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즈에 다뤘던 경기들은 내가 어느 정도 알고있거나 직접 본 경기도 꽤 됬는데
이번건 워낙 옛날 경기들이니 완전히 제로부터 시작해야해서 자료 찾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쓰다보니 또 길어져서 4부작으로 나누게 되었음
(오늘, 내일로 두 편씩 올릴 예정)
학술적인 목적에서 쓴 글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취미로서 써본 글이기 때문에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진 말고
가볍게... 그냥 재미삼아 읽어주기를 바람. 아울러 이때의 NBA가 지금하곤 이래저래 다르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진 말고
그렇다고 또 너무 막연히 받아들이지는 마시길...
뭐 여하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건 읽는 사람의 자유이니 각자의 제량에 맡기며 이 두서없는 글의 운을 떼본다.
카림 압둘자바(투명표시)
1970
득점 리더 제리 웨스트 (562)
리바운드 리더 윌트 채임벌린 (399)
어시스트 리더 월트 프레이저 (156)
WS 리더 제리 웨스트 (3.2)
LA 112 : 124 뉴욕
LA 105 : 103 뉴욕
LA 108 : 111 뉴욕
LA 121 : 115 뉴욕
LA 100 : 107 뉴욕
LA 135 : 113 뉴욕
LA 99 : 113 뉴욕
자세한 기록은 링크로 대체한다
https://www.statmuse.com/nba/ask/willis-reed-1970-finals-stats
윌리스 리드
파이널 평균 23득점 10.5리바 2.8어시
시즌 평균 21.7득점 13.9리바 2어시
예나 지금이나 좆욕은 동네북 신세였는지 플레이오프 진출을 건 단판제에서 패배한 뒤 1956년 10년동안 딱 한번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 진출한게 고작이었다
심지어 어찌어찌 올라간 파이널에선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이후 연고지를 이전해 LA 레이커스)의 조지 마이칸에게만 2번이나 물 먹음
하지만 60년대 뉴욕에 윌리스 리드라는 선수가 입단하면서 상황은 반전 된다. 그는 루키 시즌(평균 19.5득점 14.7리바운드 각각 그 해 NBA 7위 5위에 해당함)이었던 1965년 레이커스를 상대로 46득점을 기록할 정도로 LA에 강했기 때문 그리고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후 뉴욕과 LA는 결국 파이널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때 윌리스 리드가 아픈 몸에도 공수양면에서 윌트 채임벌린을 압도하며 시리즈는 접전의 양상을 띄게 된다.(후술하겠지만 당시 레이커스 BIG3는 엄청난 슈퍼팀이었음 뉴욕도 만만치 않은 강호긴 했지만 네임밸류나 기록적인 면에선 다소 떨어졌던 편)
이후 자칫 한경기라도 삐끗하면 우승을 장담할수 없는 상황에서 허벅지 부상으로 아웃...되는줄 알았는데 절뚝거리며 경기장에 등장!
절대 무리해선 안되는 몸상태에도 직접 뛴 점프볼 이후 폭풍 4득점으로 투혼을 발휘,
팀에 우승에 공헌하였다(ESPN은 이 투혼을 현재에도 역대 최고의 7차전 활약으로 꼽는다)
게다가 NBA 역사상 최초로 시즌MVP-올스타MVP-파이널MVP를 따내며 트리플 크라운까지 달성
(이후 마이클 조던과 샤킬 오닐이 이 기록을 이음. 심지어 GOAT는 2회나 달성)해내는 대기록 또한 작성
이후 뉴욕은 팀의 또 다른 주축선수 데이브 드부쉐어가 팀에 온전히 녹아들게 되면서 몇년동안 느바 최강의 수비팀으로 맹위를 떨치게 됨
트리플 크라운 얘기가 나와서 하는말인데 윌리스 리드가 데뷔 당시엔 신인상도 받았을 정도로 수상내역이 굵직굵직했지만 생각보다 다복하지는 않다.
빌 러셀, 윌트 채임벌린 그리고 커리어 후반엔 카림 압둘자바 까지 뛰었던걸 감안해도 퍼스트팀 수상이 단 1회에 그쳤음(그러니까 딱 이때받고 땡...)
뭐 후배인 패트릭 유잉보다 박복하겠냐만...
https://www.statmuse.com/nba/ask/walt-frazier-1970-finals-stats
월트 프레이저
파이널 평균 17.6득점 7.7리바 10.4어시(어시스트 리더)
시즌 평균 20.9득점 6리바 8.2어시
36득점 7리바 19어시스트(야투율 12/17 70.6% 자유투 12/12 100%)는 진심 와... 참고로 이게 바로 그 윌리스 리드의 부상 투혼 이후 나온 대기록이었음
espn에서 괜히 이 날 경기를 두고 역대 최고의 7차전으로 꼽는게 아니지...
