 붙는 짧은 사각 속옷으로, ‘복서 브리프’(Boxer brief)라고 한다. -케인피오니어란? (수현) “케인피오니어(Kein Pionier)는 독일어로 ‘선구자가 아니다’라는 의미에요. 'Kein'은 독일어 발음대로 읽은 '카인'보다 미국식 발음이 덜 어색하다고 생각해 '케인'으로 표기했어요. 새로운 것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기존 문제의식에 공감해 확대해보고자 만든 기획입니다. 대부분 속옷이 불편한 현실에서 저희 제품의 편안함이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올 수는 있겠죠.”     케인피오니어를 통해 ‘여기 편한 속옷도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티팬티, 삼각팬티, 레이스 달린 속옷을 입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저도 꽉 끼는 바지 입을 때는 여전히 삼각을 입는걸요.”(상훈) “저희 제품을 ‘젠더리스(genderless)’ 속옷이라 불러요. 디자인을 할 때, 남녀의 신체적 차이점은 고려했지만 겉보기로는 여자 팬티도 남자 것과 구분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저희도 옷을 만져봐야 알지 맨눈으로는 구별 못해요.”   (수현) “ ‘편한 여자 속옷’이라는 선택지를 하나 늘리고 싶었어요. 성별을 이유로 굳이 불편한 이너웨어만을 입을 필요는 없잖아요.성인 여성 속옷은 대부분 8살 아이 속옷 사이즈와 같고 레이스나 리본 같은 장식이 있습니다. 허벅지나 엉덩이 부분도 매우 짧아요. 가족밖에 없는 집에서도 속옷만 입고는 다닐 수 없습니다. 위에 뭘 입지 않아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홈웨어(home wear) 속옷’을 만들고자 케인피오니어를 시작했습니다.”       조수현 디자이너가 8살 남아와 성인 여성 속옷 크기를 비교하고 있다. / 닷페이스 '그리고 팬티에 레이스는 왜 달아?' 캡처-어떻게 케인피오니어를 시작했어요? (수현) “어느날 친구가 남성용 복서 브리프를 사입고 나서 엄청 편하다는 말을 했어요. 저도 한 번 입어보니까 정말 너무 편하더라고요. 신세계에 온 기분? 그전까진 저도 그렇게 작은 여자 팬티가 불편한지도 모르고 살았죠.그런데 막상 이걸 입고 밖에 나갈 수가 없잖아요. 남성 속옷은 앞부분이 돌출형이니까. 치마나 츄리닝안에 입기도 민망하고. 그래서 내친김에 여성용 드로즈를 만들어보고자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상훈) “유학원 수업이 끝나고 같이 밥을 먹는데 수현이가 함께 하자고 했어요. 마침 꽉끼는 속옷이 질염의 원인이라는 뉴스를 보고 여성도 편한 속옷이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바로 제안을 받아들였죠. 이게 올해 1월이었는데, 마침 유학 시험 합격 발표가 딱 나와서 프로젝트를 시작할 여유가 있었습니다.”    케인피오니어의 남성용 드로즈(좌)와 여성용 드로즈(우). / 케인피오니어 제공.-다른 브랜드에도 비슷한 제품이 있지 않나요? (수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여성 드로즈는 온라인 홈쇼핑에서 ‘여성 팬티’를 검색하고 한참 스크롤을 내려야 한 두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마저도 엉덩이 부분은 좀 내려오는데 앞은 타이트한 삼각 모양인 경우가 많아요. 여성용 트렁크는 여성용이 없다고 봐요.”     (상훈) “남자 팬티의 경우 앞의 소변구를 없앴어요. 사실 저도 그렇고  50명이 넘는 주변 남자 지인에게 물어봤는데, 소변구를 사용해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덕분에 저희 남녀 제품의 외양이 같아질 수 있었죠. 입기에 불편하다는 의견은 전혀 못들었어요.”-그냥 여자들도 큰 팬티나 남자 것을 입으면 되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수현) “여성들이 여유있는 착용감을 원해 큰 팬티를 입으면 윤곽선이 비쳐 민망합니다. 허벅지가 말려 올라가서 동작도 불편해져요. 저희도 드로즈 첫 번째 샘플이 허벅지가 말려올라가 4차 샘플링까지 한 끝에 말림 없는 속옷을 완성했습니다.  또 남자 팬티를 입으면 생리대를 부착할 수 없잖아요. 저희는 여성 드로즈 안에 날개를 부착할 수 있는 부분을 달아 놓았어요.”     (상훈) “여성과 남성은 신체적 차이가 있어요. 그걸 고려하지 않고 만든 속옷은 당연히 불편해요. 여자에겐 여자 속옷이, 남자에겐 남자 속옷이 필요한 이유입니다.”조수현 디자이너가 작업을 하고 있다. / 케인피오니어 제공.◇케인피오니어 별명은 ‘적자’피오니어 -제품 출시까지 많이 바빴다고 들었습니다.(수현) “1월부터 시작해 첫 크라우드 펀딩이 끝난 9월 초까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끝무렵엔 거의 2시간밖에 못잤죠.”(상훈) “제품 구상부터 기존 제품 리서치, 원단 선정, 디자인·샘플링·배송 등 A부터 Z까지 저희 둘이 다 했어요. 이너웨어를 판매하는 시중 매장은 고급 브랜드부터 동대문 시장까지 싹 다 가봤습니다. 저나 수현이나 팬티를 몇 벌 입어봤는지 셀 수도 없어요.”-1차 크라우드 펀딩도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요.   (수현) “네. 정말 많은 분들이 관심을 주셨습니다. 펀딩 목표 금액이 당초  500만원이었는데, 788만 4000원이 모였어요. 제품을 구매하신 분만 약 200명이고, 1000장 이상 팔렸습니다. ‘????????에게’라는 이름으로 주문해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는 남자분도 많았어요.”   -그런데도 적자가 났다고 했는데.(상훈) “정말, 1차 크라우드 펀딩으로 번 돈은 하나도 없습니다(웃음). 약 9개월 동안 프로젝트하면서 쓴 비용을 합하면 2700만원이 넘어요. 펀딩 직전에는 빚만 700만원이었습니다. 788만원 후원액으로 빚을 갚고 적자일 수 밖에 없었죠.”  (수현) “애초에 이윤을 추구하려고 한 프로젝트가 아니지만, 사업 경험 없이 욕심만으로 덤빈 것 같아요. 재료비 등 고민 없이 ‘좋은 제품 만들어보자’는 생각만으로 시작했으니까요. 2차 크라우드 펀딩 때에는 대량으로 만들 수 있게 제품 종류도 줄이려고요. 적자를 피하고 같은 질의 옷을 더 싸게 공급하려고 합니다.”  조상훈 디자이너가 작업을 하고 있다. / 케인피오니어 제공.◇유명 브랜드 쇼윈도에서 트렁크 입은 여자 마네킹 보고파  -첫 사업을 치른 소감은 어떤가요.  (수현) “이루말할 수 없이 뿌듯합니다. 특히, 한 매체와 진행했던 인터뷰 영상이나 저희 인스타그램에 달리는 댓글을 보고 기분이 좋았어요. 많은 분들이 응원의 메세지 읽으면, 우리의 작은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훈) "네이버에 여성 드로즈 연관 검색어로 케인피오니어가 떴을 때,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수현) “‘케인피오니어를 보고 나서야 얼마나 여자 속옷이 불편한지 알았다’는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나부터 바뀌어보자’ 시작한 케인피오니어가 많은 사람의 시각을 바꾼 것만으로도 성공입니다. 케인피오니오의 모토는 이대로 쭉 나갈 거에요. 언젠가는 유명 속옷 매장 쇼윈도에서 트렁크를 입은 여자 마네킹도 봤으면 좋겠습니다.”  (상훈) “저희 둘 다 내년부터 영국 패션 스쿨(London College of Fashion)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러나 케인피오니어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다면 다시 2019 컬렉션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도, 사업을 확대할 계획도 있어요. 케인피오니어가 더 커진다면, 속옷 하의 말고도 와이어리스(wireless) 브라나 가운 등 편한 홈웨어를 하나 둘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글 CCBB 정경훈 인턴시시비비랩
연봉 4000만원인데…일하겠다는 사람 없어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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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펴낸 5년 차 버스기사 허혁씨가구점 사장→귀농 결심→운전대 잡기까지 “구호 아닌 정서로 노동 환경 얘기하고파" ‘버스가 막 출발하는데 당신이 뛰어와 타려는 경우 버스가 그냥 가버린다 해도 서운해 말 것.’  5년째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몰고 있는 허혁(53)씨가 쓴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버스 기사가 책을 펴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시내버스 기사라는 직업의 노동 강도는 다른 직업에 비해 센 편이다. 대소변과 허기짐을 참아가며 18시간 내리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고된 노동만큼 정신적인 피로감도 높다. 버스에 오르내리는 승객들의 천태만상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105편의 원고는 운전대를 잡으며 2년 동안 틈틈이 쓴 것들이다. 일하기도 힘든데 책을 쓴 이유는 “한 번쯤은 기사 입장에서 말해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 “버스 기사가 노동 문제 얘기하면 읽히겠어요⋯”급브레이크를 밟는 버스 기사를 향해 ‘왜 저렇게 운전을 험하게 하느냐’고 속으로 투덜대거나, 급한 마음에 차도까지 내려와 ‘제발 좀 태워주세요’라고 외쳐도 한사코 문을 열어주지 않는 버스 기사를 보고 야속한 생각이 든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알고 보면 난폭운전은 빠듯한 식사 시간을 만들기 위해였고 정류장을 벗어난 곳에서 문을 열지 않는 이유는 귀찮아서가 아닌 승객의 안전 때문이었다. 허 씨가 쓴 책에 나온 얘기들이다. “버스를 운전하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문제가 어느 한 쪽만 잘못해서 벌어진 것이 아닌 경우도 많잖아요. 버스 기사들이 왜 그렇게 다들 무뚝뚝하고 화난 사람처럼 운전대를 잡는지 얘기해주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버스기사에 대해 갖는 편견도 사실 열악한 노동환경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딱딱하지 않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버스 기사가 책을 써 낸 것은 1990년대 중반 한 분이 노동 문제에 대해 책 말고는 없어요. 요즘 사회 분위기로 봐서 심각한 노동 문제로 글을 쓰면 사람들이 읽을 것 같지 않았어요.”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저자 허혁씨.책에는 ‘짜증으로 가는 길에는 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선글라스는 표정관리, 마스크는 욕 나올 때 좋다’는 등 버스 운전사의 애환을 솔직하게 표현한 구절이 많다. 투박해 보이지만 표현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다. 직장 동료들에게 들고 가서 감수도 받았다. 허 씨는 “버스 기사가 쓰는 ‘버스 이야기’다. 내가 까칠하게 안 쓰면 누가 쓰겠냐”고 말했다. 독자들 반응은 좋았다. 출간 석 달 만에 1만 부가 팔렸다. 책이 안 팔리는 세태를 감안하면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책을 쓸 때 쉽고 솔직하게 쓰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버스 기사가 낸 책을 누가 사서 읽겠어요. 동료들에게 초고를 주고 읽어보라고 했어요. ‘형, 이거 표현이 너무 약한데’라고 말해준 동생도 있어요. 제가 원래 남의 눈치를 잘 안 봐요. 예전에 인터넷 카페에 때때로 글을 올리던 적이 있었어요. 체면 따지지 않고 쓰는 글을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글을 올렸는데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까 신이 나서 계속 쓰는 것도 있었고요. 원고를 다 쓰고 서점에 가서 출판사 이메일 주소를 일일이 수첩에 옮겨 적었어요. 원고 보낸 지 두 시간도 안돼 연락을 준 수오서재와 출판 계약을 했어요. 내 글을 제대로 알아봐 준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죠. 책이 이렇게 훌륭하게 출간될지 상상도 못했어요.”◇가구점 →귀농 결심→버스 운전사 되기까지 ‘산다는 것은 리듬을 타는 일이다.’ 책에 쓴 것처럼 그의 인생에도 적잖은 굴곡이 져 있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제약회사를 다니다 가구점을 차렸다. 서른셋에 부모님 빚 3억원을 떠안고 아등바등 살았다. 18년간 일해서 빚을 청산하고 나니 돈에 대한 회의감이 몰아쳤다. 손님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견디기 힘든 수준까지 올라왔다. 장사를 하면서 계속 다른 곳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도 싫었다. 급기야 분노조절장애, 우울증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가구점을 접고 귀농을 하겠다 마음먹었다. 아내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아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시내버스 기사다. 관광버스 2년 몰아 경력을 쌓고 버스 기사가 됐다. “가구점 운영할 때 장사가 잘 됐어요. 그런데 돈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벌이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버스 운전이 쉬운 일이 절대 아니지만 장사할 때 손님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에서는 자유롭죠. 성격이 예민한데 먹고살려고 기를 쓰다 보니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칠 대로 지쳐갔어요. 좀 적게 벌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길을 택했고 후회는 없습니다.”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저자 허혁씨.책에는 유년시절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와 지적 장애를 갖고 사는 딸아이 등 가족사와 서른셋에 3억원의빚을 떠 안은 사연, 가구점을 운영하다 귀농을 결심하고 가출을 감행한 일화 등 개인사를 가감 없이 적었다. “책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을 아내가 반대했어요. 하지만 안 쓸 수가 없더라고요. 내 삶을 다양한 관계 속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었어요. 아버지를 객관화해서 상처를 치유하고 싶기도 했고요. 딸아이는 저 산소증으로 태어나 지적 장애가 있지만 직감이 좋아요. ‘인생 별거 없다’는 등 선문답 같은 화두를 저에게 던져줘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사실 딸아이거든요. 버스 기사를 하는 부족한 아빠지만 삶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있는 아빠라는 것을 딸아이에게 보여줬다는 것 하나만으로 뿌듯해요.” ◇“식사 시간도 없는 노동 환경…버스도 변하는 세상에 맞춰 가야” 버스 기사를 직업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그는 하루 18시간 운행을 “기사들에 대한 사회적 학대이며 봉건제적 사회 야만”이라고 표현했다. 기사들은 새벽 대여섯시부터 운전석에 앉아 내리 달린다. 저녁 여덟 시쯤 되면 감각도 둔해지고 온몸이 결리는 느낌을 수시로 받는다. 식사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배차 시간을 감안해 요령껏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10월 전주시 시내버스 노사와 이용자들이 참여하는 ‘시민의버스위원회’에 강연자 자격으로 참석해서도 이런 얘기를 강조했다. “어떤 직업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람들에게 ‘고맙다’, ‘수고하신다’는 인사를 듣겠어요. 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는 일이긴하지만 사람들의 발이 되어주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는 직업이라 참 좋아요. 그런데 사실 걱정이 많이 됩니다. 지금 한시적으로 주52시간 근무제 때문에 1일 2교대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다시 예전처럼 격일제 18시간으로 바뀌면 어쩌나 걱정이죠. 정부가 다시 탄력근로제 얘기를 들고 나오는데, 탄력근로제는 격일제로 운행할 때의 근무시간을 고수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임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2교대를 반대하는 직원도 많아요. 하지만 2교대를 하면 하루 8시간씩 일하면서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겨요. 밥 먹을 시간을 만드느라 무리하게 운행할 필요도 없고요. 버스 회사들의 배차 간격도 승객 이동량에 맞춰 유연하게 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렇게 되면 기사들이 승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어요. 2교대를 하고 나서 달라진 점은 손님을 봐도 이제 짜증이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버스 기사는 진입 장벽이 높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일정 정도 경력은 필수다. 버스 회사에 입사하려면 1종 대형면허를 따고 레미콘, 덤프트럭 등 대형차를 몰아본 경험을 2년 정도는 쌓아야 한다. 허 씨는 버스 기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성숙한 버스 문화를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보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2교대 실시로 버스 대란이 일어날 것이란 기사들이 줄줄이 나왔어요. 이런 기사를 보면 한숨부터 나와요. 우리 사회에는 운전기사라는 직업을 인생 막장에 몰려서 할 것 없는 사람들이나 한다고 보는 편견이 팽배합니다. 지방 버스 기사 연봉이 4000만원 수준입니다. 수시로 사람을 뽑지만 인력이 늘 부족해요. 악조건 속에서 일하는 만큼 처우를 개선해 준다면 젊은층도 오려고 할 겁니다.”이번 책이 잘 팔리고 있으니 다음에 쓸 책도 이미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아직요. 책 나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이 얘기 말고는 쓰고 싶은 것이 없어요. 책을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 쓰고 싶지는 않아요. 내가 가끔 피곤하다고 하면 우리 딸이 나보고 그래요. '아빠, 애쓰지 말라'고. 버스 기사를 하는 한 효율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승객을 보고 운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버스는 시민들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잖아요. 근로 환경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들이 바라는 안전하고 친절한 버스가 나올 수 있거든요. 바람이 있다면 제 책을 국토교통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이 읽어준다면 좋겠습니다.” 글 CCBB 에디터 절미시시비비랩
