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펜서: 와칸다 포에버>

2022.11.11.

와칸다 포에버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대체 내가 이 영화에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를 도저히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기 이전에는 여성주의 서사, 아이언하트 등장 등으로 PC 범벅인 영화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블랙 펜서인데 완전히 죽을 쑤진 않았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니 내가 감탄을 해야 할지, 짜증을 내야 할지, 분노를 해야 할지를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남는 것이 전혀 없었다.

우선 장점부터 이야기 해보겠다. 채드윅 보스만에 대한 예우는 확실하다. 사실 난 블랙 펜서가 흑인 사회에서 같는 위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하지만 1대 블랙 펜서의 장례식 장면과 조용한 분위기에서 채드윅 보스만 중심으로 나오는 마블 로고 장면은, 마블이 그래도 배우에 대한 예우는 확실하게 표현한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캐릭터 세대교체를 할 때 이전 캐릭터는 없는 사람 취급하고 새 캐릭터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있는데, 와칸다 포에버는 왜 1대 블랙 펜서가 퇴장하게 되었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명확하게 잘 설명해준다.

그 다음 장점은 탈로칸이다. 얼핏 보면 탈로칸은 아바타의 나비족과 아쿠아맨의 아틀란티스를 베낀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탈로칸의 수중 도시와 나모라, 아투마 같은 탈로칸 용사들의 디자인이 너무 잘 되었고, 대중문화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멕시코 신화를 반영한 점도 원작을 영화에 맞게 잘 수정했다는 느낌을 줬다. 특히 나모라의 경우 영화에서 적 역할이고 조연의 위치이지만 캐릭터 디자인과 액션은 주연 못지않을 만큼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로는 2대 블랙펜서나 네이머보다 더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엄청 외양이 아름답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행동과 말에서 나오는 강력한 포스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고 나도 저렇게 강한 자 밑에서 보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였다.

