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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독도를 우산도로 인식하였을까?앱에서 작성

ㅇㅇ(110.70) 2019.12.27 00:12:11
조회 749 추천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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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여기에 대해 명백한 여러 팩트들을 시대순으로 제시하며 설명한다.
내가 붙인 팩트들 대부분은 조선왕조실록이나 고전번역원에 가면 검색할수 있다.
 
팩트 붙이며 팩트 내용을 그대로를 설명하겠다.
 
 
일단 먼저 안용복사건 이전 조선중기이전 조선인들이 인식한 우산도다.
 
 
1-1 태종실록
안무사(按撫使) 김인우(金麟雨)가 우산도(于山島)에서 돌아와 토산물(土産物)인 대죽(大竹)·수우피(水牛皮)·생저(生苧)·면자(綿子)·검박목(檢樸木) 등을 바쳤다. 또 그곳의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그 섬의 호수[戶]는 15구(口)요, 남녀를 합치면 86명이었다. 김인우가 갔다가 돌아올 때에, 두 번이나 태풍(颱風)을 만나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1-2 우의정 한상경(韓尙敬), 육조(六曹)·대간(臺諫)에 명하여, 우산(于山)·무릉도(武陵島)의 주민[居民]을 쇄출(刷出)하는 것의 편의 여부를 의논케 하니, 모두가 말하기를,
“무릉(武陵)의 주민은 쇄출하지 말고, 오곡(五穀)과 농기(農器)를 주어 그 생업을 안정케 하소서. 인하여 주수(主帥)를 보내어 그들을 위무(慰撫)하고 또 토공(土貢)을 정함이 좋을 것입니다.”
하였으나, 공조 판서 황희(黃喜)만이 유독 불가하다 하며,
“안치(安置)시키지 말고 빨리 쇄출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쇄출하는 계책이 옳다. 저 사람들은 일찍이 요역(搖役)을 피하여 편안히 살아왔다. 만약 토공(土貢)을 정하고 주수(主帥)를 둔다면 저들은 반드시 싫어할 것이니, 그들을 오래 머물러 있게 할 수 없다. 김인우(金麟雨)를 그대로 안무사(按撫使)로 삼아 도로 우산(于山)·무릉(武陵) 등지에 들어가 그곳 주민을 거느리고 육지로 나오게 함이 마땅하다.”
하고, 인하여 옷[衣]·갓[笠]과 목화(木靴)를 내려 주고, 또 우산 사람 3명에게도 각기 옷 1습(襲)씩 내려 주었다. 강원도 도관찰사(江原道都觀察使)에게 명하여 병선(兵船) 2척(隻)을 주게 하고, 도내의 수군 만호(水軍萬戶)와 천호(千戶) 중 유능한 자를 선간(選揀)하여 김인우와 같이 가도록 하였다.
 
 
-> 첫번째 사료는 김인우가 우산도에 사는 3명을 데려와 그 섬에 86명이 산다고 보고 후
3일후 (두번째 사료)조정에서 우산 무릉 쇄출을 의논하는 내용이다.
굵은 글을 보면 알겠지만 우산도가 독도라면 사람이 산다는게 말이 안되고 무릉의 주민은 쇄출하지말라는 건의에 (즉 우산도 주민은 쇄출하란 소리)
태종은 황희의 모두 쇄출하라는 의견을 받아들여 우산 무릉도 주민을 모두 데리고 나오라고 명을 내린다.
그리고 3일전에 김인우가 데리고 온 우산도 사람 3명에게 옷까지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조실록
 
우산도(牛山島)와 무릉도(茂陵島)의 두 섬에는 읍(邑)을 설치할 만하니, 그 물산(物産)의 풍부함과 재용(財用)의 넉넉함은, 저목(楮木)·저상(苧桑)·대죽(大竹)·해죽(海竹)·어교목(魚膠木)·동백목(冬栢木)·백자목(栢子木)·이목(梨木)·시목(柹木)과, 아골(鴉鶻)·흑색 산구(黑色山鳩)·해의(海衣)·복어(鰒魚)·문어(文魚)·해달(海獺) 등의 물건이 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토지가 비옥하여 화곡(禾穀)의 생산이 다른 지방보다 10배나 된다동·서·남·북이 상거(相距)가 각각 50여 리(里)나 되니 백성이 거주할 수가 있으며  (하략)
 
 
->우산도에 읍을 설치.. 즉 마을을 설치하고 토지가 비옥한 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독도는 저런 요건을 갖춘 섬이 아니다.
거기다 동서남북 상거가  50리라는건 울릉도의 크기를 설명한다고 보는것에 적합하다.
 