편의점 주인 충격에 빠뜨린 ‘노동청 신고’ 알바생의 카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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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생 때문에 우는 자영업자들점주 보호하는 법은 거의 없어 편의점주 문씨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다.“잠수는 기본이예요.”서울 용산구 한 편의점주 문 모(32)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2년 6개월간 연락도 없이 ‘잠수 타는’ 알바생을 수없이 겪었다. 그만둔다는 말이라도 미리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동안 만난 알바생은 42명. 거의 한달에 1~2명꼴이다. 문씨는 “알바가 무조건 ‘을’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수술비 필요하대서 가불해줬더니···“작년에 5일 일한 평일 야간 알바생이 가불을 요청한 적이 있었어요. 어머님 수술비에 보탤 돈이 급히 필요하다면서요. 급여일 2주전이었지만 사정이 딱해 그날 바로 5일간 급여(37만6500원)를 줬습니다. 그런데 3일 후 연락도 없이 안나왔어요. 양주 2병까지 몰래 가져갔습니다. 믿었는데...”상처가 아물기도 전 새로 들어온 알바생조차 상실감을 줬다. “알바 면접을 와선 저희 편의점 본사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하더라구요. 다음엔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말 주간 타임으로 채용했습니다. 편의점 경험이 있으면 본사 공채 지원시 서류 전형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3주 일하고 다른 곳에 취업을 했다면서 갑자기 그만둔다더군요. 아쉽지만, 힘들게 취업했을테니 이해했어요. 씁쓸한 건 주말 알바이니 1주만 더 해달라 부탁했지만 단칼에 잘라 거절하던 모습이예요.” 무엇보다 충격은 노동청에 신고당한 일이다. “2016년에 1년 근무 계약 체결하고 한 달 일한 사람이었는데 독일 유학 간다고 앞으로 일주일만 나온단 겁니다. ‘유학을 무슨 일주일전에 결정하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알았다고 했습니다. 근로계약서에 ‘3개월 미만 근무자는 수습급여(일급의 90%)로 지급한다’고 했었어요. 표준 근로계약서이며 계약 당시 이 내용을 설명했고 알바생도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그만둔 이후, 100% 급여를 안줬다고 노동청에 저를 ‘임금체불’로 신고했습니다. 급여를 제때 지급한 기록과 근로계약서를 제출했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처벌은 안 받았습니다.나중에 “나 같은 ‘을’ 만난 걸 감사하게 생각하세요”라는 카톡이 왔습니다. 독일 유학 간다더니, 프로필엔 알바 그만둔 때부터 며칠 동안 일본 여행갔던 기록이 올라와 있었죠. 기가 막혔습니다.”'독일 간다던' 알바생이 문씨에게 보낸 카톡 메세지말없이 또는 갑자기 그만두는 경우 뿐만이 아니다. 근무태만을 관리하기도 쉽지 않다. 사람이 뜸한 야간엔 더 심하다. 카운터에서 기타를 치고, 문을 잠그고 아예 엎드려 자는 사람, 여자친구를 데려와 낯뜨거운 행동을 한 사람도 있었다. 단골 손님들이 귀띔해주거나, CCTV로 알아도 해고하긴 어렵다.  알바생 1명 구하는데 보통 3주가 걸린다. 사람 구하기 전엔 점주가 자리를 지켜야 한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계획을 세우기 힘들다고 한다. 일과 사생활을 나누기 어렵고 쉴 때 충분히 쉴 수가 없다.  “영화 보다가 다음 근무자가 안온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성남에서 서울로 급히 갔죠. 자다가 새벽 4시에 달려나온 적도 있어요. 잘때도 항상 핸드폰을 켜둬야 합니다. 야간 근무자가 갑자기 그만뒀을 땐 한 달간 금요일 오전9시에 출근해 토요일 오전9시에 퇴근했습니다.” ◇업주 보호하는 법 필요해··· 서로 신뢰 지켰으면  사정이 이런데도 업주를 보호하는 법은 거의 없다. 문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혹시나 당할지 모를 부당한 일들에 대비해 근로계약서, 알바생들과 주고받은 메세지 등 증거를 챙겨두는 것이다. 최근 최저임금이 올라 문씨는 스스로 가게를 보는 시간을 더 늘렸다. 주3일은 낮 12시부터 밤 11시까지 종일 가게를 지킨다. 근무일이 아닌 날도 하루에 한번씩 꼭 들른다. “인건비 부담이 더 커졌어요. 그래도 돈은 법대로 줘야죠. 급여에 관해 편법을 쓰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 자영업자 사정도 배려해줬음 좋겠어요. 알바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건 맞지만, 자영업자도 근로자입니다.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루 전이나 당일에 그만두는 사람의 급여를 30% 정도 깎는 식으로요. 사전통보 없이 그만두는 건 급여 포기 의사로 간주하는 거죠. 알바 구인구직 사이트를 보면 알바생들이 사업장 평가하는 건 있는데, 업주들이 알바생을 평가하는 건 없어요. 임금체불사업주 명단을 공개하듯, 알바생들에게 당한 업주들도 피해사례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문씨가 편의점에서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문씨는 함께 일하는 알바생들에게 잘 대해주려 노력했다고 한다. 생일이면 케이크를 선물하고, 1년 이상 성실하게 일한 알바생들에겐 특별 상여금도 줬다. 그가 알바생에게 가장 바라는 건 ‘책임감’이다. “성실하게 일했던 알바생 덕분에 본사 모니터링 평가에서 만점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참 고마웠어요. 그 알바생이 1년 7개월 일하고 그만두기 전에 상여금을 줬습니다. 진심으로 대했는데 정반대의 상황을 만나면 정말 힘이 빠져요. 사장과 알바생, 서로 지킬 건 지키고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글 CCBB 김민정 인턴시시비비랩
한국에 딱 86명만 있는 초봉 4000만원대 정년없는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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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100명도 채 없는, 초봉 4000만원대 직업국내에 종사자가 딱 86명만 존재하는 직업군이 있다. 바로 말편자를 만드는 전문 기술직, ‘장제사(裝蹄師)’다. 세간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봉을 잘 받는 직업군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과거 김미숙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이 분석한 ‘면허형 국가자격 특성과 보수교육 실태’ 자료에선, 148개 국가자격증 중 월 400만원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은 10개 정도뿐이라 했다. 장제사 자격증도 그중 하나였다. 자료에 나온 장제사 평균 월급은 425만5000원이었다. 신입 장제사 연봉은 4000만원 정도며, 업계 최고 수준 실력자들은 연봉이 억대까지 이른다. 물론 20년 이상 경력을 쌓아, 말 걷는 모습이나 바닥 차는 소리만으로도 부상 여부를 파악해내는 경지에 이르러야 그 정도 벌이를 꿈꿀 수 있긴 하다. 그렇다면 장제사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장제사 단체인 ‘한국말발굽기술자협회’ 김동수 회장에게 물었다. -장제사 입문 교육은 어떻게 받을 수 있나? 기본은 도제식이다. 현역 장제사 밑에 들어가 몸으로 부딪히며 일을 배운다. 외국에선 4년제 대학에 장제사 과정을 갖춘 곳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말 두수가 적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편자를 박는 말은 2만8000두 정도다. 경주마는 30~35일에 한 번, 단순 승용마는 45~50일에 한 번 정도 편자를 간다. 종합적으로는 말편자를 가는 건수가 전국 통틀어 1달에 1500회 정도 발생한다.  이처럼 시장이 좁으니 대학에 학과까지 만들어 매년 장제사를 배출하는 건 부담스럽다. 아직은 한국농수산대 말산업학과에서 말 관련 산업 중 일부로 다루는 정도다. 도제 방식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개인마다 편차가 있지만, 도제 기간은 보통 2년 정도다.신상경 장제사(왼쪽)가 장원 장제사의 편자 수정을 지도하고 있다.-그럼 도제 과정이 끝나면 바로 장제사로 활동할 수 있나? 아니다. 자격증을 따로 따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실시하는 말 산업 관련 국가 자격시험이 있다. 그중 장제사 부문에 응시하면 된다. 2018년도는 이미 접수가 끝났다. 시험은 매년 한 번 있으며, 올해가 7회째였다. 도제라는 게 국가 공인 과정은 아니니, 장제사 밑에서 배운 경력이 없더라도 시험에 도전할 수는 있다. 한국마사회에도 자격증 대비반 6개월 과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장제업은 현장 경험과 실전적 전수가 굉장히 중요한 분야다. 설령 장제사 자격증을 따더라도, 실무 경험이 없다면 할 수 있는 게 드물다. 도제 과정은 거의 필수라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외국 대학에 가더라도 정규 과정에 도제 일정은 담겨 있다. 나 역시 영국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데, 현지에서 이론 교육과 도제식 학습을 모두 거쳤다. -장제사는 어떤 학문 교육을 받는가? 편자가 쇠붙이니 야금학(冶金學·제련과 합금 등 금속 다루는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을 알아야 하고, 말 관련 수의학적 지식도 깊이 꿰야 한다. ‘장제기술이론’이라는 총론적 학문 외에도, 말 관리 방법인 ‘마필사양관리’나 말 관련 해부생리학 등도 공부할 필요가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말 관련 법률 조항도 배워야 한다.김동수 한국말발굽기술자협회장이 말발굽에 편자를 대보고 있다.사람으로 치면 장제는 손톱에 네일아트 하는 정도와 비슷해, 말에 고통을 주거나 상처를 입히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말을 수의학적으로 깊이 이해하는 건 필수다. 유명 신발 브랜드 디자이너들은 사람 몸을 면밀히 배우고 연구해, 건강을 해치지 않고 자세를 바르게 잡아주는 명품을 만든다. 편자 끼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1군에서 뛰는 경주마는 한 마리에 1억 정도씩 하며, 아시안게임에 나갈 수 있는 정도면 10억~20억까지 간다. 올림픽 출전마는 몸값이 50억~60억대에 육박한다. 얕은 지식으로 다룰 수 있는 생물이 아니다. 정말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취미나 투잡으로 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전업 아니면 어렵다. -다른 직업군과 비교될만한 장제사의 특징은? 사무실이 없다. 차량에 장제 장비를 모조리 실어 두고 말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게 보통이다. 그러니 자영업 계통이지만 사무실 월세 나갈 일이 없다. 쇠를 두드려야 하니 힘이 많이 필요해, 근력 없는 사람은 도전이 어려울 수도 있다. 김동수 한국말발굽기술자협회장이 편자를 두들기고 있다.근무는 다소 불규칙한 편이다. 우리는 말 주인, 즉 마주와 관계가 중요하다. 마주가 원한다면 휴일에도 일해야 한다. 정해두고 쉬긴 어렵다. 빈도로 치면 일주일에 5~6일 정도 일하는 편이다. 나는 일이 좀 많아 6일 채우는 때가 흔하지만, 주에 5일만 활동하는 장제사도 드물진 않다. -장제 산업의 장래는 어떻게 보는가? 말발굽은 손톱과 같아서, 관리하지 않으면 길어져 걸음걸이가 이상해진다. 더군다나 지나치게 길어진 사람 손발톱과 마찬가지로 깨지기도 쉬워진다. 그러니 말이 존재하는 한, 장제사 직업이 사라질 일은 없다. 정년이 있는 것도 아니니 직업 안정성은 꽤 좋은 편이라 말할 수 있다. 다만 솔직히 요즘엔 업계가 좀 어렵다. 정유라 사건 여파로 대기업들이 말 쪽에 하던 투자를 많이 끊었다. 자연히 우리를 찾는 일도 줄었다. 하지만 그전까진 말 두수가 꾸준히 늘던 상황이었다. 이 위기를 잘 넘기면, 정유라 사건 전까지의 상승 추세가 다시 이어지리라 기대한다. 글 CCBB 에디터 폴리시시비비랩
목소리 하나로 ‘1000만’ 초읽기…그녀의 수입은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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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플라(J.Fla), 구독자 수 1000만명 앞 둬SMTOWN 예상 연 광고 수입 약 167억7000만원빅히트엔터테인먼트, SM·JYP·YG 제치고 1위"The club isn’t the best place to find a lover So the bar is where I go~"헤드폰을 쓴 여성이 나와 귀에 익숙한 팝송을 따라 부른다. 영국 유명 팝가수 에드 시런의 'shape of you'다. 화면 한 번도 바라보지 않고 노래만 부르다 영상이 끝난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누적 조회 수 약 1억8000만회를 기록했다.목소리 하나로 전 세계인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바로 '커버송 여신' 제이플라(J.Fla·본명 김정화·30)다. 제이플라는 유튜브에서 채널 제이플라뮤직을 운영한다. 싱어송라이터로 해외 가수의 노래를 부르면서 인기를 얻었다. 유튜브 통계 사이트 소셜블레이드(Social blade)를 보면 10월 1일 기준 950만여명이 제이플라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있다. 국내 1인 크리에이터 중 구독자 순위 1위이자, 최초로 구독자 1000만명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소셜블레이드는 제이플라가 연간 최대 32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예상했다. 구독자 수 10위인 도티TV도 예상수익은 최대 15억5000만원에 달한다. 개인 크리에이터 및 기업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 1위~10위와 그들의 수입을 알아봤다.(왼쪽부터)제이플라, 밴쯔, 웨이브야 / 유튜브 캡처◇제이플라, 정성하, 웨이브야 등 음악채널 강세구독자 수 1위 제이플라는 유명 아티스트의 곡을 편곡하거나 재해석해 부르는 ‘커버음악’ 뮤지션이다. 2011년 8월 비욘세의 'Halo'를 부른 영상을 유튜브에 처음 올렸다. 2013년 본인 앨범으로 데뷔도 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016년 머리를 묶고 옆 모습만 찍은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We don't talk anymore & I Hate U I Love you 영상을 시작으로 구독자 수와 영상 조회 수가 증가했고 올 3월 구독자 수 국내 1위에 올랐다. 이후 하루 평균 1만4000여 명씩 구독자가 늘었다. 이르면 10월 중 1000만 구독자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유튜브 콘텐츠는 음악이다. 구독자 529만명을 보유한 2위 크리에이터 역시 음악 콘텐츠를 만든다. 기타리스트 정성하 채널 'Sungha Jung'로 직접 연주한 기타영상을 올린다. 4위에 이름을 올린 '웨이브야(구독자316만명)'는 장은영과 장유선 친자매 댄스듀오가 운영한다. 8위를 기록한 '라온 리(구독자 259만명)'는 이라온씨가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부르는 채널이다.다음으로는 뷰티 패션·먹방·키즈 콘텐츠가 인기다. '포니신드롬(구독자445만명)'을 운영 중인 뷰티패션 유튜버 포니가 3위에 올랐다. 포니는 연예인 화장법, 일상 화장법 등 사람들이 따라할 수 있는 다양한 메이크업 영상을 올린다. 먹방에서는 밴쯔(구독자 287만명)가 5위, 떵개떵(구독자 260만명)이 7위에 올랐다.1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순위(좌), 기업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도 합한 전체 순위(우) / 자료 출처 소셜블레이드◇의사·변호사 부럽지 않은 수입소셜블레이드는 CPM(Cost Per Millenium·1000회 광고 노출에 따른 광고비)을 0.25달러~4달러(한화 약 270~4400원)로 설정해 유튜버들의 예상 월 수입과 연 수입을 계산한다. 예를 들어 CPM이 4000원이라고 했을 때 광고 1000회에 4000원, 즉 광고 1회 노출에 4원을 버는 셈이다. 유튜브는 1월 17일 부적절한 동영상으로 수익 창출을 하지 못하게 기준을 강화했다. 최근 1년간 전체 시청시간 4000시간과 구독자 1000명 이상을 보유해야 광고 수입을 얻을 수 있다.제이플라는 1년에 약 18만 달러~290만 달러를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로 따지면 적게는 약 2억원에서 많게는 32억원까지 버는 것이다. 2위인 정성하는 약 2만9000달러~47만2000달러(한화 약 3200만~5억2000만원), 3위 포니는 약 2만6000달러~41만6000달러(한화 약 2800만~4억6000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나왔다.수입은 구독자수가 아니라 영상 조회수가 바탕이기 때문에 누적 영상 조회수가 높은 4위 웨이브야와 5위 밴쯔가 2~4위보다 예상 수입이 높다. 웨이브야는 4만2000달러~67만5000달러 (한화 약 4600만~7억4000만원), 밴쯔는 6만2000달러~99만3000달러(한화 약 6800만~11억300만원)를 버는 셈이다.BANGTAN TV, SMTOWN, officialpsy 채널 / 유튜브 캡처◇빅히트엔터테인먼트, SM·JYP·YG 제치고 1위1인 크리에이터뿐 아니라 방송사 및 연예기획사가 운영하는 채널까지 합한 국내 전체 채널에서 1위는 'ibighit'였다. ibighit는 전세계가 반한 방탄소년단(이하 BTS)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채널로 구독자 수는 1749만명이다. BTS영상은 물론 소속 가수인 옴므, 2AM 등의 뮤직비디오 및 소속사 관련 영상을 올린다. 연 최대 1320만달러(한화 약 146억6000만원)의 예상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나와있다.BTS 영상만 따로 올라오는 'BANGTAN TV'는 구독자 수 1182만명으로 5위에 올랐다. BTS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것만으로 최대 480만 달러(한화 약 53억원)에서 최소 29만7000달러(한화 약 3억3000만원)를 버는 셈이다.2위는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중 하나인 SM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SMTOWN’이다. ibighit 채널과 마찬가지로 소속가수 및 배우 관련 영상을 올린다. 구독자는 1599만명, 예상 수입은 연 최대 1510만 달러(한화 약 167억7000만원)다. 이는 ibighit채널보다 높은 수치다. 업로드 한 영상 수와 누적 조회 수가 높기 때문이다. 3위는 구독자 1325만명을 보유한 ‘1theK’다. 카카오M에서 운영하는 K팝 채널이다. 4위는 가수 싸이의 공식 채널인 ‘officialpsy’로 구독자는 1227만명이다.글 CCBB 에디터 하늘시시비비랩
