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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행길에서 만난 두 사람

운영자 2020.07.27 10:11:59
조회 192 추천 6 댓글 0
이십대 고시 공부를 하다가 내 또래의 한 친구를 만났다.서울 법대를 졸업했다는 그의 눈에서는 항상 섬뜩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눈 덮인 깊은 산속 무너져 가는 암자에서 우리 두 명은 수도승처럼 한겨울을 지내기도 했다. 그 산속에서 우리의 밥과 잠자리는 한 재단에서 보내주는 소액의 장학금에 의지하고 있었다. 바짝 마른 그는 어떤 때 보면 해골만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밤 그는 내게 형제가 많은 가난한 집 서울법대를 나온 장남의 등에 진 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겠느냐고 탄식 같은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시골의 작은 우체국에서 돈이 든 장학금 봉투를 가지고 가라는 날이면 우리는 읍내 식당에서 불고기 일 인분을 시켜놓고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는 무서운 집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본 인간 중 가장 독한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나같이 나약한 인간은 공부를 포기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절망한 채 서울로 돌아왔었다. 그는 그해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가 됐다. 몇 년 후 그는 판사가 싫다고 하면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파트에서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 그 며칠 전 의뢰받은 사건이 시효가 하루 이틀 앞으로 닥친 사건이 있었다. 그걸 간과하고 시효기간을 넘긴 것이다. 그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어버렸다. 내게는 잠시 삶을 같이했던 좋은 친구였는데 슬펐다. 내가 삼십대 초반 무렵 서소문의 허름한 빌딩의 친구들이 하는 법률사무실 구석방을 빌려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잠시 동안의 더부살이였다. 친구들이라고 했지만 사법 시험이나 연수원 동기생이었다. 사무실을 얻기가 곤란해 속칭 빈대 붙은 것이다. 내가 있는 사무실의 위층에는 잘나가는 변호사가 있었다. 고등학교 일 년 후배였다. 고용변호사까지 두고 그는 돈을 잘 버는 것 같았다. 그는 ‘역사비평’이라는 잡지까지 발행하고 있다고 했다. 팔리지 않는 잡지는 물먹는 하마같이 돈만 쓰게 하는 애물단지였다. 인권변호사라고 알려지기 시작한 그는 잡지까지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사무실 근처의 식당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한 칠 년 동안 최저의 생활을 견디면서 시민단체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그러면 뭔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변호사들 대부분이 화려한 생활을 꿈꿀 때 그는 반대의 극으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는 실행에 옮기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밤 지하철 교대 역에서 앞에 가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자료가 가득 든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기우뚱하게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지치고 힘들어 보이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그가 하는 안국동 아름다운 가게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그의 모습이 보였다. 바닥에 놓인 헌 옷들이 가득 들은 푸른 플라스틱 박스를 양손으로 밀어서 옮기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여유롭고 좋은 생활을 버리고 성자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 같아 보여 그 광경이 나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그가 유명해지고 있었다. 그가 천만 명의 서울시장이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다음에도 서울시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부를 상징하는 재벌 회장과 선거전을 벌여 승리했다. 그 다음번 선거에서도 그는 또 승리하고 제일 오랫동안 천만 서울시민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내게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과로로 죽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자살 소식을 방송에서 봤다. 수행하는 여비서와의 추문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는 자신을 성자같이 보는 세상의 비난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망치듯 산으로 올라가 죽었을 것이다. 그를 보면서 인생에서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유명해 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유명해 지는 것처럼 불행한 건 없다. 행복하려면 남에게 알려지지 않아야 하는 지도 모른다. 유명해 지는 건 친구를 얻는 것 같지만 실은 많은 적을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나의 인생은 여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도중에 여행의 동반자인 많은 사람을 만났다.

혹은 가까운 거리를 혹은 멀리까지 동행했다. 같은 차를 타기도 하고 어느 때는 같은 배를 탔다. 그러나 목적지는 나그네에 따라서 달랐다. 사람과 만났다가 헤어지고 벗을 사귀고는 또 잃기도 했다. 인생의 슬픔들이 있지만 그것 또한 삶의 필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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