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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돈옹 이야기(3)

운영자 2021.02.08 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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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돈옹 이야기(3)




이천십사년 구월 십사일 오후였다. 김상돈 옹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다. 그가 살아있을 때 여러 시간을 함께 했던 분이다. 개결한 성품으로 인생을 벽돌장 같이 하루하루 죽는 날까지 쌓아 올린 분 같았다. 그가 노환으로 병원 중환자실에 있을 때였다. 의사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침대 위에서 하루에 백번씩 박수를 칠 것을 권했다. 그는 갈퀴같이 엉클한 손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죽음이 임박한 마지막에는 힘이 빠져서 단번에 박수를 백번 칠 수 없었다. 그런 날도 오후가 돼서 다시 힘이 생기면 나머지 못한 부분을 채우던 성품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기업을 하던 그는 자신의 시신을 의대생들의 연구자료로 기증했었다. 백 년 전통의 명문 갑부집의 후손들이 명당으로 들어가는 걸 거절하고 의대생들의 해부대에 오르는 쪽을 택했다. 나는 거꾸로 돌아가는 영상처럼 그와 만났던 그 육년전 십이월 십칠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날은 촉촉한 겨울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광화문 네거리 부근의 고려빌딩 칠층에 있는 삼양염업사의 사무실에서 김상돈 회장을 만났다. 오래된 소파와 낡은 책상이 놓인 소박한 방이었다.

“할아버지인 지산 선생에 대해 기억하시는 게 있어요?”

내가 물었다. 경상도에서 경주 최부자라고 하면 전라도를 대표하는 좋은 갑부라는 평가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몇 만석을 하는 지주가 되기까지는 돈을 아끼시느라고 고기를 드시지 않았죠. 할아버지는 고창에서 살다가 한양으로 올라오셨어요. 그때는 십만석의 지주일 때였죠. 거기서 가외동이나 삼청동에 살던 민비 집안 같은 문벌 집안과 교류를 하셨어요. 하루는 그런 집안 잔치에 가서 신선로 속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처음 처음 드신 거예요. 돌아와서 맛있었다고 식구들에게 말씀하셨죠.”

농업사학자들은 그를 근면과 검소를 바탕으로 재산을 이룬 한국 프로테스탄트의 시조로 보고 있었다. 그는 일본 통치하에 자본주의사회로 가던 시절 경성방직을 인수했다. 농업자본을 공업자본으로 한 주체였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철종의 사위가 박영효였는데 할아버지는 그 분을 돌아가실 때까지 경성방직의 고용 사장으로 했었어요. 그 분이 일제당국의 고위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하셨던 것 같아요. 아들이었던 아버지는 경성방직의 상무로 만들어 실질적인 경영을 하게 했구요. 큰아버지인 김성수는 할아버지가 투자한 동아일보와 중앙학교를 맡게 했죠. 지금 생각하면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아직 이십대 아들 두명에게 그렇게 맡겨 회사나 학교를 운영하게 했는지 몰라요. 철저히 아들을 믿어주는 아버지였죠.”

“그러면 경성방직을 운영하던 아버지 형제는 어떻게 정신이 형성되신 겁니까?”

“할아버지는 구한말 애국계몽운동이 일어날 때 그걸 지원하면서 고창 쪽에 영신 학교를 세우셨어요. 봉건적인 유생같은 성품도 지니고 계셨죠. 그런데 할아버지는 아들 형제를 중학교 시절부터 일본유학을 시키셨어요. 큰아버지인 김성수선생이 와세다에 그리고 아버지가 교오토 대학에 다닐 때 형제분이 일본의 근대 개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를 찾아가 많은 걸 배웠대요. 후쿠자와 유키치는 망명한 김옥균이나 박영효를 많이 도와주었던 일본인이죠.”

나는 일본의 자본주의에 편입되어 일본기업가나 같은 조선 기업인들과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던 경성방직쪽으로 방향을 돌려 물었다.

“아버지 김연수 회장은 그 시절 두산그룹을 만든 박승직과는 어떤 관계였습니까?”

경성방직은 광목을 생산하는 회사였고 두산의 시조인 박승직은 동대문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 분과 거래는 했지만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어요.”

“일본의 자본주의가 번성하던 그 시절 조선의 대표적인 갑부의 아들이셨는데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는 아버지한테 천체 망원경과 영사기를 사달라고 해서 매일밤 하늘의 별을 보고 영화를 찍어 스크린에 비쳐 보기도 했어요. 승마를 좋아해서 말을 타고 종로를 다니기도 했죠. 두산의 박승직씨 아들인 박두병씨는 오도바이를 사서 그가 다니던 조선은행에 출근하고 그랬죠. 등산도 좋아하고 골프도 치고 그랬던 걸로 기억해요.”

그는 한국 재벌가들의 원뿌리였다. 내게 많은 걸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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