“아나운서만으론 힘들다 생각했죠” 대기업 ‘일 좀비’의 대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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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앞에 나서기 좋아하던 평범한 대학생꿈 이루려고 1년 만에 ‘가시밭길’ 뛰어들어아나운서·쇼호스트·피트니스 모델·MC까지회사에서 별명이 ‘일 좀비’였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던 그가 돌연 회사를 나왔다. 꿈이었던 아나운서를 하기 위해서다. 박지혜(31) 아나운서는 2013년 대학 졸업 후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하다가 1년 만에 퇴사했다. 일은 적성에 맞았고 재미도 있었지만 더 늦기 전에 아나운서라는 꿈에 도전하고 싶었다. 2015년부터 이데일리TV·KB증권 등 경제방송사에서 일하다가 올해 5월부터 ‘운동하는 아나운서’ 콘셉트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아나운서는 물론 피트니스 모델과 쇼호스트도 겸한다.박지혜 아나운서 제공-일밖에 모르는 직장인이었다고.“2013년 신세계 계div>열사인 이마트에브리데이 마케팅팀에서 1년 동안 필드매니저로 일했다. 회사의 페이스북·블로그·웹사이트를 디자인하고 운영했다. 홍보 관련 온라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일밖에 몰랐다. 여행을 간 적도, 책을 읽은 적도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봤는데 회사에 여자 선배가 많지 않았다. 아침 7시 20분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했다. 선배가 자녀한테 밥도 못 먹이고 회사에 나오는 걸 보고 '이게 내가 원하는 미래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아나운서를 하려고 퇴사를 결심했다고.“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남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다.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예술 전공이었지만 발표를 해야 하는 과제가 많았다. 학교뿐만 아니라 여러 대외활동·공모전에서도 발표를 도맡아 했다. 졸업을 앞두고 내가 가장 빛났던 순간이 언제였나 떠올려보다가 아나운서라는 꿈이 생겼다.부모님께 아나운서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지만, 어머니는 아나운서가 힘든 직업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셨다. 남들처럼 회사에 취업하기를 바라셨다. 당시 개인적인 가정사까지 겹쳐서 대학 졸업 후 한 달 만에 회사에 들어갔다.사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미련은 남았다. 출퇴근길이나 잠에 들기 전에도 아나운서의 삶은 어떨지 상상해보곤 했다. 퇴사한다고 했을 때 많은 동료가 붙잡았지만, 내가 가장 빛날 수 있는 일이 아나운서라고 생각해 마음을 굳혔다. 안정적인 삶을 원했다면 용기를 내지 못 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박지혜 아나운서 제공-아나운서는 어떻게 준비했나.“아나운서는 보통 2년 동안 준비한다. 퇴사했을 때 27살이었는데, 보통 20대 초반인 다른 지망생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아서 전략적으로 경제방송사를 노렸다. 경제방송은 시청자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해야 해서 아나운서가 연륜이 있어 보여야 유리하다.처음에는 아나운서 학원에 다녔는데, 남들과 똑같이 준비해서는 경쟁력을 키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카메라에 익숙해지기 위해 무턱대고 모델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웨딩드레스 모델·에뛰드 화장품 잡지모델·의류 홍보모델 등으로 일하면서 카메라와 친해졌다. 발성은 성악하시는 분을 찾아가서 배웠다.경제방송사에 들어가기 위해 증권 차트를 공부했고, 재무제표 보는 법도 배웠다. 새벽 다섯 시부터 장이 마감할 때까지 모든 경제방송을 모니터링했다. 증권사에서 여는 세미나에 다니면서 분기별 시장 동향을 파악했다. 산업과 업종 분석도 했다.2015년 1월 이데일리TV에서 아나운서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 5년 이상 경력자를 뽑았지만 치열하게 공부를 한 덕분에 경력 없이 합격할 수 있었다. 이후 KB증권·아시아경제TV·하나은행·SK하이닉스 등에서도 아나운서로 일했다.”-아나운서 말고 어떤 일을 하고 있나.“아나운서만 해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겠다고 생각해서 4년 차부터 피트니스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작년 4월에는 머슬마니아 대회에서 피트니스 모델 2위에 올랐다. ‘운동하는 아나운서’로 알려지면서 모바일 커머스 업체에서 닭가슴살·래쉬가드·러닝머신 등 피트니스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쇼호스트 일도 한다. 피트니스 모델로는 러닝 화보·테니스 영상을 찍기도 하고, 스포츠웨어의 광고 모델도 한다.”야핏 유튜브 캡처-운동은 원래 좋아했나.“20대 초반에는 다이어트를 위해 요가·필라테스 위주로 했다. 지금처럼 즐기면서 하루 몇 시간씩 하지는 않았다. 작년 4월 머슬마니아 대회에 도전하면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유산소 운동과 웨이트를 번갈아서 한다. 유산소 운동으로 수영과 달리기를 하는데, 아침에는 무조건 2시간 이상 운동한다. 저녁에는 5km 정도 달린다. 하루 운동하는 시간만 최소 3시간이다.”-수입은 얼마나 달라졌나.“처음 프리랜서로 활동을 시작할 때는 수입이 적었다. 지금은 광고를 찍으면 한 번에 500만원 이상 번다. 프리랜서라서 수입이 일정하지는 않지만, 광고 모델과 아나운서 활동까지 월 평균 수입은 800만원 정도다.-대학원도 다녔다.“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실무만 하다가 이론을 배우고 싶어서 2016년 9월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언론·뉴미디어학과에 입학했다. 내년 2월 졸업 예정이다. 첫학기 때 언론을 전공하다가 두 번째 학기부터 뉴미디어로 전공을 바꿨다. 콘텐츠 크리에이터·1인 방송·인공지능(AI)를 활용한 언론 등 언론 환경에 새롭게 등장한 분야를 배웠다.”-그 많은 일정을 소화하려면 바쁠 것 같다.“월·금요일 오후에는 쇼호스트 촬영이 있다. 피트니스 모델 촬영은 대부분 야외에서 하는데, 햇빛이 있는 오전에 스케줄이 잡혀 있다. 아침 7시까지 샵에 가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촬영한다. 오후에는 대학원 논문을 쓰거나 섭외가 들어오면 회사 관계자와 미팅을 한다. 기업 행사에 가면 하루 종일 아나운싱을 하기도 한다. 섭외·미팅 등 모든 일을 혼자서 하느라 굉장히 바쁘다.-다음 목표는.“좋아하는 일(아나운서)과 취미(운동)를 같이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운동하는 아나운서’라는 거창한 타이틀까지 얻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건강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 지금은 단순히 운동을 열심히 하고 촬영 의뢰가 들어오면 모델로 일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남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책을 쓰거나 강의도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글 CCBB 송영조 인턴시시비비랩
“내가 OO라니" 이 연기로 전설이 된 배우, 요즘 뭐하나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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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주역이 아니라도 좋다야인시대 심영 역할 맡은 김영인씨건설사 대표 겸 배우로 활동 중"단역이라도 연기만 하면 행복"아니, 내가 고자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에잇 고자라니!!! 내가... 내가 고자라니! 내가...! 아핰핰핰핰으...우리는 이 배우를 알고 있다. 아니, 이 연기와 이 표정을 알고 있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심영 연기로 전설이 된 배우, 김영인(65)씨다.'내가 고자라니!'-2003년 3월 4일, SBS 드라마 '야인시대' 64화 중 일부. 김영인씨 허락을 받고 올린 영상입니다./유튜브 채널 '전한수'흔히 알려져 있듯, 이 드라마에서 공산당 간부이자 배우였던 심영은 총알이 영 좋지 않은 곳을 지나가는 바람에 고자가 된다. 당시 김씨는 의사양반으로부터 성 관계를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절규하는 연기를 실감 나게 해내 호평을 받았다.이 영상은 방영 5년 후인 2008년 즈음 디시인사이드 합성 필수 갤러리(합필갤)에서 다시 빛을 봤다. 그리고 다채로운 합성 소재로 쓰이며 일명 '고자상스'라 불리는 합필갤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다. 심영이 공산당 간부였던 것에 착안해, 한때 디시인사이드 등에선 성불구자가 되는 걸 사회주의 락원으로 간다 표현했을 정도였다. 아무튼 이 시절 김씨는 대한민국 인터넷 최고 유명인 중 하나였다.웬만하면 사내로 태어나 국민고자로 불리는 게 달가울 리는 없다. 하지만 김씨는 글쓴이와 만난 자리에서 오히려 이 심영 연기에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인천광역시 청라지구에서 만난 김영인 씨./jobsN◇무명 배우그는 단역배우다. 1989년 방영한 MBC '수사반장' 10대 범죄 시리즈에 이름 없는 형사로 데뷔해, 28년간 스포트라이트 주변을 맴돌았다. 가장 주연에 가까웠던 때는 MBC 드라마 '김형사 강형사' 중 '떠도는 섬'편 스태프 롤에서 배우 중 네 번째로 이름이 오른 거라 한다. 열정 하나로 시작한 일이었다. 연기를 따로 배운 적도 없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병으로 군대를 갔습니다. 중장비 자격증 따서 전역 후 건설회사 다니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1977년에 쿠웨이트에서 1년 일하고 오기도 했고요. 하지만 어릴 적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꿈을 놓지 못해 일을 그만두고 충무로 영화 무술팀을 쫓아다녔어요. 그러다 특채 비슷하게 연기를 시작했습니다."드라마 제3공화국, 그녀가 돌아왔다, 영웅시대, 장희빈, 영화 바리바리 짱, 장미 여관 등 여러 작품에 얼굴을 비췄다. 하지만 무대 중앙에 서기는 힘들었다. "매번 대사가 몇 줄 안됐어요. 연기도 해봐야 느는 건데, 기회가 없으니 발전이 어렵더군요. 그러니 연기력이 오르지 않아 주연을 못 맡고, 짧은 대사만 받는 악순환이 계속됐죠."◇뜻밖의 기회그렇게 14년이 흘러, 야인시대에서 심영 역할을 맡게 됐다. 언제나처럼 조역이었다. "57회 즈음부터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땐 제대로 된 대사라 해봐야 '이보시오 정동무(정진영), 그 악랄한 반동(김두한)을 왜 아직도 처치 못했단 말이오' 정도였어요. 뭐 언제나처럼 그러다 말 배역이려니 했죠."'야인시대' 중 심영 역할을 맡아 등장한 김씨./디시인사이드 합성필수갤러리 캡처그러던 어느 날, 감독(故 장형일 SBS PD)이 김씨에게 책 두 권을 건넸다. 64~65화 대본이었다. "갑자기 이 두 화에서 제가 주연급으로 등장하는데다, 65화에선 아예 첫 장면부터 나오는 거예요. 너무 부담스럽고 걱정돼, 세트장 부근에 여관방을 잡고 한 주 내내 연기 연습만 했어요."이 와중에 문제의 '고자라니' 대사를 발견했다. "처음엔 감독님께 고쳐달라 사정하고 싶었어요. 교육자(교사)이신 아버지 체면도 있고, 저부터가 쉰을 넘기고 딸까지 있는데 너무 민망해서요. 하지만 장 감독님이 장면 대사 하나하나에 얼마나 애착이 많은 분인지 아니,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그렇게 김씨는 한국 인터넷사에 길이 남을 연기를 하게 됐다.◇연예인의 마음가짐인터넷 유명인이 된 건 뒤늦게 알았다. "2010년 즈음이던가, 보험설계사 아주머니가 선생님 유명인 됐다고 말해줘서 봤어요. 솔직히 한때는 법적 조치까지 생각했어요. 하필이면 처음에 봤던 게시물이 '고자 개X끼' 운운하는 것이어서요. 물론 그것 말고도 합성물이 많았는데, 모욕스럽기도 하고 창피한 면도 있고 그랬죠."하지만 동료 배우들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다시 먹었다 한다. "얼굴이 팔리는 건 연예인의 본분인데다, 어떤 식으로건 사람들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건 배우로서 반길 일이라 하더군요. 찬찬히 보니 합성하는 분들도 제가 싫어서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건 아닌 듯하고요. 고자 선생님, 고자 아저씨 정도까진 나쁘지 않겠다 싶었어요."이후론 도리어 심영 컨셉을 내세워 방송에 여럿 출연했다. tvN 드라마 '푸른거탑' 2기 36화에서 총기 오발사고로 고자가 되는 부사단장 심대령 역할을 맡았고, 최근엔 약초 상품 '데일리허브' 광고에서 성 기능을 되찾은 심영 연기를 했다. "대표작 하나 없는 단역배우를 사람들이 여태껏 기억해 주는 건 순전 그 연기 덕분이니까요. 물론 부끄러울 때가 없진 않았지만, 결국엔 애착이 가더라고요."실제 김영인씨가 사용 중인 명함./김영인씨 제공◇인생, 조연이라도 좋다현재 김씨는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배우 시절이던 1992년부터 투잡으로 쭉 해오던 일이었다. "조연 봉급만으론 6남매 장남 노릇을 하기 어려우니까요. 회사는 작아요. 간신히 밥숟가락이나 뜰 정도로 벌고 있어요. 가끔 가다 천만원대 토목공사 수주 하나씩 받는 정도로요. 팔자 탓인지, 배우도 사업도 단역 신세네요."그럼에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다 한다. "주인공 못 단 배우라고 다 불행한 게 아니듯, 인생 또한 주인공이 돼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닙니다. 원하던 배우 일을 하다 한 번은 유명해졌고, 사업을 조그맣게나마 흔들림 없이 지켜왔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부끄러울 일을 하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충분히 잘 살았다 생각합니다. 전, 무대의 주역이 아니라도 좋습니다."현재 김씨가 배우로 참여 중인 영화 '이끼새' 촬영 현장. 김씨는 여기서도 공산당 간부를 맡았다./김영인씨 제공배우 활동도 여전히 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연기만큼은 생이 다할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 한다. "나이가 드니 찾아 주는 분이 별로 없긴 해요. 요새 드라마나 영화가 젊은 배우 위주로 돌아가는 편이어서 그런 것도 같지만요. 외국에선 작품 완성도를 높이려 경험 많은 노인 배우를 기용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우리나라도 그런 문화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늙은 배우의 욕심이지만요."글 CCBB 에디터 폴리시시비비랩
한복 입은 흑인 그렸더니…미국에서 먼저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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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흑인 여성’ 그려 본토에서 먼저 인정받았죠2016년 미국에서 남긴 작품으로 유명세고3때 그래피티로 먹고 살기로 결심보수적인 아버지도 묵묵히 지원해줘심찬양 작가 제공그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먼저 실력을 인정받았다. 미국 정부로부터 O-1비자(특수재능비자)도 받았다. O-1비자는 예술·과학·체육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이 있는 외국인의 미국 체류를 허가해주는 비자다.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거나 상업적으로 성공해 다른 종사자보다 더 높은 보수를 받는다는 것을 입증한 사람에게만 준다. 국내에선 유재석·차인표·이병헌 등이 이 비자를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심찬양(30) 그래피티 작가다. 그의 태그네임은 ‘로얄 독’(Royyal Dog). 태그네임은 그래피티 작가의 필명이다. 자신은 ‘개’(dog)지만 아버지가 ‘성대하시니’(royal) ‘Royal Dog’이고, 이유 없이 ‘로얄 독’으로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왜’(y)가 붙었다고 했다.그를 세계적인 그래피티 작가로 만든 작품은 2016년 8월 LA 아트 디스트릭트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더 컨테이너 야드’(800 E 4th St, LA) 벽에 그린 ‘꽃이 피었습니다’다. ‘흑인 여성’과 ‘한복’이라는 이질적인 소재가 현지에서 먹혔다. 그는 그래피티를 그려서 먹고 살겠다고 결심한 지 약 10년 만인 2016년부터 전업 작가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작년 한 해만 약 1억원을 벌었다.미국 LA '더 컨테이너 야드'에 그린 '꽃이 피었습니다'. /심찬양 작가 제공-그래피티는 어떻게 시작했나.“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힙합을 좋아했다. 스트리트 댄스를 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김수용 작가의 만화책 ‘힙합’을 보고 그래피티를 처음 접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해 미대 입시를 준비했지만, 공부나 입시를 위한 그림 그리기에 흥미가 없었다. 고3때 그래피티를 그려서 먹고 살기로 결심하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주로 '한복 입은 흑인 여성'을 그리는데.“2016년 7월 처음으로 그래피티의 본고장인 미국에 갔다. O-1비자가 아니라서 최대 90일까지만 체류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 미국 사람들과 그래피티를 그렸는데,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40년 전 지하철에 낙서하면서 시작한 자신들의 놀이문화가 지구 반대편까지 알려졌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한국이라는 나라도 낯선데 한국인이 자신들과 그래피티까지 그리고 있으니 좋게 봐줬다.특히 작품에 한국적인 소재를 담았을 때 반응이 좋았다. 내가 따라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나의 개성이 들어간 작품을 보고 박수를 쳤다. 그래서 한복을 그리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고, 한국 사람 대신 흑인을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당시 그래피티 작업을 기획했던 사람이 그 의견을 듣고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주제 중 가장 아름답다’고 말해줬다.”-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나.“작업 시간은 벽의 크기나 그림의 난이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미국에서 반응이 가장 좋았던 ‘꽃이 피었습니다’는 3일 동안 그려서 완성했다. 작년 길거리 예술축제 ‘파우와우 코리아’에 참가해 서울역 근처에 남긴 작품은 약 일주일 동안 그렸다. 보통 하루에 8~9시간 그림을 그린다. 의뢰가 들어와서 작업하는 경우 의뢰인이 작업장 근처에 숙소를 잡아준다.”작년 길거리 예술축제 '파우와우 코리아'에서 일주일 동안 그려서 완성한 작품. /심찬양 작가 제공-작업은 어떻게 시작하나.“의뢰인에게 그래피티를 그려달라는 요청이 올 때도 있고, 마음에 드는 벽을 보면 직접 건물주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연락하기도 한다. 그래피티를 그려달라는 연락이 올 때가 더 많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벽화가 굉장히 많아서 작가가 먼저 건물주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자연스럽게 제안한다. 작업 비율은 한국과 미국이 2대1이다.”-’좋은 벽’의 기준이 뭔가.“면적이 넓고 튀어나온 부분이 없는 벽이 좋다. 창문이 없는 깔끔한 벽이면 더 좋다. 그래피티 작가들 사이에서는 사람이 많이 지나다녀서 노출이 많은 벽이 인기다. 자동차를 타고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보면 한강변에 있는 아파트에 숫자만 덩그러니 쓰여 있는 흰 벽을 종종 볼 수 있다. 매일 출·퇴근을 할 때마다 보는 벽이다. 언젠가는 그곳에 작품을 그려보고 싶다.”-그릴 때 쓰는 재료는.“그래피티를 그릴 때는 스프레이식 래커를 쓴다. 그래피티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국산 ‘동서락카’ 제품을 썼다. 요즘은 스페인의 몬타나사(社)에서 만든 ‘MTN 94’를 주로 쓴다. 지금도 스케치를 할 때는 재료비를 아끼려고 동서락카 제품을 쓴다. 올해부터 아이언락·원테이크 등 다양한 수입산 래커가 들어오면서 가격도 많이 저렴해졌다. 얼마 전까지 한 통에 1만2000원이던 ‘MTN 94’는 7600원까지 떨어졌다. 동서락카 제품은 1600~2000원 가량 한다. 국산과 수입 제품의 가격 차이가 꽤 크다.”