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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에 걸맞는 글을 쓰세요

운영자 2021.02.22 09: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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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에 걸 맞는 글을 쓰세요




한국의 정통 보수 기독교 교단의 잡지사 편집장으로부터 일년 동안 매달 믿음에 관한 원고를 보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글을 쓰는 나는 발표할 기회를 주는 잡지사에 감사했다. 첫 번째 원고를 보냈다.

“여러 사람이 읽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원고에 대한 잡지사 편집장의 반응이었다. 다음달 나는 두 번째 원고를 보냈다. 그 내용 중에는 성경 중에 내가 의문을 품었던 사항과 내 나름의 의견이 들어있었다. 편집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교리에 관한 것은 쓸 목사들평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이번달에는 원고를 보내셨으니 잡지에 싣기는 하겠지만 다음 달 부터는 평신도에 걸 맞는 원고를 써 보내 주십시오.”

그의 말 중에서 ‘평신도’라는 말의 뉘앙스가 독특한 느낌을 가지고 나의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평신도니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제도나 신학적 학설에 매이지 않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 기독교 교단의 관례와 잡지사의 편집의도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고정관념이라는 틀 속에 들어가기 싫어 글을 중단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발행하는 작은 신문이 있었다. 몇 달에 한 번씩 원고청탁이 와서 거의 십 년간 원고지 이십장 분량의 글을 써 보냈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내용의 원고를 써서 보낸 적이 있다. 편집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부분의 동창들이 좌파성향의 박시장을 싫어해서 글을 게재하기 곤란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들의 연락지였다. 그곳에서도 좌파와 우파가 갈렸다. 그 이후 동창회의 작은 신문은 더 이상 나의 원고를 받지 않았다. 나는 평범한 한 졸업생에 불과할 뿐이었다. 나는 좌파성향도 우파성향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보와 보수의 근본적인 사상에 대해서도 명확히 모르고 이념적 지향도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냥 양심이 옳다고 하는 쪽을 따라 생활하는 평범한 시민일 뿐이다. 그런데 한편의 글로 단죄가 된 느낌이 들었다. 이 사회에서는 어딘가 소속해서 그들이 생각하는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로 행동해야만 안정을 취할 수 있나 보다.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던 목사 한분이 어느날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평소의 신앙관을 살펴봤는데 우리 목사들이 신학교에서 배운 캘빈 주의와 맞지 않아요.”

그 목사의 눈빛은 이미 따뜻하지 않았다. 그 어조에서 나를 단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는 평신도일 뿐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이해되지 않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보면 믿어야 할 건 예수이고 예수의 말씀과 행동과 삶을 따라야 할 것 같아요. 거기에는 캘빈도 루터도 쯔빙글리나 수 많은 신학자들이 없어요. 그 신학자들도 우리같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야 하는 보통의 인간 아닌가요?”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교리 자체보다 목사의 시야에 그는 성직자고 나는 평신도라는 의식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교리는 성직자들이 신학은 학자들이 독점해야 하는 것 같은 잠재의식이 그에게서 엿보였다. 성경은 학식이 대단한 사람에 의해 쓰여 진 게 아니다. 저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다. 일관된 계획하에 조직적으로 쓴 것도 아니다. 그건 보통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기록한 진리의 말씀이다. 철학자가 이해 못하더라도 평범한 농부가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배운게 없어도 마음의 문이 열린 사람은 한 구절을 읽고도 살아있는 하나님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생각한다. 종교적인 이론은 공허하다 그리고 메마르다. 그것은 참된 앎이 아닐 것 같다. 참된 앎이란 타인에게서 빌려온 지식이 아니라 내 자신이 몸소 부딪쳐 체험한 것이라야 할 것이다. 성경 한 권 옆에 두고 평생 읽는 평신도인 내가 되고 싶다.



예수는 평민이었다. 그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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