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맨날 해봐야지 해봐야지 하다가 자투리로 아주 조금 남은 엑타크롬을 발견한 김에 GW690에 파노라마로 넣고 하루 만에 이왜찍을 뚝딱 시전하고 왔습니다.
이에 현상부터 스캔 결과까지 공유드립니다.
개요
많은 분들께서 아시다시피 슬라이드 필름은 E-6 현상액을 필요로 합니다. 다만 후지 헌트 Chrome 6X (5L) 킷의 단종으로 개인이 E-6 약품을 국내에서 구하기는 매우 어려워졌으며, ORM-D 때문에 해외 직구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또, 만약 구하게 되더라도 매우 많은 비용이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시네스틸 Cs6 키트와 같은 대체품들이 있지만, 레딧 등지에서 Cs6은 불량률이 높다는 경험이 많았으며, 특히 E-6 현상액이라면 Pre-Bleach (Conditioner) 단계나 Stabiliser 단계에서 응당 들어가야 할 35-40% 포름알데히드 (주로 포르말린이라고 합니다)가 없어 보존성에 취약할 것이란 예상도 있습니다. 헥사민이 필름과 만나면 포름알데히드로 분해된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단 정론은 아닙니다.
※ 이번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아니지만 여담으로) 테트날, 벨리니 등의 아마추어 킷은 포르말린 대신 글루타알데히드를 사용함으로써 포르말린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도 인체에 덜 해롭게 설계하였다고 주장합니다. 허나 Photrio의 지금은 작고하신 Photo Engineer께서는 글루타알데히드도 포르말린보다 못하다는 지적을 하신 바 있습니다. (참고로 제대로 된 코닥 킷—물론 지금은 단종된—이나 후지 킷—PRO6, 조보 #9220 등—에는 Sodium formaldehyde bisulfite의 형태로 Pre-Bleach에 첨가되어 있습니다.)
이에 저는 어차피 테트날 컬러텍이나 시네스틸 Cs6 같은 아마추어 킷들이 다 제대로 된 애들이 아닌 거면, 심심풀이 삼아 E-6 킷 없이 E-6 필름을 직접 리버설 현상을 해보는게 어떨까? 싶어서 이번에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E-6 프로세스의 1차 현상액
E-6 현상액의 1차 현상액은 사실 고농축된 흑백 현상액입니다. 약품 조성을 살펴보면 그냥 하이드로퀴논도 아닌, 되게 비싼 재료인 HQMS (Potassium hydroquinone monosulphonate)와 페니돈이 주 현상액으로 두고 있으며, 그 이외에도 포그 방지 및 버퍼링, pH 조절을 위한 재료가 일곱 개나 더 들어갑니다.
간과하기 쉬운 것은, 흑백 현상액이니까 대충 덴시티에만 영향을 주고 컬러 밸런스 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이 1차 현상액이 컬러 밸런스에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따라서 이 1차 현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슬라이드의 전반적인 품질이 좌우됩니다.
E-6의 1차 현상액을 개인이 구하기 쉬운 다른 흑백 현상액으로 대체하기 위해 해외에서 많은 시도가 있었는데,
1) 로디날 : (링크)
다만 로디날에 들어가는 p-아미노페놀이 매우 경미한 컬러 현상주약이기에 약간 붉게 현상됩니다.
2) HC-110 : (링크1) (링크2)
제일 많이 쓰이는 것이 HC-110입니다. 같은 고농축 계열이기도 하며, Dilution A에서 현상 시간이 일반 E-6 현상과 똑같이 6:30라는 점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3) 일포드 DD-X : (링크1) (링크2)
일포드 DELTA 등 T-그레인 필름을 위한 현상액인 DD-X도 자주 쓰입니다.