 
 
세종실록지리지 울진현 (한국이 독도 고유영토 주장할때 강력하게 쓰는 증거 하지만 세종실록지리지의 진실은?)
 
(상략 울진현 주변을 서술함)
우산(于山)과 무릉 (武陵) 2섬이 (울진)현의 정동(正東) 해중(海中)에 있다.【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고,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 우산국(于山國), 또는 울릉도(鬱陵島)라 하였는데, 지방(地方)이 1백 리이며,  (중략 울릉도에 대해 서술함)
다시 삼척(三陟) 사람 김인우(金麟雨)를 명하여 안무사(安撫使)를 삼아서 사람들을 쇄출(刷出)하여 그 땅을 비우게 하였는데, 인우가 말하기를, “땅이 비옥하고 대나무의 크기가 기둥 같으며, 쥐는 크기가 고양이 같고, 복숭아씨가 되[升]처럼 큰데, 모두 물건이 이와 같다.” 하였다.
 
 
국내학자들은 세종실록지리지를 우산도를 독도 무릉도를 울릉도로 규정하고
맑은날에 두 섬을 서로 마주보인다고 해석하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분명히 세종실록지리지 처음엔 울진현을 중심으로 해서 울진현 주변을 묘사하고 있으므로
울진현에서 동해안에 떠오른 저 두섬이 보인다고 해석하는게 적절하다.   
즉 서로 멀지 않은 두섬을 맑은날에 (울진)현에서 볼 수 있다는것
참고로 우산도 죽도론을 믿지 않은 사람은 이러한 반박에
우산도가 죽도라면 맑지 않아도 울릉도에서 꾸준히 보인다.
육지에선 죽도를 볼 수 없다. 이러는데
저기서  서로 멀지 않은 두 섬은 모두 울릉도다.
저걸 두섬으로 착각했다고 암시할수 있는 기록은 바로 다음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는것 --> 신라 때에 우산국(于山國), 또는 울릉도(鬱陵島)라 하였는데, 지방(地方)이 1백 리이며 <-- 두 섬을 울릉도라고 하였다는데  실제로 울릉도는 한 섬
그리고 1백리 다음에 중략했는데 원문을 읽어보면 쭉 울릉도에 대한 설명이라는걸 확인할수 있다. 독도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육지에서 보이는 울릉도를 자세히 묘사한 동국여지승람 같은 경우는 한섬인 울릉도 우산도를 두 섬으로 착각했다는 기록이라는게 명백한데 여기에 대해 바로 아래에서 설명하겠다.)
그리고 중략후 마지막에 김인우 얘기가 나오는데 김인우 얘기가 저렇게 나왔다는 소리는 세종실록지리지는 우산 무릉도를 방문한 김인우의 보고를 참고해서 울릉도를 설명했다고 봐도 무방 김인우는 이미 위 태종실록에 우산도는 사람이 산다고 보고했고 조선 조정에도 저것땜에 쇄출 논의했음.
 
 
 
