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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기도다.

운영자 2020.06.22 14:36:16
조회 116 추천 2 댓글 0
변호사를 하면서 우연히 사건 의뢰인으로 만나 친구가 된 의사가 있다. 지방 도시에서 의원을 하면서 번 돈을 몽땅 사기당하고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었다. 남편은 매일 수술을 하고 간호사인 아내는 얼음이 얼어붙는 겨울에도 피가 묻은 환자복들을 직접 손으로 빨았다. 부부는 아담한 작은 빌딩을 사서 병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기범을 만나 꿈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실망한 부부가 성경 속의 욥같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모든 것을 잃은 친구에게 구원의 줄이 내려왔다. 대학병원에 취직을 한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그 병원에서 수술한 환자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었다.

“내가 수술대 위에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먼저 조용히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 선생님은 하루에 수술이 여러 차례 있어도 모두 그렇게 한 대요.”

그는 그렇게 천사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어도 사기범을 증오하는 것 같지 않았다. 사기범이 거짓말을 할 때 약간 말의 톤이 올라가는 것 같았을 뿐이다. 그를 보면 일을 하는 것이 기도이고 그의 수술실이 예배를 드리는 곳 같았다.

안동의 하회마을을 여행하다가 넓직한 밭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기와집 위에 십자가가 서 있는 걸 보았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시골 노인 몇 명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뒤쪽의 나무의자에 앉아서 설교를 하는 시골 목사를 보면서 마음속에서 안개같이 피어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밭을 일구어 거기서 나는 소출로 양식을 삼는다. 밤이면 성경을 읽는 생활을 한다면 그야말로 경건한 삶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런 삶이라면 경건한 마음으로 하는 평소의 일이 모두 기도가 되고 예배가 될 것 같았다. 톨스토이의 글 속에 나오는 농부를 보면 커다란 낫을 한번 휘둘러 풀을 벨 때 마다 어떤 신비한 기운이 몸에 흐르는 것 같다는 표현도 있었다.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보면 일은 곧 기도이고 노동은 예배이기도 했다. 프라하에 가서 성벽 가까이 있는 카프카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보험회사에 다니던 그는 오후에 퇴근하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는 글을 쓰는 행위가 자신의 기도라고 했다.

사람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하는 평소의 일이 기도이고 예배라는 생각이다. 신성하게 땅을 가는 일이다. 신성하게 물건을 만드는 일이다.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서재에서 사무실에서 법정에서 나는 날마다 늘 하는 일로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법률을 공부하고 처음 변호사를 할 때는 내가 만드는 서류 속에 어떻게 하면 정확한 법조문과 법적인 해석을 집어넣을 것인가 고민했다. 고객이 만족할 만한 완벽한 법 지식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게 마음속으로 미안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완벽한 법 지식에는 인간 냄새가 배어있지 않는 게 느껴졌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발냄새, 땀 냄새, 고린내가 나야 했다. 그러나 화려한 법리로 관념화된 변론문에서는 메마른 공허의 냄새밖에 없었다. ‘걸어 다니는 판례’라는 칭찬을 받는 천재법률가들이 별로 부럽지 않았다. 나는 법률 서면에 젖은 눈물과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피를 흘리는 마음을 넣고 싶었다. 재주가 부족하니까 그것도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위대한 작가들의 예술적 묘사력을 보면 속으로 그저 감탄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들은 바늘 같은 펜으로 세밀화를 그리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나는 작대기를 가지고 흙 위에 글을 쓰는 것 같았다. 법정에서도 입이 제대로 열리지 않을 때가 많았다. 어느 날 사상가인 류영모 선생이 쓴 ‘다석일지’를 읽었다. 나이 먹고는 북한산 자락에 들어가 경전을 읽으며 살던 선생은 매일 일지를 쓰는 게 자신의 기도라고 했다. 나는 그걸 보면서 매일 내가 하는 일이 기도이고 예배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에게 부탁했다. 변변치 않은 그릇이지만 하나님의 도구가 되게 해 달라고 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영과 부딪쳐 스파이크가 날 때라야 글도 일도 생명을 가지고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즈음은 아침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머리에 떠오르는 걸 이렇게 하얀 모니터에 쓰는 게 나의 기도이다. 이따금 통풍이 오기도 하고 허리도 아프고 눈에 안개가 껴 고통을 받을 때 그걸 참는 행위도 기도라고 생각한다. 높은 산을 올라갈 때 힘든 걸 참는 것도 나의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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