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술의 세계에 입문하던 시기,

동네 슈퍼에서 4천원 가격에 200ml짜리 홍주 포켓 병을 발견했었다.

빨간 색깔도 예쁜데다 한국 전통주라는 사실에 솔깃해서,  

한 병 사들고 잔에다 쫄쫄 따라 먹었었다.

그것은 내가 생애 처음으로 마셔 본 도수 40도 이상의 술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맛에 대한 감상은 좋지 못했다.

19도 이상의 술은 먹어본 적도 없던 당시에는 \'어우 독해\' 하면서 향이 모아지는 와인잔(!)에 든 홍주를 마시면서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아픔을 참았었다.

심지어 안주로 먹었던 게 달걀이라 달걀 비린내가 섞이면서 무슨 맛인지 모를 이상한 맛이 났었다.

아무튼 200미리짜리 포켓 병을 다 비우고 알딸딸한 상태에서 잠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마치 술을 안 마셨던 것마냥 멀쩡했던지라,

맛은 좀 독해도 이거 참 잘 만든 술이구나 싶었던, 좋은 이미지를 가졌던 술이었다.

그리고 이 밤, 다시 홍주를 찾았다.

똑같은 브랜드, 똑같은 디자인, 똑같은 용량, 똑같은 도수, 그리고 똑같은 가격.

한 모금 마셔본 후의 감상은, 이 녀석이 이렇게 부드러웠나 싶었던 의아함이다.

술 한 방울을 입 안에 담았을 때,

몰트 위스키는 단순간에 퐁 하고 기화되면서 향이 확 하고 입 안에 퍼지는데,

홍주는 입에 들어간 뒤에도 물과 섞인 채로 부드러움을 유지하다가 천천히 향을 뿜어내어 혀를 제압한다.
  
첫 모금을 마셨을 땐 향이 잘 느껴지지 않으니 그야말로 술이 술술 넘어간다.

문배술과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문배술이 강렬한 누룩향으로 입과 혀를 자극하는 한편 홍주는 부드럽고 꾸준하다.
  
뭐 결론은 헤헷 마시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