커리어 초기부터 대단한 분이었는지 데뷔후 2년밖에 안지나 휴스턴 로키츠를 상대로 123-110 승리를 거두며 43득점, 9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하는 괴력을 이미 보인바 있다(2년차 평균 17.5득점, 6.2리바운드, 7.9어시스트)
아울러 기록에 다 나오질 않지만 역대급의 공수겸장 가드.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7회 (1969-1975)에 뽑힌 경력이 있으니 뭐...
(올-NBA 퍼스트 팀은 4회 세컨드 팀은 2회)
뉴욕이 누굴 공격,리딩자원으로 믿고 팀 컬러를 수비팀으로 돌린건지 알만 하네
https://www.statmuse.com/nba/ask/dave-debusschere-finals-stats
데이브 드부셔
파이널 평균 19득점 12.6리바 2.6어시
시즌 평균 14.6득점 10리바 2.5어시
수비 퍼스트팀에 6년 연속으로 선정된 선수
심지어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서 6년을 보낸 다음인 뉴욕에서, 즉 커리어 후반기 은퇴시즌동안 선정된 것... 나이 들어서 수비에 눈이 뜬 케이스랄까
당시 최강의 수비팀이었던 뉴욕 닉스의 큰 축을 담당했던 분으로 전형적인 블루워커 타입 그 이상의 선수였던듯. 평균 16.1득점 11리바 2.9어시스트로 평균 기록도 걸출하고(12년만 뛴걸 감안해야겠지만 그렇다쳐도 득점이 생각보다 높다) 다친 시즌도 거의 없고 꾸준히 뛴 철인
3차전 경기종료 3초를 남기고 클러치샷을 성공시켜 승리를 굳히는듯 했으나 이후 제리 웨스트가 더 엄청난 버져비터를 성공시키는 바람에 빛이 좀 바랬네...
참 이색적이게도 농구선수임과 동시에 야구선수였던 이력이 있다. 심지어 메이저리그 데뷔가 몇달 더 빨랐음...
루키시즌을 이렇게 하드코어하게 투잡으로 뛴 선수가 또 있을까 싶네...
https://gall.dcinside.com/m/americanbasketball/1638897
여담으로 조현일 해설위원은 최근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한 콘텐츠에서
내가 얼마전에 쓴 칼럼의 주인공 바비 존스와 데이브 드부셔를 같은 파워 포워드 3티어에 올려놓은바 있음
https://www.statmuse.com/nba/ask/elgin-baylor-1970-finals-stats
엘진 베일러
파이널 평균 17.9득점 11.3리바 4.7어시
시즌 평균 24득점 10.4리바 5.4어시
상대팀 에이스인 윌리스 리드가 부상으로 막판에 제대로 못 뛰었음에도 패한거 보면 콩신이 제대로 씌였던듯 (등번호를 자세히 보라)
이분의 콩라인 역사를 여기서 읊자면 빈칸이 모자라니 관심있으면 나중에 찾아보도록...
참 NBA 역사상 콩라인 고트라고 불릴만큼 불운한 커리어를 보낸 사람이었지만
역대를 논할만한 득점력과 리바운드 능력 그리고 어시스트에도 능했던 희대의 올라운더였다
빌 러셀에게 인유어 페이스
기타 활약들
https://gall.dcinside.com/m/americanbasketball/1621322
코비의 말마따나 마이클 조던 이전의 쥴리어스 어빙, 그 이전엔 엘진 베일러가 있었다 봐도 무방함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가 조지 마이칸 은퇴 이후 암흑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팀을 매각할 무렵
당시 LA구단주가 오로지 엘진 베일러만 믿고 팀을 리빌딩 시켰을 정도니...
이는 평균기록이 말해준다 한 시즌 평균 38.3득점(윌트 채임벌린을 제외한 NBA 역사상 가장 높은 평득), 18.6리바운드, 4.6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면 뭐... 한 시즌 다 뛰고 남긴 기록은 아니지만 그 이유가 군복무 중이었다는걸 감안하면 오히려 더 대단하다 느껴짐...
게다가 큰 경기에도 강한 클러치 플레이어였는데 하필 그놈의 콩신 이미지가 씌워지는 바람에 이제와선 많이들 몰라준다...
플레이오프 팀내 최다 득점 혹은 득점 리더 부문에도 채임벌린을 앞선적이 종종 있었구만...
