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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태평양 전역중 미군이 일본군한테 가장 크게 깨진 해전

ravdozk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2.02 08:50:01
조회 15552 추천 59 댓글 98

사보섬 해전, 혹은 1차 사보섬 해전이나 일본측 자료에선 1차 솔로몬해 해전으로 기록된 이 해전은,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해전으로 불리는,

그야말로 미군이 일본군한테 진주만 공습 이후로 대판 깨진 해전으로, 일본군 전사자만 58명일때 미군 전사자만 1077명인,

사실상 사상자로만 본다면 진주만 공습이 비견될만한 해전으로, 이 해전으로 인해 과달카날 인근 해협은 철바닥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음,

1942년 8월 7일, 미해병대가 주축이 된 상륙군은 과달카날과 툴라기, 그리고 플로리다 섬에 상륙을 하여 과달카날 전역이 시작됨,

만약 일본군이 과달카날섬에 핸더슨 비행장을 비롯한 해공군을 위한 전진기지를 설립한다면 미국에서 호주까지 가는 보급선,

결과적으로는 일본군의 호주 상륙이 가능했기에 연합군은 이를 경계하며 과달카날에 상륙함,

과달카날 전역은 미 해군 중장 잭 플레처 제독이 연합군 해군을 지휘하고 리치몬드 터너 준장과 에드몬드 크러츨리 제독이 수상선들을 지휘했음,

연합군의 상륙은 일본군 수비대들이 방심하고 있을때 이루어 졌으며 상륙 바로 다음날인 8일 툴라기와 핸더슨 비행장을 점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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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라기에 상륙하는 미 해병대)

일본 제국 해군의 새로히 편성된 8함대의 지휘관이던 구니치 미카와 중장은 처음에는 고작 520여명을 태운 보급선을 과달카날에 급파했지만,

보급선들이 상륙한 적군의 수가 예상보다 많다고 보고하자 다시 라바울로 후퇴시킴,

이에 미카와는 라바울과 본인이 지휘할수 있던 군함들을 영끌하여 미군 함대를 공격한다는 계획을 세움,

기함이던 타카오급 중순양함 초카이를 포함하여 경순양함 텐류와 유바리, 카미카제급 구축함 유나기, 

그리고 카비앙에서 오는 아오바급 중순양함 아오바, 키누가사, 후루타카급 중순양함 후루타카와 카코가 동원되었음,

총합 8인치 주포만 34개에 달하는 기동부대가 모였고 야간에 기습을 통해 미군 함대를 괴멸하겠다는걸 상부에 전함,

도쿄의 해군참모총장 나가모 오사미 대장을 포함한 해군 지휘부는 이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과달카날 섬의 중요성을 고려,

미카와 제독의 계획을 승인함,

8일 출발한 미카와 제독의 기동부대는 곧 연합군의 초계기에 발각되었고 기동부대는 초계기가 경고문을 보내는걸 감청함,

11시에는 또다른 연합군 초계기가 나타났지만 딱히 뭘 할수도 없었기에 기동부대는 다시 출발함,

부건빌 인근에 있던 미카와의 기동부대는 이제 기습을 할수 없다고 판단하고 저녁에 암흑을 틈타 진입하기로 결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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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미카와 제독의 기동부대가 출발한 라바울, B:기동부대가 미군에 포착된 부건빌 인근, C:전투가 일어난 사보섬 인근 해역)

미카와 제독은 그날 이루어진 정찰비행에서 미군 함대가 2개로 쪼개진걸 보고 각개격파하기로 결정함,

미카와 제독의 계획은 함대가 1열로 접근한뒤 과달카날의 미 해군 함대에 어뢰로 공격하고,

다시 북쪽이 툴라기 섬의 미 해군 함대를 함포와 어뢰로 공격한뒤, 사보섬 북쪽으로 퇴출한다는 계획이였음,

하지만 여기서 잠시, 10시와 11시경, 연합군은 정찰기로 미카와 제독의 함대롤 포착했지만 항공 공격은 커녕 추가 정찰기도 보내지 않음,

미카와 제독은 잠시 의문을 품었지만 곧 발송된 라바울 공격대의 무려 3척의 순양함과 2척의 구축함, 9척의 수송선을 격침시켰다는 보고에 이를 넘김,