동국여지승람
 
우산도(于山島)ㆍ울릉도(鬱陵島) 무릉(武陵)이라고도 하고, 우릉(羽陵)이라고도 한다. 두 섬이 고을 바로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세 봉우리가 곧게 솟아 하늘에 닿았는데 남쪽 봉우리가 약간 낮다. 바람과 날씨가 청명하면 봉우리 머리의 수목과 산 밑의 모래톱을 역력히 볼 수 있으며 순풍이면 이틀에 갈 수 있다. 일설에는 우산ㆍ울릉이 원래 한 섬으로서 지방이 백 리라고 한다. (하략 세종실록지리지와 똑같이 울릉도에 대해 서술)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과 별 차이 없고 추가된게 있다면 울진에서 무릉도와 우산도가 어떻게 보이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했으며
(참고로 동국여지승람은 울진시점이라는건 한국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임)
중요한건 일설에는 우산 울릉이 원래 한 섬이라고 기록 땅의 둘레는 백리라는건 세종실록지리지와 같다.
저렇게 일설에 한섬이라는걸 강조하면 이런 반박이 나오지
일설은 일설일 뿐이다. 주 얘기는 2도설이다.
이런 반박은 일설의 핵심과 전제를 잘못 짚고 하는 반박에 불과한데
저렇게 일설이란 얘기 나왔단 자체가 울진에서 보이는 우산 무릉도의 모습
즉 우산 무릉도가 두개로 이루어진지 한개로 이루어진지 제대로 모른단 소리다.
만약에 저게 울릉도에서 독도 얘기라면
독도가 보이는곳은 울릉도 뿐이고
울릉도에서 독도를 본다는건 결국 울릉도는 어떻게 생긴지 안단 소린데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면서 두 섬은 일설은 한섬이라고 기록한다는거 자체가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말이 안된다.
 
즉 세종실록지리지는 육지에서 울릉도를 두개의 섬으로 착각해서 본것에 불과하고 동국여지승람에 그 사실이 구체적으로 명백히 서술되어 있다.
(그래선지 당시 제작된 고지도에서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 포함 (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 포함) 제각각 방향에 그려진 지도들이 많은것 울릉도에서 독도를 봤다면 어디가 동쪽인지 아는데 저렇게 그릴수가 없음)  
 
 
 
그 외 당대 지식인들이 육지에서 바라본 우산도 울릉도
 
 
미수기언 김시습
 
다시 동이(東暆 강릉)로 나가 풍악산(楓嶽山)과 오대산(五臺山)에 올랐고 바닷가를 유람하였으며 월송정(越松亭)을 거닐었고 울릉도(鬱陵島)와 우산도(于山島)를 멀리 바라보았다.
 
-->월송정.. 즉 김시습은 육지에서 울릉도와 우산도를 바라보고 있다.
 
 
 
허목
 
 한송정 아래에 술랑정(述郞井)과 석조(石竈)ㆍ석지(石池)가 있고 평해(平海)의 월송포(越松浦)가 있다. 우산도(于山島)와 울릉도(鬱陵島)는 하나의 섬인데,바라보면 세 개의 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다. 바다가 쾌청하면 산의 나무를 볼 수 있으며, 산 아래에는 하얀 모래가 매우 멀리 뻗어 있다.
 
--> 허목도 육지에서 우산도 울릉도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건 허목은 일설 운운하지 않고 우산도 울릉도가 원래 한 섬이라는걸 정확히 알고 있다는것
 
 
김만귀
 
신이 옛날에 강원도사江原都事가 되었을 때,[5] 해상海上에 이르러 거주하는 사람에게 울릉도를 물었더니 섬을 가리켜 보여주었습니다. 신이 일찍이 일어나 멀리 바라보니 세 봉우리가 역력했는데, 해가 뜰 때에는 전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로써 영암靈巖의 월출산月出山에서 제주濟州를 바라본 것에 비한다면 오히려 가까운 편입니다."
 
남구만
 
우리 나라 강원도의 울진현(蔚珍縣)에 속한 울릉도란 섬이 있는데, 본현(本縣)의 동해(東海) 가운데 있고 파도가 험악하여 뱃길이 편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몇 해 전에 백성을 옮겨 땅을 비워 놓고, 수시로 공차(公差)를 보내어 왔다갔다하여 수검(搜檢)하도록 했습니다. 본도(本島)는 봉만(峰巒)과 수목을 내륙(內陸)에서도 역력히 바라볼 수 있고, 무릇 산천(山川)의 굴곡과 지형이 넓고 좁음 및 주민의 유지(遺址)와 나는 토산물(土産物)이 모두 우리 나라의 《여지승람(輿地勝覽)》이란 서적에 실려 있어, 역대에 전해 오는 사적이 분명합니다.
 
