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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갤문학]두 남매:벨소리

(39.7) 2015.02.22 02:31:50
조회 5766 추천 86 댓글 23


"애쉬,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해."


한창 컴퓨터에 몰두하고 있던 소년의 방에 어두운 은빛 장발을 휘날리며 쳐들어와 갑자기 대화를 요구하며 보랏빛의 눈동자에 불만을 담아 자신을 쏘아보는 누나에게 애쉬라고 불린 누나와 똑같은 어두운 은빛색의 짧은 머리의 소년도 역시 누나와 같은 색의 보랏빛 눈동자에 이번엔 또 뭐가 불만이라서 쳐들어왔냐는 뜻이 담긴 눈빛을 담아 맞받아친 후 회전의자에 기대 앉아서 심드렁하게 그녀를 맞이했다.

"어, 안녕 더스트. 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약속이 있어서 그러니 이야기는 좀 있다가 하자고."


"흥,보나마나 또 그 석봉인지 뭔지 하는 인간이랑 같이 게임한다는 거잖아? 그 따위 것, 뭐 재미있다고 그렇게 시간낭비를 하는거야."

한심하단 듯이 팔짱을 끼고 자신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취미생활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더스트에게 발끈한 애쉬는 자신을 매료시킨 이 게임의 우수성에 대해 눈빛을 반짝이며 장황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게임이라고 폄하하지 말아줘. 이건 음모와 술수, 그리고 처절한 사투가 난무하는 처절한 전장이라고.매 분 매초마다 변화하는 전투의 흐름을 읽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과 전략적 식견을 기르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은..."


" 난 그런 설명이나 들으려고 온 게 아니야. 지금 네 문제 때문에 온거라고."

"내...문제라고?"


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자신의 설명을 중간에서 끊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더스트에게 황당하단 듯이 반문하는 동시에 지난 일을 생각해보는 애쉬였다. 그의 누나, 더스트 기준의 문제라는 뜻은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뜻에 맞지 않는 것들을 총칭하는 것이고 따라서 지금까지 자신의 우수한 능력으로 그런 문제들을 별 마찰 없이 해결하며 생활해왔다고 여겼다가 오늘 갑자기 쳐들어 온 누나가 뜬금없이 내게 '문제'가 있다 주장하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해서 제대로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놀아달라고 했을 때 놀아주지 않았었나? 맛있는 것을 해달라고 할 때 해주질 않았었나?


"미안한데, 누나. 지금 생각을 해보고는 있지만 도무지 떠오르는 게 없거든. "


"아, 그래? 그럼 생각나게 해줄께!"

어리둥절해하는 애쉬에게 특유의 톡 쏘아붙이는 말투를 던짐과 동시에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조작하는 더스트를 애쉬가 이건 또 뭐하는 짓인가 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설명을 요구하려는 순간.


[내 앞에서,사라져 버려엇!]


익숙한 목소리, 앙칼지지만 귀여움을 잃지 않은 목소리가 책상 위에 놓여져 있던 애쉬의 폰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애쉬가 폰을 확인해보자 발신인은 지금 그의 앞에 있는 누나였고 이제 그는 의아함에 사로잡혀 고개를 들어 시선을 더스트에게 옮기자 끔찍하고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짓고잇는 더스트가 손가락으로 애쉬의 스마트폰을 가리키고 있는게 보였다.


"내 폰이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거야? 도대체 무슨..."


"몰라서 묻니!"

빽 하고 자신의 동생에게 소리치는 것을 시작으로 더스트에게서 폭풍같은 불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많고 많은 벨소리들 중에서 왜 이슬비 그 년의 목소리를 박아놓은거냐고! 내가 그 년 얼마나 싫어하는 지 알면서! 니 친구인지 뭔지 하는 놈이 게임 어쩌구 때문에 전화 걸어올 때 마다 짜증이 치솟는 걸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참아왔는 줄 알기나 하는거야?! 이제는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라구! 어떻게 이 누나한테 그리도 무심할 수가 있니! 더군다나 이건 군단장으로서의 체면도 걸려있는 문제잖아?! 다른 군단장들이 알면 웃음거리가 될 거라구! 왜 그렇게 생각이 짧니!"


"....."


휘몰아치는 더스트의 불만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는 애쉬는 평소에는 군단장 체면 그 따위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 누나가 그런 되도 않는 핑계를 들먹이면서까지 주장하고 있는 자신의 '문제'라는 것이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해줘서 가라앉힐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파악했다. 동시에 갑자기 자신의 방에 쳐들어와서 자신이 마음에 두고있는 여인을 험담하고 폭언을 쏟아놓는 누나에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하면 좋겠어?"


"어떻게 하기는! 그 벨소리! 지금! 당장! 빨리 지워!"


"싫어."


"뭐야, 애쉬! 누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누나가 지우라고 말하면 잔말말고 지울 것이지!"

