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초일류 기사와 일류기사를 나누는 것은 수읽기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단순히 사활 묘수풀이 갖다놓고 풀게 하면 정상급 기사 못지않게 잘 푸는기사들은 많다. 그런데 실전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수읽기를 해도 정상급 기사에게 탈탈 털릴 뿐이고 어쩌다 이변을 연출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김지석같은경우 사활쪽 수읽기로는 전무후무할 정도다. 어렵다고 소문난 문제도 워낙 빨리 풀어서 어렸을 때부터 사범들이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근데 실전에서 이세돌,박정환과 만나면? 어째선지 중요한 장면에서 수읽기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패배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진정한 수읽기란 단순히 사(죽음)/활(삶) 만 생각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실전에선 고려할 게 훨씬 많다. 이 장면에서 타협을 해야할지, 끝장을 봐야 하는지, 좀 손해보더라도 선수를 잡아야 하는지, 가볍게 처리할지 끈적하게 타개해야 할지, 패가 나는 변화가 일어날수 있는데 그때 팻감은 누가 유리한지 등등.... 다양한 변화도와 그에 따른 결과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수읽기인 것이다. 아무리 절묘한 수순이라도 그 결과가 바둑이 불리해지는 것이라면 멍청한 두뇌노동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반집덕후였던 이창호가 사실은 수읽기 역대 최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늘 적은 차이로 이긴다는게 엄청난 능력이다. 이창호 상대들은 바본가? 형세판단해봐서 자기가 불리하면 어떻게든 덤벼들어서 싸움을 걸고 변화를 구하는 게 바둑이다. 근데도 늘 안정적인 변화도를 그리고 가장 두터운 방식으로 이긴다는 건 상대보다 한 수 위의 수읽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구리는 이창호 때문에 한국바둑이 더 전투적으로 바뀌었다고 평한다. "이창호의 균형적인 바둑은 극치에 달할 정도로 너무 강해서 어쩔수없이 기풍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중반에 어떻게든 기회를 잡기 위한 것이다."

중국프로바둑사상 가장 좋은 커리어를 지닌 구리의 경우를 보자. 전성기 구리의 수읽기는 가히 예술의 경지다. 특유의 감각과 대세관은 역대 최고로 평가될 정도. 그의 바둑이 중국바둑에 끼친 영향은 지대해서, 나는 지금의 커제와 같은 중국 초일류들에게서도 구리의 영향을 보곤 한다.
위빈은 구리의 수읽기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수읽기가 빠르다. 불필요한 변화는 지워버리고 빠르게 본질을 찾는 천재" 이 말에 수읽기의 본질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이 분야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센세이션한 것은 역시 이세돌의 그것이다. 글쓴이가 얘기하려는 수읽기의 본질에는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세돌은 포석이 나빠 바둑을 늘 불리하게 시작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다가 중후반에 신들린 듯한 수읽기로 유불리를 뒤집는다.
혹자는 이세돌이 수읽기가 좋은게 아니라 흔들기를 잘해서 실수를 유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둑을 조금이라도 둔다면 이게 헛소리라는 걸 안다. 이세돌 바둑의 일관된 특징 중하나는 `짠 바둑`이라는 것이다. 돌 함부로 버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며 돌의 효율을 중시한다. 그런 기사가 상대 실수를 바라고 무책임한 흔들기를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구리는 이세돌은 약점이 `없다` 고 평했다. 이세돌의 포석이 약해보이지만 사실은 자신만의 독특한 대세관을 가지고 판을 짰을 뿐이지 사실은 누구보다 강했을지도 모른다.

수읽기 역대 최강을 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이유는 어떤 기사도 수읽기만 따로 놓고 기량을 따질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누가 바둑을 제일 잘두냐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커제, 아니 알파고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