 
--> 위 두사람은 울릉도만 언급했지만 여기서 중요한건
세 봉우리 수목 산 아래 흰 모래
이러한 문구들을 위에 동국여지승람 우산도 울릉도 설명할때 나온 문구를 그대로 인용
그래선지 남구만은 울릉도에 대한 설명이 (동국)여지승람에 실려있다고 말함
 
 
 
여기까지가 안용복 사건 이전의 우산도 울릉도에 대한 기록이다.
공도정책으로 인해 울릉도에 갈 일이 거의 없어서 육지에서 우산도와 울릉도를 바라보며
저게 어떻게 이루어진 섬인지 헷갈려한게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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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선 숙종 안용복 사건 이후 우산도에 대한 기록들을 보자.
이때부터 조선이 울릉도에 본격적으로 제대로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수토관을 정기적으로 파견하거든
제일 처음에 파견된게 장한상이다. (안용복 1차도일 계기로 숙종이 장한상을 울릉도에 보냄)
 
 
장한상 울릉도사적
 
 남쪽 해변에는 대나무가 자랐고 농사를 짓던 밭이 있었다. 그 곳에서 동쪽으로 5리쯤 떨어져 그리 크지 않은 섬 하나가 있다.
바닷가 한 켠에 해장죽숲이 우거졌다.
(중략)
동쪽을 바라 보니 바다 한가운데 섬 하나가 진방(동남방)쪽으로 어렴풋이 보이는데 크기가 울릉도의 삼분의 일도 안 되어 3백 여리에 불과하다.
 
--> 자 위 동쪽 5리에 있느 섬은 현 명명백백히 죽도고
   아래쪽은 드디어 나온 조선시대 최초의 독도를 설명하는 문헌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건 어느 섬이 우산도인지 모른다.
  즉 독도를 발견하고도 저 섬을 우산도로 부르지 않고 그냥 어렴풋이 보이는 섬으로 치부했다는 자체가
 세종실록지리지 등등의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란 소리기도 하다.
 저 두 섬중 어느 섬이 우산도가 되는진 아래 박석창 울릉도도형 (세번째짤)으로 설명하겠다.
 
 
그리고 그 전에 장한상이 울릉도 조사한 이후 조선 조정과 승정원일기엔 이런 기록이 있다.
 
1-1. 승정원일기 김취로 (장한상이 울릉도 수토한 이후)
 
울릉도가 넓고 윤택하며 토질이 비옥하다고 들었으며, 더하여 사람이 살았던 자리가 있고, 혹은 배가 왕래하였던 흔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서쪽에는 또 우산도가 있는데 또한 역시 넓고 기름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후 3년에 한 번씩 수토하는 것을 정식으로 하였습니다.
 
1-2. 숙종실록
이때 장한상(張漢相)이 그려서 올린 산천(山川)과 도리(道里)가 《여지승람》의 기록과 틀리는 것이 많으므로, 혹자는 장한상이 가 본 데가 진짜 울릉도가 아닐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하였다
 
 
두 기록을 참고했을때 김취로는 장한상의 보고를 믿지 않고 팔도총도를 참고해서 우산도가 서쪽에 있다고 한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장한상이 가 본 데가 진짜 울릉도가 아닐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했다는건
장한상이 수토하기전까지 울릉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조선 정부의 현실의 보여주며 
거기다 우산도를 서쪽에 있다고 믿었다는거 자체가 조선 전중기의 우산도는 독도는 될 수 없단 소리지
 
 
숙종실록 안용복
울릉도는 본디 우리 지경인데, 왜인이 어찌하여 감히 지경을 넘어 침범하였는가? 너희들을 모두 포박하여야 하겠다.’ 하고, 이어서 뱃머리에 나아가 큰소리로 꾸짖었더니, 왜인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본디 송도(松島)에 사는데 우연히 고기잡이 하러 나왔다. 이제 본소(本所)로 돌아갈 것이다.’ 하므로, ‘송도는 자산도(子山島)로서, 그것도 우리 나라 땅인데 너희들이 감히 거기에 사는가?’ 하였습니다. 드디어 이튿날 새벽에 배를 몰아 자산도에 갔는데, 왜인들이 막 가마솥을 벌여 놓고 고기 기름을 다리고 있었습니다.
 