-일부 국가는 그래피티를 법적으로 금지하기도 한다.“그래피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가 벽화고, 두 번째가 몰래 벽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도망가는 ‘태깅’(tagging)이다. 세상에 주인 없는 벽은 없으니 주인의 허락을 안 받으면 다 불법인 셈이다. 그래피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자신의 이름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작업의 목표였다.밤에 몰래 그림을 그리고 도망다녔던 태깅 문화에 빠져 이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정식으로 의뢰를 받고 그림을 그려서 보는 사람으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받는 걸 더 즐긴다. 태깅을 하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멋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래피티를 그려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래피티 문화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 투자하는 것이다.”그는 2016년 7월 미국에서 현지 작가들과 그래피티를 그렸다. /심찬양 작가 제공-그래피티 작가로 돈은 얼마나 버나.“조심스럽지만 다른 작가에 비해 많이 버는 편이다. 2016년 미국에 다녀온 뒤로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작년 한 해 동안 1억원 정도 벌었다. 올해도 4월까지 일을 많이 못 했는데도 약 1억원을 벌었다. 1년에 걸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은 열 개 약간 못 미치게 그린다. 자잘한 그림도 많이 그린다.그래피티를 그려서 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 특히 한국은 그래피티 시장이 작아서 실력이 수입으로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대중에게 끊임없이 어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아르바이트를 굉장히 많이 했다. 인테리어 업체에서 필름지를 붙이는 일도 했다.”-가장 아끼는 작품은.“아무래도 '꽃이 피었습니다'가 가장 특별하다. 처음으로 나만의 색깔을 완성한 그림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볼 때마다 새롭다. 지금까지 그린 작품 중 가장 많은 호평을 들었고,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있기도 하다. ‘꽃이 피었습니다’를 그리기 전까지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종종 헤매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 그림의 정체성을 찾았다.”-앞으로 그리고 싶은 그림은.“예전부터 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싶었다. 지금도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마음이 각별해서 흑인을 그릴 것이고, 내가 한국인이니까 한복도 소재로 쓸 거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건너와 결혼한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가 한복을  입은 모습도 그려보고 싶다.”-왜 하필 아프리카인가.“아버지가 목사님이고 할아버지도 목사님이셨다. 아버지가 ‘월드비전’이라는 NGO(비정부기구)를 통해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후원해오셨다. 아버지가 후원하는 아이들의 사진이 어렸을 때부터 집에 걸려 있었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래 전부터 고민했던 것 같다.초등학교 3학년 때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겠다는 꿈이 생겼다. 35살쯤에는 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지금도 그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결심에는 변함이 없다. 아버지에게도 자랑스러운 일일 것 같다.”심찬양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집안의 반대는 없었나.“아버지가 굉장히 보수적이고 엄격하셔서 어렸을 때는 버릇 없이 행동하다가 많이 혼났다. 하지만 그래피티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신 적이 없다. 지금까지 내가 무슨 선택을 하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 2년 전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굉장히 힘들게 생활했다. 돈이 없어서 밥도 아버지 카드로 사 먹었지만 싫은 내색 한 번 하신 적이 없다. 아버지가 말 없이 묵묵히 지켜봐주신 덕분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그래피티에 관심이 있는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말.“어쩌면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나는 돈을 못 벌었어도 계속 그래피티를 했을 것이다. 만일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이 먼저였으면 이렇게까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그래피티를 하겠다면 돈은 생각하지 말고 시작했으면 좋겠다.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래피티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그래피티로 돈을 버는 사람도 소수다. ‘그래피티 작가’라는 직업이 아니라 그래피티 문화 자체를 사랑한다면 기꺼이 도전해볼만한 일이다.”글 CCBB 송영조 인턴시시비비랩
“여기 진짜 부자들은 한국인들 피해 다닙니다, 왜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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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베트남에 1000명 이용하는 헬스장 차린 사람안효찬 ‘피트니스 더 퍼스트’ 대표 “베트남 진출 때는 준비 철저히 해야”호치민에 고급 주거구역 7군(7 district)에 있는 고급 피트니스 클럽. 지하 1층엔 최신 운동장비를 이용해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지하 1개 층과 지상 5개 층을 사용하는 ‘피트니스 더 퍼스트’의 유료회원은 800명, ‘퍼스널 트레이닝’(PT) 등록 회원도 250명 정도다. 이중 한국인이 70% 나머지는 베트남인이다. 피트니스 더 퍼스트의 안효찬(33) 대표는 5년 전부터 베트남에 살고 있다. 지금은 피트니스 사업 말고도 CCTV 장비 판매와 설치, 건강 보조식품 판매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안대표의 사업체의 총 매출은 월 2억원 수준. 안대표에게 베트남이 기회의 땅인 이유와 베트남 진출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해 들었다.안효찬 피트니스 더 퍼스트 대표◇26살 청년에 꽂힌 베트남-베트남에 언제부터 살았나. “2012년 26살에 교회 봉사활동으로 처음 베트남을 방문했다. 어렸을 때 필리핀에서 사는 삼촌을 보면서 외국에서 열심히 살면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방학이면 필리핀에 방문해 영어와 골프를 배웠다. 삼촌 집에 갔는데 집에 수영장이 있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그게 너무 부러워 꼭 해외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삼촌도 초창기에는 사업이 너무 힘들어서 낮에는 사업하고 밤에는 폐지를 주우면서 사업을 키웠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남아시아에서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봉사 활동 이후에 베트남에 정착할 마음을 굳힌 것인가.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얼마 안 있어서 다시 베트남으로 갔다. 한인 식당 주방에서 6개월 정도 일하면서 베트남 진출을 모색했다. 그런데 베트남에는 이미 한국 식당이 많았다. 한국인들과 경쟁하기는 싫었다. 다른 것을 해보려고 알아봤다. 26살은 자기 몸에 관심이 많을 나이다. 베트남에서도 부자들이 많아 몸에 신경쓰는 사람이 많았다. 한국인들은 아직 베트남에서 피트니스 클럽을 차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 헬스장 운영을 배워보기로 했다.” -어떻게 헬스장 운영 방법을 배웠나. “베트남 부자들을 공략하려고 생각해 고급 헬스장을 2개월 등록했다. 그리고 나서 헬스장 매니저에게 헬스장 운영의 이것저것을 물었다. 처음에는 매니저와 친해지기 위해서 손님은 하지 않는 궂은 일도 함께 했다. 한달 뒤에 베트남에서 헬스장을 하겠다는 계획을 말했다. 매니저가 곧 지점을 한 곳 내니 거기에 투자 하고 직접 관리 해보라 했다. 1년 정도 헬스장을 운영하면서 베트남 진출 준비를 했다. 2014년 3월에 베트남에 피트니스 센터를 차렸다.” -헬스클럽을 차리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을 텐데 어떻게 했나.23살에 떡볶이 집을 운영했다. 위치가 좋았는지 손님이 많았다. 배부른 소리지만 손님이 그만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주변에 경쟁업체가 생기면서 사정이 나빠졌다. 월세 내기와 인건비 맞추는 게 힘들다는 걸 그 때 알았다. 그때 장사를 하면 번 돈과 베트남 호텔에서 일하면서 모은 돈을 합해 베트남에 피트니스센터를 설립할 자금을 마련했다. 2014년에는 70평(231㎡) 작은 피트니스클럽으로 시작했다. 초기 자본금은 2억원이었고 기구 사장님, 베트남 동압자 등과 함께 마련했다. 2016년에 지금 장소로 옮겼다. 부지를 정하고 건물을 새로 지어야 했다. 이 때 들어간 돈은 7억원이다. 25%는 헬스장비를 납품하셨던 대표님이 투자했다.”최신 장비들이 있는 피트니스 더 퍼스트 /사진 jobsN◇베트남 부자들은 한국인 많은 곳 안다녀-피트니스센터 설비가 좋아 보인다. 이정도 수준이면 베트남에서 어느정도 경쟁력이 있나.“냉정하게 말해서 우리 정도 수준이면 베트남에서 중상 정도다. 베트남에는 진짜 부자들이 많다. 이들은 5성급 호텔 피트니스 센터 수준의 헬스장을 다닌다. 처음에는 한국인 손님들이 많이 찾았다. 한인 커뮤니티에 소문이 나면서 오픈을 하기 전에 120명이 몰렸다. 회원 10명 중 9명은 한국인이었다. 진짜 부자들을 상대하려면 베트남 사람이 와야 했다. 그게 고민이었다.” -그 고민을 어떻게 해결했나. “베트남 부자들은 한국인이 많으면 오질 않는다. 한국인 중에 베트남인을 무시하는 사람이 간혹 있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베트남 부자들은 한국인이 많은 곳에는 잘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한국인에 기가 눌려 찾지 않았다는 사람도 많았다.그래서 특별한 것을 찾았다. 많은 베트남 사람이 헬스장에서 느낀 불만은 등록 전과 후가 너무 다르다는 점이었다. 등록전에는 다 해줄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등록하고 나면 모른채 한다. 등록한 손님이 자주 찾는지를 확인했다. ‘이번주에는 많이 운동하셨다. 곧 좋은 몸매를 가지실 거다.’ 아니면 ‘이번주는 자주 오지 않았다. 바쁜 일이 있어도 건강을 챙겨라’라는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받고 고객들이 크게 만족해 했다. 챙겨준다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자기가 내는 돈이 아깝지 않게 대우해줘야 한다. 지금은 한국인 손님이 7명이라면 베트남 손님이 3명이다. 확실히 늘어났다.” -유료회원수가 많은 데 한 달 매출은 어느 정도 나오나.“보통 5만~8만 달러(5600만~8900만원) 수준이다. 격차가 크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때 자리를 비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베트남 손님이 늘어야 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베트남 고객을 유치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안효찬 대표 /사진 jobsN◇1년 넘게 준비만…“준비 없는 도전은 무책임” -피트니스 센터 일 말고도 하는 일이 많은 것으로 안다.“필리핀에 계시는 삼촌이 보안카메라 일을 한다. 베트남에 와서 카메라 시장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삼촌에게 제품을 받아 판매하고 설치하는 일도 한다. 피트니스 센터를 하면서 다녀간 회원들이 큰 도움을 줬다. 무엇보다 베트남인은 공사를 할 때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은데 우리는 깔끔하게 해주니 만족도가 높다. 카메라 사업을 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 한달에 3만 달러(3300만원) 정도 매출이 나온다. 또 방범 카메라를 설치하면 그걸 볼 모니터도 필요하다. 삼성전자에서 총판을 따내서 삼성 모니터를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단백질 보충제와 같은 운동 관련 식품들도 판매한다. 모두 합하면 한달에 2억 정도 매출이 나온다.” -베트남에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베트남 호텔에서 6개월 일 한 것을 빼도 1년을 준비했다. 한국인은 너무 급하다. 들어오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 계약부터 한다. 그건 위험하다. 자기가 하려는 업종의 경쟁상황은 어떤 지, 상권은 좋은 지 등을 잘 따져봐야 한다. 생활을 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러니 준비를 잘 갖추고 들어와서 일단 살아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준비 없이 와서 운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준비가 없으면 운도 없다. 한국에서 잘 한 사람은 이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글 CCBB 에디터 CBCB시시비비랩
썸녀가 보낸 ‘ㅊㅋㅊㅋㅊㅋ’ 메시지…이런 뜻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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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남'이 'ㅅㄱ'라는 메시지를 많이 보냈다면, 그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썸’타는 남성으로부터 'ㅅㄱ(수고)'라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면, 그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역시 썸 타는 여성으로부터 'ㅊㅋ(축하)'라는 메시지를 많이 받는 당신도 그녀와 연인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연인 간에 주고받은 메시지를 분석해 연애에 관련된 조언을 해주는 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있다. 2011년 설립된 ‘스캐터랩’이다. 스캐터랩은 메시지 내용을 분석해 상대방의 자신에 대한 호감도를 분석해주는 ‘텍스트앳’, 연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기억하게 해주는 연예 비서앱 ‘진저’를 연이어 출시했다. 텍스트앳은 지금까지 약 110만, 진저는 70만명이 내려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김종윤(33) 스캐터랩 대표는 “인생의 만족도를 좌우할 ‘관계’를 잘 맺는데 도움을 주는 게 스캐터랩의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 연인이 주고받은 200억개의 메시지 빅데이터가 자산김 대표의 창업은 대학 때 들은 수업이 계기가 됐다. 연세대에서 경영학과 사회학을 이중 전공한 그는 대학 시절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해 유의미한 결과를 찾아내는 내용의 수업을 들었다. 그는 이 수업에서 '문자 메시지와 이성적 호감도의 상관관계 분석'을 주제로 삼았다.김종윤 스캐터랩 대표 / 스캐터랩 제공“그 전부터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인데, 마땅히 데이터를 모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수업도 들으면서, 제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과 그 지인들을 대상으로 최근 두 명의 이성에게 보낸 메시지를 수집하고, 상대에 대한 감정까지 물어봤다. 이렇게 모은 2000명가량의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예를 들면, 남성은 호감 있는 여성과 대화에서 ‘ㅋ’를 많이 사용합니다. 반대로 여성은 좋아하는 남성에게 ㅋ보다는 스티커나 이모티콘을 보내죠. ‘ㅋ’와 달리‘ㅠ’는 남녀 모두 호감 있는 이성에게 더 많이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데이터를 더 모으고 분석을 조금 더 해보면 의미있는 결과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죠.” 2011년 주고받은 메시지를 통해 관계를 분석한다는 아이디어로 정부의 예비창업기술자 사업에 발탁되면서 법인을 설립했다. 스캐터랩의 첫 서비스인 텍스트앳은 카카오톡으로 상대방과 주고받은 대화를 분석해 애정도나 호감도, 친밀도 등을 분석해준다. “회원 가입하면 사용자가 상대에게 보낸 메시지와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습니다. 이걸 분석해 메시지와 호감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기초 자료를 모았죠.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재밌는 결과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남사친', '여사친'과 한달에 열흘 정도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면, 정말 친구일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한달에 17일 이상을 대화한다면, 상대방은 당신을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텍스트앳에 이어 스캐터랩이 내놓은 진저는 단순히 호감도 분석을 넘어서 연인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주는 ‘비서’ 같은 역할을 한다. 커플끼리만 쓰는 메신저 ‘비트윈’에서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면서 종합적인 조언을 해준다. 예를 들어 대화에서 갑자기 이모티콘 사용 횟수가 줄거나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정확해지는 경우 두 사람이 싸웠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이에 맞게 조언을 해주는 식이다.진저의 주요 기능“20대는 하루 평균 연인에게 120개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메신저가 단순히 대화가 아니라 관계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뜻이죠. 이걸 분석해 적재적소에 조언을 해주는 게 진저입니다.” 사용자 동의 과정을 거쳐 스캐터랩이 지금까지 모은 메시지 데이터는 200억개에 이른다. 스캐터랩이 앞으로 만들어 갈 서비스의 기초 재료인 셈이다. ◇잘 만든 콘텐츠는 팔린다스캐터랩은 지난해 ‘연애의 과학’이라는 앱을 출시했다. 지금까지 100만명이 다운로드할 정도로 ‘히트’를 쳤다. 연애의 과학은 크게 세 가지 콘텐츠를 담고 있다. 심리학 논문에 기반을 둔 연애 팁(tip), 심리학자들이 만든 심리테스트, 그리고 성감대나 체위 등을 알려주는 가이드북(성인만 볼 수 있음) 등이다. 