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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 노인의 저녁식사(3)

운영자 2021.01.11 09: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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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 노인의 저녁식사


저물어 가는 강가에 붉은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낡고 퇴락한 집 안에서 다리가 불편한 자연인 친구는 싱크대에 양팔꿈치를 대고 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투명한 페트병 속의 쌀 일정량을 하얀 플라스틱 그릇에 넣으면서 옆에 있는 내게 물었다.

“너는 쌀의 품종별로 십킬로그램에 얼마인지 모르지?”

“아내가 샀지 내가 한 번도 산 적이 없어.”

“생활과 떨어져 있으면 컬럼을 써도 살아있는 글이 되지 않는 거야. 대학교수들의 글을 보면 흰 손으로 쓴 관념적인 글이 많지.”

그의 따끔한 지적이다. 그가 밥짓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 플라스틱 바가지 밑에 격자 모양으로 문양이 튀어나와 있잖아? 이건 쌀을 씻을 때 도움이 되라고 하는 거야. 요즈음은 옛날같이 돌을 없애려고 조리질을 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깨끗한 물에 씻고 손으로 씻은 쌀을 문질러야 밥맛이 좋아. 그래서 나는 조금 힘이 들어도 그렇게 해.”

잠시 후 그가 쌀뜨물을 싱크대 구멍으로 흘려보내면서 말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쌀뜨물을 찌개나 국 국물을 만드는 데 사용 하셨지. 그래야 국물맛이 깊어지거든.”

그가 옆에 있는 전기밥솥에 위에 씻은 쌀과 물을 넣고 취사 단추를 누르면서 말했다.

“이걸로 밥짓는 건 끝이야. 가마솥 시대가 아니니까 간단하지?”

이어서 그가 옆에 대파를 물에 담그면서 말했다.

“김치찌개를 끓일건데 나는 찌개에 대파를 넣는 걸 좋아해. 그래야 국물맛이 깊어지거든. 먼저 내가 대파를 다듬는 걸 알려줄게. 먼저 밑 둥의 뿌리를 가위로 잘라내. 그리고 누렇게 시든 잎은 따서 버려. 그리고 특히 파는 철저하게 씻어야 해. 내가 텃밭에서 파를 키워 보니까 벌레가 많이 끼는게 대파야. 그래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대파에는 농약을 많이 치는 것 같아. 묻은 농약을 철저히 닦아내야 하는 거지. 참 냉장고 안에서 김치하고 돼지고기 좀 가져다 줘 볼래?”

다리가 불편한 그는 동작 하나가 엄청난 일이었다. 내가 냉장고를 열고 김치가 담긴 사각 플라스틱통과 랩에 싸인 돼지고기가 담긴 팩을 그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싱크대 바닥에 냄비 좀 놓아줄래? ”

그가 말했다. 나는 노란 양은냄비를 가져다 그의 앞에 놓았다. 그가 통에서 김치 한 포기를 꺼내서 들었다. 그리고 가위로 밑둥부터 일정한 크기로 잘라 냄비 속에 넣었다. 이어서 적당한 양의 물을 붓고 올리브유를 두세 숟가락 분량쯤 따라 넣었다.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불을 켜줄래?”

조수가 된 나는 그의 말대로 했다. 파란 불이 냄비를 감싸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강가에서 혼자 사는 몸이 불편한 그가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는 일은 엄청난 작업이었다. 한 끼 식사를 마련한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린 시절 방학에 갔던 시골 할머니의 진흙초가집이 뇌리에 떠올랐다. 밥을 짓거나 군불을 때기 위해 할머니는 산자락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가져오기 위해 한나절이 걸리기도 했다. 할머니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냇가로 물을 길러 갔다 오곤 했다. 가마솥에서 밥을 짓고 무쇠냄비에 두툼하게 떤 감자를 넣고 된장을 풀어 찌개를 만들었었다.

“김치찌개를 만들 때 나만의 비결이 있어.”

저녁을 짓던 친구가 씩 웃으면서 작은 양념병 하나를 내게 보여주었다.

“이 병에 든 게 후추 종류인데 돼지고기의 냄새를 없애주고 내가 좋아하는 독특한 향을 내 줘. 나는 이게 좋아. 나만의 김치찌개를 만드는 비결이지.”

잠시 후 친구와 나는 앞에 밥 두그릇과 찌개 한 냄비를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소박한 저녁 밥상이었다. 창 밖으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친구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이 적막한 강가의 낡은 집에서 우리 두 노인이 이렇게 밥을 먹는 모습을 남이 보면 어떨까? 상당히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기도 할 거야. 그렇지만 나는 말이야. 나 혼자 살면서 이렇게 밥을 먹을 때 행복해. 억지로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희열을 느껴. 나이먹고 몸이 불편해서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가장 쓸쓸하고 고독해 보이는 상황에서 그는 행복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열악한 환경에 있어도 인간은 행복해 질 수 있다. 인간이 도살되어 가는 아우슈피츠수용소에서도 노래와 춤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존재가 강가의 고독한 노인이 된 친구의 영혼을 행복감으로 충만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았다. 그 정체가 무엇일까. 중요한 걸 깨달은 노년의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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