4) 그 외
이외에도 후지필름의 일본 내수용 인화지 현상액인 Papitol, 코닥의 Dektol도 많이 쓰이며, 코닥 D-19 또한 고대비 현상액인 탓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저의 선택
1) 1차 현상액 : 저는 아직 코닥 D-19를 직접 제조법을 보고 섞어서 쓸 환경이 안 갖추어졌고, DD-X는 매우 비싼 탓에 그냥 필마팬 현상을 위해 사다놓은 코닥 D-76을 그대로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2) 컬러 현상액 : 원래 E-6 필름의 커플러는 CD-3로 현상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에 ECN-2나 RA4 현상액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나, RA4는 우리나라에서 구하면 코닥 킷으로 대용량을 사용해야 하고 B&H에서 수입해오기에 마땅한 것이 없어 제외하였습니다. ECN-2는 지금도 시네스틸 킷으로 가지고 있으나, 1차 현상액으로 고른 D-76의 현상 특성상 고대비는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슬라이드보다는 콘트라스트가 좀 더 낮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컬러 현상액도 덴시티 커브가 저대비를 지향하는 ECN-2를 사용하면 너무 밋밋할 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C-41—그중에서도 시네스틸 Cs41—로 결정하였습니다.
3) 리버설 현상 : 이건 대책이 없습니다. 프로피온산, p-아미노페놀, 염화제일주석 등등을 제가 어디서 구하겠습니까...ㅎ 그냥 수동으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해외에서는 물 속에 필름을 담가놓고 스트로보를 발광하여 쬐거나, 20W 전구를 15cm 앞에서 쬐기, 100W 전구를 30cm 앞에서 쬐기 등등 사람마다 방법에 차이가 있더라구요. 저는 휴대전화 플래시랑 화장실 천장 LED등으로 쬐기로 결심했습니다. 주의할 점은, 태양빛은 너무 강력해서 Solarisation을 야기하기에 지양해야 합니다.
<촬영>
카메라 : FUJICA GW690
필름 : Kodak Ektachrome 100D (5294) @ E.I. 80
<과정> : JOBO CPE로 로터리 교반하였습니다.
프리속 01:00
D-76 (full strength) 12:00
스톱배스 01:00
수세 01:00
재노광 유제면, 베이스면 골고루
C-41 05:00
블릭스 10:00
수세 03:00
(모든 온도는 38.9ºC로 맞추었습니다.)
저는 이 사이트의 댓글란에 Jon Suite라는 분께서 써두신 방법을 보고 따라했습니다 : https://www.instructables.com/Develop-Slide-Film-With-C-41-Chemicals-AKA-E-6-/
다만 이분은 D-23을 쓰시더라구요.
과정
<리버설 과정>
<수세 직후>
(베이스면)
(유제면)
(베이스면)
(유제면)
슬라이드는 마르기 전까지 모르는 거예요!
결과
(Canoscan 8800F 스캔)
총평
1) 그린 캐스트가 있습니다.
롤라이 크로스버드나 로모그라피 Xpro 200 같은 맛이 나네요.
후보정으로 잡기에 어렵진 않습니다.
2) 덴시티 내지는 스피드가 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1차 현상액을 좀 더 시간을 늘려서 13분을 해볼지 고민입니다... 현상시간 늘린다고 해서 밝아지는 것만은 아니라서 감마값 올라서 콘트라스트도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ㅠ
3) 그래도 콘트라스트는 지금이 딱 마음에 드네요!
D-76답지 않달까...
4) 포르말린을 구하지 않는 이상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마젠타 다이부터 죽어갈 것!
몇 년 뒤에 보면 갈색으로 변해있을 지도...
5) 해외에서 이 프로세스를 부르는 명칭이 다양한데...
저는 그냥 E-6 Alternative Process라고 하거나 Pseudo E-6, 줄여서 PE-6라고 부르는 편입니다.
해외에는 E-B&W-41-6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ㅋㅋ (링크)
6) 프로비아 100F로도 해보고 싶네요.
듣자하니 이런 프로세스를 잘 감당해내는 필름이 프로비아라고 합니다. 역시 후지필름이 최고야...
자주는 못하겠지만 엑타크롬 감아서 자투리 남을 때마다 찍어서 미세조정 해볼 생각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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