만약 기량을 온전히 유지한채 계속 뛰었다면 지금보단 더 대접받았을텐데 60년대 중반부터 앓아온 무릎 부상이 계속 그를 괴롭히게 되고
이후 점점 기량하락을 겪다 71-72 시즌 단 9경기만을 뛰고 은퇴했음. 씁쓸...
근데 이름값에 비해서 이 파이널의 몇몇 경기는 기록이 대놓고 허접함 3,6차전(각각 4/13 30.8%, 3/12 25%) 야투부진은 좀 심각하네... 뉴욕 닉스 수비가 강했던거야 아니면 이 사람 컨디션이 완전 쥐약이었던 거야... 좋은날은 60%정도인걸 보면 그냥 기복이 좀 심했던 걸까
전년도 셀틱스와의 스탯도 살펴보면 2차전엔 32득점 10리바 5어시 (야투율 11/15 73.3%) 다음 경기엔 꼴랑 11득점 14리바 (야투율 4/18 22.2%) ... 그다음 내리 5득점(2/14 14.3%), 8득점(4/13 30.8%) 하다가 6차전에서야 26득점(9/18 50%) 10리바운드로 반등...(골때리는건 이 5득점, 8득점 했을때 팀은 이겼다는거다...)
제리 웨스트는 부상으로 야투율이 썩창이어도 24득점을 올리고 존 하블리첵은 눈이 찔렸는데 34득점을 넣었다는구만 이분은 대체 어디가 편찮으셨던거냐...
비슷하게 부진했던 윌트 채임벌린도 8득점을 하든 13득점을 하든(참고로 빌 러셀과의 맞대결인 1969 파이널중 20득점대 경기가 하나도 없다) 리바운드는 31개씩을 잡았는데 흐음...
https://www.statmuse.com/nba/ask/jerry-west-1970-finals-stats
제리 웨스트
파이널 평균 31.3득점(득점 리더) 3.4리바 7.7어시
시즌 평균 31.2득점 4.6리바 7.5어시
한 시즌 플레이오프 평균 40.6득점(한 시리즈만 평균 46.3득점)이라는 괴물같은 기록을 보유한 레전드... 무슨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아울러 GOAT 마이클 조던이 리스펙트하는 의미에서 선배들중 가장 상대하고 싶은 선수로 꼽았던 분. 별명은 Mr. Clutch!
엘진 베일러와 묶여 Mr. Inside, Mr. Outside 라고도 불렸다 한다
전년도 셀틱스와의 파이널에서 39점(9어시), 41점(8어시), 56점(10어시)씩을 퍼붓고도 져서 상심이 컸을때, 심지어 마지막 경기엔 더 엄청난 기록을 남겼는데
무려 42득점 13리바 12어시 ㄷㄷㄷ...(참고로 이때도 7차전까지 갔는데 이 고득점 경기중 세번을 졌다...)
여하튼 이듬해 올 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첫 선정되고 올 NBA 퍼스트팀에도 선정 되는등 이번만큼은 모든것이 순조로이 진행되는줄 알았는데 또 7차전까지 가서 짐...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 있다면 3차전에서 천금같은 버져비터를 무려 18m란 어마어마한 거리를 두고 성공시켰는데
하필 이땐 3점이 없었던 때인지라 역전이 아닌 연장전을 가서 그와중에 오른손이 삐는 바람에 아쉽게 패배...
당시 제리 웨스트의 맞상대가 월트 프레이저였던 만큼 이때의 로고옹은 주 득점원일 뿐만 아니라 플레이 메이커이기도 했는데 그런 존재가 부상으로 폼을 한순간에 잃었으니 팀 전체가 무너질수밖에...
분을 삼키며 악착같이 준비한 다음 시즌엔 평균 26.9득점, 4.6리바운드, 9.5어시스트로 다시금 우승에 진지하게 도전했으나 엘진 베일러와 쌍으로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되어 플레이오프에선 아예 나오지도 못했음
이후 윌트 채임벌린은 제리 웨스트를 잃은 마당에 팀내 유일하게 의지할만한 선수인 게일 굿리치라도 끌고
한 전대미문의 콤비를 상대하게 되는데 허무하게 4전 전패로 깨지고 만다... 이 내용에 관해선 4편에 서술할 예정.
https://www.statmuse.com/nba/ask/wilt-chamberlain-1970-finals-stats
윌트 채임벌린
파이널 평균 23.3득점 24.1리바(리바운드 리더) 4어시
시즌 평균 27.1득점 18.4리바 4.1어시 (64.9%로 야투율 리더)
플레이오프에 부진하다는 이미지를 타파하고자, 그리고 라이벌인 빌 러셀을 향한 승부욕 때문인지
서로 이해관계과 맞았던 레이커스로 거금의 계약을 체결하며 이적했다
제리 웨스트 - 엘진 베일러 - 윌트 채임벌린으로 이뤄진 이 역대 최강급의 G - F - C의 조합은 지금으로 치자면
거의 뭐 돈치치 - 듀란트 - 요키치급의 멤버라고 보면 될듯...
