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나는 왜 이래야 해?

운영자 2021.03.01 10:09:11
조회 144 추천 1 댓글 0

나는 왜 이래야 해?




두물머리 강가에 혼자 사는 친구의 집에서 지난해 연말 일주일을 함께 지낸 적이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몸까지 불편했던 그는 투철한 의지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됐었다. 이제 그는 변호사 생활 삼십년을 뒤로 하고 칠십 고개를 앞에 둔 노인이 되어 잔잔한 강가의 소박한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네가 강가의 이 퇴락한 집 등불 밑에서 한밤중에 경전을 읽고 있다면 그게 가장 숭고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인생의 전반부를 마치고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친구들은 여러 가지 새로운 일들을 추구했다. 텃밭을 가꾸어 보기도 하고 피아노를 배추고 댄스학원에 나가기도 했다. 철학자인 류영모 선생의 ‘다석일지’를 보면 선생은 교사를 하고 사업을 하다가 노년에는 북한산 자락 물이 흐르는 곳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경전을 읽는 생활을 했다. 매일마다 일지를 썼는데 그건 그의 묵상록이었다. 그는 일지를 쓰는 게 기도라고 했었다. 인도에서도 사람들은 청년기 장년기를 거쳐 노년이 되면 숲속에 들어가 은자가 되어야 하는 과정을 얘기하고 있었다. 강가에 사는 친구는 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는 성경 속의 창세기 일장일절부터 요한계시록 끝까지 정독을 하고 숙제를 마친 초등학교 아이같이 그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책거리’를 해 주는 마음으로 그를 시내로 불러 음식점에서 저녁을 사면서 내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따금씩 서울역 앞 광장을 둘러볼 때가 있어. 대낮부터 노숙자들이 벤치에 누워 눈을 감고 있기도 하고 몇 명이 모여 소주병을 앞에 놓고 떠들기도 하고 여러 형태가 있지. 그런 속에서 혼자 성경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봐. 나는 그건 성자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노숙자와 성자의 차이는 간단하다는 생각이야. 진리를 추구할 때 삶의 본질을 보려고 노력하는 이가 성자일 거야. 동양에서는 도인이라고도 하지만 말이야.”

내 말에 친구가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나도 나름 공부를 한 사람이고 평생 불경을 공부해 왔어. 불경을 보면 바로 마음에 와 닿고 이해가 가. 내가 한 살부터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고 가난한 것도 다 인과관계로 납득이 되는 거야. 내가 전생에 잘못을 했기 때문에 현생에서 이런 고통을 받은 거겠지. 그런데 한번 밖에 읽지 않아서 그런지 성경 속에서는 그 해답을 얻을 수 없는 거야.”

그가 가장 절실한 핵심을 찌른 것 같았다. 제자들은 길가의 맹인을 가리키면서 예수에게 저 사람은 누구의 죄 때문에 저렇게 됐느냐고 물었다. 예수는 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 그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 맹인을 고쳐 주었다. 그러면 다른 맹인들은?이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사도바울은 그런 질문에 대해 만들어진 그릇들이 도기장이에게 물을 권리가 없다고 했다. 도기장이들은 한 덩어리의 진흙으로 도자기도 만들 수 있고 막그릇을 만들수도 있고 크고 작은 그릇을 그 마음대로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나는 성경을 처음 읽은 친구에게 이성적으로 납득할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불가능했다. 다만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자네는 다리는 불편 하지만 머리는 천재급이었잖아? 그래서 변호사로 지내면서 돈을 벌어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아파트에서 살았었지. 만약 머리가 나쁜 사람이 자네에게 와서 왜 하나님은 자기에게 그렇게 둔한 머리를 주어 세상을 힘들게 살게 하느냐고 하면 자네는 뭐라고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하늘에 있는 별들도 다 크기와 빛이 달랐다. 목성과 수성 지구가 다 다르다. 별들도 다 똑같아야 하고 인간도 다 같아야 하는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나이를 먹고 나서 녹내장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어. 눈의 역할이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슬픈 거지. 자네가 한쪽 다리가 불편한 것 이상일 수도 있어. 그래도 내게는 한쪽 눈의 시력이 남아있고 자네도 한쪽 다리가 남아 있잖아? 그걸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게 믿음이라고 생각해.”

