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도발 후 한국 증시 시총 51조원 증발

코스피 2.2% 코스닥 3.7% 다운
제재 직격탄 맞은 반도체
1주새 4.5% 빠지며 하락 주도

코스피선 무조건 팔자 속출
하락 839개…상승 겨우 44개

美 신규 일자리 급증하며
금리 인하 기대감 낮아지자
원화값도 다시 1180원대로

일본의 경제보복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에 따른 공포감이 확산되면서 국내 증시와 원화값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8일 서울 명동 KEB하나은행 본사의 모니터가 급락한 코스피, 원화값, 코스닥지수를 가리키고 있다. [한주형 기자]8일 증시 급락은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 제재를 가하며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다시 상승세를 보이며 국내 주식시장에 압력을 넣던 달러화 가치가 크게 오를 수 있는 요인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는 추세에도 글로벌 주식시장을 받쳐온 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기준금리 인하는 유통되는 돈의 양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진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 등 주요국으로 금리 인하 기조가 확산될 경우 글로벌 유동성이 늘어나며 주식 가격 또한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여기에 한국과 같은 신흥국의 경우,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로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원화 가치가 오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일자리가 급증했다는 소식이 역설적으로 주식시장에 악재로 작용했다. 5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의 정부 및 비농업 민간기업에서 새로 생긴 일자리는 22만4000개로 집계됐다. 전월 7만2000개의 3배가 넘는 규모다. 당초 시장은 지난달 일자리 증가폭을 16만개 정도로 예상했다.

미국 경기가 생각 이상으로 순항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면서 시장이 기대했던 이달 말 0.5%포인트 수준의 큰 폭의 금리 인하를 단행할 명분이 약해졌다. 고용 호조가 이어지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 폭도 줄어들 공산이 커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아시아 국가 주식시장은 동반 하락했다. 8일 상하이종합지수는 2.6%까지 낙폭을 확대했다. 홍콩 항셍지수와 일본 닛케이지수는 각각 전 거래일 대비 1.64%, 0.98% 하락했다. 

한국 증시는 여기에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한일 경제전쟁 악재가 가세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수출 제재 사태가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만큼 민간 차원에서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파장이 커질 수 있다"며 "미·중 무역분쟁이 대두될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제3자 입장이었지만 이번에는 직접적인 당사자로 얽히는 등 대외 변수에 대한 노출도가 높아졌다는 우려가 주가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금융시장은 미래 불확실성을 일거에 반영해버리는 특징이 있는데, 지금 상황도 이 같은 면이 있다"며 "일본 참의원 선거 이전까지는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기 어려운 만큼 당분간 증시는 불안한 양상이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보복 사태에 한국 증시가 더욱 민감해진 양상은 이날 장중에 여실히 드러났다. 이날 장중 2070선에 머물던 코스피는 오후 2시께 문 재 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본 수출 규제에 맞대응 의지를 보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갑자기 하락폭을 키웠다. 한일 간 경제전쟁 확산이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날 코스피에서 상승 마감한 종목은 44곳이었던 데 비해 하락 종목은 839곳에 달했다. 

원화값이 다른 아시아 통화와 비교해도 큰 약세를 보인 것 또한 일본 경제 보복에 대한 우려감이 작용했다. 최근 원화값은 중국 위안화 움직임에 강하게 연동돼 움직여 왔으나 이날만큼은 홀로 급락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전날 종가(1170.4원)보다 11.6원 급락한 1182원에 거래를 마쳤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위안화는 전날 종가보다 0.09% 오른 6.8871위안에 개장한 뒤 장중 0.05% 소폭 하락한 6.89위안 선에서 박스권 움직임을 보이는 데 그쳤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미국 고용지표 호조로 인해 전반적인 글로벌 달러 강세 영향이 있었지만 원화값만 급락한 것은 한국만의 특별한 변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 연구원은 이어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다음달 시행할 것이란 소식이 지난 주말 전해졌다"며 "일본의 2차 보복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향후 한일 갈등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은연중에 퍼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이 같은 악재가 겹치면서 서울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졌고, 그 틈을 타 '원화 약세'에 배팅하는 역외 세력이 몰려들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외국계 은행을 중심으로 역외 세력이 '원화 약세' 포지션에 과하게 쏠려 있다"며 "미·중 무역갈등과 국내 경기 둔화 등 대내외 불안감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보복 조치까지 나오자 이들에게 좋은 명분이 됐다"고 전했다.

겁나 무섭네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