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명덕대학교의 교문을 지난 승용차가 주차장에 멈추었다. 그리고 조수석에 있던 인오와 운전석의 하진이 차에서 내렸다. 인오는 뒷좌석에서 노트북과 현수막 등을 꺼내며 오랜만에 방문한 학교의 경치를 둘러봤다. 그 순간 하진은 전화기에 뜬 곤 부장의 이름을 확인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 네, 부장님~
동기인 하진이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며 인오는 전화기 너머의 곤 부장이 어딘가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뭐래?”
인오는 통화를 끝낸 하진에게 물었다.
“뻔한 소리지. 오전에 했던 얘기를 왜 굳이 전화까지 걸어 또 하는데? 그리고 하필이면 나한테 전화야?”
하진은 툴툴거리며 짜증을 내더니 한숨을 쉬었다.
인오는 그녀에게 뭐라도 위로를 해주려고 생각하다가 자신에게 전화가 걸려오지 않아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고 여겼다.
두 사람은 명덕대학교 시청각실을 찾았다. ‘천기식품 채용설명회’ 현수막은 해마다 재사용을 하는 관계로 세월이 묻은 흔적이 보였다. 하진은 무대에서 자료를 띄워 넘기면서 이상이 없는지 확인을 하고 인오는 시청각실 뒤쪽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구도를 잡아봤다.

인오는 하진에게 허락을 받고 명덕대학교 운동장을 향했다. 그곳에는 동아리방으로 사용했던 창고가 있었다. 인오는 동아리방의 문에 어지럽게 옭아져 있는 쇠사슬과 오랜 세월 방치한 흔적이 역력한 먼지를 발견했다. 그 모습을 본 인오는 약간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전화기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이어 인오는 학생회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사학과 폐과 예정’. ‘무용학과 체육학과 통합 확정’ 등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이번에 인오는 학생회관 전경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에 벤치에 자리를 잡고 찬형과 예주가 함께 있는 단체대화방에 사진을 전송했다.

예주 지금 학교에 있어?
찬형 학교 오랜만이네.
인오 우리 회사 채용설명회 때문에 왔어.
예주 아ㅋㅋㅋ 그때만 해도 천기식품의 직원이 될 줄은 몰랐지.
인오 그때로 돌아가서 나를 뜯어말리고 싶다ㅋㅋㅋ

찬형이 동아리 설명회에서 공연했던 동영상 하나를 전송했다. 인오는 찬형이 보낸 동영상을 눌렀다. 동영상을 재생하니 과거 동아리 설명회의 풍경이 보였다. ‘엄마, 아빠 등록금이 자꾸만 올라서 죄송합니다’. ‘예술대학 등록금은 비싼데 장비와 시설 지원은 나몰라라?’ 등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는 모습도 비쳤다. 동아리 설명회가 열리는 장소에는 각 동아리의 천막이 보였다. 신입생들이 오고가는 모습 가운데 멀리서 체리필터의 ‘Happy Day’가 들렸다.
노래를 부루는 예주의 목소리와 함께 천막에 ‘명덕로타리’라는 동아리명이 보였다. 그 당시 인오와 찬형, 예주는 4학년이었다. 인오는 드럼, 찬형은 건반을 담당했다.
“신입생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희는 명덕대학교 밴드 동아리 명덕로타리입니다.”
예주가 노래를 마무리하면서 말을 했다.
“다음 곡은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의 ‘스무살의 나에게’인데 많이 들어주세요.”
예주와 찬형이 자리를 바꿨다. 인오와 예주의 전주를 시작으로 찬형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3분 30초가 지나자 노래의 종료와 함께 동영상 재생도 끝이 나버렸다.

예주 옛날 옛적 영상이네ㅋㅋㅋ
찬형 이런 때가 있었다니ㅠ
인오 그러게. 어쩌다 지금은 이러고 있지?ㅋㅋㅋ
찬형 우리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
나 할말도 있고 하니까 한번 모이자.
예주 무슨 할말?
인오 뭔 일 있어?
찬형 만나서 얘기하자. 언제 볼래?

인오와 하진이 채용설명회 준비로 바쁜 시간에 천기식품에서는 한가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사무실에서는 천영우 차장이 자기 자리에서 과자를 먹으며 옛날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부장실에서는 곤대일이 모니터 화면에 부동산 시세를 띄워놓고 통화에 열을 올렸다.
- 모델하우스에 구경 갔다가 명석이네 사무실에 놀러가자. 응, 그래. 내가 너 데리러 가지. 5분 이따가 출발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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