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흔히 말하는 '이 시국'에 새 직장을 구하는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왔으나
이대로 이 자리에 정체되어있어선 안된다,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결심을 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새 직장을 구하는 동안, 그간 못다녔던 은하수 여행을 잔뜩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은하수 시즌이 시작되기도 했고...
4월 6일.
작년 가을에 가보고 봄철에 다시 와봐야겠다고 생각한, 영월의 요선암 돌개구멍을 찾기로 했다.
요선암은 영월에 있지만
대중교통편으로 접근하기엔 제천에서 가는 편이 더 좋다.
버스터미널 근처의 하나은행 앞에서, 주천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집에서 조금 미적거리다가 출발시간이 조금 늦어서
택시비를 조금 내더라도 택시를 타고 빨리갈까 싶었는데
어차피 이 시기에는 은하수가 새벽 늦게 뜨는 편이기도 하고
요선암은 한번 가본 적이 있기에 길 찾기가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해서 버스를 탔다.
역시나 늦게 출발한 탓인지
주천버스터미널에서 내렸을땐 이미 어둑어둑해져있었다.
아까 그 제천터미널에서 요선암까지 직통으로 가는 버스도 있긴한데
코로나의 영향때문인지 도통 시간이 맞지않는건지,운행 자체를 안하는건지
그 버스를 본 적이 없어서 주천버스터미널에서 한 4.5km쯤 걸어서 요선암으로 가기로 했다.
점점 어두워지는 길을 따라 요선암에 도착했다.
요선암의 낮 사진도 충분히 찍을만하지만 작년 가을경에 이미 찍었기에 큰 아쉬움은 없었다.
지체할 시간 없이 바로 돌개구멍으로 내려갔다.
낮에는 아름다운 비경인데, 밤이 되자 은근히 기괴해보이는 돌개구멍.
접지력이 좋은 등산화를 신고 있었지만 미끄러지지않게 조심조심 돌개구멍 사이를 지나갔다.
(볼빨간 사춘기-별 보러 갈래?)
구도만 대략 잡아놓고 은하수가 뜨길 하염없이 기다렸다.
홀로, 걸어서 사진 여행을 다니다보면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무한히 펼쳐진 길을 걸으며 온갖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이 생겨서 좋다.
처음에는, 생각이란 것을 떨쳐낼 수 있을거라 믿었는데
그...생각이란 것이 쉽게 지워지는,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듯 차곡차곡 마음 속에 다시 개어두는 시간일 뿐이다.
바쁜 일상에선 이런 시간조차도 귀하다.
잠시 쉴때 많이 가지도록 해보자...
생각의 무게는 별로 줄어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보기좋게 정돈해두며 은하수를 기다렸다.
새벽 2시가 넘어갈 무렵
내심 기다렸던 은하수가 산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역시 봄철에 오니 원하는 구도로 은하수가 담긴다.
(2020년 9월에 찍었던 사진. 산 사이가 아니라 산 너머로 은하수가 수직으로 꽂힌다. 이것도 볼만하지만 다른 구도로 찍어보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은하수가 올라오면
삼각대 한 대는 고정시켜놓고 촬영을 하고
나머지 한 대는 조금씩 구도를 바꿔가며 촬영을 해본다.
단 한 순간도 은하수를 놓치기 싫어서 최대한 많이 담으려는 속셈이다.
주천강 상류 빠른 물살의 침식작용이 만들어낸 특이한 지형이
어디에서 찍어도 제법 괜찮은 사진을 건지게 해준다.
물론 그 어둠 속에서 바위 사이를 미끄러지지않게 다니느라 조금 진이 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기는 싫었다.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에서 겨우 벗어난 나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수많은 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심취한 동안
어느샌가 은하수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몇시간을 봐도 찰나처럼 짧은 마주침이라 아쉽기만하다.
새벽 4시가 넘어갈 무렵, 나는 철수를 결정했다.
어차피 4시가 넘으면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올 시간이기도 하고
은하수도 산 위로 많이 넘어가서 구도를 편히 잡기도 어렵다.
간만에 은하수를 봐서, 사진찍으러 나와서, 바람이라도 쐴 수 있어서 한껏 들뜬 정신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주천버스터미널로 돌아가는 길.
어느샌가 별들은 자러가고 아침이 밝아왔다.
언제 또 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나는 약 반년만에 다시 찾은 요선암에
추억을 묻어놓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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