연애의 과학은 전작인 텍스트앳과 진저의 기능을 일부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콘텐츠를 주로 제공하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영화나 웹툰을 제외하면 콘텐츠를 팔아서 돈을 버는 데가 또 있을까요? 아마 콘텐츠를 이용해 광고 수입을 얻는 모델이 대부분이죠. 그런데 연애의 과학은 콘텐츠를 잘 만들면 기꺼이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산다는 걸 증명하고 있으니 스스로 자부심을 느낍니다.”연예의 과학에서 제공하는 주요 콘텐츠들2011년 이후 스캐터랩은 투자 받은 15억원에다 텍스트앳, 진저의 일부 유료 콘텐츠 수입으로 회사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연애의 과학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남녀관계나 성관계 등은 모두가 관심이 있는 소재입니다. 게다가 개인의 행복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들이지요. 그에 반해 이들을 다룬 콘텐츠들의 수준은 낮습니다. 개인의 경험 혹은 실제 경험도 아닌 것들이 ‘팁’으로 포장돼 유통되는 것이죠. 저희는 실제 연구를 기반으로 한 논문을 토대로 사용자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다른 성인용 콘텐츠는 남성의 소비 비율이 월등히 높지만, 연애의 과학에 담긴 성인용 콘텐츠는 남녀 비율이 비슷하다고 한다. 그만큼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는 의미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연애의 과학은 2017년 4월 일본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시키는 대로 하는 인공지능이 아닌 감정 나누는 인공지능 ‘핑퐁’스캐터랩이 최근 집중하는 또 다른 서비스는 인공지능(AI) ‘핑퐁’이다. 기존의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는 사용자의 지시를 이해하고 이를 수행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에 탑재된 ‘빅스비’나 아이폰에 탑재된 ‘시리’ 등이 대표적이다. “텍스트앳, 진저 같은 서비스를 하다 보니 ‘오늘은 어땠나’ ‘밥은 챙겨 먹었나’ 등 상대가 자신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줄 때 행복해진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핑퐁은 거기서 출발했습니다. 사용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비서가 아니라 잡담을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인공지능인 거죠.” 김 대표는 앞으로 대화형 AI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막론하고 어떤 제품이든 적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캐터랩은 연예인의 말투와 언어습관을 파악, 마치 팬과 연예인이 실제로 대화하는 것 같은 서비스를 대형 연예 기획사와 추진 중이다. 또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는 인공지능 탑재 스피커에도 핑퐁을 탑재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꾸준히 인간관계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서비스를 만들어왔습니다. 인간과 AI을 연결해 일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술 분야에서는 한국을 넘어 글로벌 1등이 되고 싶은 게 스캐터랩과 저의 꿈입니다.”글 CCBB 안중현시시비비랩
한국에서 ‘만족도’ 높은 직업 2위에 판사…1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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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계열 교수가 직업만족도 1위교육자가 직업만족도 높아연봉 낮고 신분 불안하면 직업만족도 떨어져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직업에 가장 만족하는 사람은 의대 교수와 약대 교수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 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교육자가 직업 만족도 상위 10개 중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1위인 의약계열 교수를 포함해 자연계열 교수(4위), 대학교 총장 및 대학 학장(7위), 초등학교 교장 및 교감(9위), 인문계열 교수(10위)가 10위권에 올랐습니다. 또 초등학교 교장과 교감은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직업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교육자의 직업만족도가 높았다. 교육자는 직업만족도 상위 10개 중 절반을 차지했다. /사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중분류로는 법률∙경찰∙소방∙교도 관련직 만족도 가장 높아한국고용정보원이 2018년 1월 직업만족도 순위 정보를 포함한 ‘2016 한국의 직업정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서울 및 전국 6대 광역시와 인접 산업도시를 중심으로 639개 직업, 재직자 1만 98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만든 자료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고용정보원은 사회적 평판, 고용안정, 발전 가능성, 근무조건, 전반적인 직무 만족, 급여 만족 등 8개 항목 합산 점수로 직업만족도를 분석했습니다.한국고용정보원은 조사대상 직업을 대분류, 중분류, 세분류, 세세분류로 구분하는 한국 표준직업 분류에 따라 조사결과를 분석했습니다.먼저 직업 중분류 수준에서 살펴보면 ‘법률∙경찰∙소방∙교도 관련직’ 직업 만족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 ‘교육 및 자연과학∙사회과학 연구 관련직’, ‘보건의료 관련직’ 순이었습니다. 반면 직업 만족도가 가장 낮은 직종은 ‘경비 및 청소 관련직’입니다. ‘섬유 및 의복 관련직’, ‘농림어업 관련직’ 등도 직업 만족도가 낮았습니다.◇격무 시달리는 판사는 2위직업 세세분류 수준에서 직업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은 의약계열 교수였습니다. 의약계열 교수는 강단에서는 의대생과 약대생을 가르치고, 임상에서는 환자들을 돌봅니다. 연봉 또한 높은 수준(평균 소득 8017만원)을 자랑합니다. 한의사와 이비인후과 의사∙외과 의사∙정신과 의사∙안과 의사∙내과 의사 등 의사 직종 대부분이 상위 30위권에 넓게 포진해 있었습니다. 법률∙경찰∙소방∙교도 관련직의 직업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사진 MBC에브리원 '시골경찰' 캡처이들 의사들의 평균 소득은 1위인 의약계열 교수(8017만원)보다 높았습니다. 외과 의사는 1억1007만원, 치과의사가 1억720만원 안과의사가 1억424만원으로 평균 연봉이 억대입니다.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사(8100만원)를 포함해 내과의사(9500만원), 한의사(9223만원) 방사선과 의사(8853만원), 정신과 의사(8783만원), 이비인후과 의사(8770만원), 성형외과 의사(8723만원), 가정의학과 의사(8294만원)도 의약계열 교수보다 높은 소득을 올렸습니다. 보수와 만족도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의약계열 교수가 직업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사진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포스터판사가 직업만족도 2위를 기록했습니다. 판사는 사회적 평판, 직업 지속성, 수행 직무 등에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판사의 평균 소득은 7967만원으로 25위입니다. 하지만 '대법관이 되면 지문이 다 없어진다'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격무에 시달리는 직업입니다. 반면 만족도가 가장 낮은 직업은 주유원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만족도가 높지 않은 직업은 건설 및 광업 단순 업종, 음식 배달원, 철근공, 주차관리원 및 안내원 매장 계산원 등입니다. 이들은 신분이 불안정하거나, 처우가 열악한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판사가 직업만족도 2위를 기록했다. /사진 KBS드라마 '내 딸 서영이' 캡처만족도가 높은 직업 top 10                  1위. 의약계열 교수                            2위. 판사                                            3위. 성형외과 의사                            4위. 자연계열 교수                            5위. 도선사                                       6위. 목사                                           7위. 대학 총장 및 대학 학장                8위. 전기감리 기술자                          9위. 초등학교 교장 및 교감                 10위. 인문계열 교수                         만족도가 낮은 직업 top 101위. 주유원2위. 건설 및 광업 단순 종사원3위. 음식 배달원4위. 철근공5위. 주차관리원 및 안내원6위. 매장 계산원7위. 고무 및 플라스틱 제품 조립원8위. 단조원9위. 육류∙어패류 및 낙농품 가공기계 조작원10위. 대형 트럭 운전원자료 : 한국고용정보원 ‘2016 한국인의 직업’글 CCBB 에디터 CBCB  시시비비랩
‘엄지척’ 극찬…페루서 난리난 ‘90년생 백종원’의 한국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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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에서 한국의 눈꽃 빙수 파는 동갑내기 친구들남미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한국식 눈꽃빙수를 파는 청년들이 있다. 90년생 동갑내기 절친 표지도씨와 김주엽씨다. 리마의 연중 기온은 13∼30℃. 날이 따뜻하고 연교차가 심하지 않다. 또 2016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뽑은 미식 관광지로 뽑힐 만큼 먹거리가 많은 도시다. 하지만 두 사람이 눈꽃빙수를 소개하기 전까지 페루에는 빙수가 없었다. 눈꽃빙수란 우유를 급속 냉각해 눈처럼 곱게 갈아 만든 빙수다. 어디서 처음 만들었는지 분명치 않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토핑이 올라간 눈꽃빙수는 한국이 원조라고 볼 수 있다. 3월에 귀국해 한달 동안 머무른 표지도, 김주엽씨. /jobsN두 사람은 2017년 4월 ‘미스터 빙수’라는 가게를 차렸다. 5종류의 눈꽃빙수(망고·초코·딸기·치즈·메론)와 빼빼로·초코파이 같은 한국 간식을 판다. 빙수 한그릇 가격은 15~17솔(약 5300~5900원). 리마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개업 2주 만에 페루 공영방송에서 미스터 빙수를 이색 디저트 가게로 소개했다. 요즘은 평일 하루 60그릇 정도를 판다. 2~4명이 앉는 테이블 10개뿐인 작은 가게인데다, 길거리에서 떨어진 건물에 있다는 점에서 적은 매출이 아니다. 현지 블로그, 페이스북에서도 미스터 빙수를 칭찬하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태양의 나라 페루에서 눈꽃빙수를 전파하고 있는 두 청년을 만났다. 페루 공영방송 채널7의 한 프로그램에 나온 미스터 빙수. /유튜브 영상◇한국에선 흔하지만 해외로 가면 경쟁력 있어 표지도씨는 2014년 리마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 동안 머물렀다. 어릴 적부터 꿈이 ‘사장님’이었을 만큼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도 경영학을 전공했다. 리마에서 공부를 할 때도 사업 아이템을 고민했다. “한국은 뭐든 경쟁이 치열합니다. 페루에 가져와 사업할 만한 아이템이 몇가지 눈에 들어왔는데, 그중에 현실적으로 디저트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산품 같은 건 수입 절차가 복잡한데, 디저트는 현지에서 직접 만들 수 있어요. 한국 디저트는 맛도 좋고 종류가 다양합니다. 페루에 디저트는 다양하지 않아요. 치아바타 같은 거친 빵은 맛있지만, 부드러운 케이크는 맛이 없습니다. 여러 고민을 하다 페루에 없는 ‘빙수’가 제격이라는 생각했어요.” (표)페루는 한해 동안 축제와 퍼레이드가 끊이지 않는 나라다. 6월에 열리는 태양 축제는 남미의 3대 축제로 꼽힌다.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는 빙수는 축제의 나라에 어울리는 디저트였다. 빙수를 팔기에 기후뿐만 아니라 문화도 알맞았다. 표씨는 리마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식구들이 한국에 여행을 왔을 때 눈꽃빙수를 맛보게 했다. 페루 사람들이 눈꽃빙수를 먹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을 보고 사업 가능성을 확신했다. 2015년 9월 한국에 돌아온 표씨는 절친인 김주엽씨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대전외고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고교 동창.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김씨는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도가 리마에 있을 때 제가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지도가 ‘리마에서 사업해볼래?’라고 했는데,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 진짜가 될 줄은 몰랐죠. 취업도 좋지만 해외에서 창업을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또 워낙 믿는 친구인데다, 사업 아이템도 가능성이 있어 보여 같이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김) 김씨는 서울에서, 표씨는 대전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창업 자금을 모았다. 쉬는 날에는 눈꽃빙수를 만드는 제빙기를 알아보러 다니는 등 사업 준비를 했다. 무역학 전문 교수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코트라에 방문해 현지법, 관세법 등을 알아봤다. 2016년 9월, 두 사람은 2000만원을 들고 페루 리마로 떠났다. 망고빙수와 딸기빙수. /미스터빙수 인스타그램◇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하는 창업 준비 과정한국에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현지에 도착하자 돌발 상황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한여름인 12월에 가게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이전에 가게를 쓰던 사람이 12월 계약기간 만료 후 나가지 않아 오픈 일을 늦춰야 했다. 페루는 계약 만료 후 2개월 동안 세입자가 집을 구할 수 있도록 보호기간을 둔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또 사업자 등록 절차도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두 사람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게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 페인트칠을 하고 벽지를 붙이고 가구를 들여놓느라 한달이 걸렸다. 수도·전기 공사를 할 때도 전문가 옆에서 지켜보며 일을 배웠다. 창업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표씨가 홈스테이를 했던 페루 가족이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표씨는 홈스테이를 했던 주인 부부를 파파와 마마라 부를 정도로 친하다. 부부의 아들 2명도 표씨 또래다. “페루에 살면서 사귄 가족과 지인 덕분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가게가 있는 건물이 페루 가족 소유입니다. 페루에서 보증금은 월세 2~3개월 치인데, 보증금을 받지 않았어요. 오픈 준비를 할 때 하나하나 도와주셨습니다.” (표)“인적 네트워크라고 해야 하나, 지인도 창업 자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지도가 주변 사람들에게 참 싹싹하고 친절합니다. 저런 친구라면 주변에서 도와줄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어요.” (김)(왼쪽부터) 직접 인테리어 하는 모습과 미스터 빙수 가게 내부 모습. /김주엽씨 제공눈꽃빙수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현지화했다. 10여개 넘는 눈꽃빙수를 써보며 메뉴를 연구했다. 페루 현지인에게는 식감이 낯선 팥과 떡은 빼고 과일 빙수 위주로 개발했다. “사실 메뉴 구상은 사업 시작 전에 끝났습니다. 저렴하지만 달고 맛있는 페루 과일을 이용하기로 했어요. 한국은 냉동 망고를 졸여서 써서 실제 망고 맛이 아닌 시럽 맛입니다. 빙수 맛의 핵심인 연유나 초코 소스를 제외하고는 시럽, 소스류는 최소화하기로 했습니다.” (표)2017년 4월 가게를 오픈했을 때만 해도 손님은 페루 가족과 지인들뿐이었다. 미스터 빙수가 있는 곳은 관광지인데다 축제가 열리는 중심지로 유동 인구가 많다. 하지만 미스터 빙수는 건물 안쪽에 있어 간판이 잘 보이지 않았다. 표씨와 김씨는 번갈아 가며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며 홍보했다. 좁은 공간에서 종일 빙수를 만들었다. 가게 문을 닫은 후 청소를 하다 보면 새벽 1~2시를 훌쩍 넘었다. ◇페루의 백종원을 꿈꾼다한번 맛본 손님은 단골이 될 만큼 반응이 좋았다. 운도 따랐다. 우연히 미스터 빙수에서 눈꽃빙수를 맛본 손님이 지인이었던 방송 PD에게 미스터 빙수를 소개한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VJ 특공대나 생생 정보통인 현지 방송에 미스터 빙수 이야기가 7~8분 동안 나갔다. “현지 방송을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돈 주고도 나가기 힘든 방송이라 하더라구요. 방송 나간 다음날 4시간 동안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마침 축제 기간이라 손님이 더 많았어요. 너무 힘들었지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표)이후 다른 방송사 2곳에서도 찾아왔다. 유튜브에서는 현지인이 ‘페루 미스터 빙수를 먹어봤다’를 주제로 한 리뷰 영상도 있다. 현지 케이팝 열기에도 도움을 받았다.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등 케이팝 아이돌 팬들이 한국 청년들이 하는 가게에 호기심을 갖고 찾는다. 손님은 대부분 현지인이다. 체인점 문의도 들어온다. 미스터 빙수가 식(食)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몰려드는 손님을 응대하기 위해 직원 3~4명을 뽑았다. “먹어보고 맛이 없으면 반짝 인기로 그쳤을 거예요. 하나같이 엄지를 척 들면서 칭찬해주세요. 빙수를 맛본 딸이 가족 전부를 데려오기도 하고, 일주일에 2~3번씩 들르는 회사원들도 있습니다.” (김)미스터빙수 가게 안팍에 서있는 손님들. /김주엽씨 제공두 사람은 함께 살기 때문에 24시간을 붙어있다. 절친이어도 의견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저도 처음에는 걱정했어요. 아무리 친해도 생활방식이 다르니까 사소한 부분에서도 충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오히려 서로를 배려하고, 싸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친해도 서로 다르다는 걸 아니까요. 싸우고 나서도 축구하고 맥주 한잔하면서 다 풀어요. 먼 타지에서 내 편이 있다는 생각에 든든해요.” (김)올해 목표는 리마에 2호점을 내는 것이다. “저희가 지금 ‘대박’을 냈다고 볼 수는 없어요. 장기적으로는 중남미의 백종원이 되고 싶습니다.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꿈이 있으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글 CCBB 에디터 욘두시시비비랩