정말 어떻게든 셀틱스 한번 제껴보려고 레이커스가 최강의 슈퍼팀을 결성시킨건데 앞서 말했듯
그래도 7차전까지 가서 패배...
참고로 이때 잡음이 좀 있었는지 제리 웨스트를 제외한 엘진 베일러를 비롯, 여러 레이커스 선수들, 심지어는 감독과도 좀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윌트옹이 파괴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인품 자체는 훌륭하고 참 사람이 순했다고 하는데
자신의 스탯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쓰는것이 원인이었다고 함... 갈통이가 경기중에 자기 기록지를 살펴본적이 있듯 이분도 그런짓을 번번히 했었다고
여하튼 셀틱스에게 깨지고 동료들한테도 개같이 까여도 할건 다 했다
69-70 시즌 첫 9경기 동안 경기당 평균 32.2득점과 20.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최고의 몸상태를 보였으나 직후 바로 부상을 당하면서 몇달간 결장...
그래도 최종적으론 평균 27.3득점, 18.4리바운드, 4.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비록 평균 20리바엔 실패했어도 엄청난 기록을 남겼음
그리고 다시 밟게된 파이널 무대... 상대는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고 있던 셀틱스의 빌 러셀이 아닌 뉴욕의 왕 윌리스 리드
피차 아픈 상태긴 했지만 이때 채임벌린은 부상때문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좀 느려졌던 터라 윌리스 리드의 빠른 공격을 막는데 좀 애먹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5차전에서 보인 수비와
다채로운 공격 무브는 지금봐도 와...
이게 어떻게 부상자일수가 있나...
하지만... 천성이 어디 안가는지 이후 윌리스 리드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도 결정적인 순간에 폭풍 턴오버를 저지르고 중요한 순간에 야투를 계속 흘리는등(케빈 가넷도 0708 파이널에서 비슷하게 못해 진 경기가 있긴한데 암만 이지샷 놓치고 자유투 팅, 클러치 턴오버를 지렸어도 얜 그래도 가솔이 빠져있진 않았다) 멘탈적인 면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스탯지의 엄청난 기록들이 무색하게 마지막엔 패배하고 말았음... 45득점 27리바를 기록하면 뭐하냐... 우승 못하니 다 부질 없네.
이때 언론에게서 어떻게 윌리스 리드가 없는데도 찌발렸냐며 개같이 씹혔다는데 그 임팩트가 너무도 큰 나머지 제리가 농구 인생이 위태로울 정도의 부상이었다고 아무리 쉴드를 쳐줘도 전혀 통하지가 않았다 한다
사실 부상이고 뭐고 윌트 채임벌린은 다른 약점이 너무 강렬했던것이 고대의 샼답게
자유투가 정말 드럽게 구렸다.... 1차전 10%(1/10) 마지막 7차전은 하나 더 던져서 9.1%(1/11)... 샼도 파이널에서 한자릿수는 안 찍은거 같은데 흐음...
참고로 이때 채임벌린에게 준우승을 안긴 뉴욕은 필라델피아 시절 윌트 채임벌린 100득점의 희생양이었었음
어떤 의미에선 뉴욕이 가장 크게 되갚을수 있는 최고의 복수를 한 셈...
1969 레이커스 vs 셀틱스 7차전 4쿼터 접전
모두가 레이커스의 우승을 점쳤지만... 하여튼 참 공은 둥그네
뉴욕 닉스의 역사
1970년 닉스 vs 레이커스 5차전 풀 경기
1970년 파이널 윌트 채임벌린 vs 윌리스 리드
윌리스 리드 하이라이트
모두가 깜짝 놀란 제리 웨스트의 버져비터
월트 프레이져의 36득점 19어시스트
클라이드, 월트 프레이져의 하이라이트
1970년 파이널 7차전 윌리스 리드의 그 유명한 The Jump
뉴욕 닉스의 첫 우승
\
윌리스 리드의 골밑 활약들
1970 파이널 활약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편히 잠드시길...
https://gall.dcinside.com/m/americanbasketball/1649646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