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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쟈켓의 멋쟁이 친구

운영자 2020.12.28 10: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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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쟈켓의 멋쟁이 친구


친구 몇 명이 하는 ‘단톡방’에 이천이십년 십이월십구일 토요일자 한겨레신문에 ‘이병남의 보내지 못한 이메일’이란 기사가 떴다. 고교동기인 이병남은 학창시절 우리들 사이에서 뛰어난 리더쉽을 발휘한 반장이었다. 그를 보면 먼저 앞에 거목을 대하는 듯한 열등감이 들었었다. 그는 우선 그리스 조각을 닮은 듯 반듯한 콧날을 가진 미남이었다. 공부도 잘했고 같은 나이지만 그 현명함으로 동기들이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하는 인품을 가지고 있었다. 공부만 전념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가곡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흥미를 가졌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유학을 가서 학위를 얻은 후 조지아 주립대학에서 교수가 됐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던 그가 마흔 살 무렵 갑자기 엘지그룹의 임원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유를 추구하고 꼿꼿한 그의 성격이 과연 재벌그룹이라는 조직에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는 고교후배 박원순과 함께 참여연대를 같이 하기도 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재벌그룹 전체의 인사와 교육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됐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그는 공정한 인사의 원칙을 정해놓고 어떤 위반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들렸다. 심지어 친동생의 입사도 허락지 않았다고 했다. 오너가 특정인을 사장으로 올리라는 명령도 그는 듣지 않는다고 했다. 인사를 전부 그에게 맡긴 오너가 한번은 그에게 측근의 승진을 얘기하면서 “좀 봐 주이소”라고 부탁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왕같이 군림하는 재벌그룹의 오너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상상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다. 좋은 오너가 유능한 인재를 발탁해서 제대로 쓴 것 같았다. 다시 세월이 흐르고 그가 그룹의 부회장이 됐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새 우리들은 시간의 강물을 따라 흘러 노년의 산자락에 도달했다. 그가 정년 퇴직을 하고 자연인으로 돌아온 어느 날 그를 만났다. 그는 나의 고정관념의 틀 속에 있던 모범생인 반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새빨간 쟈켓에 백구두를 신은 독특한 멋쟁이(?)가 되어 있었다.

“아니 모범생이 이럴 수가? 왠일이야?”

내가 놀라서 물었다.

“그냥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그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가 요즈음은 회사생활에서 겪고 느낀 것을 신문에 기고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이 마흔에 뒤늦게 재벌그룹에 들어간 그가 처음에 본 것은 조직원들의 이중적 정서라고 했다. 대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과 함께 부끄러움이라고 했다. 그 다음은 아웃사이더가 된 고독감이라고 했다. 그가 뒤늦게 조직에 들어갔을 때 이미 이십년 이상 친분을 쌓은 비슷한 또래가 쳐 놓은 담벽이 너무 두꺼웠다고 했다. 예를 들면 상사가 여름휴가를 갈 때 개인적으로 같이 가는 다른 동료를 보면서 초대받지 못하는 자신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현실적 심리적 위협을 털어놓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포기라는 걸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탁월하지 동료가 계속 잘 나가기도 하고 후배가 앞질러 승진하는 경우를 보면서 느낀 시기심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의 글의 행간 속에는 수많은 인생의 산봉우리와 거친 골짜기를 거쳐온 여러 감정들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의 글 중에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포기’라는 단어였다. 그처럼 나도 나이 마흔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같이 책상을 마주 대고 일하는 동료들 중 하나만이 승진하는 게 조직의 생리였다. 친하게 지내면서 상사에게 그를 칭찬해 줄 수 없는 나의 욕심이 추하다고 느꼈다. 세상이 말하는 출세를 포기하고 뒷골목의 개인변호사로 인생 후반부를 시작했다. 다행히 가지고 있는 자격증 덕택이었다. 나이 칠십 가까운 요즈음은 제3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이것이 내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인지가 유일한 기준이다. 오늘 아침은 신문에 글을 쓴 친구를 칭찬해 주는 카톡을 보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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