8시 23시경, 기동부대는 정찰을 위해 3기의 수상기를 발진 시킴, 수상기들은 적 함대를 발견하자마자 신호용 섬광탄을 뿌리고 귀환함, 

기동부대는 9일 00시경 사보해에 진입함,

일본군 견시가 대단한건지 아니면 야간용 망원경이 대단한건지는 몰라도 9일 00시 40분경 무려 8km 밖에서 접근해오는 구축함 1척을 발견함,

이에 기동부대는 좌현으로 변침하고 속도를 줄임, 혹시라도 경고를 울릴것을 대비해서 무려 15문의 주포가 그 작은 구축함에 조준되었음,

그 연합군 구축함은 기동부대를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갔음, 기동부대는 이에 정말로 잠입에 성공하였움,

다시 8일로 돌아가 연합군 관점에서 보자면 기습적인 상륙으로 툴라기와 과달카날의 핸더슨 비행장을 점령한 미군은,

라바울에서 온 폭격기들의 공습을 받게 됨, 하지만 27기의 '베티' 폭격기들은 그날 예정된 뉴기니 폭격을 취소하고 오는길이였기에,

대함용 어뢰가 아닌 대지상용 폭탄을 달고 오고 있었고, 9기의 '발' 급강하 폭격기들도 있었음,

하지만 이 공격대들은 부건빌의 견시들에게 포착되어 연합군이 대비하고 있었음,

이들은 18기의 연합군 전투기와 고고도 폭격+짙은 구름의 환상적인 콤보에 매우 인상적인 0발 명중을 기록했고,

27의 베티 폭격기중 6기가 격추되고 호위하던 18기의 제로중 2기가 격추됨, 후에 도착한 9기의 발 급강하 폭격기도,

꼴랑 구축함 1대에 명중탄 1발을 기록하고 5기가 격추됨, 미군의 피해는 18기의 와일드캣 전투기중 9기가 격추되고 1기의 돈틀리스 폭격기가 파괴됨,

이에 라바울에서는 다시 26(중간에 3기가 빠짐)기의 어뢰를 장착한 베티 폭격기을 보내 공격했으며 이 공격대의 보고가 미카와 제독이 받은것이였음,

하지만 1차 공격때와 마찬가지로 보고서는 구라핑으로 점철되었는데, 폭격기들이 미군이 예상하지 못한 북쪽에서 기습한건 맞지만,

당시 항해중이던 거의 모든 함선에는 오리콘 20mm 기관포와, 보포스 40mm 기관포 같은게 단장, 2연장, 심지어 4연장으로 달려있었고,

베티 폭격기들은 연합군들이 1식 라이터로 부를만큼 불이 잘 붙었음, 어뢰를 투하하기 위해 저공비행을 하던 폭격기들은 당연히 목표물이 되었고,

23기의 폭격기들이 거둔 전과는 18기를 잃는동안 1기가 자살공격으로 수송선 1척을 격침하고, 구축함 1척에 어뢰를 맞춘것이 전부였음,

당연히 미카와 제독이 받은 17척 침몰/손상 보고서는 개구라로 점철된 보고서였고 미카와 제독은 아직 미 함대가 온전하다는걸 모르고 있었음,

그럼에도 미군이 왜 기동부대에 기습에 당했는지는 연합국의 통신선과 정보가 완전히 병신이였기에 그런것으로,

터너 제독은 7일에 이미 잠수함으로부터 3척의 구축함과 3척의 순양함, 8일에는 부건빌 인근에서 동일한 보고,

다시 마지막으로 각각 2척의 순양함과 경순양함이 있다는 보고를 받음, 

문제는 2번째 보고로, 이 보고서가 처음 8일 10시경 작성되고 터너 제독에 도착했을때가 무려 18시, 즉 8시간동안 질질 끌다가 도착함,

원인은 바로 지휘권/보안 문제로 기동부대를 포착한 정찰기들은 더글라스 맥아서 대장의 남서태평양 전구, 

터너 제독의 소속은 로버트 곰리 중장의 남태평양 전구로, 물론 두 전구 사이 정보교환은 있었지만,

남서태평양 전구의 정찰기들이 보고서를 폴 리버로 보내면, 폴 리버에서 포트 모르즈비, 다시 타운즈빌, 또 브리스베인에서 터너로 전달되는 형식으로,

