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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를 피해 도망간 사람들

운영자 2021.01.04 09: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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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를 피해 도망간 사람들


강원도의 깊은 산골에서 진흙벽돌집을 지어놓고 사는 부부가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그 곳은 일 년의 반은 겨울같이 춥다고 했다. 시월부터 서리가 내리고 물이 얼어붙는다고 했다. 남편은 겨울을 날 동안 쓸 물을 플라스틱 통에 저장하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간 사람이 왜 부부가 그런 외따로 떨어진 산속으로 갔느냐고 물었다.

“도시에서 커피숍을 했어요. 찾아오는 손님 대부분은 좋은 사람이예요. 그런데 일 퍼센트는 그렇지 않아요. 더 이상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

말은 부드럽게 했지만 그들 부부는 인간관계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사람이 싫어져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나는 요즈음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를 자주 보고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을 찾아가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얘기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깊은 산속의 비닐하우스 안에서 육십대 초쯤의 여성이 혼자 살고 있다. 그녀는 비닐하우스 안에 일인용 텐트를 쳐 놓고 거기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 살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젊어서 목욕탕 때밀이부터 안 해 본 게 없어요. 오랫동안 도살장에서 곱창을 받아 그걸 씻은 후 식당에 납품하는 일을 했죠. 트럭을 타고 여러 곳의 곱창집을 다니다 보니까 고속도로 영수증만 해도 책이 한 권이 되더라구요. 간신히 집을 한 채 사서 아이들에게 살라고 주고 산으로 들어왔어요. 사람이 싫더라구요.”

막연하지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에 사는 또 다른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군대에서 부사관 생활을 오래 하다가 정년퇴직했어요. 그리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을 맡아 일을 했죠. 설비부터 여러 자격증을 따고 주민들을 위해 헌신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더러 무시하고 수모를 주는 그런 인간들을 참아내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상처받고 이렇게 깊은 산으로 들어온 셈이죠.”

세상에서 상처받고 혼자서 호숫가에 사는 사람도 있었고 무인도에서 사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철저히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시골 마을도 피고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을 택한 것 같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가시가 되어 찌르는 사람들도 있다. 예순다섯 살 무렵부터 나는 사용하던 사무실을 접었다. 제이의 인생을 살면서 보수보다는 하나님이 도와주라고 보내신 사람의 일만 아파트에서 조금씩 도와주고 있다. 길거리의 주상복합건물인 나의 아파트에는 방 하나를 화실로 삼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몇몇 아이들을 불러 악기를 가르치는 노인도 있다. 혼자 집안에서 설계도를 그리는 건축가도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깡마르고 얼굴이 창백해 보이는 오십대 쯤의 여성이 나의 아파트로 상담을 하러 왔었다. 성실하게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얼마 후 구청의 직원이 조사를 나왔다. 아파트를 법률사무소로 불법사용한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 여자가 한 짓이 틀림없었다. 상습적으로 고발하는 게 그녀의 취미인 것 같았다. 작은 조각작품을 문 앞에 놓았던 한 집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소방법위반으로 고발을 했다.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을 놓은 집도 그녀에게 지적을 받고 혼이 났다. 그녀는 가시가 되어 주변 사람들을 온통 찌르고 있었다. 제어되지 않는 그녀의 행동은 법으로 막을 길이 없다. 아파트마다 그런 존재들이 있었다. 연희동 빌라에 사는 친구의 부인이 이웃 여자에게 물리고 손톱으로 뜯겨서 피투성이가 된 적이 있었다. 같은 빌라에 이상한 여자가 산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달이 밝은 날이면 빌라 안 화단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심어놓은 꽃들의 목을 부러뜨린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주민들 공동으로 쓰는 유리문 손잡이에 낫을 걸어놓기도 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 같다. 친구의 부인은 당당히 맞서다가 어느 날 저녁 어두운 주차장에서 습격을 받았던 것이다. 몇 채 안 되는 빌라에 사는 아는 영감이 죽을 뻔 했다고 내게 하소연을 했다. 그가 자는 사이에 자기를 미워하는 옆집 사람이 밖에서 개스 구멍을 막아놓았다는 것이다. 좀비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 영혼이 없어지고 해치는 본능만 남은 인간을 비유한 것 같다.

영혼이 피폐 해 지고 사람만 보면 물어뜯는 좀비가 현실 속에서 섞여 살고 있다. 법은 그들을 걸러낼 자정능력이 없다.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참고 한걸음 한 걸음 험한 길을 걸어가는 게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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