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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운영자 2020.09.07 10:03:50
조회 140 추천 3 댓글 0
접견을 가서 만난 한 조폭 두목이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무거운 징역형을 받고 감옥에 있을 때는 한 번도 면회오지 않던 놈들이 출소할 때가 가까워오니까 갑자기 많이 찾아와요. 참 속이 가볍기도 하고 내 입장에서는 괘씸하기도 하지만 참습니다.”

형님 동생하고 의리를 내 세우는 건달 세계의 한 단면이었다. 정치인이 구속되어도 큰 회사 사장이 구속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처음에는 여러 사람이 인사치레로 면회를 오다가 차츰 발길이 뜸해졌다. 그래도 그건 괜찮은 편이었다. 친구와 사람을 좋아하면서 세상을 바쁘게 살던 사람들도 그들이 감옥으로 가면 진정을 가지고 그를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예전에 소설가협회의 회장을 하던 소설가 정을병씨가 구속됐었다. 방송은 그가 협회의 공금을 횡령했다고 보도했다. 형편이 좋지 못한 가난한 소설가들의 분노는 더 치열한 것 같았다. 그들은 불화살을 쏘듯이 회장을 중하게 처벌하라고 요청하는 진정서를 검찰에 보냈다. 사실 그가 횡령한 게 아니었다. 직원들이 횡령을 하고 순진한 문학인인 회장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그에게 면회를 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친구라는 사람들이 모두들 방송 보도를 듣고 그를 버렸다. 변호사로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만약 내가 구속이 되면 누가 나를 위해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찾아올까 생각해 봤다. 자신이 없었다. 내가 깊은 구덩이에 빠져 진창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누가 나를 위해 줄사다리라도 내려 줄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도 자신이 없었다. 한번 함정에 빠진 적이 있었다. 평소에 신뢰하던 선배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의 비즈니스 대상에 불과할 뿐이었다. 어떤 책에서 본 예화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떤 선비가 가마니를 덮은 죽은 돼지를 지게에 지고 친구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대문을 열고 나온 친구에게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그와 동문수학하던 친구들이 모두 정색을 하고 등을 돌리더라는 얘기였다. 그 예화는 친구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었다. 조선 초 나의 조상은 누명을 쓰고 죽은 단종의 버려진 시신을 밤에 몰래 아들과 함께 양지바른 곳에 몰래 묻어주었다고 해서 역적이 됐다. 모두들 처벌이 두려워서 버려진 왕의 시신에 손을 대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조상은 왕에게 ‘선한 일을 하다가 벌을 받는다면 달게 받겠다’는 글을 남기고 아들과 함께 영월의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 이백년을 숨어 사는 족속이 됐다. 화전을 하면서 아마도 노비나 머슴보다 못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상의 그런 정신적 유전자를 귀한 유산으로 생각하고 있다. 왕의 교지라는 임명장 하나에 감읍하고 왕이 피리를 불면 그 앞에서 춤을 추어야 하는 정승판서보다 저항하는 야인으로 살던 조상을 더 흠모한다. 그리고 보니 기억 저쪽에서 떠오르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천구백팔십년 무렵 법무장교로 있을 때였다. 신군부의 합수부가 재야운동을 하던 친구를 체포해 갔다. 고교시절부터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였다. 신군부의 실세를 찾아가 친구의 구명을 부탁했다. 그 실세는 당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의 핵심이었다. 그가 “이런 청탁을 하면 앞으로 당신의 신상에 좋은 일이 아닐 건데” 하면서 그런 일에서 손을 떼라고 권유했다. 직업 장교로서 나의 앞날에 먹구름으로 작용할지도 모르는 사건이었다. 본능적으로 그걸 감수하겠다고 하면서 친구의 선처를 부탁했었다. 조상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유전자는 인생의 손익계산에 둔감한 면이 있었다. 장교동기생들은 빨리 대령이 되고 장군이 되기도 했다. 군에 계속 있었다면 여러 사유로 나는 뒤쳐 졌을 게 확실했을 것 같았다. 하나님은 또 다른 길을 내어 나를 일찍 제대시키고 개인법률사무소를 열게 했다. 깊은 산속의 움막이나 도심 뒷골목의 개인법률사무소나 비슷할 수도 있었다. 영국의 어떤 잡지가 친구의 정의에 대해 현상모집을 한 적이 있다. 일등상은 이런 것이었다.

‘친구는 세상이 모두 나를 버릴 때 혼자 내게로 오는 자다’

내게 친구로 다가오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변호사인 내가 찾아갈 세상이 모두 버린 사람은 많다. 예수는 오늘도 내 마음 속에서 성령이 되어 말한다. 내가 너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는 나의 친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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