“아침드라마 못해도, ‘서프라이즈 걔’라 불려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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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걔?’ 매주 TV에서 봐도 이름 모르는 배우들의 정체"아~ 서프라이즈 걔?"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이 말. 지금은 행사의 여왕, 윌리엄 아빠로 유명한 장윤정과 샘 해밍턴의 별명이기도 했다. 두 사람도 ‘서프라이즈 걔’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시청자가 이름 대신 대명사로 기억하지만 그래도 괜찮고 그래서 좋다는 배우들이 있다. 김난영(47), 김민진(40), 김하영(38), 박재현(40), 손윤상(44). 적게는 7년 많게는 14년 동안 서프라이즈에서 연기했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 800회 기념 시상식지난 1월 12일, 오직 이들을 위한 시상식이 열렸다. 일산 MBC 앞, 길게 레드카펫이 깔렸다. 800회를 맞이한 서프라이즈 제작팀이 배우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인 것. 주인공을 기다리는 카메라맨 앞으로 리무진이 도착했다. 리무진에서는 사또 복장, 베토벤 가발, 할머니 분장이 아닌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배우들이 내렸다. 서프라이즈에 출연하는 배우 10여 명이다. “서프라이즈 걔다!” TV에서 보던 모습은 아니지만 시민들이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역시 이름보다 별명으로 통하지만 손 인사를 건네는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다.◇남편 잃은 여인에서 다중인격까지..맡은 배역만 500여 개jobsN은 최근 서브라이즈에서 맹활약했던 김하영·박재현·손윤상 등 배우 3명과 인터뷰했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는 세상 곳곳의 신기한 이야기를 짧은 단막극으로 보여준다. 치정에서 미스터리, 살인 사건까지…배우들은 다양한 사건의 인물을 연기한다. 김하영은 2004년 5월 제110회 방송부터 합류해 지금까지 500개가 넘는 배역을 연기했다. "지금까지 맡았던 배역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는 그녀.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은 스토커라고 한다. "서프라이즈에서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다중인격을 연기하고 일주일 뒤에는 스토커를 연기했어요. 실제로 흔히 접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니까 재밌었죠."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영어 대사도 빠지지 않는다. 그럴 땐 대본에 발음 나는 대로 한국어로 따로 써둔다고 한다. 손윤상은 "그대로 읽으면 느낌이 살지 않는다"면서 "직접 사전과 발음을 찾아가면서 영어시험 보기 전날처럼 공부해 촬영에 임했다"고 말했다.캐릭터로 분장하고 기념 뮤직비디오를 찍은 배우들 (왼쪽부터) 김하영, 박재현, 손윤상 배우 /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캡처◇하루에 70장면 촬영, 빠른 몰입이 중요보통 드라마는 하루에 10장면, 일주일에 1~2회분을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필요할 때에는 여러 회의 장면을 한 곳에서 찍기도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다. 반면 다양한 사건과 에피소드를 다루는 서프라이즈는 하루 촬영에서 70여 장면을 한 번에 찍는다. 수요일에 대본이 나오고 금요일에 촬영에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도 짧은 시간에 캐릭터에 바로바로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15년째 서프라이즈에 출연하고 있는 박재현은 자신만의 빠른 대본 숙지를 위해 정보를 찾아본다고 한다. 연기하는 인물이 실존 인물이었던 경우가 많아 인물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와 배경지식을 익히는 것이다.또 서프라이즈는 12분짜리 짧은 단막극이다. 이 때문에 과장된 연기를 해야 할 때가 많다. 김하영은 “일반 드라마처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다면 12분으로는 몰입감을 줄 수 없다”면서 “짧은 시간 안에 전하려다 보니 톤이나 몸짓을 크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드라마의 연기 방법을 썼다가는 ‘그렇게 연기하면 안 돼~’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개그맨에서 배우로..할머니 가발 필요 없을 때까지 할 것손윤상은 7~8년 차로 서프라이즈 주연배우 중 막내다. 그는 KBS 13기 공채 개그맨 출신이다. ‘코미디 세상만사’ 등에서 활약했지만, 그는 개그보다는 정극이 더 재밌었다. 대학로에서 개그 공연을 하면서도, 서프라이즈에 회사 동료처럼 짧은 역할로 출연했다. 점점 더 개그보다는 연기에 더 관심이 갔다. 서프라이즈팀과 친분을 쌓고 출연횟수를 늘렸다. 그렇게 결국 ‘중고 신인’ 자격으로 고정출연자가 됐다.기념 시상식에 입장 중인 김민진, 김하영, 박재현14년째 출연 중인 김하영은 가장 고참이다. 원래는 공채 탤런트 준비생이었다. 시험에서 떨어진 후 가족의 추천을 받아 성우시험을 봤다. 2차까지 합격했는데 서프라이즈 배우 제안을 받았다. 평소 서프라이즈를 재밌게 보고 있던 팬이라 당연히 하고 싶었다. 오히려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서프라이즈 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워낙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그녀의 뜻을 꺾을 순 없었다. 감독 앞에서 오디션을 보고 합격해 2004년, 배우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14년을 하고 있다.김하영에게 ‘당신에게 서프라이즈는 무엇인가’를 물었다. 이런 답이 나왔다. “주위에서 걱정한 것처럼 이미지가 ‘서프라이즈 걔’로 굳었습니다. 아침 드라마 조연으로 제의를 받았는데 결국 출연하지 못했어요. 제가 나오면 시청자들이 반가워해서 몰입을 방해한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서프라이즈로 얼굴이 알려져 광고, 지역 방송 리포터, 해외 여행하는 프로그램에도 몇 번 출연할 수 있었어요. 항상 감사해요. 또, 배우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하고 싶어 합니다. 저 역시 할머니 연기할 때 가발이 필요 없을 때까지 서프라이즈에서 연기하고 싶습니다.”글 CCBB 에디터 하늘시시비비랩
1년에 1억원 넘게 버는 택배기사 직접 만나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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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진 않다최근 CJ대한통운은 자사 택배기사 1만7000여명의 평균 소득을 분석했다. 이들의 월 평균소득은 551만원(세전)이었다.  연간으로 따져보면, 6600만원 가량이다. 참고로 연봉 6607만원을 받으면, 월급쟁이로는 상위 10%(2016년 기준, 한국경제연구원 자료)에 해당한다.모두 개인 사업자인 택배기사는 세금과 보험료, 기름값 등을 포함 한 달에 140만원가량의 비용을 쓴다. 즉 CJ대한통운 택배기사는 평균적으로 한달 약 400만원 정도를 손에 쥐는 셈이다. CJ 대한통운은 또 전체 택배기사 중 상위 3%에 해당하는 500명가량은 연 1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고 했다. CJ대한통운 택배기사 박재현 사장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일대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는 CJ대한통운 박재현(40) 사장도 그 3%에 드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1억원(세전)을 넘게 벌었다. 그는 “한 달에 800만~900만원, 많을 땐 1000만원을 찍었다”면서도 “물론 이런저런 비용과 세금 등을 생각하면 매달 200만~250만원 정도가 빠져나간다”고 했다. 택배라는 직업을 떠올리면 ‘힘들다’는 생각을 떠 울리는 게 보통이다. 박 사장은 “몸으로 하는 일이라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땀 흘려 일한 만큼 벌어가는 정직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땀 흘려 일하면 만족할만한 돈을 벌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어떻게 일해서 얼마를 벌까?◇택배시스템은 어떻게 동작하는가택배기사를 이해하려면, 우선 택배시스템에 대해 알아야 한다.  택배는 보통 집화 → 서브터미널 → 허브터미널→서브터미널→배송의 단계를 거친다. 허브터미널은 전국의 택배가 모이는 대규모 물류창고로, CJ대한통운의 경우 충북 옥천과 대전 등 5곳에 있다. 서브터미널은 지역별 소규모 물류창고다. 전국에 200곳 정도가 있다. 이 중 택배기사의 업무는 택배를 보내는 곳에서 물건을 모아서(집화) 서브터미널에 내려주고, 서브터미널에 모인 물건을 차에 실어서 도착지에 전달(배송)하는 것이다.CJ 대한통운 옥천 허브 터미널(좌), 경기도 광주에 건설 중인 아시아 최대 규모의 메가 허브 터미널 조감도(우)/CJ대한통운 제공예전엔 택배기사가 오전 7시쯤 출근, 서브터미널에서 자신의 담당구역에 온 택배를 차에 실었다. 그리고오전 중 배송을 나갔다. 하지만 최근엔 서브터미널에 택배를 자동으로 분류해주는 기계인 '휠소터'가 보급되면서 택배기사들의 출근 시간이 늦춰졌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대개 서브터미널별로 3~4명씩 조를 편성해 오전 7시, 9시 10시 등으로 나눠서 출근한다"고 했다. 택배 물량이 많은 화·수요일은 보통 오후 8시~10시쯤 배송이 끝난다. 물론 택배기사 마다 맡은 물량이 다르기 때문에 끝나는 시간은 기사마다 천차만별이다. 토요일도 일하지만, 오전이나 늦어도 오후 서너시쯤엔 끝난다. 보통 쇼핑몰 등 물건을 보내는 곳은 토요일에 쉬는데, 이 때문에 집화 물량이 적어 배송에 집중하면 된다. 비슷하게 월요일도 보통 오전에만 일한다. 이유는 토요일과 반대다. 주말에 보낸 물건은 화요일 새벽이 돼서야 서브터미널에 도착한다. 배송할 물건의 양이 적어서 집화에만 신경쓰면 된다. 일요일엔 쉰다.◇처음부터 월 700만~800만원씩 번건 아니다박 사장은 지난 2009년부터 택배를 시작했다. 그전엔 청소업체에서 물류 쪽 일을 했다고 한다. “청소용품으로 가득 찬 물류창고를 관리하고, 서울 경기 지역 아파트, 빌딩 등에 청소용품을 가져다주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택배랑 비슷하다면 비슷한데, 택배가 일은 좀 힘들어도 수입이 괜찮다는 얘길 듣고 택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그가 월 700만~800만원씩을 손에 쥐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택배를 시작했을 때 받은 돈은 200만원 정도였다. 서브터미널에서 물건을 차에 싣는 박 사장“일에 익숙지 않은 초보자가 처음부터 많은 물량을 소화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엔 물량을 조금씩 받고, 담당구역 지리에 익숙해지고, 노하우가 생기면 물량을 늘려가는 것이죠. 어디가 언제 차가 막히는지, 시기별로 어느 구역 안에서 어떤 물건이 많이 배송되는지 정도는 바싹하게 알아야 합니다. 택배기사가 배송 중 하천에 빠진 아이를 구했다거나, 불이 난 곳을 빨리 찾아가 불을 껐다거나 하는 사례가 나오는 것도 그만큼 그 지역을 잘 알기 때문이죠.” 택배기사는 월급을 고정적으로 받는 게 아니라 택배를 배송한 만큼 배송비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계약마다 다르지만, 배송비 2500원을 기준으로 대략 800~1000원 정도가 택배기사의 몫이다. 많이 배달하면 할수록 돈을 더 버는 것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처음엔 하루에 100~200개 수준으로 시작하고, 숙련도에 따라 300~400개씩으로 배송 물량을 늘린다”면서 “사람마다 다르지만, 처음 6개월 정도는 일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진 않다박 사장은 택배기사라는 직업이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우선 보통의 ‘월급쟁이’가 누리는 것들은 누리기가 어렵다. “월급 받는 사람은 여름, 겨울 휴가가 있죠. 저희는 담당구역이 있잖아요. 저 아니면 장기 ‘대타’를 구하긴 어렵습니다. 사실상 휴가를 가기는 쉽지 않죠. 거기에 직장인들은 1시간 혹은 1시간 반씩 점심때가 있잖아요? 저흰 따로 정해진 식사시간이 없어요. 특히 설이나 추석 등 명절 무렵엔 식사도 제대로 못 할 만큼 바쁩니다. 쉴 새 없이 뛰어다녀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죠.”트럭에서 물건을 내려 배송하는 박 사장하지만 박 사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지는 않다고 했다. “택배 하면 많은 사람이 생수병 6개짜리 한 묶음 들고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 올라가는 것을 떠올리잖아요? 물론 그런 물건도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쇼핑이 보편화하면서 몇 개씩 들어도 별로 무겁지 않은 물건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휴가도 비교적 한가한 토·일·월에 갈 수 있습니다. 동료끼리 돌아가면서 담당구역을 맡아주거든요.” 다른 개인사업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라는 것도 그가 꼽은 장점이다. “가게 하나 차리려면 인테리어다 임대료다해서 몇억원씩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택배는 택배 트럭만 하나 있으면 됩니다. 2000만원가량만 있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셈이죠. 게다가 다른 사업은 장사가 잘될 때와 안될 때의 편차가 크지만, 택배는 물량이 급격히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수입이 안정적입니다. 저 역시 택배를 시작하기 전엔 맞벌이였지만, 어느 정도 수입이 올라가고서는 혼자서 벌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가능성 큰 직업 물론 단순히 물건을 배달해주는 것만으로는 큰돈을 벌기 어렵다. 많이 버는 택배기사들은 사업장으로 들어오는 택배뿐 아니라 인터넷 쇼핑몰이나 도매상들을 고객으로 잡아 그들과 집화 계약을 따낸 사람들이다. 배송을 하면 건당 수수료를 받듯이, 집화를 해도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한 곳에서 여러 건의 물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들이는 시간에 비해 많이 벌 수 있다.박 사장 역시 지난해부터 하루 배송물량을 100개 정도로 줄이고 ‘영업’에 주력했기 때문에 연 1억원을 넘게 벌 수 있었다.“같은 자리에서 같은 물건을 팔더라도 사람에 따라 파는 양이 다르지 않습니까?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는지에 따라 수입은 달라집니다. 저는 고객을 잡기 위해 물건이 많이 들고나는 곳을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물건이 많이 나올 만한 곳을 찾은 다음엔 어떻게 서비스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저에게 물건을 맡기는 고객들은 단순히 100~200원 싼 가격보다도 물건이 늦지 않게 도착하는 것을 원하더군요.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을 맞춰 찾으러 가고, 늦지 않게 배송지로 갈 수 있도록 제때에 터미널에 갖다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운도 따라야겠죠. 담당구역에 대량으로 물건을 보내는 사업자들이 있어야 하니까요.” 지난해 우리나라의 택배 물동량은 23억개. 15세 이상 국민 1명을 기준으로 보면 한해에 52개, 매주 1개씩은 택배를 받은 셈이다. 그는 택배기사의 미래는 밝다고 말한다. “저는 택배기사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 사업 중에 택배 이용하지 않는 사업이 뭐가 있습니까. 택배가 없으면, 대한민국이 멈출 겁니다. 앞으로도 택배 물량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몸은 좀 힘들지만, 충분히 미래가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CCBB 안중현시시비비랩
