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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87 - 石造건물의 꿈

운영자 2019.08.08 16:13:34
조회 70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87


石造건물의 꿈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이었다. 동대문 밖 숭인리의 동묘(東廟) 근처에 집이 지어지고 있었다. 박동진(朴東鎭)이 집들을 짓고 있었다.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한 그는 조선 최고의 건축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는 일본 서적에 나와 있는 사진을 통해 서양의 건축물들을 공부했다. 평생 한 번이라도 그런 웅장한 석조건물을 지어보고 싶은 게 꿈이었다. 

그는 중앙학교 교장이었던 현상윤(玄相允) 선생의 집을 수리해 준 적이 있었다. 작은 정원이랑 사랑채의 배치를 세심히 설계해서 현상윤 선생과 의논을 했었다. 그를 신용하게 된 현상윤 선생은 그후에 다른 집들의 수리나 건축설계를 소개해 주었다. 그가 진행하는 동묘 근처의 주택 공사장 터에 며칠째 나와서 한참 동안 건축 되어가는 집들을 말없이 구경하고 가는 신사가 있었다. 눈빛이 부리부리한 양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 현상윤 선생이 공사현장에 그 신사와 함께 나타났다. 현상윤 선생이 그에게 공사장을 구경하던 남자를 소개했다.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선생이시오.”

김성수는 동아일보 사장이면서 민족의 대표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가 당황하고 놀란 낯빛으로 꾸벅 인사를 했다.

“우리나라에 건축을 전공한 학생이 없는 줄 알았었는데 자네가 집을 짓는 걸 보니 대단하네. 내 여러 날 여기 와서 봤지만 어떤 일도 귀찮다고 일시적으로 대충 하는 일이 없었어. 집 한 채를 짓는데도 상당히 계획적이고 견실해.”

김성수가 칭찬을 하면서 본론을 꺼냈다. 

“새로 신축되는 보성전문 건물의 설계를 맡아 주시오.”

박동진의 꿈인 석조건물을 지을 일생의 기회가 온 것이다.

며칠 후 김성수는 박동진과 동대문 밖 산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곳은 아직 경성부에 편입되지 않은 변두리로 군데군데 납작한 초가들이 웅크리고 있는 쓸쓸한 농촌이었다. 숭인리와 안암리 부근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김성수는 안암리의 전답 1만3000평과 임야 4만7000평 합계 6만여 평의 토지를 사기로 결정했다. 곧바로 그 땅을 놓고 재단법인 중앙학원의 명의로 지주들과 계약이 체결됐다. 함께 다니던 박동진이 물었다.

“땅을 그렇게 많이 사서 뭘 하려고 그러십니까? 그 비용으로 건물을 좀 더 좋게 짓는 게 낫지 않을까요?”

“건물도 건물이지만 이만큼 땅을 마련해 놓아야 다음 세대나 다음다음 세대에 원망을 안 들을 거요. 내가 서양을 둘러보면서 정말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말의 의미가 뭔지 깨달았소. 우리는 무엇을 할 때 한꺼번에 해치우려고 하니까 자연히 규모가 작은 것이 될 수밖에 없거든.”

“어떤 건물을 만들 계획이십니까?”

“서양의 여러 나라 대학을 가보니까 학교의 건물은 고딕식 석조(石造)건물이라야 해, 그래야 외관상 위엄이 있고 수명이 영구적(永久的)이지.”

“지금 총독부를 제외하고는 이런 건물이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더욱 조선 사람의 손으로 그런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요.”

김성수는 계동에 있는 자신의 집 사랑채에서 박동진과 함께 먹고 자면서 새로 지을 학교 건물에 대해 의논했다. 유럽에 가서 찍어온 수많은 대학의 건물들을 환등기로 보면서 함께 공부했다. 기본 설계가 나오고 토목공사가 시작됐다. 구릉을 깎고 그 흙으로 주변의 낮은 지대를 북돋아 석조 본관 건물 터를 깊게 다졌다. 비계(飛階)가 설치되고 인근 낙산 채석장에서 마차로 운반되는 돌들이 공사장에 하나씩 도착했다. 석수(石手)들이 망치와 정으로 돌을 깎는 소리가 쉬지 않고 공기를 흔들었다. 경성으로 올라와 일자리를 찾던 인부들이 매일 아침이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공사감독인 박동진은 매일 아침 그날 일할 노무자들을 선정했다. 그 앞에 노동자들이 줄을 서서 심사를 기다렸다.

