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미국의 선진맥주를 맛본 맥주 쪼렙퍼는 이런 고렙맥주를 쪼렙찌끄레기한테 판 슈퍼마켓 주인장에게 대한 분노를 불태우며 주먹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하는데...

그 다음날은 Austin의 Hopdoddy라는 유명한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햄버거와 맥주를 같이 파는 집인 것으로 보였는데 사실 여기선 맥주는 안먹고 밀크쉐이크 먹음...

Hopdoddy의 메뉴중에선 비싼 축에 속하는 Primetime 버거. 정갈한 듯 청순해 보이는 햄버거지만 사실 아래로는 볶은 양파를 질질 흘리며 나를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단면샷. 초점이 흐리멍텅하게 맞았는데 여튼 미디움으로 구운 패티의 질감과 살짝 그슬린 불향, 브리치즈의 눅진한 풍미와 코끝을 스치는 트뤼플 소스의 자취가 정신을 못차리게 만드는, 몹시 훌륭한 햄버거였다.

맛집인정 땅땅땅.

그리고 오늘은 리벤지매치를 위해 다시 일전의 슈퍼마켓을 찾았다. 그리고 나와 선배는 그 슈퍼마켓 주인장에게 짧은 영어와 손짓발짓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너가 추천해준 맥주 잘 먹었다 이놈아. 그걸 먹고 느낀게 우리는 뭐 이상한 거 안 넣고 그냥 몰트랑 홉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맥주가 취향이더라. 제발 그런걸로 추천해줘라. 라는 등등..

그러자 슈퍼마켓 주인장은 이놈들 맥덕인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맥알못 새끼들이었군... 하는 표정을 지으며 또 나름의 추천맥주를 골라서 턱턱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딴 첫병은 다음과 같았다.

이름은 허큘리스(헤라클레스)라고 되어있는데 어째 라벨 디자인은 그냥 단백질보충제 같다는 점은 넘어가자.

사실 우리는 이거 딱 한모금 먹자마자 그래 이거야! 우리가 원했던거야! 싱글벙글!

하면서 먹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맛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맛을 즐겼던거라기보다는 그냥 승리감을 즐겼던 것 같다.

뭐,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던듯.

이어지는 맥주판. 사실... 맛이... 제대로... 기억이... 안난다...

확실히 우리는 이 날 맛이 아니라 영어로 우리가 원하는 걸 잘 설명했어! 라는 승리감을 즐겼던 게 분명하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던걸로 기억한다.

사실 인간이 간사한게, 나빴던건 잘만 기억하지만 좋았던 거는 저어어엉말 좋지 않은이상, 그냥저냥 좋다 이런정도는 기억을 못하는게 당연한 일이라...

나만 그렇다구여? 제성해여.

마지막으로 딴 병. 이 브랜드는 우리나라에도 제법 들어오는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슈퍼마켓 주인장이 골라주자마자 병 밑에 씌여진 커피 바닐라 태그보고 우리가 극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건데, 슈퍼마켓 주인장이 이거 정말 좋다고, 한번 먹어보라고, 진짜 맛있다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추천해주길래 그래, 어디 한번 믿어보자 하고 어쩔 수 없이 집어왔던 거다.

그런데 이게 이 날 먹었던 거 중에선 제일 기억에 남았다. 좋은 의미로.

한 모금 넘기자마자 코끝으로 올라오는 커피향과 부드러운 달달함, 그리고 그에 어우러진 탄산. 이건 맥주라기보다는 깔루아에 음.. 토닉을 섞은거라고 해야하나? 그런 정도의 느낌이었다.

술 자체로서는 8점정도 주고싶다. 그런데 맥주의 홉이나 몰트의 맛이 다소 죽은 느낌도 있어서 맥주로서의 점수는 그닥... 그래도 맛있으니 좋은거지.

여튼, 우리는 두 번째 슈퍼마켓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자축하며, 씻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