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갤 들어오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눈팅도 안 하고 조용히 지냈는데 요사이 종량세 얘기로 시끌시끌한 것 같더라.

뇌피셜 헛소리가 너무 많아서 어느 정도 정리해본다. 믿든 말든 알아서 해라. 어차피 이런저런 소리 나오는 곳이 주갤이니까

1. 종량세 전환은 사실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정말 조심스럽지만 업계 내에서는 90% 정도 기정사실이라고 본다. 처음에는 다들 긴가민가 했었지만 이미 공청회도 하고, 메이저 언론사에서까지 다 언급이 되는 마당에 돌연 취소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2. 왜 맥주만 하냐? 위스키 보드카 등등 다른 증류주는?

종량세의 입법 목적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왜 뜬금없이 정부에서 종량세 하겠냐? 세금 더 걷으려고? 세금 덜 걷으려고?

세상에서 돈 문제만큼 가장 민감한 것이 없다. 정부도 호구가 아닌 이상 반발 심한 거 뻔히 알거다. 가장 중요한 입법목적을 보자.

궁극적으로 종가세 -> 종량세로 전환하는 이유는 "국내 수제맥주 양조장의 경쟁력 강화"다.

지금의 종가세 체제에서는 맥주 수입사나, 국내 수제맥주 양조장이나 다 불합리하다. 수입맥주의 경우 (원가+운송비)에 주세와 교육세가 곱해져서 붙는 식이다. 정밀검사비용, 기타 등등 비용은 따로 있지만 그런 거 무시하고. 괜히 냉장유통으로 수입하는 맥주가 비싼게 아냐. 냉장유통으로 맥주 가지고 오면 일반 컨테이너로 맥주 가지고 오는 것보다 3~4배 운송료 비싸다. 거기에도 세금이 따블로 붙으면 상상이 가지?

그런데 국내 양조장의 상황은 수입사보다 심해. 원가+운송비만 해도 그러려니 하는데 패키징 비용(박스, 캔/병 원가 등등)은 물론이고 양조장 건물 임대료에 양조장 직원 월급까지 잡다한 것들이 다 = 총 원가임. 여기에 세금이 따블로 붙으면 어느 양조장이 감사합니다 하겠어? 지금의 종가세는 국내 양조장에게 너무 불합리한 구조다.

게다가 맥주는 일제시대나 새마을 운동 하던 시절에나 고급 술이었지 지금 맥주를 누가 고급 술로 인식하냐? 물론 여기 서식하는 알중놈들은 그런 생각 하겠냐만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맥주는 싼 술"이라는 거다. 지금 언론들의 종량세 기사의 초점이 다 4캔 만원에 맞춰져 있는거 보면 상상이 가지?

자 이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위스키 보드카는 왜 안해주냐고? 이유는 간단함. 대다수는 위스키와 보드카가 싼 서민 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다 국내에 위스키 증류소, 보드카 증류소도 없잖아. 만약 우리 나라에 위스키 증류소나 보드카 증류소가 몇 개 있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수도 있지.

그리고 와인 얘기하는 놈들 있는데, 와인 주세는 30%다. 지금 맥주 주세는 72%고. 와인은 비싼 술이라는 생각을 보통은 가지는데 역설적으로 맥주 주세가 더 높다. 종량세로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3. 그러면 입법 취지처럼 국내 수제맥주 양조장들은 경쟁력이 강화될까?

사실 이 부분을 논의하기는 조심스럽다. 내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몇몇 분들하고 말씀은 나눠봤는데, 대체적으로 가지시는 생각은

소비자 기준에서는 가격이 크게 낮아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의견이다.

500원~천 원 정도야 낮아질 여지는 있겠지만, 양조장마다의 마진율도 있을거고 각자의 사정대로 가격 반영되지 싶음.

다만 다들 입을 모아서 얘기하시는 거는, 좋은 재료를 쓰거나 한정판 맥주들의 경우에는 지금에 비해서는 많이 낮아질 수 있다고 하심.

오히려 입법 취지와는 다르게 수입 크래프트 맥주의 경쟁력이 많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도 봄.

4. 4캔 만 원의 향후 전망

우선 4캔 만 원에 납품하는 수입사들은, 주세가 종량세가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낸다. 이건 사실이다. 무슨 만 원에 6캔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하는 언론이 있는데, 그런 곳은 구독 취소하는게 향후 인생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4캔 만 원이 3캔 만 원이 될까?

