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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이 된다는 것

운영자 2020.07.06 10:50:32
조회 159 추천 3 댓글 0
변호사 생활을 그만두고 시골 강가로 내려가 집을 짓고 혼자 사는 친구가 있다. 소아마비로 평생 몸이 불편했다. 변호사 생활을 삼십년 하면서도 언덕에 있는 법정은 그에게 보통사람들이 등산하는 것 같이 힘이 들어 보였다. 그는 아내도 없이 빈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위로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요즘 어때? 괜찮아?”

내가 물었다. 그렇게 살면 갑자기 고독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아플 수도 있다. 그런데 그는 고집스럽게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소아마비 때문에 평생 한 다리만 가지고 살아왔는데 너무 무리하게 한쪽만 써서 그런지 이제는 그 다리도 아프네.”

그렇다면 서서 활동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밥은 어떻게 해 먹어?”

“동생이 반찬을 해다 주고 그럭저럭 주변의 도움을 받고 살고 있어.”

“강가에 혼자 사는 노인이 되어 밤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시간을 보내?”

그나 나나 나이가 칠십이 가까웠다.

“강에 해가 저물고 밤이 되면 요새는 지난 과거가 그렇게 머리에 떠오르는 것 같아. 젊은 날 내가 장애가 있어서 취직은 불가능하고 암자나 고시원을 다니면서 사법고시를 보기위해 십 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잖아? 친구들은 다 합격을 했는데 나만 처량한 백수 신세가 되어 암자의 뒷방에 정물같이 앉아있었던 게 생각나. 돌이켜 보면 내가 너무 불쌍한 것 같아. 그리고 어머니가 뜬금없이 마음속으로 쳐 들어오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나. 소아마비 아들을 고쳐보려고 전국의 침쟁이란 침쟁이는 다 찾아다녔지. 그 때문에 난 어려서 바늘 지옥에서 살기도 했었어.”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가슴이 찡하게 울려오는 것 같았다. 그는 마음이 어린아이같이 순수했다. 부끄러워 하지 않고 수치심이 없이 정직하게 알몸이 됐다. 그렇게 알몸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깊은 차원의 의미일 수 있었다.

“너는 어떻게 지내?”

친구가 물었다.

“나도 녹내장이 점점 진행되서 시야장애가 넓어졌어.”

며칠 전 서울대학병원 안과에 갔었다. 의사는 호전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망막까지 이상이 보인다면서 그분야 전문의에게 넘겼다.

“그렇구나?”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마음이 담겨있었다.

잠시 후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내 고등학교 동창 중에 하나님한테 특별한 은사를 받고 수지침을 놓는 친구가 있어. 사람들이 많은 효과를 보고 있어. 만약 네가 믿는다면 내가 소개를 할께. 회사를 다니면서 수지침을 놓는데 오히려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면서 그 일을 해.”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끌려 전국의 침쟁이를 갔던 그는 ‘만약 네가 믿는다면’이라는 전제를 조심스럽게 붙였다.

“그래 고마워. 그래도 아직 다른 한쪽 눈은 괜찮아. 그걸로 글도 쓰고 책도 읽어. 그 눈도 네 남은 다리 같이 요즈음 부담스러워하고 있지만 말이야.”

친구나 나나 이 몸을 칠십년 가까이 사용해 왔다. 내 몸이 약해지고 상할 때가 됐다. 철로 만든 어떤 자동차도 칠십년을 견디지 못한다. 내부의 호스가 새고 헤드라이트의 한쪽이 불이 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아파트들도 사십년 지난 것들은 폐가 같은 느낌을 준다. 아파트 곳곳의 균열을 때운 방수용 칠들이 흉한 주름살 같다. 삶이 나를 어떻게 만들더라도 그걸 받아들이고 그걸 즐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십대 중반 암 선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절망해서 바로 그날부터 방에 쳐 박혀 드러누웠다. 그렇게 사흘을 견디지 못했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마지막 쓰러지는 순간까지 행진하는 것이다. 갈 수 있는 데 까지 한발 한발 걸어야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요즈음 평생의 친구로 지내던 성경을 처음 보듯이 다시 본다. 진리는 숨겨져 있지 않는 데 아무리 읽었어도 내가 닫혀져 있었던 걸 느낀다. 오늘 아침은 책상 옆에 놓인 어머니가 보던 성경과 기도하던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다. 예수님이 알몸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그 알몸이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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