터너는 어떤 방식으로도 남서태평양 전구의 정찰기와 직접 교신할수 없었음, 거기에 더해 과달카날 전역의 상위 작전, 워치타워 작전은 비밀이였기에,

폴 리버와 포트 모르즈비의 통신병들과 정찰기 조종사들은 8일에도 과달카날 상륙을 모르고 있었고,

8일 10시경 포착된 기동부대의 대한 보고서는 과달카날의 미 해군 함대을 공격할수 있었지만, 조종사들은 과달카날에 미군이 있었는지도 몰랐기에,

보고서가 처음 작성된 10시 25분경 폴 리버로 전송되었지만 폴 리버측에서 씹었고, 조종사들이 복귀한후 작전장교에 보고했지만,

작전장교도 워치타워 작전을 몰랐기에 이를 비응급 보고서로 취급, 12시 42분경 모르즈비로, 모르즈비에서도 비응급으로 분류,

14시 37분경에서야 타운즈빌에 도착함, 타운즈빌에 도착한 보고서는 무려 3시간이나 밀린 뒤에야 18시 20분경 브리스베인에 도착함,

브리스베인의 장교들은 워치타워 작전을 알았기에 드디어 응급상황으로 전환, 5분뒤 캔버라의 종합 통신소로 발송,

캔버라에선 이를 진주만에 전송, 진주만에서는 37분에 전송한걸 드디어 터너 제독이 18시 45분경 전달받음,

8일 11시경 작성된 보고서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무려 21시 30분경에야 도착했을 정도록 통신선이 병신이였음,

터너 제독은 드디어 받은 보고서를 기반으로 17시경 긴급회의에 들어감, 여기서도 정보가 큰일을 해내는데,

보고서에는 기동부대가 2척의 수상기모함, 각각 3척의 구축함과 중순양함 호위가 있다고 적혀있었음,

터너 제독은 이에 기동부대가 부건빌 남쪽 수상기 기지에 재보급을 할려는것으로 판단,

혹시나 몰라 기동부대가 접근중인 해협으로 추가 정찰기를 보내라는 명령을 보냄,

하지만 아무도 모를 찐빠로 그 명령은 정찰기들에게 전달되지 못하였고, 터너 제독든 아무런 보고서가 들어오지 않자 적 함대가 접근하지 않는걸로 판단함,

이 찐빠는 21시경에야 발견되었고 이미 그때는 칠흑같은 밤이여서 정찰기를 보낼수도 없었음,

또한 터너 제독은 기동부대가 수상기 기지를 재보급'할것'이라 판단하여 우리를 공격'할수도있다'라는 결론에 미치지 못함,

터너 제독은 일본 해군이 야간전에 대비해 훈련했다는것도 몰랐고 함대의 배치도 엉망이였음,

당시 연합군 함대는 사보섬을 기준으로 남부와 북부로 갈라져서 초계중으로, 남부는 크러츨리 준장, 북부는 프레드릭 리프콜 대령이 지휘하고 있었음,

남부전대는 카운티급 순양함 캔버라, 오스트렐리아(기함), 그리로 노스햄프턴급 순양함 시카고, 그리고 2척의 구축함을 보유하고 있었고

북부전대는 뉴올리언스급 순양함 빈센스(기함), 퀸시, 아스토리아, 그리고 동일하게 2척의 구축함을 보유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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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전대와 남부전대, 그리고 동부전대의 위치를 기록한 지도)



출처: 군사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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