우선 수입사들의 마진율을 알아야한다. 물론 맥주 수입사는 여러 주류 수입사 중 가장 재미없는 분야다. 다른 수입사들은 "그 마진으로 하실거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라는 핀잔도 여러 번 한다. ㅋㅋㅋ... 와인이나 사케 수입사가 보는 마진율은 맥주 수입사에게는 꿈만 같은 수치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상식적으로 마진이 -가 되는 역마진 상황이라면 맥주 수입사가 4캔 만 원을 할까?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수입사들은 마진율이 많이 줄기야 하겠지만, 4캔 만 원을 유지한다고 마이너스 마진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선택은 수입사의 몫이 되겠지. 울며 겨자먹기로 마진율을 많이 낮춰서 4캔 만 원을 유지할 지, 기존 마진율을 최대한 사수하기 위해 3캔 만 원으로 할 지.

그런데 4캔 만 원짜리인 맥주가 제법 많잖아. 누가 총대를 메고 3캔 만 원으로 전환할까?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잘못 총대 멨다가 다들 쉬쉬하는 순간 그 브랜드는 시장에서 도태되겠지 ㅋㅋㅋ 자기 혼자서만 3캔 만 원 해버렸다가 다들 아무 반응 없으면 본인만 시장점유율 떨어진다. 결국 눈치싸움이라는 거.

결국 "수입사 사정따라 다르고", "시장 상황따라 다르다"가 정답이다. 주세는 올라간다. 마진율은 떨어진다. 그러나 마진율을 포기하고서라도 4캔 만 원을 유지할 지, 3캔 만 원이 될 지는 내 년에 시장이 정해줄 것.

5. 수제맥주 수입사의 향후 전망

역설적이게도, 국내 양조장의 경쟁력 강화가 입법의 골자지만 수제맥주 수입사들은 쌍수들고 환영하는 중이다.

우선 웬만한 수제맥주들의 주세는 확실히 내려간다. 얼마나 내려가는지는 맥주의 원가따라서 다르겠지. 아무튼 비쌌던 맥주라면 더욱 더 좋은 구조.

그러면 앞으로 수입 크래프트 맥주의 가격이 많이 내려갈까?

나는 "비싼 맥주"라면 확실하게 떨어지겠지만, 나머지 맥주들은 위와 마찬가지로 수입사 사정, 시장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가 정답이라고 본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맥주 수입사는 그 어느 주종의 수입사보다 가장 마진율을 못 보고 재미가 없다. 소비자들은 맥주가 싼 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주세는 72%로 국내 최고기 때문.

어떤 수입사는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정상 마진 미만으로 맥주를 납품했을 수도 있음.

업장도 마찬가지임. 업주들이 한결같이 얘기하는 건 맥주는 마진율이 너무 낮아서 재미가 없다라는 말이다. 주세가 낮아진다고 수입사, 업장이 기계적으로 가격을 반영할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몇몇 수입사나 몇몇 업장은 그간 못 봤던 마진을 조금씩 챙길수도 있는거고. 맥주 원가가 20% 낮아진다고 소비자가가 그대로 20% 낮아지는 건 미지수다.

또 너희들이 맥주 마실 때 뒤에 붙어있는 라벨 잘 보면 "기타주류"라고 표시된 맥주도 있음. 보통 부재료 넣는 맥주들이 "기타주류"로 많이 빠지는데, "기타주류"는 주세가 30% / 교육세가 10%로, 주세 72% / 교육세 30%인 맥주에 비해서 정말 많이 낮다. 괜히 수입사들이 틈만 나면 기타주류로 빼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게 아님.

지금 너희들이 마시는 "기타주류"인 맥주는 이미 주세가 많이 낮은데, 이런 애들은 종량세로 바뀐다고 생각보다 많이 내려가지는 않을거야. 물론 몇몇 말도 안되게 비싼 "기타주류" 맥주들은 내려갈 소지가 있겠지만 ㅋㅋ

그리고 맥주 마진이 재미가 없어서 기타주류로 뺀 다음 기타주류 마진을 맥주 마진처럼 봐서 ++되는 마진으로 나머지 마진 메꾸는 수입사들도 있음. 수입사마다의 전략이니 뭐라할 건 아님.

말이 길었는데, 결국 수입맥주도 시장이 가격을 정해줄거다. 어떤 수입사는 세금 떨어지는 대로 납품가 내리는 곳도 있을거고, 어떤 수입사는 그간 못 봤던 마진 조금 더 챙겨서 조금 내릴 수도 있고. 업장도 마찬가지. 그대로 반영하는 업장이 있을거고, 그간 못 봤던 마진 조금 더 보는 곳도 있을거고. 최종 소비자가는 내년 돼야 알 수 있을거임.

암튼 내년까지 기다려봐. 기다리면 답은 나온다. 무분별한 뇌피셜은 하지 말고, 궁금한 거 댓글 달면 답해줌. 그리고 가격으로 너무 불평만 하지는 마. 각자의 사정이 있는건데 그걸로 뭐라하냐. 싫으면 안 마시면 그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