저 한국도깨비 누구냐? 몇초만에 전세계인들 ‘입이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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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하나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도깨비'의 정체2017년 6월 미국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카 갓 탤런트(America's Got Talent)에 신라 시대 화랑을 연상케 하는 의상을 입은 13명이 무대에 올랐다. 동양인이 무대에 오르자 관중과 심사위원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Let’s do it guys!” 한 번 해보자는 외침과 함께 음악이 흐른다. 몸을 튕기는 팝핀을 선보일 때면 로봇 같다가도 웨이브로 동작을 바꾸면 연체동물로 변한다. 13명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칼군무에 심사위원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처음 춤꾼들이 "여러분이 처음 보는 춤을 보여주겠다"고 했을 때 무덤덤했던 심사위원들은 기립박수를 치며 “정말 처음 보는 춤이었다”고 감탄했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누적 조회 수 약 1200만 회를 기록했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이들이 다시 등장했다. ‘강원도 도깨비’란 주제로 무대를 펼쳤다. 곤룡포를 연상하는 붉은 의상을 입고 군무를 선보여 사람들 마음 속에 강렬한 도깨비로 자리 잡았다. 개막식 무대 직후에는 이들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위에서 춤을 췄다. 네티즌은 '완벽한 칼군무에 놀랐다' '이런 팀이 한국에 있다니 놀랍다'고 반응했다.0.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퍼포먼스로 아메리카 갓 탤런트는 물론, 댄스 대회 바디락(Body rock),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무대를 사로잡은 팀. 바로 저스트절크(Just jerk)다. 절크는 ‘빠르게 움직이다’ 라는 뜻도 있지만 ‘얼간이’라는 의미도 있다. 춤밖에 모르는 바보들이 모여있는 팀이다. 동갑내기 친구 성영재(26)와 최준호(26)가 2010년 창단했다.댄스 팀 저스트절크. 가운데 선글라스를 쓰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이 성영재 대표,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최준호 부 대표다. / 저스트절크 인스타그램 캡처◇우울증에서 건져준 춤저스트절크 단장 성영재는 고등학생 때 복싱부였다. 프로 선수를 준비하던 그는 개인사정으로 운동을 그만둬야했다. 그리고 우울증이 찾아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몸을 움직이는 일을 찾았다. 춤이었다. 그날로 춤 학원에 등록했고 흥미를 느껴 친한 친구를 끌어들였다. 그 친구가 바로 부단장 최준호다. 17살에 춤을 시작해 2년 만에 아르바이트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3년 동안 각종 춤 배틀에 나가 이름을 알렸다. 20살이 된 최준호는 동서울대학교 실용무용과에 입학했고 성영재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계속 강사 생활을 했다. 한동안 둘의 활동이 뜸했다. 성영재는 준호가 대학생활로 바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MT, 과생활 등으로 바빴습니다. 제가 준호에게 춤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얘기를 꺼냈어요. 진지하게 같이 해볼 생각 없냐고 물었더니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저스트절크를 결성했습니다."함께할 크루도 모집했다. 3명을 더 모집해 5명이 저스트절크로 활동했다. 댄스팀에겐 연습 공간이 필수다. 당시 연습실을 임대할 돈이 없던 다섯 명은 연습 유목민 생활을 했다. 당시 강사활동을 하던 학원에서 양해를 구하고 새벽 시간에 연습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날에는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모였다. 아메리카 갓 탤런트 1차 무대 / 저스트절크 인스타 그램 캡처◇세 번째 도전 만에 '바디락(Body Rock)'우승오전과 오후엔 개인 활동을 하고 새벽에 연습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국내 댄스배틀, 아시아 대회 등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점점 더 욕심이 생겨 스트릿 댄스의 본고장인 미국 무대에 도전했다. 댄스 대회 중 최고인 바디락에 출전한 것. 다른 댄스팀과 연합해 2014년 '아우라진'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했다. 첫 도전은 실패였다. 성영재는 화가 났다."저 자신한테 화가 났습니다. 미국 무대에서 통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에 실망했죠. 2015년에 다시 도전했어요. 그때 추노 OST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우리 팀이 한복을 입고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이거다 싶었습니다. 한국적인 춤사위와 스트릿 댄스를 섞어서 새로운 것으로 승부를 보자고 결정했습니다."의상도 한복으로 맞췄고 연합팀이 아닌 저스트 절크로서 출전했다. 가야금 선율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모습에 연신 박수가 터졌다. 하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가능성을 본 저스트절크는 2016년에 한 번 더 도전했다. 곤룡포를 연상하는 의상을 입고 군무를 선보였다. 중간엔 황병기 명인의 침향무에 맞춰 춤을 췄다. 무대가 끝난 후 기립박수를 받았다. 결과 또한 성공적이었다. 세 번째 도전 만에 저스트절크는 1위에 이름을 올렸다. Body Rock 2016 우승 무대/ OfficialBodyRockSD 유튜브◇대중들 성원에 올림픽 개막식 출연우승뿐 아니라 다른 기회도 찾아왔다. 현장에서 무대를 본 아메리카 갓 탤런트 관계자가 잠깐 얘기하자고 부른 것. 아메리카 갓 탤런트는 미국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그 자리에서 섭외를 받아 출연을 결정했다. 준준결승에서 탈락했지만 출연 영상이 큰 인기를 끌면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누적 조회 수 1200만 회를 기록하면서 평창올림픽 무대에 올려 달라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결국 작년 10월 평창조직위원회에서 연락을 받았다. 다른 팀과 합을 맞추는 시간 2분 40초, 저스트절크 단독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은 1분이었다. 시간은 짧았지만 도깨비를 연상한 무대는 강렬했다. 무대를 본 사람들은 ‘개막식에 나온 평창 도깨비는 누구’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크고 작은 무대를 많이 치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연습실이 없었다. 새벽 연습만으로 무대에 섰던 셈이다. 성영재는 저스트절크만의 공간을 갖는 게 꿈이었다. 그 꿈을 8년 만에 이뤘다. 2018년 3월 초 서울 서교동에 저스트절크만의 연습실을 차렸다.“그동안 저스트절크로서 번 돈은 꼬박꼬박 모았습니다. 해외 대회에 출전하면서 써야 했던 비행기 값과 숙소, 의상비를 제외하고는 다 통장에 넣었죠. 기획사에서 안무를 짜주거나 특강을 해서 돈을 벌었어요. 공연을 하면 멤버들에게 공연비를 나눠줘야 하는데 그 돈까지 모았어요. 함께 차린 저스트절크만의 공간인 셈이에요. 모두의 동의하에 했던 것이고 따라준 친구들에게 고맙죠.”각종 대회에서 우승한 트로피와 상. 바닥에 놓여져 있는 트로피가 Body Rock 2016에서 받은 우승 트로피다. 아메리카 갓 탤런트 2차 무대. / 저스트절크 인스타그램 캡처◇저스트절크와 한국 알리는 게 목표10년 넘게 춤만 추다 보니 성영재의 몸은 정상이 아니다. 신체 나이는 40살, 새벽 연습을 반복하다 보니 생활 패턴도 엉망이다. 연습실을 차린 지금 생활 패턴을 정상화 하면서 회복중이다. 저스트절크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심했다. “‘백댄서냐 그림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했죠. 엄연히 팀이있고 공연도 하니까요. 최근 활동을 통해 저스트절크로 알려져서 좋아요. 부모님도 좋아하셔서 뿌듯합니다.”대회에 출전 하는 것 외에 샤이니 태민, 블락비 등 아이돌 안무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콘서트나 쇼케이스에도 선다. 평창올림픽 이후엔 부쩍 대기업 행사가 많아졌다. 직접적으로 공연수입을 밝힐 순 없지만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공연수입 외에 저스트절크 멤버들은 댄스 수업으로 수입을 올린다. 저스트절크 아카데미에서 각자 수업 하나씩을 맡고 있다. 수업료는 참여 횟수에 따라 다르다. 1회 3만원, 5회 13만원, 10회 23만원, 무제한 40만원이다.  성영재는 “멤버들이 팀은 물론 개인의 가치를 높여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3월 오픈한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저스트절크 크루. (시계 방향으로) 이경우, 성영재, 최준호, 김예환, 이이정, 이유진. 길게는 2014년부터 짧게는 2016년부터 함께한 멤버들이다. 성씨의 목표는 모든 크루가 팀으로는 물론 독립적으로도 성공하도록 돕는 것이다. / jobsN화랑을 연상시키는 옷을 입고 국악에 맞춰 춤을 추는 저스트절크의 목표는 팀을 알리는 동시에 한국을 알리는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많은 활동을 할 겁니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며 ‘저스트절크 같은 팀이 되고 싶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이런 팀이 한국에서 왔다는 것도 알리고 싶습니다.”글 CCBB 에디터 하늘시시비비랩
CCTV 캡처해 ‘연예인 OO가 다녀간 식당’ 홍보, 문제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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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캡처해 쓰는 건 불법 소지 있어음식점에서 가장 흔히 쓰는 홍보 전략 중 하나는, 가게 방문 경험이 있는 유명인 사진이나 사인 등을 걸어두는 것이다. 그들이 인증을 하고 “맛있었다”는 글 하나만 남겨 주면 효과가 웬만한 광고 못지않다. 일이 매우 잘 풀리면 그 유명인 팬들의 성지(聖地) 대접까지 받을 수 있다.  배우 박보검이 한 식당에 남긴 사인./네이버 블로그하지만 유명인 모두가 식당 홍보에 동참해 주는 건 아니다. 원치 않으면 거절할 권리야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가게 주인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미처 뜻을 물어볼 새도 없이 놓칠 수도 있다. 실제로 유명인이 식사 후 자리를 뜬 뒤 주변 사람들이 “방금 나간 분 ㅇㅇㅇ 아닌가” 수군대 비로소 알아채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이때 일부 업자들이 빼드는 카드가 바로 폐쇄 회로 텔레비전, CCTV다. 즉, CCTV에 찍힌 유명인 얼굴을 캡처해 내걸고 ‘ㅇㅇㅇ 다녀간 식당’이라 홍보하는 것이다.한 지방 음식점 벽에 걸린 걸그룹 EXID CCTV 캡처 사진./디스패치설마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수도 있지만, 현실은 종종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 지방 음식점엔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걸그룹 EXID를 찍은 CCTV 사진이 걸렸다. 모 감자탕집은 가수 시아준수가 방문했을 때 CCTV 사진을 날짜까지 기록해 홍보에 사용했다. 모 감자탕 집에서 내건 가수 시아준수 CCTV 캡처 사진./네이버 블로그차라리 다른 종류 사진이나 영상이라면 몰라도, CCTV는 원해서 찍혔다 해석하긴 어렵다. 더군다나 그렇게 따낸 사진을 음식점의 영리 활동에 사용하는 상황이다. 법적 문제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충분히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말한다. 김가람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사진과 이름은 독립 재산권인 퍼블리시티권에 속할 수 있으며, CCTV는 개인정보보호법상 영상정보처리기기로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며 “법에선 ‘CCTV로 찍은 유명인 얼굴’을 개인 정보라 볼 확률이 높다”고 했다. 개인정보보호법에선 동의 없이 찍은 사진을 게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한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는 “연예인은 공인 취급을 해 초상권을 좀 느슨히 적용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동의 없는 CCTV 캡처를 돈벌이에 쓰는 건 도를 넘었다 볼 여지가 크다”고 했다. 만일 CCTV 캡처를 내걸기 전에 미리 허락을 받는다면 어떨까.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한 변호사는 “괜찮을 것 같긴 하지만, CCTV에 찍힌 자기 모습을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홍보 사진을 찍어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글 CCBB 문현웅시시비비랩
22년전 모두가 '미쳤다' 말한 직업 택한 이 사람,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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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 1세대 스타강사 김대균씨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석사과정을 다니던 한 청년이 종로YBM에 입사해 전업 토익(TOEIC) 강사를 하겠다 밝혔을 때, 주변 사람 대부분이 그를 만류했다. 미친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까지 있었다 한다.  때는 1996년도 9월이었다. IMF 사태가 나라를 덮치기 전 시절이다. 과장이야 있겠지만, 명문대생은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동아리방 한편에 갖다 놓은 입사지원서에 이름 적어 내면 바로 합격한다는 말까지 돌던 시대였다. 학벌 이외 스펙은 입에 오르내리는 일조차 드물었으니, 토익으로 먹고살겠다는 말이 와닿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이후 토익 시장은 급성장했고,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그 청년 김대균(54)씨는 한국 토익계 전설 자리에 올랐다. 2000년대 초 그가 출연한 인터넷 강의는 이틀 만에 1억원 매출을 올렸다. 학원 소속 월급쟁이 강사였지만 연봉 10억이 넘었다. 전성기 때는 연 세금만 1억5000만원을 냈다. 20년 넘게 강사 생활을 하며 펴낸 토익 관련 교재는 총 300권이 넘는다. 과거 그를 말렸던 사람 중 지금 김씨보다 잘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다.  김대균씨(오른쪽)와 영어 강사 디바제시카.◇한때 무시당하던 길일지라도 처음부터 강사를 지망했던 건 아니었다. 원래 꿈은 유학이었다. 하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했던 영어 과외와 강의 일이 체질에 잘 맞아, 계속해 보기로 결심했다 한다. “대학원이야 교수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갔었죠.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확실히 잘 하는 걸 쭉 해야 편하고 행복하겠다 싶더군요.” 새로 택한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특별장학금 받고 입학한 우수학생이 당시로선 척박하기 짝이 없던 토익 강사 길을 걷겠다 나서니 말이 많았죠. 지금이야 저보다도 학벌 좋은 강사가 워낙 많으니 이야깃거리조차 아닐 일이지만요. 연애하다 여자 집안에서 ‘강사 따위 직업은 용납 못한다’며 반대해 물러선 적도 있어요. 토익 보는 사람조차 몇 없던 시절이니, 장래가 불안해 보일 수밖에 없었겠죠.” 그럼에도 1996년부터 지금까지 토익을 310여 회 응시하며 문제를 분석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다한 끝에 스타 강사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한국인 중 처음으로 토익 ‘원조’ 국가인 일본에 교재를 수출하는 기록도 세웠다. “토익 자체가 원래 1970년대 일본 경단련(경제인단체연합회) 의뢰로 만들어진 시험이에요. 한국엔 한참 뒤인 1982년에야 들어왔고요. 하지만 제가 낸 토익 교재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도 있고, 일본 토익 강사가 저를 만나겠다며 찾아오기까지 했으니, 청출어람(靑出於藍)인 셈이네요.”한 일본 대형서점에서 현지 출판된 김대균씨의 책. 이를 들고 있는 점원과 함께 찍은 사진./김대균씨 제공◇18년 만의 새 길 그는 2014년 즈음, 18년을 몸담은 YBM을 떠나 ‘김대균어학원’을 열었다. “학원 강사 일정은 굉장히 빡빡하죠. 제 마음대로 수정하기도 어렵고요. 슬슬 벗어나 보고 싶었어요. 2011년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유언으로 ‘너도 이제 여유를 가져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도 영향이 있었고요.” 하지만 당초 기대보다는 여유가 많이 나지 않았다. 2003년부터 시작한 EBS 라디오 방송 ‘김대균토익킹’과 '김대균영문법'을 지금껏 계속하고 있는 데다, 인터넷 방송사 아프리카TV에서도 ‘김대균토익킹’ 방송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Best BJ로 뽑혀 2016 BJ 대상 프로컨텐츠 특별상까지 받은 탓에 대충 할 수도 없다 한다. 교재 출판도 계속하는 중이다. 지난 14일부터 ‘김대균 영문법’ 예약판매를 시작해, 이틀 만에 약 1200부가 팔렸다. 아프리카TV에서 일본어통역사 함채원씨와 함께 진행한 토익 방송./김대균씨 제공더불어 최근엔 그의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한 '동기부여 성공특강'도 시작해, 전국 대학과 기업체 초청을 받아 다니고 있다. "요즘 꽤 수요가 늘어서 불러주는 곳이 많아요. 멀리 다니는 게 좀 힘들때도 있지만, 지방에 내려간 김에 아프리카TV로 '현지인 추천 맛집 먹방'이나 '여행방송'을 하는 낙이 워낙 커서요. 이렇게 일과 재미를 함께 누리며 즐겁게 잘 지내고 있죠."일은 전성기 시절만큼이나 번잡하지만 버는 돈은 줄었다. 토익 시장 자체가 감소 추세로 돌아선 영향도 컸다 한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이 즐겁고 편하다 말한다. “상황이 어떻건 내가 재미있으니까요. 꾸준히 제 방송을 봐주고 소통해주는 팬도 생겼고요. 방송 전체를 다 따지자면 시청자 수가 엄청난 편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학습 방송 카테고리 내에서는 보는 사람이 많은 편에 꼽혀요. 충분히 행복합니다, 요즘.”글 CCBB 문현웅시시비비랩
냉장고에 자물쇠 달아 1위…한국기업의 '전략'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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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이 중동에 '자물쇠 달린 냉장고' 수출한 이유는? 해외 진출을 꿈꾸는 기업이라면, 목표로 하는 나라의 문화와 풍토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역 특성을 잘 반영한 상품이나 마케팅 전략은 현지에서 호응을 얻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 전자 업체들은 과거 이런 지역 특화 상품을 다수 출시해 성공을 거둔 경우가 많았다.   ◇중동에서의 LG전자   지난 2003년 LG전자는 중동 시장에 ‘메카폰’을 출시했다. 성지(聖地) ‘메카’의 방향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소프트웨어를 내장한 모델이었다. 지역민 대부분이 이슬람 신도로, 메카를 향해 하루에 다섯 번씩 절을 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 모델은 현지에서 매우 인기를 끌어, 2009년엔 후속작 ‘메카폰2’까지 나왔다. 기존 사양에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음성과 문자로 제공해주는 기능을 더했다. 또한 매일 기도 시간을 정시에 알려주고, 기도 중 전화가 울릴 때 자동으로 수신 거절하는 옵션까지 붙였다. 메카폰./ 네이버뉴스 2004년 10월엔 ‘대추야자 냉장고’를 내놓아 히트를 쳤다. 중동인이 즐겨먹는 음식 ‘대추야자’를 최적 상태로 보관해주는, 한국으로 치면 김치냉장고와 비슷한 스타일 가전제품이다. 대추야자를 영하 25도에서 급속 냉각해 6개월간 보관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준다. LG전자가 비슷한 시기 판매한 ‘트로피컬 에어컨’도 인기였다. 보통 에어컨과는 달리 섭씨 54도에서도 무리 없이 작동하는 중동 특화형 상품이었다. 대추야자 냉장고./ 네이버 뉴스 이런 일련의 현지화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어, 2004년 실시한 중동 지역민 대상 갤럽 조사에서 LG전자는 “가장 먼저 생각나는 전자 브랜드” 1위를 차지했다. 요르단에선 무려 80%가 LG전자를 지목했고, 중동 전체를 통틀어도 LG전자를 고른 비율은 55%에 달했다. 훨씬 먼저 현지 시장에 진출해 있던 일본 제조사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치였다.   ◇'자물쇠 냉장고' 마케팅   대우전자는 1998년 중동 지역에 자물쇠 달린 냉장고를 출시했다.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을 싫어하는 중동인의 기질을 감안한 동시에, 물이 귀한 중동 지역에서 냉장고 속 음료를 자주 꺼내 먹는 걸 억제하는 효과까지 노린 제품이었다. 이 제품은 한때 대우의 수출형 냉장고 모델 중 8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네이버 뉴스 LG전자도 비슷한 시기 자물쇠 냉장고를 내놓았다. 이들은 중동뿐 아니라 인도 시장에도 이 제품을 내놓아 상당한 판매량을 올렸다. 