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엔 국수전이 제한시간 4시간이었는데, 오전에 대국을 시작하면 밤 11시에 끝나는 경우가 많았어.

점심시간이면 한국기원 근처 식당에서 둘이 밥을 먹는데, 사제지간인데도 밥먹으면서 서로 한마디도 안 하더군.

조훈현과 이창호의 실력이 엇비슷한 시절 사제대결을 펼치는 날이면 매스컴의 관심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지.

당시엔 물가수준도 낮아서 응씨배 상금 정도면 강남 아파트 3채를 살 정도였으니까 국내기전 상금도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고 봐야지.

조훈현은 일본에서 정식 교육을 받았고, 또 일본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수많은 책을 독파한 노력+천재형 기사였지. 

아마 일본바둑 자료집의 결정체가 조훈현이라고 봐도 될거야.

조훈현의 포석 감각이 누구보다 독보적이고 뛰어났던 이유가 그거지.

게다가 사형인 후지사와 히데유키가 조훈현과 초속기로 수천판의 연습대국을 뒀는데, 그 과정에서 뛰어난 실전감각까지 습득함.

이창호가 다행인 점은 그런 조훈현의 제자로 들어갔다는 점이 아니겠나.

게다가 이창호는 현대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끝내기 실력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조훈현이 50에 접어들 무렵엔 스승을 완전히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했지.

당시 사제대결 때 흥미로웠던 점은 밤 11시까지 결승전을 하면 조훈현은 가끔 쇼파에 눕다시피 하면서 대국을 했다는 점이랄까.

뭐 방송중계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대국을 하는데 스승 입장에서 그렇게 쉬면서 대국을 하는 것도 이해되는 분위기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