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크게 홍콩섬/구룡/신계 총 3개 권역으로 나뉨.
중심인 홍콩섬과 구룡반도 사이에는 빅토리아 만이 있는데, 지금은 홍콩의 지하철인 MTR이 다님.
두 지역을 이어 주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이 ‘스타페리’임.
1970년대까지는 빅토리아 만에 해저터널도, 지하철도 없어서 무조건 이 페리를 타야 했음
(이 전통이 이어 져서 지금도 홍콩은 구룡과 홍콩섬의 택시 시스템이 따로 돌아감)
1960년대 홍콩은 빈부격차의 끝판왕을 보여주었음.
홍콩섬의 부자들과 영국인들은 람보르기니를 몰며 돈지랄을 했고
구룡의 중국계는 가난하게 살며 날마다 스타페리를 타고 홍콩섬으로 출퇴근했음.
또 부정부패도 매우 심해서 소방관에게 뇌물을 주지 않으면 불을 꺼주지 않았음;;
문제는 1966년에 발생하는데, 홍콩총독부에서 스타페리의 운임 인상을 발표하자 구룡반도의 분노한 민중이 대규모 시위를 열었음.
결국 이 시위는 크게 번져서, 당시 중국 본토에서 일어나고 있던 문화대혁명의 영향까지 받아 중국 반환 및 영국을 내쫓자는 폭력시위가 대거 일어나는 계기가 되어버리고 말았음.
1971년 홍콩 총독으로 취임한 멕클레호스는 이러한 홍콩을 개혁하기 위한 ‘클린 홍콩’ 캠페인을 전개함.
1. 구룡반도의 발전을 위해 해저터널과 MTR(지하철) 건설
2. 공무원, 경제인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염정공서 설치(이 기관이 지금 한국 공수처의 모델이 됨)
3. 중국계에 대한 차별 완화
4. '클린 홍콩'운동 전개로 사회는 물론 도시도 깔끔하게 정비함
5. 부정부패를 강력하게 처벌
6. 사회인식의 성숙화 및 개선 운동
7.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던 홍콩에 구의회의 전신을 만들어 최초로 선거 도입
특히 MTR 건설이 그의 최고 업적으로 불리우는데,
페리에 의존하던 양 홍콩을 지하철로 이어줌으로써, 빈부격차가 줄어듦은 물론 홍콩 취급도 못 받던 구룡이 제대로 홍콩의 일부로 인정받는 계기가 됨.
1979년 개통식.
멕클레호스 총독은 지금의 선진국 홍콩을 만든 인물로 평가받으며,
별로 좋은 평가를 못 받는 영국령 총독들 중에서도 지금도 홍콩인들이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임
그래서 홍콩에서는 MTR이 이러한 선진 홍콩과 빈부격차 해소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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