--> 이것 또한 한국이 세종실록지리지와 더불어 독도 영유권 증거로 강력하게 쓰는 사료다.
안용복은 일본인들이 자산도 (자子산도는 우于산도의 와전이다)를 송도라 칭하면서 그 섬에 살았다는데
일본이 당시 독도를 송도라 부른건 확실한 팩트임으로 저것만 봐선 정말로 자산도가 독도같아 보인다.
하지만 기록을 자세히 봤을때 이상한게 있다면 독도는 누누이 말하지만 사람이 살 수 없는 섬이다. 근데 왜인들이 저 섬에 불을 피우면서 까지 산다고 한다.
이튿날 새벽에 자산도로 출발해서 바로 도착했다는것도 울릉도~독도 거리를 감안했을때 당시 항해술상 불가능하고
저러한것들을 감안했을때 혹시 안용복이 말한 자산도는 죽도가 아닐까?
 
 
 
 
그래서 안용복 사건 이후로 조선이 무슨 섬을 우산도로 생각했는지 확실히 밝혀지는게
장한상 다음으로 울릉도를 수토해서 제작
위에 이미 언급한 박석창의 울릉도 도형(세번째 짤)과 박석창 울릉도 도형 이후로 제작된 (첫번째 두번째 짤 고지도) 고지도들이다.
 
 
박석창은 울릉도도형과 울릉도 동쪽 바로옆에 한 섬을 그리고
'해장죽전 소위 우산도'라고 적었다.
해장죽전은 장한상의 울릉도 사적에서도 장한상이 동쪽 5리에 떨어진 죽도를 발견하면서 나오는 말이다.
저 섬을 박석창이 그리고 거기다 해장죽전 소위 우산도라고 써넣었다는것
 
 
이때 이후로 나오는 고지도들은 울릉도와 우산도(죽도)의 모습을
현 위성지도로 비교해도 손색없을만큼 정말 정교하게 제작된다. 1~2번째 짤처럼 말이지
 
 
 
다음은 김정호 청구도에 우산도에 대해 뭐라고 쓰여있는지 함 보자
또 (울릉도 곁에) 우산도가 있는데, 역시 넓고 광활합니다.’라고 이른즉, 소위 西字는 이 지도에서 동쪽에 있는 것과 서로 다르다.
 
--> 김정호는 우산도를 죽도 위치에 죽도 모양으로 그리고 넓고 광활하다고 적었다. 죽도는 실제로 광활하다고 할 수 있으며
광활하다는건 암초에 가까운 독도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기록이다.
서쪽에 있다는 우산도가 사실은 동쪽에 있다는건 팔도총도 우산도를 보고 그 사실을 정정한것으로 보인다. 
 
 
 
일성록 1807년
 
북쪽으로 10여리 가면 우뚝 솟은 돌이 바다위에 서있다. 가운데에 배가 지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어 공암(孔巖)이라고 한다. 방향을 바꾸어 추산암으로 향하였는데 바위의 형태가 과연 송곳처럼 서있다. 남쪽에는 천저구미(天底仇味)가 있다. 계곡 입구가 매우 깊어 10여리이다. 북쪽에는 우산도가 있는데 둘레가 2~3리쯤이다. 남쪽의 도장구미(都庄仇味)에 닿아 계곡 입구로 깊이 들어가 보니 대나무밭이 많았으며, 잠선이 어지러이 부숴져 있었다.
 
--> 울릉도 주위를 돌아다니며 울릉도 주변을 묘사하는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우산도가 북쪽에 있고 두섬이라는 말이 없는것으로 보아 현 동북쪽에 있는 죽도에 가깝고 무엇보다 (동)남쪽에 있고 울릉도에서 바라보기 힘든 독도는 될 수 없다는걸 알 수 있다.
 
 
 
고종실록 이규원
 
(상략 고종은 울릉도 우산도 송죽도가 어떻게 이루어진지 몰라서 이규원한테 울릉도를 조사해보라고 명함)
이규원이 아뢰기를,
우산도는 바로 울릉도이며 우산(芋山)이란 바로 옛날의 우산국의 국도(國都) 이름입니다.
 
---> 이규원은 울릉도 우산도로 인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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