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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감별법

운영자 2020.06.08 10:15:08
조회 192 추천 5 댓글 0
내가 변호를 맡았던 나이든 도둑이 있었다. 그는 육이오전쟁 때 고아가 되어 서울역 주변에서 거지로 살았다고 했다. 끼니때가 되면 깡통을 들고 찬 보리밥과 쉰 김치를 얻어 가지고 와서 거지 친구 몇 명과 어울려 길가에 버려진 불기가 남아있는 연탄재에 올려놓고 함께 먹으면서 컸다고 했다. 거지 노릇 다음에 한 일은 남의 집 부엌에 들어가 은수저를 훔치는 일이었다고 한다. 도둑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도둑의 세계에서는 좀도둑보다 큰 도둑이 영웅이었다. 그는 대담해지면서 방 안으로 들어가 주인의 금 반지등 패물을 가지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감옥을 드나들면서 점점 큰 도둑이 되어갔다. 골목길을 지나가면서 한번 힐끗 봐도 어느 집에 돈이 숨겨있는지 알아내는 동물적 후각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먹으면 훌쩍 담을 뛰어넘어 문을 따고 들어가는 대담성도 갖추고 있었다. 형사들을 따돌리고 늠름하게 갈 수 있는 운동신경과 체력까지 소유했다. 그는 신출귀몰 하다는 최고의 도둑이 됐다. 언론은 그를 영웅으로 전설로 만들었다. 부패한 관료나 부잣집을 터는 게 속이 시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창이 있으면 방패가 있기 마련이다. 그는 형사의 45구경 권총에 맞아 잡혔다. 그는 감옥에서도 가만있지 않고 탈주를 시도하기도 했다. 어느새 그의 감옥생활도 삼십년이 넘고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에 대한 재심을 신청해서 세상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는 대단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성경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한자도 혼자 공부했다. 감옥은 그의 학교이기도 했다. 그는 석방이 되자마자 단번에 사회 명사가 됐다. 전국의 모든 교회에서 그를 강단으로 불러올렸다. 신문과 방송이 그에게 경쟁적으로 인터뷰요청을 했다. 기업가들이 그의 스폰서를 자청하고 나섰다. 수많은 사람들한테서 그에게 격려금이 왔다. 세상은 그를 인기연예인 수준으로 공중에 띄워 올린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내가 무료변호를 자청하고 권력과 싸워주던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청송의 교도소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상자곽 같은 감방에서 가죽 수갑에 손발을 묶인 채 엎드려 개처럼 바닥에 놓인 밥을 먹는다고 해서 변호를 시작했었다. 감옥 안에서의 그는 순수했었다. 그러나 감옥 밖에서의 그는 내가 보던 그가 아니었다. 어느 날 그와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던 부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을 해 주었다.

“그 사람이 나한테 따로 전화를 걸었어. 나보고 앞으로 친구가 되자고 접근하는 거야. 대충 어떤 종류인지 알 것 같아. 돈 냄새를 맡고 나에게 접근하는 거야. 변호를 했던 자네는 더 이상 필요한 존재가 아닐 거야. 그러니 관계를 끊도록 해.”

그 부자는 철학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나도 여러 사람에게 돈을 뜯겨봤어. 장애인을 돕는다는 목사에게 시설을 만들 땅을 사라고 큰 돈을 줘 봤지. 그 돈으로 땅을 사서 자기 개인 이름으로 등기를 했더라구. 그리고 장애인은 형식적으로 구색을 맞추기 위해 한두명을 장식품 같이 데려다 놓고 말이야. 그래서 돈을 돌려달라고 해 봤더니 절대 안 돌려주더라구. 나는 껍데기를 보고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는 않아. 악인에게는 은혜와 감사가 없어. 그걸로 악인을 감별해 내지.”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를 다른 각도에서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그의 고통을 전해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왔다. 위로의 편지도 보내고 작은 돈들도 보냈다. 석방되고 여유가 생겨도 그는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편지 한 장 쓰는 걸 보지 못했다. 내가 직접 설득을 하면서 글 한 줄로라도 감사의 인사를 하라고 했다. 그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에게서 오히려 나에게 혜택을 베풀었다는 표정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별 볼일 없는 초라한 변호사가 자기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음지에서 나와 세상의 따뜻한 햇볕을 쪼이면서도 그는 밤이 되면 도둑질을 계속했다.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또 했다. 외국에 가서 털기도 했다. 그는 내게 “프로의 세계에는 정년이 없어요”라고 한 적이 있었다. 더 이상 그와 인연을 맺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가 나를 욕하더라는 소리가 바람결에 전해져 왔다. 나도 하나님에 대해 은혜와 감사를 모르고 원망하는 악인이 아닌가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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