나는 병도 그분이 보내는 강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3244 온기를 남기고 떠난 사람들 운영자 24.01.29 91 3
3243 고독은 즐겨야 운영자 24.01.29 107 3
3242 인생길의 노잣돈 운영자 24.01.29 126 2
3241 무모한 일을 저지르며 살았다 운영자 24.01.29 90 1
3240 백개의 안락의자 [1] 운영자 24.01.22 158 4
3239 고급 인간 운영자 24.01.22 94 2
3238 눈에 낀 비늘 운영자 24.01.22 84 2
3237 나의 허위의식 운영자 24.01.22 77 3
3236 총리와 장관자리를 거절한 남자 운영자 24.01.22 108 2
3235 그들은 우연히 오지 않았다 운영자 24.01.22 78 2
3234 미운 오리 새끼 운영자 24.01.22 87 3
3233 작은 새의 죽음 운영자 24.01.22 65 2
3232 머리 속 가짜 프로그램 [1] 운영자 24.01.15 114 3
3231 운명을 바꾸는 비법 운영자 24.01.15 87 3
3230 세뇌된 나를 몰랐다. 운영자 24.01.15 68 2
3229 세상의 성공과 영혼의 기쁨 운영자 24.01.15 69 2
3228 낙타와 어린 코끼리가 울고 있었다 운영자 24.01.15 77 2
3227 노년에 집을 지으면서 운영자 24.01.15 71 2
3226 이웃을 괴롭히는 존재들 [2] 운영자 24.01.08 133 3
3225 전문직이라는 탈의 뒤쪽 운영자 24.01.08 117 2
3224 만난 사람들이 나의 인생 운영자 24.01.08 88 1
3223 오줌 운영자 24.01.08 74 2
3222 늙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까? 운영자 24.01.08 97 3
3221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작품 운영자 24.01.08 90 2
3220 새해를 맞아 감사인사 드립니다 [1] 운영자 24.01.08 109 5
3219 내 안에 있는 영적 존재 운영자 24.01.02 88 2
3218 열등감 운영자 24.01.02 92 2
3217 기도해 줘, 나 암이래 운영자 24.01.02 116 3
3216 메모하는 사람들 운영자 24.01.02 85 2
3215 좋은 책 [1] 운영자 24.01.02 99 2
3214 백년 후 [1] 운영자 24.01.02 111 3
3213 우리나라 좋은 나라 운영자 24.01.02 70 2
3212 사람을 즐기는 사람들 운영자 24.01.02 77 2
3211 조용한 전진 운영자 23.12.25 101 2
3210 최고의 브로커 운영자 23.12.25 101 3
3209 늙으니까 외로운가? 운영자 23.12.25 89 2
3208 풀꽃시인은 장미가 부러울까 [1] 운영자 23.12.25 99 2
3207 자신에게 맞는 재미 운영자 23.12.25 77 2
3206 재미있게 견디기 운영자 23.12.25 80 2
3205 늙어서 빚 갚기 운영자 23.12.25 93 3
3204 너는 누구지? [1] 운영자 23.12.18 136 2
3203 인생 만트라 운영자 23.12.18 89 2
3202 젊어지기 싫은 노인들 운영자 23.12.18 96 2
3201 마약 연예인의 서커스 운영자 23.12.18 88 2
3200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눈 운영자 23.12.18 88 2
3199 나병 노인과 아들 운영자 23.12.18 71 2
3198 민족이라는 거 의미없어 운영자 23.12.18 81 2
3197 씨발영감 운영자 23.12.11 124 2
3196 시인(詩人)의 꿈 운영자 23.12.11 73 2
3195 여행길에서 만난 정신과의사 운영자 23.12.11 96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