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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운영자 2020.12.21 09: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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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이천팔년 유월이십오일 정오의 투명한 태양 빛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나는 화동의 정독도서관 근처의 음식점에서 박원순 변호사와 만나고 있었다. 서소문의 빌딩 위아래층에서 변호사를 했던 그는 나의 고교후배이기도 했다. 그는 항상 톡톡튀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아름다운가게를 구상하는 데 도와 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를 약간 도운 후 그가 일하는 가게에 몰래 가 봤다. 그날은 유난히 찬 바람이 불던 겨울이었다. 헌 옷과 허드렛 물품이 가득 담긴 바닥에 놓인 무거운 플라스틱 상자를 그는 끙끙거리며 밀고 있었다. 몇 올이 남지 않은 머리털이 앞이마로 흘러내린 모습이었다. 성공한 변호사의 길을 버리고 그는 그렇게 시민운동에 뛰어들었었다. 그는 안주하지 않고 성경 속의 이삭같이 수시로 자리를 옮겨 새 우물을 파는 것 같았다. 참여연대에서 아름다운 재단과 가게로 그리고 이번에는 희망제작소를 설립했다.

“희망을 어떻게 제작하려고 하는데?”

내가 젓가락으로 상 위에 놓인 보쌈김치 한 조각을 들어오면서 물었다. 그가 더운지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번지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가게는 헌 옷이나 물품을 다시 살리는 거잖아요? 이번에는 정년퇴직한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재활용해 보려구요. 예를 들면 정년퇴직을 한 선생님들을 유치원에 가서 동화를 읽어주는 할아버지로 변신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들의 정서나 교육에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의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아이디어가 흘러나온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 무역회사에서 삼십년 동안 일했던 분과 신문사 주필을 하시다 정년퇴직한 분을 제가 만든 희망제작소 일꾼으로 모셨어요. 삼십 년의 경험과 노 하우가 얼마나 귀중한 걸 새삼 깨달았어요. 신문사 주필도 평생 글을 쓰시던 분인데 그게 얼마나 귀중한 재주입니까? 그런 어르신들이 이 사회에 얼마나 깔려 있는지 몰라요.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그 분들을 활용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죠. 상당수 정년퇴직한 분들을 보면 연금이 나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돈보다 일을 희망하는 겁니다.”

그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돈을 구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그의 앞서가는 통찰력을 나는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천구백팔십칠년경 위아래층으로 변호사를 할 때였다. 같은 변호사라도 그는 벌써 역사비평이라는 잡지를 발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조영래 변호사와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섰고 외국의 시민단체 활동에 눈을 떴다. 내게 조금만 아래로 내려가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 시민단체를 만들어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어느 날 인사동 찻집인 수희제에서 만난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앞으로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할 건데 말이죠. 이제 권위주의시대는 갔어요. 일본의 기시수상 같이 이런 때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사람이 당선될 거라고 봐요. 시대가 순박한 서민 대통령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앞을 내다보는 그의 통찰력이 무서웠다.

“이제부터 직접 정치를 해 보시지 그래?”

내가 그에게 말했다.

“저는 시민운동을 시작할 때 앞으로 정치는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못 박았어요. 그게 나의 족쇄가 되어 버렸는데 풀 길이 없어.”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정치의 뜻이 있어 보였다. 그 얼마후 그는 서울시장이 됐다.

“서울시장이 되니까 어때?”

내가 어느 날 둘이 만난 사적인 자리에서 물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데 따라 큰 정책과 예산이 달라지고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일들을 할 수 있어요. 강북의 사대문 안을 파리처럼 역사로 만들고 싶은데 전 시장들이 왜 그렇게 건축허가를 내줬는지 몰라. 난 절대로 용적율을 높이지 않을거야. 오히려 줄여버릴 생각이야.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을 살렸지만 난 조선시대의 한양을 재현할 거라니까요.”

그는 내게 자기는 과로사를 원인으로 죽고 싶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했다. 그의 행방이 묘연하던 시각 죽지 말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성경 속의 사도바울은 죄인 아닌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다고 했다. 허깨비 같은 정치무대의 주연이 된 그는 자기최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도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희망을 제작하다가 걸려 넘어져 절망에 빠진 그의 영혼을 위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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