장점은 이게 전부고 이제부터는 단점이다. 우선 이 영화, 액션이 너무 빈약하다. 물론 채드윅 보스만도 추모하고, 2대 블랙펜서도 등장해야 하고, 아이언하트 떡밥도 다루고, 탈로칸과 네이머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했던 것은 이해하지만, 적어도 히어로 영화를 표방하고 있으면 액션을 기본은 갖춰야 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액션 장면이 와칸다 군대vs탈로칸 군대와 슈리vs네이머인데 충돌하는 군대 수도 적고, 타격감도 크지 않다. 이렇게 빈약한 액션을 보고 있으면 차라리 서로 총 들고 싸우는 게 더 박진감 넘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언하트는 이 영화에 등장할 필요가 없었다. 와칸다 포에버와 아이언하트의 연결점은 아이언하트가 만든 비브라늄 탐지기가 전부다. 인간들의 비브라늄 채굴을 막기 위해 탐지기를 만든 사람을 죽이겠다는 네이머의 논리는 다소 과격해보이긴 하지만 스토리가 이어지게끔은 만든다. 그런데 아이언하트가 탈로칸과의 전쟁에 굳이 참여해야할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 여왕이 네이머의 공격으로부터 아이언하트를 구해줘서 이에 보답하기 위해 참여한 것이긴 하지만, 전쟁에서 아이언하트의 역할은 그렇게 많지도 않다. 슈트(아이언맨이랑 닮지도 않음) 입고 좀 날아다니다가 에너지파좀 몇 번 쏴주고, 계속해서 ‘오 예!’, ‘한 번 가볼까?’ 같은 분위기의 대사를 계속 친다. 문제는 이런 장면을 보는 사람은 아이언하트의 활약에 대해 전혀 기대도 되지 않고 너무 유치하다는 느낌만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중에서 아이언하트가 토니 스타크에 버금가는 천재로 나오는데, 그걸 전부 설명으로 때운다. 아이언맨은 피랍된 열악한 환경속에서 직접 아크 원자로를 만들고 마크1 슈트를 만드는 등, 관객들에게 토니 스타크가 비범한 천재임을 명확히 알려준다. 하지만 아이언하트는 3살 때 창고에서 뭘 만들었고, 비브라늄 탐지기도 폐품으로 만들었고, 스타크 인더스트리 기술(대체 설계도는 어디서 가져온 건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대학생들 과제도 대신 해주고, 암튼 엄청 천재임이라는 설명으로 끝이다. 물론 영화에서 슈트를 입고 활약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총체적 난국이 시작되는데 우선 슈트가 멋이 없다. 첫 번째 슈트는 마치 토니스타크가 처음 만든 마크1 슈트와 비슷한 여할을 부여하려 한 것 같은데.... 그냥 평범한 엑소 슈트로밖에 안 보인다. 오히려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 나오는 전투용 슈트가 훨씬 더 멋지다. 그리고 산소마스크도 안 쓰고 드론 처리하겠답시고 높이 올라가다가 떨어지는 장면은, 아이언맨 슈트가 온도 유지 기능이 없어 얼어붙은 채로 떨어지는 것을 따라하는 것 같았는데 슈트가 멋이 없으니 그런 의미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쫓아오는 경찰을 막겠다고 드론을 격추시켜 경찰차 쪽으로 떨어지게끔 만든 뒤 환호를 하는데, 경찰에다가 유사 가미카제 공격을 시켜놓고 감탄한다는 장면을 보고 대체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두 번째 슈트는 아이언맨보다는 울트라맨 같다. 아무리 아이언하트가 아이언맨 후계자라고 해도 슈트부터가 아이언맨 같지 않으니 받아들여질 리가 만무하다. 차라리 억지로 아이언하트를 끼워 넣을게 아니라 온전히 블랙펜서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와칸다와 탈로칸 양쪽 모두에 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와칸다와 탈로칸은 비브라늄을 차지하기 위한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에 저항하는 엄청난 3세계 초강대국의 역할을 맡고 있다. 물론 코믹스 원작에서 와칸다와 탈로칸은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것은 맞고, 모든 히어로가 다 몰려와도 두 국가를 이기기 어려운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강력한 국가들이 총도 없고 탱크도 없고 ICBM 같은 현대 무기도 없이(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잘 안나온다.) 전 세계와 맞서 싸울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원작 설정을 알고 있는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네이머의 경우 원주민을 노예로 부리는 식민지 개척자들을 보고 인간 세상에 환멸을 느꼈다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이 지구상 모든 국가를 다 정복한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아니 그러면 인도, 인도네시아처럼 식민지배를 당했던 나라도 그냥 ‘인간’이니까 다 정복하겠다는 것인가? 그러면 그건 대량학살이지 뭐가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숭고한 전쟁인가? 물론 인간의 본성이 악하고 여러 학살이나 환경파괴 등을 자행한 것도 맞긴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인간을 증오한다는 느낌이 들어 네이머의 입장에 공감하기보다는 천조국 군대로 생선 인간들 다 패버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정리하자면 와칸다 포에버는 채드윅 보스만 헌정 영화로는 괜찮지만, 액션도 빈약하고, 캐릭터 매력도 떨어지고, 작중 국가들의 입장에 공감도 별로 되지 않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히어로 영화라기보다는 와칸다라는 국가의 역사를 다룬 전기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마블 영화는 믿고 보는 영화가 아니라, 보지 않아도 무방한 영화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영원한 승자는 없다지만 엔드게임 서사 이후 마블은 심각하게 작품의 매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늦기 전에 관객 수준을 탓하는 대신 히어로 영화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평가: 2.5/5점

한 줄 평: 곤약 같은 영화. 배는 채울 수 있는데 맛도 향도 없다.

[추천]

-채드윅 보스만을 기리고 싶은 사람

-블랙 펜서를 좋아하는 사람

-‘이범베’, ‘와칸다 포에버’ 대사를 다시 듣고 싶은 사람

[비추천]

-PC를 싫어하는 사람

-블랙 펜서나 채드윅 보스만에 그렇게 깊은 애정은 없는 사람

-아이언하트를 싫어하는 사람

-161분의 상영시간을 견딜 수 없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