더스트가 역정을 내며 애쉬를 다그쳤지만 애쉬는 이미 그녀의 요구는 고려할 가치도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슬비를 강하게 만들 겸 자신이 감상할 그녀의 모습과 목소리를 담기 위해 보낸 자신의 분신이 그녀와 수십번 이상을 맞부딪혀 마침내 얻어낸 깨끗한 음성이었다. 그런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한 것을 어떻게 지울 수 있는가!


"니가 안지운다면 내가 지워줄테니까 폰 이리 내놔!"

점점 더 심하게 역정을 내는 더스트를 앞에두고 애쉬는 고민했다. 이렇게 애써서 얻어낸 그녀의 목소리를 이렇게 허무하게 잃어버릴 순 없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순간 애쉬의 기억 속에서 표류하는 파편처럼 무엇인가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신경쓰지 않고 있었던 사소한 일들 중 하나였다. 나는 누나의 벨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누나가 저 폰으로 연락해 올 친구같은 걸 두지도 않았기 때문도 있거니와 항상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그것도 적대적인 존재들에게 욕설이나 도발을 목적으로 날리는 전화만을 걸고 끊기 때문이기도 했고 말이다. 기억의 파편을 토대로 계속하여 과거의 기억을 재빠르게 훑어가던 애쉬는 예전에 누나가 자신의 슬비 육성계획을 보고선 자기도 사랑하는 이세하 그 놈에게 자신의 애정어린 마음을 보내어 진정한 미래의 남편감으로 키우겠다면서 멋대로 내 계획을 베껴간 적도 있었는다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누나가 과연 그런 목적만으로 자신의 분신을 보냈을까? 어쩌면...



더스트는 애쉬가 자기 폰을 조작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승리라고 생각하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  그 년 목소리를 참느라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동생에게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말을 하긴했고 좀 미안한 마음도 들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고 이제 이슬비 그 분홍머리 년의 지긋지긋한 목소리를 안들어도 되겠다는 기쁨만이 남았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빠르게 깨졌다. 정확히는 손에 들린 그녀 자신의 폰에서 들려온 벨소리가 들려온 순간에 깨졌다.


[별빛에 잠겨라!]

당황하여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버린 더스트가 황급히 폰을 껏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다. 그녀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후 쭈뼛거리며 시선을 애쉬에게 옮기자 거기에는 속이 뒤틀린 듯 한 표정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구박하는 듯 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애쉬가 있었다.


"뭐,뭐야! 뭘 그렇게 쳐다보냐구!"


"...그 놈 목소리를, 게다가 많고 많은 것들 중에서 그 따위 오글거리는 것을 폰에다가 집어넣은 거야?"


"얘,얘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오글거리다니! 이,이런건 시 적이라고 하는거야!"

더스트가 더듬거리며 그 동안 자신이 동생으로부터 숨겨왔던 이 부끄러운 비밀에 대해서 되도않는 항변을 했지만 뭐라고 하든 애쉬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주 사소한 실수, 자신의 약점이 담긴 핸드폰의 전원을 꺼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않은 덕분에 지금 이 대화의 주도권은 그에게 넘어왔기 때문이다. 정말로 기분 좋은 일이다.

"뭐, 동생으로써 난 누나의 취향을 존중해. "


승리감에 도취된 애쉬는 특유의 능글거림으로 본격적으로 더스트를 놀려먹기 시작했고 어찌할 줄을 모르고 손만 꼼지락 거리던 더스트는 당혹감과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나가 앞서 말했듯이 이런 벨소리는 군단장의 체면에는 저언혀 도움이 되지 않아. 지금 이 상황이라면 우리가 웃음거리가 된다는데 백번천번 동의 해. 그러니까..."

"그,그러니까...?"


애쉬는 불안감에 몸을 떨며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누나를 지긋이 바라보았고,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쐐기를 박아볼까.


"누나가 먼저 그 벨소리를 지워줘. 그럼 나도 누나를 본받아 이 벨소리를 지울께~"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스트의 얼굴은 붉어질 대로 붉어졌고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어찌할 줄을 모른 채 그저 보랏빛 두 눈으로 가증스러운 동생을 쏘아보았지만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어서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귀여워보이는 역효과만 났다. 잠시동안 싱글거리며 웃고있는 동생을 노려보던 더스트는 결국 무너져 내렸다.


"애쉬 미워!"


눈물을 글썽이며 방을 뛰쳐나가 자기 방으로 도망친 누나를 뒤로하고 애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을 누나의 억지로부터 지켜냈으며 석봉이랑 잡아놓은 약속시간은 아직 남아있었다. 모든게 완벽하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게임에 접속하면서 애쉬는 지금쯤 자기 방 침대에 엎어져 토라져있을 누나를 위해 오늘 저녁엔 맛난 걸 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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