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편치 않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엄청나게 큰 갑충으로 변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
[ 프란츠 카프카, 변신 中 ]
* * *
언제나 좆같은 이상성욕을 발산하는 장붕이 여러분.
오늘은 한 가지 소설에 대하여 리뷰를 남겨볼까 한다.
고전 소설 좀 읽어본 장붕이들이라면 모두 제목은 들어봤을 소설.
바로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소설 중 하나인 「변신」이다.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나는 이 소설을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그 점에 유의하고 스크롤을 내려주길 바란다.
[스토리]
본 소설의 시작은 여타 소설들과 차별화된, 사뭇 충격적인 장면부터 스토리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의 몸에 이상을 느낀다.
등은 돌처럼 딱딱해졌으며, 갈색으로 변한 배는 풍선처럼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다리들이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는 한 마리의 갑충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레고르는 이 충격적인 상황 속에서도 기차를 놓친 것에 조급해하며 그저 다음 기차 시간만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침대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그레고르의 집에 설상가상으로 지배인까지 찾아와 부모와 함께 방문을 열라고 그를 재촉한다.
그레고르는 지배인을 진정시키기 위해 결국 문을 열었고.
그의 부모와 지배인은, 한 마리의 갑충으로 변한 그레고르의 모습을 목격하고 만다.
불행하게도 더 이상 그레고르는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 상태.
아버지는 싯싯- 소리를 내며 갑충이 된 그레고르를 위협하며 다시 방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이후 벌레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 * *
[해석]
본 소설에 대한 해석은 이미 수도 없이 많이 나와있지만, 굳이 한 가지를 뽑아보자면 바로 이것이다.
사회적으로 도태되어버린 부적응자 및 실패자들.
즉, 히키코모리들을 벌레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어느 날 소설 속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되어버림으로써 집안의 소득은 제로가 되어버린다. 때문에 주인공의 돈에 기대어 살아가던 가족들은 한순간에 궁지로 내몰리게 된다.
그가 부모의 빚을 갚기 위해서 돈을 벌 때조차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고마움조차 표현치 않던 가족들은 주인공이 자신들을 부양하지 못하는 한 마리의 '벌레'로 전락하자, 그를 경멸하며 구박한다.
하지만 오직 여동생만큼은 주인공이 벌레로 바뀌기 전이나, 후나 그의 편의를 위하여 노력해 주었다.
때문에 주인공이 점점 인간성을 상실해가면서도 끝까지 음악학교로 보내주리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여동생조차도 끝끝내는 제 부모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저는 저런 괴물을 오빠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저것을 없애야 해요. 저것이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이제껏 그렇게 믿어왔던 것이 그저 불행일 뿐이었어요. 당장 내쫓아야 해요!”
주인공의 변화 이후 남겨진 가족들 모두가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런 집안에서 경제적 주도권을 잃은, 그저 방에서 음식만을 축내는 끔찍한 벌레인 주인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마지막에는 가족들 모두가 그의 죽음을 바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집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던 주인공이 이른 아침 죽어있는 상태로 발견되자, 그의 시체를 쓰레기처럼 내다버린다. 그 뒤 가족들이 홀가분하게 이사를 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 * *
[개인적인 리뷰]
우선 이 소설은 전에도 몇 번 읽은 경험이 있다.
그러나 며칠 전 이 책을 다시 읽던 도중, 한 가지 의문점이 나로 하여금 이 리뷰를 작성하게 만들었다.
어째서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여동생을 따먹지 않았을까?
이것은 천박한 질문이 아닌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모두 한 번씩은 떠올릴법한 합리적인 의문이다.
주인공은 유일하게 믿었던 여동생 그레테에게조차 괴물이라고 비하 받으며 홀로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이 씨발
애미 씨발 좆같네
존나 빡치지 않는가?
아니 씨발 고구마만 500배를 쳐먹여 놓고 물 한 방울도 안주는 느낌이었다.
피폐물이라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끔찍한 피폐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정한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이 맞았다.
섹스가 없다면 대체 그게 무슨 소용일까.
때문에 한참을 눈을 감은 채로 생각해 보았다.
이 찝찝한 기분은 대체 무엇인가. 이 역겨운 불쾌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위가 필요하단 말인가!
철학적인 질문을 나 자신에게 끝없이 던졌다.
그렇게 내 뇌의 중추까지 다다른 핵심적인 결론은 이것이었다.
만약 주인공이 여동생의 괴물 발언에 크게 분노하여 이성을 잃고, 그녀를 덮쳐 거대곤충거근쥬지로 여동생 그레테를 범했다면 쥬지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텐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한번 떠올려 보아라.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눈을 감고 머릿속에 하나의 상황을 자신만의 붓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당신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의 몸으로 빙의되었다.
가족들은 당신을 역겨워하고 더러운 쓰레기로 취급한다.
거기에 믿었던 여동생마저, 당신을 괴물이라 부르며 경멸 섞인 시선을 보내올 것이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서 당신은 그저 참고만 있을 것인가?
호구 병신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원작의 주인공처럼 초라하게 죽어갈 것이냔 말이다!
정상적인 사람인 이상, 절대로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먼저 당신을 향해 괴물이라 불렀던 여동생을 참교육할 차례.
여동생이 당신에게 먹이를 던져주러 오는 그 시간을 노리는 것이다.
먹이를 던지고 나가려는 여동생을 밀쳐 넘어트려 당신의 거대한 주둥이로 그녀의 옷을 찢어버려라!
"오빠 어째서! 믿었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이렇게 되지도 않는 태세 전환을 시전하는 건방진 여동생 년에게 어차피 말도 안 통하는 거 벌레 즙 주사 좀 놔주면 아주 머꼴 시추에이션으로 상황은 역전될 것이다.
"응고오옷! 흐갹! 이힉! 흐에에엣! 응기잇! 벌레 자지에는 반항할 수 없어요오옷!"
이런 소리를 내며 점점 쾌락에 굴복하는 여동생, 결국 벌레 거근에는 이길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형용할 수 없는 후회에 휩싸인 주인공.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여동생에게 손을 대고 말았다는 절망감, 그리고 이제 인격마저 벌레로 뒤바뀌었다는 혐오감이 그를 지배한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을 꼭 안아주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여동생.
절망과 후회, 그리고 약간의 안도감이 뒤섞인 새벽.
둘은 서로를 이해하며 체온을 나누었다. 그때 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곤충의 타액, 혹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눈물일지도 모른다.
이게 피폐고, 이게 섹쓰지 씨발
결말이 이렇다고 생각하니 며칠 동안의 찝찝함이 시원하게 씻겨내려가는 기분이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필자는 좆같은 근친충도 아닐뿐더러, 끔찍한 충간을 옹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본인은 건전하고 이상적이며, 순수하고 고매한 이성 간의 사랑을 선호하는 바이다.
이상, 건전한 고전 명작.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리뷰해 보았다.
읽어줘서 고맙다.
결론
존나 꼴리는데 누가 충간 패러디 좀 "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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