인도에선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하인을 두는 일이 흔한데, 이들이 음식을 마음대로 꺼내 먹는 걸 방지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LG전자는 2009년 인도에서 가장 신뢰도 높은 브랜드를 뽑는 ‘브랜드 에쿼티’ 조사에서 소니와 필립스 등 글로벌 기업들을 제치고 소비자내구재 부문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전장에서의 스피커폰    지금은 사라진 기업의 사례긴 하지만, SK텔레텍이 2001년도 즈음 이스라엘 시장에 진입했을 때 썼던 전략도 유명하다. 이들이 첨병으로 쓴 아이템은 ‘스피커 휴대전화’였다. 전시상황이 잦은 이스라엘에선 사용자가 빈번하게 총격전을 벌여야 하는 위급 상황이 많다. 양손으로 소총을 쥐거나, 한 손으론 총을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운전을 하는 때가 드물지 않다. 스피커 휴대전화는 이런 때에도 비교적 간단히 통화를 할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인구는 600만명, 휴대전화 판매량은 연간 70만대 선이던 이스라엘 시장에서 SK텔레텍은 이 모델 하나만으로 2년여에 걸쳐 총 30만여대를 팔았다. 시장 점유율도 50% 선을 오갔다. ◇항상 성공은 아니야     물론 현지화를 해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도리어 어설픈 시도로 욕을 먹는 경우까지 있다. 가령 코카콜라는 외국어 사용을 꺼리는 중국 현지 정서를 반영해, 발음이 비슷한 ‘커커컨라(蝌蝌啃蜡)’ 이름으로 상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현지화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 명칭을 ‘커커컨라’로 잡은 게 문제였다. 이는 ‘올챙이가 양초를 씹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처음 보는 검은색 액체에 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훗날 현지 문화를 다시 연구해 제품명을 ‘커코우커러(可口可乐)’로 바꾼 뒤에야, 코카콜라는 중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또한 현지화를 잘 해놓고도, 기존에 지역을 제패하던 상품을 제치질 못해 의미 없이 끝나는 때도 있다. 음료 브랜드 네슬레는 2001년 중국 시장에 아이스티 제품 ‘빙상차(氷爽茶)’를 내놓은 적이 있다. 중국인 입맛에 거슬리지 않는 이름과 맛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신통치 못한 매출을 기록하다 결국 2014년 판매 중단 결정을 내린다. 현지 취향에 따른 것까진 좋았지만, 캉스푸나 퉁이, 와하하 등 중국 토종 브랜드 음료를 뛰어넘는 ‘한 방’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경쟁에서 밀려 버렸다.  심지어 현지화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잘 나가는 기업도 있다. 코스트코가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 지부를 본사 방침과 동일하게 운영하고 있다. 현지화 시도라고는 대만 코스트코 매장에서 ‘북경 오리 피자’를 파는 정도 수준이다. 그럼에도 매출에 타격을 입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한국 코스트코 양재점은 전 세계 지점을 통틀어 매출 1위를 다투는 판이다. 미국 기업 애플처럼 업계 위상이 높고 충성 고객이 많은 브랜드일수록 이런 전략을 택하는 때가 많다. 실제로 애플은 기기 옵션은 커녕 애프터서비스마저 현지인에 대한 배려가 없지만, 전 세계 소비자들의 의사결정엔 별 영향이 없다.  최근 국내 전자 가전업체들이 예전에 비해 현지화를 덜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현지 조건에 맞춰줘야만 경쟁력이 생겼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브랜드만을 보고도 물건을 사는 고객 또한 상당해졌기 때문이다. 현지화 전략이 필요할 때가 있긴 하더라도, 어느 상황에나 꼭 택해야 할 '무적패'는 아닌 셈이다. 아무튼 이런 사례들이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사전에 현지화와 브랜드 원형 유지 사이 유불리를 철저히 연구해 가려내되, 현지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면 기존 제품을 압도할 수 있는 특징과 장점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 CCBB 문현웅 시시비비랩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인, 🌕🌕으로 월수 4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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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터넷 방송에서 월 수입 4000만원 올리는 한국인 크리에이터지난 2017년 3월 중국 창사(長沙)의 허룽 스타디움. 한국과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2018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앞 둔 시각.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한국뚱뚱'이란 이름으로 방송을 하는 유지원씨, 중국 시민들을 인터뷰하는 방송 장면 / jobsN, 빌리빌리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든 한 20대 여성이 경기장 입구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에게 예상 경기 점수와 승패 예측, 좋아하는 선수 등을 물었다. 중국인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 여성은 한국인 유지원(25)씨.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1인 방송제작자'(크리에이터)다. 방송에서는 '한국뚱뚱'(韓國東東,韩国东东)이라는 이름을 쓴다. 유씨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인 크리에이터 중 한 명으로 '왕홍'이라 불린다. 왕홍(网红)은 중국 SNS 스타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의 인기 BJ(방송진행자)와 비슷한 뜻으로 보면 된다. 중국 5대 소셜미디어 '빌리빌리·미아오파이·유우쿠·웨이보·위챗'에서 유씨의 방송을 구독하는 중국인은 약 50만명. 방송이 나갈 때, 평균 시청자 수는 300만명에 달한다. 첫 방송을 시작한지 1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5대 소셜미디어에 567개(중복 포함)의 영상을 올렸다. 유씨는 올해 8월 중국 관영 영자신문사 '차이나데일리'가 선정한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 명단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유씨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문제로 한·중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 중국에서 열린 양국 간 축구 경기 때, 경기장 반응을 전하는 방송을 실시간으로 했다. 한국 제품 불매 운동과 한류 스타에 대한 제재 조치가 취해지는 상황에서도 당시 유씨가 진행한 방송의 시청자 수는 500만명이나 됐다. "저도 방송 들어가기 전에는 겁을 많이 먹었는데, 막상 방송을 시작하니 중국인 모두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해줬어요. 시청자 수도 평소보다 많았고요. 최근 진행한 방송 중 기억에 가장 많이 남습니다."-뚱뚱은 무슨 뜻인가, 어떤 방송들을 주로 하나"뚱뚱은 중국인들이 귀엽게 별명처럼 부르는 말이죠. 일종의 중국 '의성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통 아이들을 귀엽게 부를 때도 이 '뚱뚱'이라는 말을 쓰죠. 최근엔 팬분들이 '똥똥(東東)'이라고도 해주세요. 저를 옆집 동생처럼, 언니처럼 친근하게 받아주시거든요. 중국과 한국의 드라마나 인기가수 등을 소개하고, 패션과 화장품 등 다양한 컨텐츠를 주제로 방송합니다. 중국인에게도 생소한 현지 중국전통 요리를 맛보고, 중국 시내에서 시민들을 인터뷰하기도 합니다. 10대부터 30대까지 주로 유행에 민감한 젊은층들이 방송을 시청합니다. 한국인인 제가 적극적으로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세요."-중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2001년 열 살 때 아버지 사업차 가족들과 함께 중국에 가게 됐습니다. 중학교 때 돌아왔으니 5년동안 지냈어요. 나이가 어려서 중국에 대한 이질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람들 생김새가 비슷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언어도, 생활도 모두 제겐 자연스러웠죠. 중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 당황스러운 순간이 많았어요. 중국에서 살았다 하면 친구들 반응이 보통 부정적이었거든요. ‘위험하지 않냐’, ‘살기 불편하진 않냐’ 등의 질문을 받았어요. 한국과 중국 모두 제게는 똑같이 소중한 추억들이 있는 곳입니다. 양국간 오해를 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것도 한·중 우호 관계 증진을 위해서였나“네. 한국외대 중국어과(11학번)를 졸업했어요. 신문방송학도 같이 전공했죠. 학교 다닐 때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는 스타일이었어요. 한국에 관광 온 중국인들을 가이드하는 동아리 활동과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를 소개하는 것에 보람을 느꼈거든요. 서울 맛집 곳곳에 데려가 음식에 대한 설명을 해줬죠. 지금 제가 하는 방송도 그 때 동아리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방송을 촬영중인 유지원씨(왼쪽), 중국 식당에서 친구와 함께 방송중인 모습(오른쪽)-언제부터 방송을 진행하겠다는 생각을 했나“저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카메라 앞에 서서 방송을 진행하게 될 줄은 몰랐죠. 끼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중국 친구들이 보내준 영상 링크를 통해 중국 ‘1인 방송’을 자주 접했어요. 중국은 재미있는 영상을 공유하는 문화가 발달해있거든요. 몇 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서는 ‘1인 방송’이 생소한 개념이었어요. 반면 중국은 일찌감치 1인 방송이 유행했습니다. 한국에선 전문 인력이 필요하거나 공식 채널을 통해야 하는 등 방송 제작 환경이 좋지 않았어요.  반면 중국 1인 방송은 쉽고 빠르게 방송이 만들어졌죠. 중국은 어떤 분야든 변화가 급속도로 일어나요. 중간 단계를 건너뛸 때가 많아요. 영상 컨텐츠 소비 방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텔레비전에서 PC, 모바일 순대로 사용패턴이 변해가는데, 중국인들은 대부분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모바일에 친숙해졌거든요. 이런 과정을 보며 관련된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왜 관련 분야 취업이 아닌 사업을 하고 싶었나“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규칙이나 틀에 얽매인 것 없이 두 나라의 문화를 자유롭게 경험하며 자랐거든요. 부모님도 취업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만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 끝에 얻은 답이 사업이었습니다. 구체적인 비전이 있던 건 아니었고, 처음에는 막연했죠. 졸업이 다가오자 친구들은 모두 취업준비에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2015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진행하는 청년창업캠프에 등록했어요. 사업에 대한 아이템을 개발해보고 조언을 듣고자 했죠. 그 캠프에서 지금 함께 일하는 김정민 대표님을 멘토로 만나게 됐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 출신인 대표님은 당시 글로벌 기업들의 자문가로 활동하며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도 높은 분이셨어요.모바일 중심으로 유통되는 1인 방송이 중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중요 컨텐츠가 될거라고 말씀해주셨죠. 캠프를 떠나서도 대표님과 자주 연락하며 사업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차라리 네가 직접 방송을 해서 너를 브랜드로 만들어보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중국의 경우, 저에 대한 대중들의 인지도를 쌓으면 제 가치를 내건 사업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도전을 해보기로 한거죠. 저와 함께 일하면서 김 대표님도 중국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 전문 소속사도 차리게 됐죠.”창업캠프에서 멘토로 만난 브랜드 매니저 김정민 대표-어떻게 준비했나. “6개월간 준비 과정을 거쳤습니다. 국내 모바일 영상 서비스 업체에서 잠깐 일하기도 했어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방송 컨텐츠는 무엇인지, 중국 시청자들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석했습니다. 2016년 9월, 빌리빌리(哔哩哔哩·중국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첫 방송을 했어요. 중국 10~20대에게 인기가 많은 사이트기 때문에 한국 연예인, 패션, 화장품과 관련 방송 컨텐츠에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죠. 첫 방송은 중국 인기 아이돌그룹 ‘티에프보이즈(TFBOYS)' 뮤직비디오를 보며 친구와 수다떨듯 감상평을 하는 내용이었어요. 한국어로 진행했죠. 첫 방송인 만큼 한국인이라는 제 정체성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중국어 자막을 넣었습니다. 올리고 다음날 확인해보니 조회수가 300이었어요. 아무 기대도 없었는데, 높은 인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한달 후엔 방송 조회수가 1만명 정도로 늘었고, 4개월 후에는 평균 300만명의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왜 반응이 좋았다고 생각하나“중국인이 K-POP을 보는 경우는 많은데, 한국인이 중국가수에 대해 평을 나누는 것이 신선했기 때문인 듯 합니다. 한국 사람임에도 중국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 가수들의 과장된 표정과 격렬한 춤 동작을 한국인들은 어색해하죠. 일종의 ’중국스러움‘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그게 자연스러웠어요. 어려서부터 봤던 모습이니까요. 제가 방송에서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중국 시청자들은 ‘한국 사람이 중국 문화에 대해 거부감이 없네? 잘 알고 있네?’ 라고 생각한거죠. 방송에서 화장도 거의 안했어요. 옷도 평소 입는대로 입었죠.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소통했어요. 큰 욕심 없이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원칙 때문이었죠. 방송에서 한국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어로 진행하다가 한국어를 사용해도, 그 뜻이 뭐냐며 물어보는 시청자도 많거든요. 방송에 한국어 자막을 다는데, 그 자막으로 한국어를 공부했다는 학생들도 있습니다.”태국 인기드라마 '메이크 잇 라잇' 출연 배우 인터뷰 후 기념촬영(왼쪽), 중국 인기배우 루카스(Lucas·姚望)와 레오(Leo·楊業明)와 함께 / 인스타그램 @allproducer-인터넷 방송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어야 이목을 끄는 것 아닌가“제가 창작하고 싶은 컨텐츠는 자극적인 게 아니었습니다.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더라도 시청자에게 친근하고 다가가는 방송을 하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유행하는 인형뽑기 방에서 방송을 하거나 한강에서 치맥을 먹으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죠. 훌륭한 실력은 아니지만 메이크업을 할 때도 있어요.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혼밥, 혼술과 같은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한 곳입니다. 재밌게 놀고 수다떠는 제 모습을 보며 편안한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라고 해주세요.”중국친구와 함께 중국 먹방(먹는방송)을 선보이는 유지원 크리에이터 / 빌리빌리-하루 스케줄은 보통 어떤지“주로 편집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요. 저는 방송 녹화 시간이 40분에서 한시간 정도로 짧은 편이거든요. 기획이나 내용은 현장에서 바로 하는 편입니다. 시청자가 원하는 방송 내용을 메시지를 받아서 반영할 때가 많습니다. 한국 화장품 신상 소개나 요즘 한국에서 인기 있는 패션 브랜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려달라는 문의가 많아요. 관련된 주제를 진행하기 위해 미리 상품을 준비해놓고 장소를 봐두죠. 1인 방송은 촬영부터 기획, 진행까지 모두 크리에이터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책임지기 때문에 저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갈 수 있어요.”   -중국 크리에이터가 돈을 버는 방식과 월 평균 수입은“제 방송에 투자하겠다는 기업들의 제안으로 수입을 얻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방송에 자연스럽게 제품을 노출하는 간접광고(PPL)와 제품에 대한 직접적인 소개가 수입의 주된 원천입니다. 중국 기업들은 크리에이터를 광고 플랫폼으로 간주합니다. 중국인들은 인터넷 쇼핑에 대한 불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은 크리에이터가 제품을 소개하고 보증한다면 제품에 대한 관심과 믿음이 생깁니다. 이는 곧 제품 구매로 이어지죠. 초반에는 기업과 일회성으로 계약을 맺다가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으로 매출 상승이 입증되면 나중에는 6개월, 1년 단위의 장기 계약을 맺습니다. 저는 현재 직접 소개(브랜디드 광고)를 할 경우, 방송 1회당 1000만원 정도의 계약료를 받습니다. PPL은 건당 500만원 정도를 받습니다. 모델료, 기업체외의 공동 기획 등을 합하면 월 평균 4000만원 정도 수익을 냅니다.”한국뚱뚱 영상이 시작되기 전 보이는 소개영상 (출처 : http://www.bilibili.com)-앞으로의 계획“당분간은 방송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크리에이터는 연예인과 달리 도전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합니다. 한국과 중국이 함께하는 문화 교류의 장이라면 어디든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제 이름을 건 패션 브랜드 사업도 해보고 싶어요. 제가 입은 옷에 관심을 갖는 팬들이 많거든요. 중국에서 활동하고 싶은 한국 크리에이터분들과 함께 방송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중국 문화를 사랑하고 중국인들에게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누구든 환영입니다.”글 CCBB 김지아 인턴시시비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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