“목도를 지고 돌을 날라봤나?”

“해봤습니다요.”

“아닌 것 같네, 목도를 들어본 사람 어깨가 아니야. 돌아가게.”

공사감독 박동진은 우(牛)시장에서 소를 냉철하게 감별하는 전문가같이 노무자들을 골라 일터로 올려 보내고 있었다. 키가 껑충하고 거무튀튀한 얼굴의 청년이 그의 앞에 섰다. 뼈가 굵은 게 힘깨나 쓰게 생겼다. 며칠 전 그가 절굿돌 같은 무거운 돌을 혼자 번쩍 치켜들어 올리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박동진은 그를 계속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펜에 잉크를 다시 묻히면서 물었다. 

“성명이 어떻게 되나?”

“정주영(鄭周永)이라고 합니다요.”

“자네는 계속 일하게.”

“감사합니다요.”

그가 후일 현대건설의 정주영이었다. 본관 건물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공사감독인 박동진은 건축주인 김성수의 간섭이 심하다고 느꼈다. 김성수는 콘크리트 배합에서부터 돌 하나 올리는 것에도 신경을 쓰며 지켜보곤 했다. 어느 날 공사장을 둘러보던 김성수가 박동진을 불렀다.

“자네, 여기 올라가는 이 벽을 보게.”

돌로 올리는 벽이 이미 2층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박동진이 벽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 맨 아랫돌들 말이야. 그중에 왼쪽 귀퉁이에서 두 번째 박힌 돌이 다른 돌들과 달리 약간 비뚤어진 감이 들지 않나? 돌들의 배치와 물림이 면도칼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해야지 이렇게 하면 안 되네. 이 벽 전체를 허물고 다시 쌓아 올리게.” 

김성수는 그렇게 치밀한 성격이었다. 본관 입구의 아치 기둥을 세울 때였다.

“서양의 고딕식 건물을 보면 이 기둥에 문양(紋樣)을 조각해 넣은 걸 봤네. 앞의 기둥에는 호랑이 그리고 뒤의 기둥에는 무궁화를 새겨 넣도록 하게. 호랑이 같은 기상(氣像)을 가지라는 염원이지. 그리고 무궁화는 민족을 상징하는 것이고.” 

송진우(宋鎭禹)가 신축 중인 건물을 보러 왔다. 웅장한 석조건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송진우가 옆에 있던 김성수에게 자신의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막대한 돈을 들여 거대한 집을 지을 게 아니라 목조 초가라도 사람만 많이 가르쳐 내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 아닐까?”

“아니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민족의 힘을 상징하는 형상화된 건물을 짓는 것도 조선인에게 자존감을 불어넣어 주는 큰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믿네. 구라파에 가서 수많은 사람들의 헌금으로 거대한 교회건물이 지어진 걸 봤지. 그 건물은 수많은 민중의 힘의 결집이고 상징이기도 하지. 나는 이 석조건물을 조선민족의 단결의 상징으로 함께 만들고 싶네.”

김성수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본관이 완성되고 도서관과 강당의 건축이 이어졌다. 동아일보에서 모금사업을 벌였다. 돌 하나를 올리는 데도 조선인들이 함께 힘을 합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정성이 담긴 기부금들이 들어왔다. 

경성의 장사동에 사는 김신일 노파는 일생 동안 장사해서 모은 500원을 보냈다. 김제에 사는 과부 조동희, 고창에 사는 노파 김일해는 평소에 절약해서 모은 거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1000원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화제를 일으킨 것은 고창에서 평생 주막을 하면서 천시를 당하던 과부 안씨(안함평)였다. 안씨는 전 재산인 70석 토지문서를 내놓았다. 

김성수가 그 문서를 받으면서 “이 70석의 토지는 7000석 부자의 것보다 더 귀한 재산입니다. 그 귀한 뜻은 보성전문과 함께 영원할 겁니다”라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경성방직의 김연수(金秊洙) 사장이 5000석의 신태인 농장과 거액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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